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55
제155화
“저분이 어떻게……!”
“죽으셨다고 하지 않았었나? 헌데 어찌!”
기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고, 그 파장은 장로들에게도 퍼져나갔다.
특히 다이올드를 비롯한 측근들은 경악하고 싶은 심경을 억지로 참았다.
유리는 그들 면면을 살피다가 다이올드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완전 죽상이군.’
기대 이상으로 리액션이 좋아서 이리 몰래 숨어든 보람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죽었다 살아난 사람을 보고서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만한 사람은 몇 없었다.
그나마 벤헬링턴이나 마리만이 일관된 표정을 유지했다.
‘드디어 왔구나.’
벤헬링턴은 당연히 유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어디로 어떻게 도망가서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다이올드의 명령을 받아 행방을 수색하면서 나온 정보만 받아봤다.
사실상 생사는 몰랐지만, 그는 그냥 유리를 믿었던 것이다.
살아있을 거라고.
그리고 돌아올 거라고.
“다녀왔습니다, 가주님.”
“인사치레 치곤 시점이 좋지 않구나. 이 자리가 무언지는 알고 나서는 게냐.”
“자유의 관을 졸업하고 이로서 가문의 진정한 일원이라는 걸 인정받아 세상으로 나아가는 시작점입니다.”
“그걸 알고도 훼방을 놓는 거냐.”
벤헬링턴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깊이 내려깔려 있었다. 눈치가 없는 자들은 낮은 데시벨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벤헬링턴을 오랫동안 지켜본 측근들은 단번에 이상하다고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불 같이 화를 냈을 벤헬링턴이 평온했으니까.
“오랜만입니다, 형님들.”
이번엔 타나토와 제몬을 대화 주체를 바꿨다.
겁에 질린 타나토와 달리 제몬은 길길이 날뛰었다.
“너, 너!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죽은 거 아니였냐고!”
“제가 죽었던가요?”
“그, 야……!”
차마 유리가 살아있었다고 말할 순 없었다. 하물며 그가 시켰던 대로 죽음을 숨겼다는 것도.
그럼에도 제몬은 어디선가 유리가 죽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로 순진하기 짝이 없던 제몬, 그에 반해 계속 불안에 떨었던 타나토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진짜, 돌아온 거야?!’
제몬이 유리의 죽음을 멍청하게 확신했다면, 타나토는 그가 죽은 채로 있길 바랐다.
진짜로 죽었든 말든. 오늘 졸업식만 지나는 순간 더 이상 유리의 죽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살아돌아온 것도 모자라 멀쩡한 모습은 타나토를 두렵게 만들었다.
‘젠장, 젠장! 젠장! 이러면 아버지가 또……!’
이미 다이올드는 유리를 믿지 못한다는 듯 바라봤다가 경멸어린 시선으로 타나토를 노려봤다.
‘멍청한 놈들! 유리를 죽였다더니 대체 이게 뭔 망신이야!’
아직 타나토의 거짓말을 알진 못했으나, 아들이 제대로 일처리를 하지 못해서 벌어진 사태인 건 확실했다.
물론, 여태 시체조차 찾지 못했으면서 죽었다고 확신한 본인 잘못도 있지만.
다이올드에게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저, 저 놈이! 가주님! 저 건방진 놈을 이대로 놔두셔선 안 됩니다!”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
“예! 놈은 차기 가주 후보로서 저희 아들들에게 죽었습니다. 그런 놈이 버젓이 돌아와서 다시 기회를 달라는 꼴이지 않습니까!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망령 주제에 가만히 놔둬선 안 됩니다!”
다이올드의 주장엔 일리가 있었다.
다른 평범한 귀족가문이었다면 살아돌아온 혈육을 반겨주거나, 그 혈육을 죽인 자들을 벌해야 했으나.
여긴 평범함이 통용되지 않는 용가였다.
그들에게 유리는 차기 가주 싸움에서 암살 당한 패배자에 불과했다.
‘약속대로 형님들이 가짜 마검에 대해서 발설하진 않았나보군.’
이런 취급을 받는 동안에도 유리는 안심하고 있었다.
가짜 마검에 대해서 알려지면 안 된다. 밝히더라도 유리가 밝혀서 공적을 쌓아야만 했다.
허나, 지금 당장 가짜 마검에 대해 알릴 마음은 없었다.
물증이 없을뿐더러, 약속을 지킨 형제를 몰아세우긴 싫었다.
‘형님들이 나중에 가짜 마검에 대해 증언해줘야 해. 벌써 사이가 틀어지는 짓을 할 필욘 없지.’
유리는 그런 생각을 하며 티르빙을 뽑았다.
손등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 날카로운 검날을 형성했다.
“형님들이 저를 죽인 공로를 인정받아 졸업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시험을 치르고 싶습니다, 가주님.”
“저 놈이! 가주님! 얼른 끌어내셔야 합니다! 아니면 이 자리에서 즉결처형을!”
“……해봐라.”
벤헬링턴은 다이올드가 아닌 유리의 말을 들어줬다.
다이올드는 길길이 날뛰며 “아, 안 됩니다!”라고 소리쳤으나, 대꾸도 않고 무시했다.
‘어차피 내가 시험에 실패하면 죽는 걸, 뭘 저리 호들갑인지 모르겠군.’
다이올드의 입장에서는 유리에게 기회를 줬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이는 리스크가 큰 기회였다.
돌아오지 말아야 했을 유리가 과연 이리 규율을 어겨가며 돌아올 가치가 있었는지 증명을 해야 했으니까.
당연히 졸업하는 형님들보다 강해야 하며,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줘서 가문으로 돌아올 만한 가치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네놈이 뭘 하겠다고!’
다이올드는 콧방귀를 뀌며 해볼 테면 해보라는 태도로 바꾸었다.
이상하게도 유리에게선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엔 티르빙을 뽑으면 압도적이면서 농도 짙은 마나가 흘렀는데, 지금은 모든 힘을 상실한 사람처럼 깨끗했다.
주변 사람들은 타멧블랙이 유리의 모든 에너지를 빼앗았다고 여겼다.
결국 유리도 시험에 통과하긴 어려운 셈.
탁.
이윽고 유리도 카펫 위로 올라갔고, 쇼가 시작됐다.
“어, 어?”
“그, 그냥 쉽게 걷고 있잖아?”
“어찌 이런 일이! 허헛!”
지켜보던 원로들 사이에서 경탄 혹은 탄식 같은 것들이 흘러나왔다.
유리가 멀쩡하게 타멧블랙 위를 걷고 있던 것이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힘을 빼앗기고 있다.’
사실 타멧블랙이 가진 인력(引力)은 얼마되지 않았다.
이 시험에 가려진 진짜 시험.
그건 바로 벤헬링턴이 가진 밤의 힘이었다.
밤과 어둠은 모든 걸 집어삼키는 힘이었으니. 벤헬링턴은 카펫 아래에 깔린 타멧블랙을 통해 유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끗! 역시 수련을 했다지만 할아버님은 벅차네.’
고작 몇 발짝 내딛지도 않았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한 발 아무렇지 않게 나아갔으나, 몸을 지탱하는 마나 또한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만큼 벤헬링턴의 경지가 얼마나 드높은지, 유리는 여실히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었다.
이에 몇몇 장로가 소리쳤다.
“우, 우연일 거요, 우연!”
“암, 그렇고 말고. 원래 간혹 카펫 위를 쉽게 걸어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잖소.”
“아마 마나로 겨우 버티고 있을 거요. 그 정도 마나야 다른 용인들도 얼마든지 지니고 있으니…….”
다이올드의 줄을 잡고 있는 장로들은 어떻게든 유리를 깎아내리려 진땀을 흘렸다.
말하지 않아도 다른 장로나 직계는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는데 말이다.
유리도 그들이 이런 수준으로 만족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까지 했던 용인은 없었겠지.’
카펫 끝자락에 다다랐을 즈음, 유리는 티르빙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드래곤 하트를 개방했다.
화아악!
불꽃처럼 일렁이는 검은 기운이 티르빙을 감싸고 돌았다.
다행이랄지, 아무도 유리가 내뿜은 마나가 드래곤 하트라는 건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폭발적인 마나량에 놀라기 바빴다.
“하압!”
유리는 사정없이 티르빙을 내리쳤다.
콰아앙!
바닥에 검을 내리치자 깔려있던 모든 타멧블랙에 금이 가면서 튀어 올랐다.
모든 에너지를 타멧블랙에 빨렸다고 착각했던 이들의 얼굴이 충격과 공포로 뭉그러졌다.
그 속에서 홀로 미묘한 미소를 짓는 벤헬링턴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 * *
화려한 졸업식이 끝나고.
뒷말이 무성하게 나왔으나, 항상 그렇듯 벤헬링턴의 교통정리 한 번으로 모든 게 일단락되었다.
“내가 합격시키겠다는데 왜 네놈들이 불만인 거지?!”
“하, 하지만 가주님. 가문의 법도에 따라 차기 가주 경쟁에서 패배했다면 다시 받아들일 수 없는 게―”
“타나토와 제몬이 암살했다고 했었다. 이것이 실패해서 유리가 돌아왔고. 여기서 누가 이기고 누가 패배했지?”
결과적으로 형제는 암살에 실패하고 말았다.
여기엔 말 그대로 실패와 성공만 있을 뿐.
구태여 패배자를 가리자면 오히려 형제가 패배한 것이다.
유리는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암살에 성공했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을 가능성도 있는 거고.
그 여지를 남겨두어서 일부러 장로들의 입을 막았다.
‘만약 내 입으로 암살에 실패했다고 하면 장로들이 더 들고 일어났겠지. 있지도 않은 증거를 대라며 한 마디씩 했을 거야.’
다이올드와 줄이 있는 장로만이 아니라, 다른 장로들도 사실 유리와 사이가 썩 좋진 않았다.
과거 지식의 관 입학을 하면서 그들에게 망신을 주었으니, 뭐.
‘어쨌든 할아버님의 명령을 어기 순 없겠지.’
이로서 유리는 졸업 시험을 통과했고, 또한 가주의 공언으로 인해 비겁자 꼬리표까지 떼어냈다.
애꿎은 다이올드와 그의 추종자들만 얼굴을 붉힌 채 어디론가 같이 몰려갔다.
아마 추후 이 일을 어찌할지 논의하려는 거겠지.
이후 유리도 벤헬링턴과 마주앉았다. 곁에는 마리도 동행했다.
오랜만에 들어선 집무실은 예나 지금이나 어지러웠다.
서류는 더 높이 쌓인 거 같기도 하고.
“꽤나 먼 길을 갔다 왔던 모양이구나.”
칙!
벤헬링턴은 의자에 앉으며 시가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빨아들였던 연기가 뭉개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기껏 돌아와서 한다는 게 광물 부수기더냐.”
“할아버님을 쓰러뜨렸어야 했나요?”
“뭐라? ……크하하핫! 당돌한 건 여전하구나! 하하하하!”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벤헬링턴처럼, 마리도 쿡쿡 웃으며 접객용 소파에 앉았다.
이번엔 마리가 물었다.
“너도 머리가 있으니 알겠지만, 오늘 일로 인해 넌 더 많은 적을 만들었다. 안 그래도 사이가 안 좋던 장로들이 다들 네놈 흉보느라 바쁘더구나.”
“그래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장로들과 끝까지 등을 지을 거냐?”
“아니요. 그 분들에게 필요한 가주가 되면 알아서 절 돌아볼 겁니다.”
가문 내에서 장로가 가진 힘은 분명 막강하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가문을 이끄는 가주가 항상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정도였다.
어찌보면 벤헬링턴에게 그들은 필요 없었다. 항상 그는 합리적인 결정을 해왔으니까.
반대로 현 장로들에겐 벤헬링턴이 필요했다.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으면서, 가문을 부흥된 길로 이끄는 자였으니까.
‘나도 그러면 된다.’
유리도 장로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면 그만이었다.
그때가 당도하는 날이면, 굳이 골 아픈 정치 싸움 없이 알아서 유리의 줄을 붙잡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은 실망스럽구나, 유리.”
벤헬링턴이 그리 말하더니 시가를 더 크게 빨아마셨다.
세로로 갈라진 그의 동공이 시가에 붙은 불꽃에 번들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