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38
제138화
타나토와 제몬은 리펠리온의 지하 감옥 중 가장 깊숙한 곳에 같이 갇혔다.
잡혀오고 나서 1달 간 정신을 잃었던 타나토 때문에 의료진이 수시로 다녀갔지만.
깨어난 직후론 식사를 가져다 주는 인원 빼곤 아무도 출입을 하지 않았다.
다른 감옥 방에조차 아무도 없는 공허한 지하 감옥, 들리고 보이는 거라곤 쥐와 맺혀 떨어지는 물방울 밖에 없었다.
2층짜리 침대 아래 칸을 차지한 제몬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
“…….”
“형, 뭐라도 좋으니까 대답 해줘.”
“…….”
“혀엉.”
“……닥쳐.”
“응…….”
떨림이 묻어났던 목소리는 타나토의 음성을 듣고나서야 겨우 안정 되었다.
두 형제의 대화는 이게 전부였다.
얼굴을 보지 않고, 괜찮냐고 묻지도 않고.
오로지 목소리를 듣고 살아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되었다.
그에 반해 타나토는 불안과 공포에 극심히 떨었다.
“젠장……. 내가 왜…….”
하루에 수도 없이 입으로 욕이 나온다. 알 수 없는 책망과 원한이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마다 제몬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래도 안심했다. 형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탁.
고요를 뚫고 발소리가 퍼졌다. 형제가 흠칫 놀랐다.
타나토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제몬은 벌떡 일어나서 철창에 붙었다.
식사 시간까진 멀었다.
이 시간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누가?
제몬은 알 수 없는 방문객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우릴 꺼내줘!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이딴 곳에 가둬놓은 거야! 난 나이트워커의 직계인 제몬 덴 나이트워커다! 얼른 꺼내! 꺼내라고!”
“여전히 형님은 시끄러우시군요.”
“……!”
익숙한 음성에 타나토의 상체가 벌떡 일어섰다.
어둠 저편에서 다가온 그림자는 다름 아닌 유리였다.
그의 등장에 제몬은 철창에서 한 발씩 멀어졌다.
“너…… 너……!”
“두 분 다 멀쩡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죽으면 어쩌나 했거든요.”
“거짓말 하지 마!”
“거짓말 아닙니다, 제몬 형님. 약속드린대로 타나토 형님도 살려드렸고, 지금도 이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우릴 이딴 곳에 가둬놓고 살기는 무슨! 얼른 우릴 풀어줘!”
“걱정마세요. 풀어드리러 왔으니까요.”
“저, 정말?”
“네, 그 전에.”
대답에 앞서 유리는 간수용으로 마련된 의자 하나를 끌고 와 그들과 마주 앉았다.
형제의 몰골이 말이 아닌 걸 확인한 유리의 시선이 마지막엔 타나토에게 고정되었다.
눈이 마주친 타나토는 얼굴을 돌려버렸다.
“먼저 아셔야 할 건, 형님들의 목숨은 제가 쥐고 있습니다. 리펠리온이 아니라 저한테 말이죠.”
“네가? 왜, 왜?”
리펠리온에서 소동을 피웠으니 리펠리온이 처리할 줄 알았던 형제였다.
그리고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가문끼리 얽힌 문제라면 벤헬링턴이, 아니면 아버지인 다이올드가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허나, 서약서에 대해 알 리가 없는 형제는 어리숙한 얼굴로 의문을 표할 줄 밖에 몰랐다.
“형님들이 왜 그런지 알 바는 없습니다.”
“가주님께서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우리를 죽일 생각이라면……!”
“형님들께선 허락받고 절 죽이려 했던 건가요?”
“그건……!”
차마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로남불식의 마인드에 유리의 입가가 비웃었다.
“형님들을 살려서 보내긴 할 겁니다. 가문으로 멀쩡하게요. 가셔서 벌을 받는다면…… 글쎄요. 거기까진 제가 어쩌지 못하겠군요.”
“정말이야? 멀쩡하게 보내줄 거야? 팔다리 자르진 않을 거지?”
대체 이 형제의 머리는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유리는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 답했다.
“네. 대신. 돌아가거든 절 죽였다고 하십시오.”
“어? 진짜로?”
“네. 어차피 이대로 제가 살아있다고 알려졌다간 백부님께서 형님들을 가만히 놔두시진 않을 테고. 그렇게 되면 제몬 형님과 했던 약속이 어긋나니까요.”
“그치만 가주님께는 뭐라고 해?”
“가주 자리를 놓고 싸우다 죽는 일쯤이야 흔하니 할아버지께서도 별다른 말씀을 하진 않으실 겁니다.”
뜻밖의 제안에 형제가 두 눈만 끔뻑거렸다.
그들에겐 아닌 밤중에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멀쩡히 돌아가더라도 유리가 살아있어서 다이올드에게 무조건 혼쭐 났으리라.
“너, 속셈이 뭐야.”
순순히 받아들이는 제몬과 달리 타나토는 의문을 표했다.
그는 2층 침대에서 내려와 섬뜩한 몰골로 다시 물었다.
“어째서 우리를 살려두는 거냐고.”
“살고 싶은 거 아니었습니까?”
“너한테 살아나봤자 누가 기뻐한다고.”
“제 나름의 연민이 마음에 들지 않나보군요.”
“연민? 허? 크하?! 하하하하!”
순간 타나토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정신 나간 듯한 웃음소리에 제몬이 지레 겁을 먹고 거리를 벌렸다.
그런 동생에 아랑곳 않고 배를 부여잡으며 웃던 타나토는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하하! 네가 그러니까 열등분자 소리를 듣는 거야. 적을 죽일 기회를 두고 살려준다니! 연민? 동정? 쓰레기 같은 감정 때문에 넌 네 스스로 죽을 거다!”
“……………….”
유리는 말없이 그의 광기를 지켜봤다.
그러고 보니 가문에 처음 왔을 때도 제몬한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은데.
같은 형제라고 뱉는 말까지 똑같으니 우스웠다.
그런 형제를 향해 유리는 갑자기 마검을 뽑았다.
“헉! 야, 너!”
“……!”
진짜 마검을 본 형제의 낯빛이 단숨에 어두워졌다. 지하 감옥을 메아리치던 웃음소리도 뚝 끊겼다.
그러고 보니 형제에게 진짜 마검을 보여주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타나토 같은 경우는 지식의 관 입학 시험을 하면서 당하기도 했었지.
“예전에도 저한테 연민이니 동정이니 인간다운 발상을 한다며 뭐라하셨었죠.”
누구였더라.
제몬이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만. 누군들 중요하랴.
유리는 마검을 철창 가까이 겨눴다.
창살에 붙어있던 제몬이 후다닥 타나토 뒤로 도망쳤고, 타나토도 뒷걸음질 쳤다.
이윽고 마검 끝자락에 검은 마나가 모여들었다.
마나는 점점 검신 전체를 감싸곤 색이 진해졌다.
제몬이 바락 소리쳤다.
“우, 우릴 죽이려고? 사사, 살려준다며!”
“제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거겠죠.”
마나가 앞으로 뻗어 나갔다. 철창에 닿자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녹아내렸다.
그치지 않고 마나는 형제를 향해 계속 전진했다.
형제는 반항하지 못했다. 여기서 또 싸움이 일어났다간 유리가 아니라 밖에 있는 병력에게 죽을 터.
그 순간, 유리는 마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스윽, 댕강!
형제가 베이진 않았다.
대신 철창이 반토막 나며 아랫 공간이 열렸다. 유리는 그대로 마검을 거뒀다.
그렇게 나오고 싶어하던 감옥이 열렸으나 형제는 꿈쩍하지 않았다.
밑으로 기어서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유리는 마검을 거두며 경고했다.
“동정과 연민은 승자가 베푸는 은혜입니다. 그러니 살려둔다고 우쭐대지 마십시오. 형님들을 죽이고 말고 결정은 제가 하는 거니까요.”
그리곤 돌아서서 왔던 길로 돌아갔다.
형제는 뚫어진 작은 구멍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 * *
유리는 곧장 리펠리온의 비밀 서재로 돌아갔다.
그가 누워있던 병상은 치워지고, 그 자리엔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나 있었다.
지하실 입구 앞에는 샤르트앙, 해링, 릴림이 기다렸다.
유리가 돌아오자 해링이 먼저 그를 반겼다.
“벌써 작별을 고하고 왔소?”
“작별이랄 것도 없어서, 대충 인사치레만 했습니다.”
“그렇구려. 이해하오.”
“그런데 어머니께선…….”
오늘은 드디어 클라우드 하트와 접속하는 날이었다.
클라우드 하트와의 접속은 단순히 도서관에서 책을 보듯이 정보를 보는 게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유리가 처음 나이트워커 도서관의 1티어 섹터에서 설정집을 봤을 때와 비슷했다.
지식과 정보가 아닌.
마치 하나의 세계를 경험한다고 보면 되었다.
때문에 한 번 접속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한 번 얻은 클라우드 하트와의 접속을 이대로 놓치긴 더 아깝고.
더구나, 이번에 가짜 마검과 싸우면서 극심한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접속에 몇 년 정돈 써가면서 클라우드 하트에 저장된 정보들을 할 수 있는 한 전부 둘러볼 작정이었고.
릴림과 해링이 마중을 나온 것이었는데.
‘어머니만 안 오셨네.’
이상하게도 샤를린느는 유리가 깨어난 직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많이 아프고 피곤해서 그렇다고 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한테 보여줬던 모습 때문일까.’
가짜 마검과 조우하면서 봤던 어머니의 기묘한 모습.
마치 드래곤의 반쪽을 떼어다가 사람과 합치면 나올법한 그때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샤를린느는 갑자기 들켜버린 자신의 모습에 몹시도 당혹스러워했었다.
한편으론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런 감정을 유리는 느낄 수 있었다.
‘뭔지 몰라도 난 괜찮은데…….’
아쉽지만 별 수 없지.
어머니로선 숨기고 싶었을 과거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걸 하루 아침에 아들한테 들켰으니, 헤아릴 수 없는 심정이기에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유리는 씁쓸히 웃으며 릴림에게 다가갔다.
“릴림.”
“……네.”
“넌 또 왜 기운이 빠져 있어.”
“저, 혼자 여기 있어도 돼요?”
“무슨 소리야?”
“저, 또, 마님을 못 지킬 수 있어요.”
어쩐지.
깨어난 직후 어머니만이 아니라 릴림도 이상하다 싶었다.
원래도 조용한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말이 없지는 않았다.
말투가 조용할 뿐, 은근히 수다도 많고 짓궂은 농담도 가끔 던졌었다.
그런데 가짜 마검과 만난 후로는 쭉 말수가 부쩍 줄었다. 농담은커녕, 어쩔 때는 하루 종일 얼굴을 본 적 없었다.
지금도 얼굴에 우울함이 가득하다.
“릴림, 그러면 너도 숙제를 받겠어? 블레이크 경이나 이자벨처럼.”
“에? 저도요?”
유리는 미리 준비해뒀던 편지 봉투 두 개를 건넸다.
봉투엔 받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나는 샤를린느에게 보내는 거였고, 또 하나는 방금 말한 대로 릴림의 숙제였다.
“거기 적힌 곳으로 카이랑 같이 가. 카이가 안 가겠다면 성검의 각성이라고 말하면 될 거야.”
“왜, 저한테, 이런 걸…….”
“강해지고 싶은 거 아냐?”
“그치만 마님은요?”
“네가 떠나면 어머니는 리펠리온에 머물게 할 참이야. 내가 죽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가 나는 순간, 나이트워커로 돌아갈 순 없으니까. 해링 님께 전부 부탁해놨어.”
“…….”
봉투를 받은 릴림은 한동안 그걸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손끝으로 봉투를 문질러보고, 꼭 쥐었다가 피길 반복했다.
“도련님은 언제나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걸 저에게 주시네요.”
그리 말한 릴림은 소중한 물건 다루듯 조심스레 품속으로 봉투를 챙겼다.
사실 그녀에겐 더 이상 강해지라거나 투쟁을 권유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악마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그녀에게 미래의 악마와 싸우라는 건 무리였으니까.
그저 옆에 있으면서 릴림 안에 잠재된 레벤나가 나쁜 쪽으로 작용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가 원했다.
지난 몇 년 간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그녀에게 생긴 자그마한 욕심을 이대로 내버려 두기엔 아까웠다.
“갔다 와서 보자. 어머니껜 네가 안부 좀 전해주고.”
“네에,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마지막으로 유리는 샤르트앙에게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홀로 지하실로 내려갔다.
딱히 주의사항이라 해봤자 결과적으로 하나였다.
“그곳은 곧 살아있는 세계와 같다. 그러니 죽을 위험이 있다면 피해라.”
……라고.
그러나 정작 클라우드 하트 안내를 맡을 티르빙은 생각이 달랐다.
[죽을 각오해, 꼬맹이. 다시는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혹독한 지혜로 안내할 테니까.](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