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43
제143화
옛날부터 티르빙이 드래곤들 이야기를 해줄 때면 도저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애가 대표적이다. 고대 드래곤에겐 가족애라는 게 없었다.
드래곤의 태생은 창조주의 손으로 빚어졌으며 그것은 생명체 간에 흔한 잉태와 달랐다.
그래서 세드리치를 비롯한 드래곤에겐 ‘태어났다’라는 개념보다 ‘만들어졌다’라는 개념이 강했다.
‘우리가 아는 창조주도 블랙 드래곤에겐 어머니가 아닌, 그저 자신을 만들어준 존재일 뿐.’
세드리치가 어머니를 모른다고 했을 때, 이 세상엔 어머니란 개념이 없는 게 확실했다.
세상에 어머니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리고 그 반증으로 세드리치가 불쾌한 기색으로 물었다.
“나와 창조주보다 위대하다고? 그 어머니란 게?”
“네, 훨씬 위대하죠. 제 기억을 보셨으니 아시잖습니까.”
“네 기억의 어머니는 나약한 존재였다. 마지막엔 드래곤과 흡사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만. 그게 뭔지를 알 수는 없고…….”
“…….”
순간 호기심이 생겼다가 겨우 잠들었다.
안 그래도 샤를린느가 반인반용처럼 변했던 모습이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세드리치 또한 모르는 모양이다.
“짜증나는군.”
“윽!!!”
짜증난다는 말과 동시에 침이 정수리 한가운데 쑤욱 들어왔다.
칼을 쑤시는 고통 못지않은 아픔에 목이 자라마냥 움츠러들었다.
정작 찌른 장본인은 나머지 침도 깊이깊이 넣었다.
“인정이라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생명체가 또 있다니. 그걸 네놈이 내게 가르치고 있다니. 짜증난다.”
“못, 윽! 믿으십니까?”
“당연히 못 믿는다. 인정이라는 태도는 우리 드래곤도 감히 하지 못하는 가르침이다. 해봤자 창조주님뿐. 그런데 그런 가르침을 어머니란 게 주었다는 걸 어떻게 믿지?”
목소리는 한결같이 차분했으나, 마지막엔 살짝 격앙되어 있었다.
유리는 그보다 여유로운 톤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세드리치 님은 저를 가르쳐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설마 어머니보다 못하셔서 그런 건 아니겠죠?”
“고작 어머니라는 것과 날 비교해서 도발하는 건가?”
“도발이 아니라 의심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세드리치 님이 가르쳐주지 못한다는 건, 어머니에 비해서 가르칠 게 없으니까 그런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난 너의 기억을 보았다.”
“그러니까요. 제 기억 속에서 어머니를 보셨으니까 더더욱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아신 건 아닙니까?”
드래곤을 이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부분.
바로 자존심이다.
그들의 자존심은 용가의 용인보다 강하며 어린아이보다 유치했다.
그 결과도 과격하다.
자존심을 구기는 상대가 있으면 레어 하나를 없앤답시고 산맥 하나를 통째로 없애곤 했다.
유리는 그 점을 파고들었다.
어머니가 뭔지도 모르는 그에게 어머니랑 비교하는 유치한 자존심을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막상 통할까 걱정스러웠는데.
“……같잖군.”
마지막 뜸에 갈아놓은 약초까지 바른 세드리치는 침통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렇게 일어선 그가 밖을 나가기 직전 말했다.
“쉬어라. 하루면 나을 거다. 가르침은 내일부터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거 없다. 자존심을 긁은 대가는 비싸니까. 알아둬라.”
아이들도 쪼르르 그를 따라 나서고 나서야 유리도 안심했다.
정말 알기 쉬운 도마뱀이었다.
* * *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남은 약간의 피로만 해소한 유리는 밤이 되어서 잠시 밖으로 나왔다.
바깥 풍경도 그에겐 익숙했다.
작은 정원과 연못, 그 위에 자리잡은 정자는 전생에서 보던 전형적인 부잣집 양반댁의 전경이었다.
정자 위에는 아이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놀고 있었다.
‘뭐하고 있는 거지.’
가까이 가보니 충격적인 장면이 그를 기다렸다.
4~5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끼리 손에 서로 대련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손에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없는데도 불구하고 휘두를 때마다 상대의 보이지 않은 것과 부딪히고 충격음을 냈다.
“얍! 얍!”
“히힛! 더 해봐! 더 해줘!”
탁! 탁!
흡사 목도를 주고 받는 소리에 유리는 순간 얼이 빠진 채 그들을 구경했다.
‘저게 대체…….’
[무형검(無形劍).]‘뭐?’
[이름 그대로야. 형태가 없는 검. 마나로만 검을 만드는 거지.]‘마나를 다루려면 매개물질이 꼭 필요하다며. 혹시 자기 육체를 매개 물질로 삼는 건가?’
[아니. 저건 아무런 매개 물질이 없어. 오로지 마나만 있어.]‘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러니까 드래곤이지 않겠니.]‘그렇다는 건, 저 애들이 드래곤……?’
아니, 어머니라든가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던 거 아니었어?
그런데 세드리치의 집에 꼬마 드래곤이라니.
‘아니지. 창조주가 만들어서 맡긴 건가.’
[아마도 그게 맞지 않을까 싶네. 뭐, 이 언니도 잘은 몰라. 이 집에 꼬맹이들이 산다고 하긴 했었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유리는 좀 더 자세히 구경하기 위해서 정자에 접근했다.
신이 난 아이들은 유리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어! 이상한 마수!”
“용인인데 용인 같지 않은 마수다!”
“우릴 훔쳐보고 있었어!”
“안 훔쳐 봤어.”
유리는 그리 말하며 자연스레 정자 위로 올라갔다.
아이들이 그를 향해 거부감을 드러내진 않았다. 조금 놀리는 감이 있어도 도리어 그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너희들, 궁금한 게 있는데. 너희는 용인인 거야?”
“응! 우리 용인!”
“창조주와 드래곤이 만든 용인이지!”
드래곤과 창조주 사이에서 태어난 게 용인이라고?
전혀 알지못했던 사실이었다.
본디 용인의 기원은 드래곤이 홀로 만들어낸 생명체라는 설이 있었다.
창조주가 드래곤을 만들어냈듯, 그들도 자신의 힘만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든 것이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유력한 가설로는 세상에 더는 드래곤이 필요해지지 않자 창조주가 드래곤에게 멸족을 지시했고, 드래곤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후손을 남겼다고 한다.
물론, 설은 설에 불과했다.
어느 곳에서도 역사적으로 증명할 기록이나 증거가 없었다.
그나마.
‘클라우드 하트라면 알 수 있을지도.’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용인의 기원이 어떻든, 이 아이들은 유리의 초대 조상과 같았다. 또한 그 초대 용인이 보여준 대련은 감히 상상도 못할 수준을 보여줬다.
“방금 너희들, 마나로 검을 만들어서 쓰는 거 맞지?”
“응! 맞아!”
“응! 맞아!”
“응! 맞아!”
“혹시 나랑 대련을 해볼 수 있을까?”
“용인이 아닌 용인이랑?”
“응, 나랑. 안 될까?”
아이들한테 차마 가르쳐 달라고 하긴 그렇고. 대신 유리는 그들과의 대련을 택했다.
나이 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잠깐 지켜본 아이들은 검술 실력만 따지면 어지간한 직계 용인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거기다 무형검이라니.
이런 걸 보고 그냥 지나치긴 아까웠다.
“우웅, 대련. 해도 될까?”
“해보자. 재밌을 거 같아!”
“나도나도! 재밌으면 나도 할래!”
“좋아! 그럼 나랑 먼저 하자!”
한 남자 아이가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른 아이들이 알아서 공간을 벌렸다.
남자아이는 보이지 않는 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말했다.
“이 선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안 돼!”
“나가면 지는 거야!”
“여길?”
정자 바닥엔 외곽을 따라 작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안 그래도 정자 자체가 작은 마당에 선까지 그어지면서 공간이 더욱 비좁아졌다.
유리의 덩치가 아이들보다 커서 좁은 게 아니었다.
애초에 아이들도 반 걸음 앞에서 상대를 놓고 대련을 했었다.
‘사정권 내에서 계속 수 싸움을 하는 건가. 그것도 상대 검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왠지 재밌을 거 같다.
유리는 티르빙을 뽑아서 사내아이와 마주했다.
이 순간만큼은 아이와 싸운다는 죄책감이 안 들었다. 그보다 막강한 적을 두고 싸운다는 막역한 긴장감이 들었다.
이 아이들은 그 정도로 강했다.
“시작할게!”
“그래.”
휘릭!
보이지 않는 검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피부 가까이서 바람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리는 방어 자세를 취할 수도 없었다.
“끗!”
부딪힌 힘이 역시 어린 아이의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마리 할머니랑 비슷해!’
휙, 쿠득!
사내아이의 검이 재빨리 거둬졌다가 전면부로 떨어졌다.
순간 방어 대신 피하려고 하던 유리는 뒤늦게 선이 있다는 걸 알고 티르빙을 가로로 뉘어서 들었다.
“으악!”
그러나 이미 사내아이의 검이 이마빡을 두들긴 뒤였다.
그렇게 단 두 합 만에 유리는 패배하고 말았다.
“으윽, 더럽게, 아파.”
“아프지! 당연히 아파!”
“히히! 얘 제일 약한데!”
“맞아, 나 제일 약한데! 졌어!”
아이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유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이마를 부여잡은 채 유리는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검이 아니라 둔기였기에 망정이지. 진짜 검이었다면 꼼짝 없이 머리가 반으로 갈라졌으리라.
그런데 제일 약한 애가 이 정도라니.
‘제일 강한 애였으면 뚝배기가 깨졌겠어.’
이마에 혹이 날 정도로 부어올랐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티르빙을 고쳐 잡았다.
“다시 하자.”
“다시 해?”
“또?”
“또 한다! 히히!”
“그래, 또 하자!”
그때까지 유리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에겐 그저 두들겨 팰 약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기뻤다는 걸.
그리고 앞으로 126번의 대련을 전부 패배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오랜만에 세드리치는 방에 앉아 수정구에 손을 얹고 있었다.
창조주의 말씀을 듣거나 다른 드래곤과 연락을 하는 아티팩트로, 오늘은 다른 드래곤들에게 연락을 걸었다.
당연히 받는 이는 없었다.
요 며칠 전에도 산 몇 개를 세드리치가 날려 먹은(?) 탓이었다.
그렇게 연락을 돌리고 돌리다가 4번째 드래곤에게 다다랐다.
헌데 이 드래곤도 영 연락이 신통치 못했다.
“짜증 나게 구는군.”
산을 날리는 것도 이쯤이면 익숙해질 때가 되었건만.
그러다 갑자기 수정구 안의 색이 바뀌었다.
투명하던 배경이 어느 한 여자의 얼굴을 비쳤다.
수정구 특유의 불투명함 때문에 이목구비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으나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세드리치는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뭐하다가 이제 연락을 받는 거지.”
“할 일이 있었어요. 당신이 부순 산 때문에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잃었기 때문이죠.”
“그 동물들이 내 영역을 침범한 건 잊은 건가.”
“제가 뭐라 했나요? 왜 또 갑자기 시비를 거시죠.”
“……됐고.”
또 말싸움이나 하다가 산을 날릴 순 없다.
오늘은 그보다 중한 볼일이 있었으니.
“내 기억이 미래에 남았다. 네놈 짓인가?”
“내가요? 당신 기억을요? 왜요? 뭐가 예쁘다고 당신 기억을 남기죠?”
“기억과 지혜, 진리를 관장하는 사명은 너다. 너 말곤 없어.”
“그러니까, 나 말고 없는 건 나도 알아요. 그런데 내가 어째서 당신 같은 도마뱀 머리를 저장해야 하는 건지 묻는 거예요.”
세드리치가 4번째로 연락을 걸은 드래곤은 미래에 리펠리온 가(家)의 조상이 되는 화이트 드래곤 키에니였다.
키에니는 짜증을 간신히 억눌러가며 따졌다.
“제대로 말해봐요. 당신 기억이 미래에 남았다는 게 무슨 소린지부터 차근차근히요.”
“말 그대로다. 내 기억이 미래에 남아있다. 아니, 남게 된다.”
“그걸 어떻게 아는데요?”
“내 기억을 타고 미래에서 온 자가 있으니까.”
“…….”
순간 키에니에게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짜증으로 일그러졌던 분위기도 갑자기 전환됐다.
설마.
진짜로?
반신반의하면서도 충격을 받은 그녀는 확인하는 질문을 되묻지 못했다.
이에 세드리치가 확인시켜줬다.
“정말로 내 기억을 타고 온 사람이라면, 예언대로 우리는 정말 죽는 건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