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45
제145화
퐁!
누가 보면 붕어가 수면 위로 뻐끔거렸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파문은 분명 유리가 일으켰다.
그는 아쉬운 얼굴로 세드리치를 돌아봤다.
“지금은 이 정도밖에 하지 못합니다.”
“무형검을 할 줄 몰랐던 거 아니었나?”
“무형검이 뭔지는 당연히 모릅니다. 그치만 아이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 해보니 흉내쯤은 가능하더군요.”
겉으론 아이들을 보고 따라 했다지만.
사실 마리로부터 이와 비슷한 훈련을 받아본 적 있었다.
그녀는 자유의 관에 종종 나와서 직계를 대상으로만 한 가지를 가르쳐 줬었는데.
소위 심검(心劍)이라 부르던 것이었다.
전생에서 종종 봤던 무협지에서 심검의 경지는 이룩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 일컬었다.
그러나 마리가 가르친 심검은 조금 달랐다.
마나를 형상화해서 이를 무기로 쓰는 방식이었으니까.
알고 있던 심검과 달라서 유리는 마리에게 물었었다.
“심검은 마나조차 쓰지 않아야 심검이라 할 수 있지 않나요?”
“머리가 장식이 아니라 다행이구나. 맞다. 심검의 경지에선 그 무엇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적을 죽여야 하지. 그러나 그 경지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전승되지 못했다. 한다면 너희 가주 밖에 없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리고자 하는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유리는 당장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라 치부했다. 벤헬링턴이 가능하다는 심검을 유리가 할 순 없을 테니.
그러다 불현 듯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들과 싸우면서 대충 어떻게 하면 될지 감이 잡혔습니다. 방식이 명확하진 않지만요.”
“…….”
세드리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물론, 그의 기준에서 방금 준 숙제는 기초이기 때문에 해낸다고 해서 놀라워할 건 없었다.
그저 유리의 기억을 훑어본 결과, 절대 그가 하루아침에 다다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괜히 드래곤 하트의 계승자가 아니라는 건가.’
괄목할만한 성과임은 확실했다.
그러나, 세드리치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난 호수를 가르라고 했지, 조약돌 하나 던진 수준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다.”
세드리치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유리는 그가 사라질 즈음 호수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곤 입가에 약간의 웃음기가 피었다.
“안 그래도 호수를 가를 생각이었습니다.”
유리는 딱히 세드리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통과냐고 묻지 않았고, 애초에 그런 기대감은 갖지 않았었다.
근데 세드리치가 먼저 호수를 갈라야 한다고 딱 잘라서 말해버리다니.
‘어지간히도 놀라셨나 보네.’
물론, 제일 놀란 건 당연히 유리였다.
그냥 해보겠다는 식으로 단순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손을 휘둘렀다. 그렇다고 ‘안 된다’ 혹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은 절대 아니었다.
해보겠다는 의지는 진짜였다.
그랬더니 정말로 성공해버렸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 고정관념을 버리고 반드시 하겠다는 생각마저 지워야 한다는 건가.’
고정관념을 지우기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다만, 고정관념을 없애겠다고 다른 관념으로 대체하면 다른 문제를 낳았다.
특히 반드시 해내겠다는 마인드.
그런 마인드조차 없어야 한다.
단순할수록 더 강한 법.
그냥 한다.
그저 한다.
할 수 있다는 게 아닌, ‘한다’라는 간단하고도 평범한 관념이 필요했다.
‘더 해야 해.’
유리는 심기일전하여서 수도를 내리쳤다.
두 번째 수도는 실패했다. 그리고 다음도, 그 다음도 실패.
아무래도 초심자의 행운 같은 우연이었던 걸까.
그러나 유리는 그런 생각조차 완전히 잊은 채 수련에 돌입했다.
결국 주어진 숙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끝없는 반복이었다.
될 때까지 한다는 노력이야말로 유리가 깨달은 가장 강력한 진리였다.
* * *
며칠이 지나도록 첫날처럼 호수가 튀어 오르는 일 따위 일어나지 않았다.
옆에는 아이들이 몰려와서 유리의 수련을 구경했다.
“꺄하하! 실패! 실패!”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맞아, 맞아! 할 수 있어! 했었으니까!”
검을 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팔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팠다. 그럴 정도로 팔을 휘둘렀다.
정말로 초심자의 행운으로 끝나는 가 싶었으나.
그래도 한 가지 성과를 얻었다.
물이 튀어 오르거나 호수가 갈라지는 대신.
“우와! 구름이 또 갈라졌어!”
“이힛! 신기해! 구름이 반쪽이 됐어!”
“와하하하!”
“…….”
유리는 잠시 숨을 고르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처음엔 알지 못했었다. 그러다 4만 번쯤 팔을 휘둘렀을 때였나.
갑자기 찾아온 아이들이 하늘을 가리켰다. 호수에만 집중하고 있던 유리는 처음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구름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처음부터 갈라져 있던 구름이 아니라, 유리가 그은 선을 따라 모든 구름이 반으로 나뉘었다.
오늘도 새하얀 구름이 호수 대신 갈라졌다.
“호수가 아니라 하늘…….”
호수보다 더 크고 어려운 걸 성공시켰는데, 유리는 이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결국 제 검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적어도 노리는 타겟을 정확히 노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것도 못하면 무형검이 아니라 검의 기초도 배우지 못한 격이었다.
“어떻게 하늘로 향한 공격을 호수로 끌고 오지.”
세드리치는 분명하게 호수를 베라고 했다.
종종 찾아왔던 그가 하늘이 갈라진 걸 봤으나, 역시나 별다른 감흥 없이 호수를 베라는 말만 반복했다.
“근심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군요.”
그런 유리에게 한 손님이 찾아왔다.
하얀 머리의 여자 엘프였다. 복장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올법했으며, 그마저도 새하얘서 보고 있으면 눈이 부셨다.
그녀를 보자마자 세드리치와 비슷한 감각에 솜털이 곤두섰다.
드래곤이었다.
“반갑습니다, 미래로부터 기억을 거슬러온 자여. 난 바람의 드래곤 아이리스라고 해요.”
“처음 뵙겠습니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라 합니다.”
“미래에서 왔다고 해서 어떤 생명체인지 궁금했는데. 못 보던 생명체치곤 훤칠하게 생겼네요. 왠지 용인과 닮아있기도 하고.”
“저에 대해 알고 계시는 듯하군요.”
“밤마다 세드리치가 연락을 하고 있거든요.”
“밤마다요?”
“자랑을 얼마다 하던지.”
자랑? 세드리치가?
무슨 자랑을 했는지 모르겠다만. 유리는 별로 좋지 못한 말을 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과 달리 세드리치는 정말로 자랑을 했다.
정확히는 유리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아이리스에게 알려줬다.
‘밤마다 귀찮게 한 것만 떠올리면 당장 모가지를 자르고 싶었는데, 뭐. 막상 보니까 반반하니 괜찮네.’
아이리스는 위아래로 유리를 훑었다.
그녀에게도 유리는 독특한 생명체였다.
용인이 아닌데 용인과 닮았고 느껴지는 기운은 드래곤과 흡사했다.
‘인간은 원래 이런 건가.’
단번에 호감을 느낀 아이리스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을 가른 게 당신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세드리치 말로는 호수를 가르라고 했다던데요.”
“안 그래도 고민이 깊었던 참입니다. 호수가 아니라 자꾸 하늘이 갈라져서요.”
“고민할 게 있나요. 뭐든 잘랐으면 됐죠.”
“그렇습니까.”
“그런 거예요.”
아이리스가 싱긋 웃고는 유리 앞에 마주 섰다.
“오늘 내가 이리 온 건 당신을 가르치기 위해서요.”
“아이리스 님께서요?”
“네. 원래는 세드리치가 해야 하지만, 자존심 상하게도 우리 드래곤들 사이에서 그가 제일 강하거든요. 그래서 그에게서 무언가를 배워도 따라가기 힘들 거예요. 호수와 하늘 가르기만 해도 그렇죠.”
“호수를 가르는 게 원래는 힘든 겁니까?”
“세드리치나 그가 데리고 있는 용인 기준에선 힘들지 않죠.”
나중에 가서 알게 됐지만.
유리가 받은 숙제는 원래 불가능했다. 그런 불가능을 바꾸라고 한 것이 세드리치가 준 숙제의 목적이었다.
아이리스 입장에선 그런 그의 숙제 내용을 듣다마자 얼마나 어처구니없던지.
“세드리치가 요구하는 것들은 같은 드래곤도 벅차요. 무형검만 해도 내가 돌보는 용인들은 시도조차 못한다고요. 그걸 당신께도 바랐으니 제대로 될 리가 있겠어요? 그쵸?”
대답을 망설이고 뜸을 들이던 유리. 그는 단단한 음성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당신이요?”
뜻밖의 대답에 그녀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각오는 좋네요. 하지만 글쎄요. 솔직히 당신의 육체나 마나는 너무 약해요. 우리가 바라는 수준까지 올라가려면 험한 시간을 겪여야 할 거예요. 하물며 앞으로 세드리치는 당신을 혹독하게 다룰 계획이던데.”
“각오하고 왔습니다.”
“각오만으로 될 일이 아니에요.”
“각오를 하지 않으면 될 일도 안 됩니다.”
“…….”
“아이리스 님, 세상 어떤 일이든 죽을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전력을 쏟아부어도 안 되는 일도 있죠. 그렇다면 전 모든 걸 쏟아붓고 결말을 기다리겠습니다.”
알 수 없는 결과를 두려워한 나머지 전력을 다하지 않거나 대충하는 건 유리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기왕 시작한 거, 끝을 보고 싶었다.
설령 멸망을 겪더라도 말이다.
“꼭 세드리치처럼 말하네요.”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아이리스는 뒤로 돌아서서 호수 쪽을 몇 걸음 걸어갔다.
거리가 벌어지자 다시 돌아선 그녀가 말했다.
“뭐, 어찌 됐든 구름을 갈랐으니 됐어요. 그 다음은 내가 가르쳐드리죠.”
“무형검을 배우는 겁니까?”
“맞아요. 무형검. 시작하기 전에 잠깐 설명하자면, 이는 드래곤이라면 으레 쓸 줄 아는 용언 마법이라 보면 돼요.”
용언 마법을 다른 말로는 언령(言令)이라고 불렀다.
언어로 명령을 내려 원하는 바를 강제로 이루도록 하는 마법인 셈.
그런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무형검도 비슷했다.
‘벤다’라는 의식이 곧 실현되는 거니까.
“무형검을 다룰 수 있게 되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꿀 수 있죠. 가령…….”
아이리스가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자 갑자기 바람이 그들 사이로 불어닥쳤다.
짤막하게 불어온 돌풍은 이내 그녀 손아귀 위에서 불투명해지더니 자그마한 단검으로 변했다.
“원하는 계열의 속성을 검에 부여해서 만들거나.”
다른 손으로 단검을 툭 건드리자 단검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아이리스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단검은 마치 자기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생명체 같았다.
“검을 꼭 손에 쥐지 않아도 다룰 수 있고.”
그녀가 합장을 했다가 팔을 벌렸다.
그러자 단검이 여러 개로 나뉘어 어지럽게 춤추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여러 자루의 검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죠.”
“와…….”
유리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검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무형검을 봤을 때만 하더라도 솔직히 막연하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라고 여겼다.
그러나 무형검에 풍(風)계 마법을 부여하고, 손 밖에서 움직이게 하고, 이를 여러 자루를 나누어서 다루는 경지는 감히 넘볼 수가 없었다.
드래곤, 어쩌면 신의 영역이라 해도 손색없는 검술이었으니.
“어때?”
“놀랐습니다. 이건 검술이라기보다 마법 같기도 하고…….”
“마법과 검술을 구분 지어봤자 의미 없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다음 무형검을 쓸 수 있어.”
“그럼 이제 뭘 하면 되죠?”
그 순간.
갑자기 그녀가 크게 미소 지었고, 날아다니던 단검을 전부 유리에게 겨눴다.
불투명한 단검의 끝자락에서 살기가 흘렀다.
그녀가 말했다.
“죽으면서 배워야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