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40
제140화
멸망이 도래한 세계 같다고 했던가.
산을 내려가기 무섭게 그 의견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지옥이, 따로, 없네, 헉. 헉. 헉…….”
유리는 게슐츠의 검을 바닥에 지팡이 삼아 꽂으며 마른 침을 뱉었다.
땅바닥엔 본 적 없는 마수들의 시체가 바다처럼 널렸다.
이 세계에 도착하고 1시간.
산을 내려오고 10분.
그 짧은 시간 동안 벌써 100여 마리가 넘는 이름 모를 마수의 습격을 받았다.
그렇게 죽이고도 남은 숫자가 몇 백 마리를 넘겼다.
지금은 잠시 따돌리고 숨을 골랐다.
“끝이 없네. 한 마리, 한 마리도 성가신데, 조직적으로 공격하는 마수라니.”
[그래도 훈련되고 좋잖아. 임기응변으로 싸우고 있으니까. 아마 실력 많이 늘어날 걸.]티르빙이 익살스럽게 그리 말했다.
싸움이 치열해지자 티르빙과 별빛나무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유리의 손에는 마검이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게슐츠의 검으로만 싸웠다.
마검으로 싸우면 훈련이 안 된다나.
이는 티르빙이 걸어둔 제한이었다.
“왜 나만, 고생인 건데? 너희 둘은?”
[혹시 우리 꼬맹이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건 아니겠지?]“후회가 아니라…….”
게슐츠의 검이 또 버티지 못하고 있다. 충격을 받으면 휘어지다가 종종 툭,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대로 몇 번 더 부딪혔다간 부러질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이미 한 번 부러져서 복구시킨 검이라 그런지 검의 내구성이 떨어졌다.
이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티르빙, 진짜로 안 도와줄 거야? 네 주인 이대로 죽게 놔둘 거냐고.”
[안 돼.] [안 돼요.]매정하기는.
어차피 마검으로 쓸고 나갈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티르빙과 별빛나무가 사람으로 변하는 이상 현상처럼.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면서 유리의 몸에도 이상 현상이 생겼다.
드래곤 하트를 써도 체력이 부족하다던가, 마나 코어가 답답하게 느껴진다던가.
그렇다고 정상적인 마나 운용은 가능했다. 그냥 느낌이 조금 불안했다.
“근데 별빛나무도 내 내면에서 말할 수 있었던 거야?”
[들러붙어서 살고 있는 처지라 부끄러워서 숨어 지냈답니다.]“월세 안 받아.”
[어머, 좋은 집주인이네요. 그럼 저도 떠들어도 되나요?]“층간 소음만 아니면 돼.”
[그건…… 장담 못하겠는 걸요. 그쵸, 티르빙 양?] [이 언니도 심심풀이는 있어야지.]유리는 피식 웃곤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넘겼다.
잠깐의 휴식이 지나고.
다시금 숲 안쪽이 파스락거렸다. 수풀들이 좌우로 흔들리며 들개 마수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녀석들 입가엔 피가 흥건했다.
유리가 쓰러뜨린 동족을 먹고 온 모양이다.
“다시 시작이군.”
[말했다. 우린 안 도와줄 거야.]게슐츠의 검이 부서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리는 검을 고쳐 잡았다.
최소한의 힘과 마나, 작은 동작, 대신 그 무엇보다 효율적으로 적을 죽인다.
그래야 녀석들을 전부 쓰러뜨릴 수 있다.
크렁!
선두에 있던 들개 마수를 필두로 일제히 뜀박질을 시작했다.
유리의 검이 그런 녀석의 앞다리를 잘랐다.
컹! 크락!
이어서 중심을 잃은 녀석을 짓밟고 뒤따라서 다른 놈들이 달려들었다.
마찬가지로 다리나 턱의 근육을 잘라서 물지 못하게끔 했다.
투둑, 손끝에서 근육이 잘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때마다 피가 아무렇게나 튀었다.
“흐읍!”
녀석들이 아무리 조직적이고 수가 많아도 약한 건 사실이었다.
검의 사정권에 들어오는 순간, 놈들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채 다리나 주둥이 중 하나를 잃어야만 했다.
그러나 유리는 녀석들의 목만은 베지 않았다.
흔한 약점이 녀석들에겐 약점이 아니었으니까.
목을 베거나 심장을 잘라도 공격을 그치지 않았다.
결국 팔다리를 자르거나 주둥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근육을 끊어야만 했다.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렇게라도 해놓으면 다른 동족이 행동 불능이 된 동족을 잡아먹었다.
그걸로 시간이라도 끌리면 좋으련만. 그래봤자 1초면 뼈만 남았다.
크락!
부욱! 부욱! 우득! 우득!
살과 뼈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먹이를 먹은 마수는 재차 유리를 향해 달렸다.
끔찍하다고 생각할 겨를 따위 없었다.
애초에 유리에겐 그것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당장 코앞에서 피라냐 같은 이빨을 드러내는 녀석들을 상대하기도 벅찼다.
‘마나를 함부로 쓸 수도 없고……!’
유리는 최대한 마나를 육체의 힘으로만 치환해서 썼다.
아칸 검법이나 마법을 쓰면 단숨에 여럿을 죽일 수 있겠지만, 이 같은 마수가 목적지까지 널리고 널렸다.
티르빙이 말하기론 1급보다 더 강한 마수가 넘친다고 한다.
목적지까지 도달하고자 마법과 검술을 남발했다간 분명 도착하기도 전에 쓰러질게 뻔한 상황.
그래서 유리는 버텼다.
마나를 폭발시키고 싶은 욕구를 참고, 근육이 터져라 검과 몸을 빠르게 움직이며 마수를 처리했다.
‘어떻게든 힘을 비축하면서 가야 해!’
탁!
틈이 생기기 무섭게 다리에 마나를 불어넣고 자리를 이탈했다.
그리고 금방 마수가 따라붙으면 다시 싸우고, 기회가 생기면 도망치고.
산을 내려와서 숲에 들어오기까지 이렇게 전투를 반복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악!!
드디어 숲 경계가 보이는 순간, 여태까지 듣지 못했던 괴성이 숲에 울려 퍼졌다.
어찌나 소리가 컸는지 지축이 미세하게 떨렸다.
소리에 놀란 다른 들개들은 역방향으로 달아났다.
“뭐야.”
잠시 후 그 괴성을 지른 그 주인이 곧 얼굴을 드러냈다.
쿵! 쿵!
유리가 도망 왔던 방향에서 나무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지금까지 보지 못한 거대한 들개 마수가 천천히 걸어왔다.
교국에서 봤던 키메라보다도 훨씬 커서 목이 꺾어지도록 위를 올려야지만 얼굴이 보였다.
[이런 게 이 시대에 살았었나? 모르겠네. 별빛나무 양은 알아?] [모르겠는 걸요.]그냥 거대한 들개도 아니고.
다른 개체와 외모는 비슷했으나, 놈한테는 털 오라기 하나 없었다.
그 모습은 징그럽다거나 흉측한 걸 떠나서 공포스러웠다.
그런데.
“저거 사람 얼굴이잖아. 전부, 내가 아는……!”
이 시대엔 인간이 없다.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드래곤을 비롯해 마수라 불리게 될 생명체만이 이 세계를 지배했다.
헌데 마수의 피부에는 얼굴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도 채럿, 이자벨, 미앵비슈, 해링, 샤르트앙 등등 유리가 전부 아는 이들의 얼굴이었으니.
크르르.
마수는 유리를 발견하고도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여섯 개의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유리를 담았다.
그러다 갑자기 불룩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수포가 올라왔다가 가라앉듯이 피부가 변하더니 머리통 전체가 한 사람의 얼굴로 변했다.
‘어머니……!’
유리는 그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기겁한다는 게 말이 안 됐지만, 누구라도 마수의 머리통이 그리 변한다면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어머니가 아니다.
또한 저 마수도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가령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기억을 엿봐서 환각으로 보여주는 마수나 마법사들.
어머니 샤를린느의 얼굴을 꼬집어서 가장 큰 얼굴로 만든 걸 보니 아마 저 대형 들개 마수도 비슷한 부류이리라.
고로 저건 가짜다.
당연히 가짜일 수밖에 없다.
그럴 텐데.
“막상 마주치니까 기분이 더러운 걸.”
입꼬리가 웃고 있는데도 웃고있는 기분이 안 들었다.
저 놈을 죽여야 하는 건 확실한데, 하필 어머니의 얼굴로 변한 머리라니.
“티르빙, 너 알고 있었지.”
[몰랐다니까.] [몰랐어요.]둘이 동시에 맞춰서 대답하니까 더 수상하다.
하아, 유리는 한숨을 크게 마셨다가 뱉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괴로운 시험이었으리라. 유리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하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기분은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러나 놈이 마수라는 점도 어쩔 수 없었다.
스릉.
유리는 검을 왼쪽 팔뚝 위에 얹어 끝을 마수에게 겨눴다.
마수는 뒤늦게 제 변신이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얼굴을 원래대로 돌렸다.
“빨리도 알아채네.”
쿠락!
집채만큼 벌어진 주둥이가 벌어지고 위에서 유리를 덮쳤다.
마나를 쓰지 않고서 죽일 수 있을까.
가능하다.
다만, 리스크가 컸다.
이대로라면 몸속으로 들어가서 내장을 헤집어야 하고, 만에 하나 예상 외로 강한 위액이라도 있다면 멀쩡히 살아나올 수 없었다.
유리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검 끝에 마나를 모았다.
그리고 힘껏 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흡!”
모여든 마나가 튀어 나가며 놈의 아가리부터 머리 뒤까지 꿰뚫었다.
그럼에도 떨어지는 머리통은 멈추지 않았다.
유리는 검을 거두면서 동시에 자리를 이탈했고, 그 자리에 그대로 힘없이 마수의 주둥이가 바닥과 입을 맞췄다.
쿠우웅!!!
고작 일격에 쓰러진 마수에 유리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등장은 어마무시해놓고 쉽게 죽네.”
[…….]쓰러진 녀석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벌어진 입안에서 피로 된 폭포가 쏟아지고, 사후 경직으로 인한 떨림만 있을 뿐이었다.
작은 들개들보다 더 허무한 결과였다.
이럴 거면 진작에 다른 마수를 상대할 때도 마나를 쓸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생기려는 찰나.
드드드드드드드드득!
“……!”
갑자기 쓰러진 마수의 피부에서 다시금 얼굴이 일어섰다.
아까와는 달리 얼굴들은 마치 피부 바깥으로 빠져나가려는 듯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뿐만 아니라.
얼굴들은 빠져나가지 못하자 다른 얼굴을 잡아먹었다.
“이런 씨……!”
도저히 눈 뜨고 못 볼 광경에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다.
가까이서 본 얼굴들이 안 그래도 흉측했거늘.
혹시 죽지 않은 걸까?
역겨움을 참고 유리는 다시 마나를 휘둘렀다.
이번엔 아까보다 많은 마나를 써서 아예 목을 자를 생각이었다.
서걱!
길게 뻗은 검은 마나가 누워있던 목을 손쉽게 잘랐다.
그러나 유리는 손끝에 전해지는 감촉에 잇새를 더 꽉 물었다.
‘이 녀석, 일부러 나한테 공격권을 주고 있다!’
목과 머리를 꿰뚫었을 때도 그랬지만.
이상하리만치 쉽게 공격을 허용하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봐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작은 들개 마수들은 목이 잘려도 공격할지언정, 목을 보호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헌데 이 녀석은 소위 약점이 될만한, 목숨이 끊어질 만한 신체를 쉽게 노출했다.
유리는 그것이 의도됐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았다.
다만, 왜?
목이 약점이 아니라서 공격하게끔 놔둔 걸까?
그 답은 바로 나왔다.
툭.
잘린 단면에서 피나 살점, 뼈가 아닌 것이 떨어졌다.
얼굴이었다.
유리가 쓴 검에 반쪽이 된 얼굴은 벤헬링턴과 똑 닮아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벤헬링턴의 얼굴도 떨어지더니 얼굴 아래로 새로운 살점이 증식하더니 점점 크기를 키웠다.
이윽고 그것들은 한 사람의 육체로 형태를 갖추며 자랐으니.
“젠장.”
순식간에 벤헬링턴 몇십 명이 유리 앞에서 태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