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5
제15화
원래 유리는 티르빙을 쓸 마음이 없었다.
자격을 따지는 시험이고 아이템에 의존하는 건 실력이 아니니까.
일부러 위험하더라도 기술과 더불어 배운 걸 토대로 타나토와 대련에 임했다.
물론, 대련 결과에 있어서 티르빙을 썼다고 반박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니까 유리는 더욱 과정에 모든 힘을 쏟았다.
빈틈없이, 약점이 보이지 않게.
그런데도 티르빙을 보인 건 나름 이유가 있었다.
“원로님들께선 제 실력 따윈 상관 없으셨겠죠. 시험 따위 어차피 합격시킬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말로는 인간을 합격시킬 수 없다고 하겠지만, 애초에 이런 시험은 가문의 제도에 없던 거잖아요.”
“대련이 무의미했다는 거냐?”
원로 중 한 명이 물었다. 다른 원로들이 얼굴을 붉힌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침착한 이였다.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원로님들께 대련의 결과는 중요치 않았을 거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이번엔 미앵비슈가 질문을 던졌다. 약간이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제 눈에 비친 원로님들은 티르빙만 기다리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실제로도 티르빙을 뽑기 전까지 원로들은 시답지 않은 반응으로 대련을 지켜봤다.
그때 유리는 의아했다.
대련을 볼 마음도 없으면서 왜 이곳까지 왔을까.
혹시나 하는 예상을 띄운 그는 계획을 바꿔 티르빙을 꺼냈고, 곧 예상이 들어맞았다.
“누군가는 자신들이 줄을 댄 가문의 미래가 위협받지 않을까. 또 누군가는 그 위협을 어떻게 제거할까. 또 누군가는 티르빙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까. 그런 고민을 했다는, 뭐. 그런 뜻이 아닐까요?”
“허! 저것이!”
“흠! 흠!”
그들은 뭐라 하려다가도 이내 무마하려는 듯 헛기침을 토했다.
소년의 천진난만한 언변에서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열등분자에 인간이라고 욕하고 다니는 용인 원로들이 찾아온 의도가 무엇이었겠는가.
티르빙의 유무를 확인하고 그 쓰임새를 고민하러 온 의도가 아주 뻔했다.
고로 유리는 기꺼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줬다.
“그러나 원로님들 뜻대로 따를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니 경고 드리겠습니다.”
유리는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이어 말했다.
“지식의 관에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피를 보기 싫으시다면 제 앞을 막지 말아주십시오.”
* * *
회의실에서 나온 유리는 곧장 방으로 곧장 돌아갔다.
참고 있던 피로감에 바로 침대에 엎어졌다. 눈만 감으면 잠들 찰나에 티르빙이 속삭였다.
[자존심 때문에 안 쓸 것처럼 말하더니 기어코 쓰니? 응? 아이구~ 우리 꼬맹이, 역시 이 언니 밖에 없지?]‘조용히 좀 해. 피곤해 죽겠는데……. 드래곤 하트로 마나 안 바꿔준다?’
[칫. 치사하게.]타나토의 피를 먹으면서 얻은 마나는 아쉽게도 유리에게 완벽히 흡수되지 못했다.
드래곤 하트와 코어에는 그 양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억지로 외부 마나를 끌어들일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흡수할 수 있는 양은 1할 정도?
나머지 9할은 드래곤 하트에 흘려보내 질 좋은 마나로 바꿔서 다시 티르빙에게 주기로 했다.
‘근데 너한테 먹이를 주면 성장하는 건가?’
[성장은 아니고 유지시간이 늘지. 사람이랑 똑같아. 먹은 만큼 활동하는 거지.]‘내 피로 활동하는 거 아니었어?’
[네 피는 나라는 존재를 현현시키는 매개물질이지, 네 피를 먹이 삼아서 무기가 되는 건 엄연히 아냐.]으음. 유리는 신음을 흘렸다.
오늘 적을 상대로 놓고 제대로 티르빙을 써본 건 처음이었다.
티르빙을 쓰겠노라 마음을 먹었으나, 정작 검이 아닌 다른 형태로 등장할 거라곤 짐작도 못했다.
아니지.
상상은 했다고 봐야 될까.
‘어렸을 적 싸웠던 갈기 늑대. 그거랑 똑같았어.’
[갑자기 웬 갈기 늑대?]“아까 네가 튀어나왔을 때, 검이 아니라 사냥개로 나타났잖아. 내가 어렸을 적 싸웠던 몬스터랑 똑같았어.”
유리가 알기로 마검은 마검이었다.
무기이자 검, 날붙이가 붙은 무구.
헌데 저도 모르게 ‘먹어’라는 말과 함께 사냥개를 상상했더니 정말로 상상한 모습 그대로 등장했다.
[후후, 이제야 나를 좀 알아가는구나.]“뭔데. 불길하게 웃지 말고 자세히 말해봐.”
[말할 게 뭐가 있니. 네가 한 단계 경지에 올랐다는 반증이지.]“알아듣기 쉽게.”
[오래 전 내가 벼려질 때, 원래 어떤 왕이 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었어. 손잡이까지 황금으로 만들어달라면서 금은보화에 미쳐 있던 왕이었지.]역사서나 전설에서도 듣기 힘든 이야기에 잠이 확 달아났다.
유리는 몸을 뒤집고 천장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집중했다.
[그때 마신께서 그 왕의 어리석음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손잡이까지만 황금으로 만들고 진짜 내 본체인 검신은 자기 피를 틀에 부어서 담금질했어. 복수와 저주를 퍼부으려고.]“끔찍한 이야기군.”
[뭐, 어쨌든 간에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내 검신은 쇠가 아닌 원래부터 피였고, 이 피는 쇠보다 단단해질 수 있지만, 쇠보다 쉽게 형태를 바꿀 수 있어.]‘쇠가 아닌 검이라…….’
참으로 오묘한 차이였다.
처음 티르빙을 얻었을 때만 하더라도 피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어떤 마법적인 현상 때문에 피가 쇠로 바뀌는 줄 알았었다.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검의 형태를 띠어도 피라는 본질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내 형체를 네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됐다는 건 그만큼 네가 점점 나를 활용할 방법을 깨닫고 있다는 거지.]“원래는 힘든 건가?”
[힘든 게 아니라 불가능한 영역이야. 검이라고 인식이 딱 박혀버리는 순간 난 검일 뿐.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거랑 똑같아.]“그 불가능을 실현했던 주인이 있었어?”
[너랑 마신 빼고 한 명 있었어.]“하…….”
바꿔 말하자면 상상하는 대로 무기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뜻.
유리는 예상치 못한 경지에 스스로가 대견하면서 놀라웠다.
그러나 못내 아쉽기도 했다.
‘이런 정보가 더 있으면 좀 더 쉽게 악마들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유리는 미래에 다가올 멸망에 관해서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정체불명의 암살자에게 당했던 시절부터 고민했던 계획이고 변수 고려 및 차단, 여타 예상 시나리오까지 전부 만들어뒀다.
완성된 계획을 잊지 않으려 하루에 한 번씩 꼭 복기까지 해봤다.
실수만 없다면 미래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모르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쉽고 어렵지 않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아쉬움이 들었다.
‘얼른 티어를 올려서 도서관에 들어가야겠어.’
지식의 관 입학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보다는 당장 주인공과의 접촉만을 우선시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지식의 관 입학이 성사되면서 용인의 도서관에 더욱 깊숙이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일단 만족하자. 이거면 생각보다 더 빨리 강해지고 있어.’
유리는 몇 번씩 담금질을 했던 마음을 오늘도 한 번 더 두들겼다.
티르빙 말마따나 새로운 경지에 오르지 않았는가.
당장을 즐기기에도 그리 나쁘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 * *
입학시험이 있고 나서 얼마 뒤, 미앵비슈는 도서관 앞으로 유리를 불렀다.
최근 유리가 도서관에 출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타 시간을 제외하고 항상 도서관에서 머문다고.
잠시 후 유리와 릴림이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블레이머. 그 애를 닮았군.’
어려서부터 블레이머와 같이 자랐던 그녀의 눈에 13살의 블레이머가 그대로 있었다.
다만, 블레이머와 달리 유리는 딱딱했다.
경계와 애증,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태도에서 그가 가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그녀는 최대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를 반겨줬다.
“어서 오렴. 그간 잘 지냈니?”
“네, 고모님도 그간 평안하셨나요?”
“그래, 덕분에 잘 지냈단다.”
“덕분……에요?”
“아, 이런.”
미앵비슈는 아차 싶어서 고개를 저었다. 자칫 비꼬는 말투처럼 들렸을 것이다.
“오해 말렴. 즐거웠다는 뜻이란다.”
“왜, 즐거웠는지 물어도 될까요?”
“덕분에 원로들 기 좀 누를 수 있었단다. 그들이 요즘 들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말이다. 안 그래도 골치였는데…….”
지난 번 유리가 중진 원로들 앞에서 했던 경고는 아주 간단했다.
파벌 싸움에 자신을 끼우지 말라.
가문의 특성상 차기 가주는 당연히 혈육이 되었고, 그것이 암묵적인 관례였다. 이에 원로급 가신들은 제각기 가문의 혈육들에게 줄을 대고 있었다.
가주가 바뀌면 원로들도 바뀔 테니까.
그 집합체가 지식의 관이었으며, 유리는 그런 폐쇄적인 구조의 단점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앞길을 막지 말라고 했다.
그 덕에 기죽은 원로들을 바라보며 미앵비슈는 간만에 조소를 머금었다.
“유리야. 넌 네가 건 싸움이 무엇인지 알고서 그랬겠지?”
미앵비슈는 굳이 에둘러서 말하지 않았다.
유리가 그걸 몰랐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아이는 첫 등장부터 너무나도 영리한 모습을 보였다.
“다치기로 결심한 거라면 꽤나 무모한 싸움이 될 거다.”
“다치는 거라면 다행이네요. 전 죽을 각오로 말한 거여서요.”
“죽을 각오까지 했다, 라. 원로들이 최소한 8서클을 지녔으며 가문에서 힘 있는 자들인 건 제대로 알고 있겠지?”
“지는 싸움은 하지 않아요. 질 것 같은 싸움이라면 제가 더 강해지면 그만입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쳐 줬니?”
“용병단 아저씨들이요.”
게슐츠의 용병단은 크지 않았지만 사상자가 적기로 유명했다.
세간에선 작은 의뢰만 맡아서 사상자가 적다고 놀리는 이들이 있었으나, 실제론 많은 희생을 통해서 얻은 경험 덕이었다.
게슐츠가 해줬던 말에 따르면 용병단이 생기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엔 전멸을 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빡센 훈련과 서로 간의 호흡을 통해 생존율을 높였다.
입단이 쉬워도 퇴단은 더 쉬웠다. 훈련을 버티지 못하거나 다쳐서 떨어져 나가기 일쑤.
유리는 그런 곳에서 자라고 일하고 배웠다.
미앵비슈 또한 뒷조사를 통해 유리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용병단에 있었다 하더니…… 흠.’
그녀는 용병단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그를 키웠다고 생각했다.
아니, 태생부터 유리를 일찍이 이리 만들었을지도.
아버지가 없는 서자, 평민, 인간도 용인도 아닌 존재.
그런 아이가 가문으로 들어왔다. 적진에 발을 디딘 꼴인데 이만한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는 건 실로 놀라웠다.
“진짜로 싸울 거니?”
“딱히 싸울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을 거라고, 일전에 말씀드렸던 겁니다.”
그래, 그렇다는 거지…….
미앵비슈는 살짝 웃고는 말없이 돌아섰다. 유리와 릴림은 머뭇거리다가 그녀를 따라갔다.
도서관으로 들어서자 늘 있던 여자 사서가 데스크에서 일어섰다.
그녀에게 미앵비슈가 팔각 형태에 용 날개 1개가 그려진 패 하나를 내밀었다.
가문의 1티어 직급을 증명하는 용패(龍貝)였다.
사서가 패를 받아들자 검은 마나가 피어올랐다.
“확인되었습니다. 어느 층을 열람하시겠습니까?”
“최하층, 1티어 도서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