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51
제151화
부모님이 어떤 과거를 거쳐 왔는지, 자식 된 도리로서 그런 질문을 해서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출생이 궁금하지 않을 자식이 있을까?
하물며 부모가 고대 드래곤이라는데, 묻지 않고 베길 수가 없었다.
세드리치는 정면을 응시한 채 유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 정체에 대해 의심하기보다 샤를린느의 정체가 더 궁금한 건가.”
“네?”
“상식적으로 내가 네 녀석의 아버지라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아, 그건…….”
생각해보니 그랬다.
유리에겐 세드리치가 아버지라고 특정 지을 단서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그가 스스로 아버지라는 뉘앙스로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쉽게 믿어버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믿지 않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드래곤 하트를 이어받았으니까, 어쩌면 드래곤께서 절 선택하셨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내가 널 점지했다는 거냐. 몇 천 년의 세월을 거쳐서?”
“지금에 와선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드래곤은 신적이긴 해도, 신이 아닌 생명체니까요.”
드래곤에겐 예언 같은 전지전능한 능력이 없다. 그건 창조주로부터 예언을 받았다던 드래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드래곤들조차 그 예언을 의심했으니.
하물며 천 년의 세월을 넘어서 미래의 누군가에게 타이밍 좋게 힘을 전승한다는 건 불가능했으리라.
또한 오래 전부터 유리는 드래곤 하트를 이어받은 사람에 관해 조사해왔다.
역사서 곳곳에선 몇몇 용인이 드래곤 하트를 가졌다고 나왔으나, 이를 증명할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허면 드래곤 하트라는 개념과 기록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 이름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증거라면. 또한 정확한 기록이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다면.
“드래곤께선 살아 있었을 겁니다. 적어도 제가 태어난 시점에선 말이죠. 그리고 제가 태어나면서 당신의 드래곤 하트를 주셨을 겁니다.”
“그랬겠지. 그렇지 않고서 네놈에게 내 드래곤 하트가 있을 리가.”
유리의 말이 전부 맞았다.
세드리치는 드래곤의 수명을 뛰어넘어가며 먼 미래까지 살았다.
그곳에서 헤어졌던 샤를린느와 다시 만났고, 둘은 사랑의 결실을 맺어 유리를 낳았다.
그리고 유리에게 드래곤 하트를 계승해줬을 것이다.
“드래곤 하트를 계승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말 그대로 심장을 뜯어서 줘야지.”
“진짜입니까? 그랬다는 건 저 때문에 죽은……?”
“얼토당토않은 소리 말도록. 심장을 뜯어서 줬다고 드래곤은 죽지 않는다. 드래곤의 힘 대부분을 잃긴 하겠지만, 단지 그 뿐이다.”
세드리치 또한 미래에 샤를린느와 다시 만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리의 심장은 분명한 세드리치의 심장이었고, 이를 계승하기 위해선 세드리치가 본인의 심장을 떼서 줘야만 했기에.
유리가 세드리치의 자식이라는 건 절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섭섭하셨습니까?”
유리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말투에 세드리치가 미간을 찌푸렸다.
“섭섭? 내가?”
“드래곤 하트를 이어받은 아들이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정체부터 물었으니까요. 그래서 섭섭하신 거 같았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나와 너는 아무 관계도 아니다. 우리의 관계는 몇 천 년이 지난 뒤에 형성되고, 그 이전의 시점에 존재하는 나는 너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없다.”
매정하시긴. 이게 아버지의 무뚝뚝함이라는 건가.
전생에선 이런 아버지들이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라도 해도 얼굴에서 묘한 티가 난다. 드래곤인 세드리치도 마찬가지.
반면, 유리는 이런 생소한 감각이 쑥스러우면서도 썩 싫지 않았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경험이 기억 세계를 나가는 순간 끝일 수도 있다고 상상하니 소중하기까지 했다.
‘이런 아버지도 내겐 아버지니까.’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흐르자 침묵까지 따라 흘렀다.
유리는 헛기침을 뱉으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깼다. 마침 묻고 싶었던 것도 있고.
“흠, 흠, 그런데 세드리치 님.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한텐 분명 전생의 기억이 있는데, 이건 어찌된 겁니까?”
“모른다.”
“예?”
뜻밖의 대답이었다. 세드리치가 모를 수 있는 질문이던가.
“제 전생이 꾸며졌다거나 그런 게 아닙니까?”
“모른다고 했을 텐데.”
“모르는 게 말이…… 설마, 어머니가?”
혹시 기억이 조작된 건가?
아니, 말도 안 된다.
전생의 기억을 가짜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애초에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까지 정교하게 설계하면서 기억을 꾸며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
“샤를린느를 의심하지 마라, 유리 덴 나이트워커. 적어도 그녀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을 거다. 그건 미래를 아직 겪어보지 않은 나도 알 수 있다.”
“의심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째서 어머니를 의심하겠습니까. 그냥 어머니가 왜 그러셨을지 궁금해서요.”
“그건…….”
나도 궁금하군.
세드리치는 그리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그의 입장에서도 샤를린느는 의뭉스러운 여자였다.
갑자기 홀연히 그의 곁을 떠났던 것도 그렇고, 미래에 다시 결합했다는 것도 이상했다.
대체 미래에 세드리치와 샤를린느는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
그건 세드리치나 유리, 두 사람 모두 궁금했다.
“더는 상념에 빠지지 마라.”
세드리치가 돌아섰다. 정자에서 내려가려는 모양이다.
“너와 나, 같은 심장과 같은 이유로 멸망을 막으려고 한다. 그러니 난 네놈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걸 전수해줄 것이다. 아마 이 기억도 그런 의미에서 남겼겠지.”
“…….”
“오늘은 이만 쉬어라. 그리고 준비가 되는대로 나와 수련을 시작하지. 녹록치 않을 테니 빈 퀴네와 카바드를 완벽히 이기지 못하면 찾아오지 마라.”
“완벽히 이길 때까지 입니까?”
“그래, 완벽히. 아니면 나와 싸우다 네놈은 무조건 죽을 것이다.”
* * *
궁금증을 해소하고 아버지와의 재회 아닌 재회에 감흥도 잠시.
받은 조언대로 빠르게 상념을 잊고 수련에 전념했다.
무형검에 관해선 이미 개념 이해가 완벽했기에 이제부턴 제대로 된 이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187일째.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유리는 무형검을 들고 빈 퀴네와 전투를 벌였다.
대련장 한 쪽에는 아이리스를 시작으로 카바드, 각각 돌보고 있는 용인 아이들이 쪼르르 앉아서 대련을 구경했다.
다른 용인도 아닌 빈 퀴네와 대련을 하고 있는 건.
그녀의 무투술 때문이었다.
“빈 퀴네 님과 더 대련을 해보고 싶습니다.”
“에? 저, 저저, 저요? 저, 부, 부족한데.”
“심신일검의 경지를 유일하게 가르쳐 주실 수 있으니까요.
무형검을 만들어서 상대의 무형검을 제어하고, 이어서 무형검 백 자루를 만들어서 쓰고.
솔직히 여기까지는 유리가 기지를 발휘해서 쓸 수 있는 기술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무형검을 오랫 동안 다루는 건 무리였다.
그건 다른 드래곤들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래, 빈 퀴네. 우리 중에서 무형검을 육신으로 치환하는 건 너 밖에 할 줄 모르잖아.”
“그, 그런 거라면, 카바드도 되는데.”
“에이, 누나도 참. 난 무투파가 아니라고. 몸 쓰기 귀찮아하는 내가 대련해줘봤자 아이리스랑 다를 게 뭐가 있어?”
“괜찮아, 유리? 내가, 해줘도?”
“심신일검의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요. 전 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심신일검(心身一劍).
심검보다 더 높은 경지라 할 순 없지만, 심검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임은 확실했다.
빈 퀴네는 그런 경지를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그녀도 이를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난감해했으나, 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고 부딪혀보면서 익혀볼 참이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빈 퀴네 님.”
“으응, 맞는 걸 부탁하는 거 같아서, 이상하긴 한데.”
“저 그런 취향 아니라니까요.”
“이쯤 되면, 그런 거 같아.”
빈 퀴네와 독단적인 대련을 시작하고 꼬박 한 달이 지났다. 그간 하루에 두 번씩 대련을 해본 결과.
아이리스와 싸웠을 때처럼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확실히 다른 드래곤들과 달리 전투력 면에선 그녀가 최고였다.
딱히 무형검을 쓰지 않고서 오로지 무투로만 붙는데도 이길 기미조차 안 보였다.
“시작할게.”
“넵!”
선언과 동시에 빈 퀴네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물방울 몇 개가 남아 떨어졌다.
빠른 속도 때문에 안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사라진 것이다.
‘속도가 아니라 수증기로 움직인다니. 저걸 검이라 할 수 있는 건가?’
심신일검을 몸소 실천하는 빈 퀴네는 자그마한 물 입자가 있다면 언제든 그 위치로 이동이 가능했다.
또한 이동 간에 모습을 감췄다가 한참 뒤에 나타나기도 했다.
지금도 모습을 감추고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유리는 손에 무형검을 만들고 공격에 대비했다. 그런 그의 뒤에서 아이리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무형검 초(初). 심검의 첫 단계인 기술은 무형검을 만드는 것만으로 끝내선 안 돼. 그건 단순한 검에 불과해. 너의 무형검이 닿는 모든 걸 도륙한다는 의지도 같이 곁들여야 해.”
다양한 무구를 보이지 않는 형태로 만든다 한들, 기껏해야 보이지 않는 무기에 불과했다.
무형검의 본질적인 위력은 의지를 발현하는 힘.
이를 실현하는 의지가 초(初)였다.
‘근데 이론부터 가르치고 실전을 해야 정상 아닌가?’
약간의 불평이 나오는 찰나.
오른쪽 뒤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빈 퀴네가 무릎을 들어 올려 옆구리를 강타하고 있었다.
매번 그녀의 공격 시작은 이와 같았다.
하지만 알아도 대응이 불가능했다. 그녀가 나타나는 제각기였고, 공격 방식도 매번 달랐다.
‘오늘까지 당해줄 마음은 없다고!’
툭!
“어?”
무릎이 닿자 잠시나마 그녀의 움직임이 멎었다.
티르빙을 갑주로 만들어서 썼던 것처럼 무형검을 갑주로 만들었고, 거기에 빙(氷)계 속성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물로 변했던 빈 퀴네의 무릎이 딱딱해지면서 얼어붙었다.
‘심신일검인 빈 퀴네 님을 내 의지대로 조종할 순 없지만, 몸에 닿으면 얘기가 다르지.’
그러나 상대는 드래곤. 이런 자잘한 수에 당해줄 그녀가 아니었다.
빈 퀴네는 무릎으로 차던 관성을 그대로 유지했다. 얼어붙은 무릎이 부서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대신 유리의 목을 팔로 감았다.
“시도는 좋았어.”
목을 감고 뒤로 돌아간 그녀가 바로 팔뚝에 힘을 줬다.
꽈아악, 드득!
무형검으로 만든 갑주가 쉽게 부서지고 근육과 뼈가 으스러졌다.
“큭!”
확실히 빈 퀴네를 상대로 거리를 좁혀줘서 좋을 건 없었다.
단순한 타격전부터 서브미션 같은 기술들까지. 모든 체술 동작을 자연스럽게 구사해서 절대적으로 거리를 벌려야 했다.
‘그렇다고 수증기로 변해서 이동하는 상대를 어떻게 피하라는 건지……!’
유리는 당황하지 않고 조이고 있는 팔뚝을 붙잡은 채 앞을 굴렀다.
그리고 그녀의 등이 땅이 닿기 직전, 다시 수증기로 변해 모습을 감췄다.
“컥, 후우, 후우.”
그나마 오늘은 목뼈가 으스러지진 않았다.
이게 다행이랄지 모르겠다만.
촤악!
한 발 치 떨어진 곳에서 빈 퀴네가 얼굴을 드러냈다. 그녀는 진심을 놀라고도 기쁜 얼굴로 웃었다.
“와, 와! 유, 유리가 처음으로 내 공격을 받았어!”
“제 목을 부술 뻔 해놓고 기뻐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치만 처, 처음인 걸. 무형검을 검이 아니라 갑옷처럼 만드는 건, 나, 나도 생각 못했어.”
“이상하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첫 공격을 받아낸 것까진, 그래. 뭐, 좋다 이거야.
무형검을 갑주로 만드는 방식은 티르빙에서 고안해내긴 했으나, 정확힌 육신을 갑주처럼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게 실패했기 때문에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다.
‘결국 나를 심신일검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육체를 검처럼 바꾸고, 검을 다른 형태로 바꾸는 발상.
이를 해내지 못하면 빈 퀴네를 이겨도 무의미했다.
물론, 유리에겐 진즉에 고안해놓은 방법이 있었으니.
“다시 하죠.”
“목 괜찮겠어?”
“죽을 때까지 하는 게 저희 대련의 룰이잖습니까.”
“그래, 그럼.”
촤악!
마찬가지로 그녀가 물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이번엔 보란 듯이 무릎 아래서 낮은 자세로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과 달리 정면이면서 낮은 위치에 유리는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빼려 했다.
그러나 한 발을 뒤로 빼기만 하고 멈췄다. 물러서면 안 됐다.
“끝.”
마무리를 직감한 빈 퀴네는 복부를 향해 날카롭게 뻗은 수도를 찔렀다.
푸욱!
배 한 가운데 기다란 손과 팔이 들어왔다.
하지만 유리는 죽지 않았다.
그녀가 찌른 배가 살과 근육이 아닌, 말 그대로 피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만의 무형검인 혈(血)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