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54
제154화
“용신(龍神)이라고요?”
유리가 놀라서 되물었다.
모자(母子)는 비밀 서재의 지상으로 올라와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있었다.
앉아 있는 유리 뒤에선 샤를린느가 손수 가위를 가져와 길어진 머리카락을 다듬어줬다.
사각, 사각.
가위의 리듬에 맞춰 그녀도 입을 열었다.
“말이 좋아 신이지, 나 또한 인간이란다. 그저 인간의 몸으로 신의 권능을 조금 얻었을 뿐이야.”
샤를린느의 이야기에 따르면.
창조주가 중간계를 만들고 첫 생명체인 드래곤을 빚었을 때. 아직 자아 형성이라든가 정신이 불안한 그들을 대신해서 돌볼 존재도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바로 용신(龍神) 샤를린느였다.
‘그래서 가짜 마검 사건 때 그런 모습을 하셨구나.’
가짜 마검과 대치 중이던 샤를린느는 인간도, 드래곤도 아닌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샤를린느가 용인이나 드래곤일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고귀한 신이라니.
‘이래서 내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었군.’
항상 용인인 아버지를 두고 왜 자신은 용인이 아니었는지 궁금했었다.
용인은 인간과 닮아있긴 해도 눈동자 같은 사소한 외모부터 육체의 한계가 남달랐다.
인간과 엘프를 구분 짓는 것과 비슷했다.
간혹 인간과 드래곤 사이에서 용인이 태어난 게 아니냐는 오해를 하지만.
이 질문엔 아이리스가 답해줬었다.
“용인은 생명체로서 생존 본능과 번식 욕구를 해결할 수 없는 드래곤들을 위해서 창조주께서 직접 빚어준 생명체야. 쉽게 말해서 드래곤과 신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체라는 거지.”
반면 샤를린느는 중간계에 속한 이상 육신이라는 껍질을 벗어날 수 없었고, 인간의 몸으로 유리를 낳았다.
블레이머가 가진 용인의 특성을 유전적으로 이어받을 수 있었으나, 유리는 어머니 쪽만 닮은 채 태어났다.
그래서 그가 인간이었던 것이다.
“족보가 엄청 복잡하네요. 신, 드래곤, 용인, 인간……. 그 모든 혈통을 이어받은 전 축복받은 거군요.”
“후후, 그런가.”
“어, 잠깐만요. 그렇다는 건 어머니가 최초의 인간……?”
“어, 음. 그런 셈이지.”
정작 심히 놀란 유리는 입만 벙긋거렸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최초의 인류라니!
어머니가 용신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인간의 시초였다는 사실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샤를린느는 멋쩍게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그이를 사랑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어. 내가 세상에 드러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지.”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사라지셨다면서요. 왜요? 두 분 서로 사랑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이 엄마도 그이를 많이 좋아했지. 하지만 내게 주어진 사명은 드래곤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했어. 그런데 한쪽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명을 지킬 수 없었다고 생각했지.”
고대 드래곤은 툭하면 사건사고를 일으켰다. 유리가 클라우드 하트에 접속했을 때도 아이리스가 말하길 드래곤끼리 싸웠다간 산맥 하나 날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창조주는 이런 드래곤들을 다스릴 필요를 느꼈고, 그래서 샤를린느를 중간계로 내려 보냈다.
근데 하필 드래곤 중 최강이었던 세드리치가 그녀를 흠모했으니.
“용케 도망 다니셨네요.”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
“그런데 아버지께선 어쩌다가 가문의 일원이 된 거죠? 두 분은 어쩌다가 재회하셨고요?”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 거 같니.”
벤헬링턴에게 입양됐을까? 가능성은 그 편이 높았다. 오랜 삶을 살았던 아버지가 뜬금없이 벤헬링턴의 자식이 되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러나 유리는 도서관에서 분명 블레이머의 탄생부터 기록된 서적을 보았었다.
그 서적이 거짓일 수도 있다지만.
“환생.”
순간 유리는 그리 말했다.
“아버지가 미뭉의 주인이었나요?”
“엄연히 말하자면 아니란다. 드래곤들이 재물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지, 유리. 그이라고 다르지 않았어. 특히 신물(神物)에 유독 관심이 많았고 미뭉도 가지고 있었어. 환생은 그 미뭉을 떠올려서 착안 해낸 아이디어였어.”
“환생이란 걸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나요?”
“그야 드래곤이니까.”
단 한 마디 대답으로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신만큼은 아니어도 생명체 이상으로 전능한 능력을 지닌 드래곤은 환생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번거로운 환생을 하셨죠? 그냥 세드리치로 살았어도 됐잖아요.”
“이 엄마 쫓아다니느라. 난 그이의 기운을 느끼면 늘 도망갔고, 그래서 드래곤이 아닌 용인으로 환생해서 내게 접근했지.”
“처음엔 아버지인지 모르셨군요.”
“시치미를 뚝 떼더구나. 그러다 결혼까지 하고 나서야 난 그 사람이 세드리치란 걸 알았어.”
“짓궂었네요.”
“그래도…… 막상 같이 사니까 좋았어.”
좋았다는 말에 아련하면서도 행복한 기분이 묻어났다.
무려 몇 천 년의 세월을 세드리치로부터 도망쳐 다녔다. 오로지 신이 준 사명 때문에.
그 사명을 어기는 건 그녀가 존재하는 이유를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결국 세드리치의 집요한 사랑이 이기고 말았다.
“다른 드래곤들은요?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다른 드래곤들은 어떻게 됐죠?”
“드래곤이라고 해서 수명이 없진 않단다. 그들도 중간계에 속한 생명체니까. 그들 모두 충분한 삶을 누리다가 죽었지. 세드리치만이 수명이 다하면 환생을 거듭하며 생명을 유지했던 거야.”
“그래도 되는 건가요.”
“나도 몰라. 아마 지금쯤 창조주에게 한 소리 들으며 저 세상에 있을지도?”
샤를린느가 피식 웃으며 마지막 잔머리를 잘라냈다.
유리도 작게 웃다가 표정을 고쳤다.
“그럼 제 전생, 그건 어떻게 된 건가요.”
클라우드 하트 안에서 겪은 일을 말해주던 유리는 자연스레 전생에 관해서도 털어놨다.
어머니가 진실을 말해줬으니, 유리도 그녀가 몰랐던 진실을 알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샤를린느는 난감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네가 어떻게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건지. 그렇다는 건 미뭉의 능력인 환생을 이었다는 건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아.”
“그런가요.”
사실 전생을 왜, 어떻게 알고 있는지 관심 없었다.
물론, 전생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멸망에 대비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니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 ‘어떤 것’이 있다면 당연히 그것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벌써 감사하기엔 멸망이라는 큰 숙제가 남았다.
“아마 아버지였을지도 몰라요.”
“응? 그게 무슨 소리니.”
“클라우드 하트에서 아버지는 저 보고 예언을 막을 자라 하셨어요. 그런 저를 위해서 클라우드 하트에 기억을 남겼을 거라 하셨고요.”
“아…….”
추측에 불과하나, 샤를린느가 이야기 해준 드래곤의 환생 능력이라면 유리에게 그 능력을 썼을 가능성도 있었다.
다만, 이 가정에는 맹점이 많았다.
특히 ‘소설 속 세계’라는 걸 설명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우연히 아들의 전생을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하필 그 전생에서 본 소설이 현 세계였다?
우연치곤 너무 비약적이다.
“적어도 아버지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환생시켜서 나로 태어나게 했을 리는 없겠죠?”
“말도 안 돼. 그런 몹쓸 짓을 했다면 내가 먼저 알고 말렸을 거야.”
어머니와 속 시원한 대화를 나눴건만.
어쩐지 해소 하고픈 궁금증만 잔뜩 생겼다.
“미안하구나, 유리. 여기까지 숨겨서.”
마지막으로 머리를 빗어주던 그녀의 손길이 우뚝 멈췄다.
“딱히 숨길 마음이나 이유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용기가 나지 않더구나. 본 모습이 흉측하기도 하고…….”
“흉측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어머니인 걸요. 그리고 미안해하실 게 뭐가 있어요. 딱히 나쁜 과거도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멸망을 숨겼으니까.”
샤를린느라고 해서 언제 멸망이 도래할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유리가 멸망을 위해서 몰래 싸우고 있을 때, 본의 아니게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예언을 숨기고 있는 꼴이 되었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속내를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 벌어진 일이었지만.
어쨌든 어머니 된 입장에서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데도 돕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유리는 샤를린느를 더욱 이해했다.
“어머니, 전 아버지의 죽음을 밝힐 겁니다.”
“…….”
“어머니도 아버지가 어쩌다가 돌아가셨는지 모르셨다고 했죠. 하지만 이젠 아실 거예요.”
유리 말대로, 가짜 마검 사건을 겪으면서 샤를린느는 블레이머의 죽음 뒤에 누가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말았다.
아니, 예전부터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그녀로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사명과 권능은 복수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
고로 유리는 각오에 가까운 말들을 뱉었다.
“우리 가족을 망친 그 사람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들이 멸망에 방해된다면 더더욱.”
“…….”
더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런 대화가 나오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그를 지지했다. 유리도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저 샤를린느는 이런 한 마디만 남겼다.
“이 엄만 항상 네 편이야.”
* * *
나이트워커 가에선 오랜만에 연회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자유의 관 졸업 및 기사단 입단식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 사이엔 가문의 직계인 타나토와 제몬이 끼었다.
둘은 예복을 차려 입은 채 방에 앉아 식 순서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제몬은 신이 나서 방을 휘저으며 돌아다녔다.
“드디어 우리 졸업이야, 형! 신나지 않아?”
“그러게. 드디어 졸업하네.”
“이제 우리도 기사단에서 활약해서 더 높은 데로 올라갈 수 있겠지? 아우! 얼른 밖에서 칼질하고 다니고 싶어!”
1년 전 즈음, 형제는 리펠리온으로 파견 나갔던 유리를 죽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지면서 업적을 인정받았고, 이를 계기로 나란히 조기 졸업을 하게 됐다.
분명 둘에겐 좋은 날이었지만.
정작 타나토는 초조한 마음을 달래느라 애썼다.
‘유리, 그 자식이 갑자기 나타나진 않겠지?’
유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타나토와 제몬 밖에 없었다.
솔직히 유리를 죽인 공로로 졸업을 바라진 않았으나.
1년이나 훌쩍 지나면서 가문 내 몇몇 원로들이 이젠 유리가 죽었다고 확신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들은 다이올드의 뒷배를 타는 원로들로, 타나토와 제몬을 졸업시키면서 차기 가주 경쟁에 탄력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졸업식이 가까워질수록 타나토는 유리가 마음에 걸렸다.
“아들아!”
때마침 다이올드가 찾아왔다.
그는 밝은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가 흙빛이 된 타나토의 얼굴을 보고 안색이 굳었다.
“타나토, 무슨 일이냐? 어째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냐.”
“아버지, 그으……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결국 타나토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다.
유리 이야기만 꺼내면 치를 떨며 화를 내는 아버지였으니까.
“자, 그럼 이제 나가자. 슬슬 시간이 되었구나.”
그의 재촉에 형제는 그를 따라 일어났다. 타나토도 유리에 관한 건 금방 잊어버렸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자유의 관 가운데 자리엔 중앙 연무장에 다다랐다.
연무장으로 가는 길에는 흑갑으로 무장한 기사단이 도열했고, 객석엔 벤헬링턴과 마리, 미앵비슈, 그리고 고위급 장로들이 모두 모였다.
어지간한 행사가 아니고선 가문의 중진이 이리 다 모이는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이번 졸업식이 갖는 의미가 컸다.
절대자로 군림하는 나이트워커의 기사이자, 미래를 이끌어갈 직계 후손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시작점이었으니까.
벤헬링턴은 멀리서 형제의 얼굴을 보고 말문을 열었다.
“식을 시작하겠다. 타나토 덴 나이트워커, 제몬 덴 나이트워커. 둘은 내 앞으로 오도록.”
순간 연무장 전체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졸업 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험은 깔려진 레드 카펫을 형제가 밟는 동시에 시작되었다.
“끅!”
타나토가 첫발을 딛자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옆에 따라 걷던 제몬도 한 발 이후 쉽게 두 번째 발을 딛지 못했다.
카펫 아래에 깔린 ‘타멧블랙’이라 불리는 광석 때문이었다.
나이트워커의 영지에서만 나오는 광석인 타멧블랙은 모든 걸 잡아당기는 힘을 지녔다.
자석처럼 모든 물체, 심지어 공기나 체력, 마나까지 잡아당겼다.
10서클쯤 되지 않고서야 타멧블랙 위를 멀쩡하게 걷기란 어려웠다.
이를 극복해내며 벤헬링턴 앞까지 가는 것이 졸업 시험이었으니.
타나토와 제몬은 선뜻 쉽게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서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진이 다 빠졌다.
그때.
“형님들은 여전하시군요.”
더딘 행사 진행에 한 인영이 갑자기 기사들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흑갑으로 위장한 그는 카펫 위로 올라서자 마자 투구를 벗었다.
덕분에 그를 제압하려고 했던 다른 기사들이 검을 뽑다말고 우두커니 멈췄다.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유, 유리 도련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