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56
제156화
실망했다고?
유리는 어쩐지 그 의미를 알 거 같았다.
“제가 타나토 형님과 제몬 형님을 죽이길 바라셨군요. 가문의 법도에 맞게.”
벤헬링턴은 유리가 형제에게 패배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유리가 가진 힘은 형제를 뛰어넘었고, 설령 어떤 수로 유리를 몰아붙였다 한들 그들을 죽일 정도의 발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리에겐 그 잔인한 법도가 그리 와닿지 않았다.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는군.’
원작으로만 알고 있던 벤헬링턴이라면 그가 뱉은 대사들이 당연했을지 몰라도.
나이트워커에서 같이 지내면서 마냥 잔인한 남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쩌면 누구보다 가족을 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다음엔 법도를 꼭 따르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법도를 어긴 걸 감안해도 유리는 오늘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
다름 아닌 벤헬링턴의 힘을 이겨냈으니까.
“돌아가서 쉬어라. 내일부터 넌 가문의 정식 일원이다.”
“밤에 영광을.”
경례를 올린 뒤 유리가 방을 나섰다.
벤헬링턴은 나머지 시가를 태우곤 잔에 독한 술을 따라서 단숨에 들이켰다.
이를 지켜보던 마리는 괜히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좋으면서 싫은 티 내는 게 영 어색하군요.”
“시답지 못한 소리 할 거면 당신도 나가.”
“유리한텐 매정하게 못 하셨으면서 저한텐 매정하신 건가요? 너무하군요.”
“그 얘기가 아니라, 크흠! 리펠리온 일 말이야. 이제 마무리 해야지.”
대외적으로 나이트워커와 리펠리온의 관계가 악화됐다고 알려지면서 세계의 정세가 불안하게 돌아갔다.
세월이 흘러서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지만, 적어도 가문과 관련된 자들에겐 확신을 줘야 했다.
그러려면 벤헬링턴이나 마리 정도의 인물이 나서서 중심을 잡아 줄 필요가 있었다.
마리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나 말고 유리에게 맡기죠.”
“유리 그 놈한테? 막 세상에 나온 녀석이야. 그냥 우리가 입 한 번 털어버리는 편이 나아.”
“그 애를 못 믿는 건 아니고요?”
“믿고 자시고, 이건 가문 간의 문제야. 당신이나 내가 나서는 편이 확실해.”
“장로들은요.”
“…….”
이 대목에서 벤헬링턴이 할 말을 잃었다.
오늘부로 장로들이 유리를 어떤 식으로 대하고 있는지 확실해졌다.
전부터 고운 시선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졸업 시험에선 더더욱 노골적인 적대감이 비쳤다.
“유리가 증명하게 해요.”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대신 암묵적인 동의가 오고 갔다.
그렇게 유리의 첫 공식 업무가 주어졌다.
* * *
유리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가문 밖까지 퍼져나간 소식은 곧 ‘유리는 어떤 사람인가?’로 이어졌다.
이미 유리의 존재는 알고 있었어도, 졸업 시험에서 펼쳐진 활약은 그가 결코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저분이 유리 님!”
“오오! 공자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에 본가 밖에 있는 광장으로 나온 유리는 새삼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가문의 일원이자 정식 평기사가 됐다는 증거로 어깨에 검은 망토를 둘렀다.
거기다 망토 끝자락엔 타멧블랙으로 만든 검은 용 날개 팬던트가 달렸고, 정작 그의 눈동자는 용인이 아니었으니.
유리라는 걸 알아볼 수밖에.
[우리 꼬맹이 하루 아침에 일약 스타가 됐는 걸. 부러워라.]‘부담스러우니까 너까지 그러지 마.’
[꺄핫~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거 아니고? 꺄하핫!]유리가 향한 곳은 5층짜리 석조 건물이었다.
광장 한 가운데서 조금 벗어난 거리에 자리잡은 건물은 가문을 떠나기 전만 하더라도 막 기둥을 세우던 중이었다.
그 잠깐의 세월 동안 번듯하게 세워진 건물을 올려다보며 다가가는 유리.
이곳이 바로 플레온 기사단의 본부였다.
그러다 경비들이 유리를 발견하고 경례를 올렸다.
“바, 밤에 영광을!”
“밤에 영광을! 플레온 기사단의 주인 유리 경을 뵙습니다!”
바짝 선 군기에 유리도 가볍게 경례를 하고 건물로 들어섰다.
로비엔 민원을 받는 창구가 있었고, 오른쪽으론 기사단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왼쪽에는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보였다.
유리는 왼쪽 통로를 따라 밖으로 먼저 나가봤다.
건물 밖에서 봤던 것과 달리, 통로를 따라 나간 야외엔 거대한 공간이 있었다.
“여기가 연무장이군.”
5개로 구성된 연무장에선 기사들이 자율적으로 훈련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가장 메인이 되는 대형 연무장엔 수습기사들이 교관의 구호에 맞춰서 검을 휘둘렀다.
“좋네.”
확실히 돈 좀 쏟아낸 보람이 느껴졌다.
일단 시설이 좋으니 없던 의욕도 생겨서 훈련이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교관과 눈이 마주쳤다.
검은 망토를 보고 무시하려던 그는 금색 테가 둘러진 펜던트와 그 주인의 얼굴까지 확인하곤 동공이 커졌다.
“유리 님!”
하던 훈련을 중단하지도 않고 그가 유리에게 달려왔다.
유리도 그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블레이크 경.”
금발의 미남자인 그는 다름 아닌 플레온 기사단 단장 블레이크였다.
한달음에 달려온 그는 경례부터 올렸다.
“돌아오셨다고 얘길 듣긴 했습니다. 오늘 일정만 마치고 돌아가서 뵈려고 했는데 번거롭게 찾아오시고……. 송구합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경이 쓸데없이 시간 낭비를 하는 건 나도 싫어.”
“도련님을 뵙는 게 어찌 시간 낭비입니까! 빨리 찾아뵙지 못한 불찰이죠!”
“안 보는 사이 아부가 늘었군.”
“아, 음. 그렇, 습니까.”
“그래, 그리고…… 마나도 늘었고 말이야.”
과거 미남자의 전형이었던 블레이크의 외모는 지금도 한결 같았다.
그러나 느껴지는 마나 코어는 8서클로 전보다 훨씬 성장한 상태였다.
어찌 보면 원작만큼 성장했으니, 시기적으로 더 빨라진 셈이었다.
“다 도련님 덕분입니다. 고생 좀 했지만, 좋은 검도 얻었고요.”
블레이크는 슬쩍 허리춤에 있던 검집을 보여줬다.
정확힌 검집이 아닌 고리에 숏소드 한 자루가 걸린채 흔들거렸다.
살짝 푸른색을 머금은 검신은 햇빛을 비추자 한층 더 색이 진해졌다.
“켈베로스의 이빨을 찾았군.”
“예, 그 놈 잡느라 고생 좀 했죠.”
블레이크가 더 강해지고 싶다며 했을 때 유리는 그에게 알맞은 아이템을 소개해줬다.
대륙의 남부, 어느 이름 없는 산에 서식하는 켈베로스에 관한 것이었으며.
그 놈을 처치해서 얻은 이빨로 검을 만들라고 했었다.
“녀석을 죽이는 데만 반 년은 걸렸습니다. 그 놈을 찾기까진 꼬박 한 달을 헤맸고요.”
“고생했군.”
“네에, 고생했습니다. 솔직히 도련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더군요. 대체 이런 괴물을 어떻게 잡으라는 건지 막막해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그 이빨이야말로 경에게 잘 어울려서.”
“그건…… 부정할 수 없겠더군요.”
켈베로스의 이빨이라 하면 티르빙 같은 악한 느낌이 들지만, 실상은 마나 전도성이 좋은 자원이다.
원작에선 카이가 임시로 이 이빨을 무기로 사용했으나, 워낙 험하게 다뤄서 금방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설정집에 따르면 잘 가공해서 무기로 만들었을 때 신물과 버금가는 성능을 냈다.
블레이크는 켈베로스를 홀로 토벌하면서 자연스레 마나 코어가 커졌고, 덤으로 무구까지 얻었다.
이젠 가문의 기사들보다 더 강해서 그를 무시하는 이들이 줄어들었다.
“저도 저지만, 도련님이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다들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자벨이랑 릴림도 돌아왔다면서.”
“네. 이자벨 경은 정기 순찰 때문에 나갔습니다. 아마 곧 돌아올 거고, 릴림 양은…….”
풀썩!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누군가가 유리를 끌어안았다.
“오라버니!”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채럿이었다. 유리는 손을 잡아 떼면서 돌아섰다.
조금은 키가 큰 그녀는 다시금 유리의 목덜미를 와락 감았다.
“보고 싶었어요! 저한테 기별도 없이 떠나시다니. 너무 하세요!”
“미안, 채럿. 워낙 상황이 급박했어서.”
“그래도 괜찮아요! 전 오라버니가 돌아올 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치, 릴림?”
채럿 혼자 온 게 아니었다. 그녀 뒤에 릴림도 같이 따라와 있었다.
“다녀, 오셨어요.”
“응. 릴림도 잘 다녀왔어?”
“이렇게 말하면 이상, 한데. 재미있었어요.”
그녀도 겉으론 달라진 건 없어도 풍기는 기운이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서클로 매길 수 없는 힘이 더욱 진해졌고, 전에는 갈팡질팡하던 기운이 한층 차분해졌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건 티르빙이었다.
[저 애, 레벤나를 각성시켰잖아?]‘진짜로?’
[응! 미뭉처럼 자아가 느껴져! 레벤나랑 접촉한 게 분명해!]유리가 릴림에게 줬던 숙제는 티르빙 말대로 레벤나와의 접촉이었다.
악마와의 접촉은 결코 쉽지 않다.
티르빙이나 미뭉처럼 형체가 있다면야 만지기만 해도 그들의 자아와 만날 수 있지만.
영혼에만 붙어 있고 잠들어 있는 이상, 이를 깨울 방법은 딱히 없었다.
물론, 유리는 ‘진짜 악마’가 된 릴림과 레벤나를 보았기 때문에 방법을 알고 있었다.
“진짜로 죽어봤구나.”
“네에.”
블레이크에게 감당할 수 있는 마수를 소개해준 반면, 릴림은 절대 이길 수 없는 마수를 알려줬다.
정확힌 마수의 소굴로, 카이가 폐관수련을 한답시고 향했던 장소였다.
지명은 헬헤임.
동부에 있는 섬으로 고대 원시림이 아직도 개척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고대 마수까지 서식한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헬헤임은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 지대였는데, 섬을 가져봤자 개척이 어려워서 대륙 유일의 정복욕이 없는 땅이기도 했다.
유리는 그곳으로 릴림을 보냈다.
덤으로 카이도 같이 보냈고.
“카이가 죽였지?”
“네에. 그 사람, 갑자기 절 혼자 버리고 사라졌어요.”
“말도 하지 않고?”
릴림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물론.
카이라면 릴림을 같이 보낸 뜻을 알아챘을 거라 예상했다.
영혼에 붙은 다른 영혼을 마주할 방법은 한 번 죽는 것 뿐이니까.
그렇다고 방법조차 안 알려주고 무작정 죽이게 내버려뒀다니.
그 놈다운 짓이네.
“레벤나랑 얘기가 잘 됐나봐.”
“의외로, 착했어요.”
“카이가 말했었잖아. 나쁜 악마는 아니라고.”
“그러니까요. 근데, 이건 좀 불편해요.”
릴림이 자신의 어깨 너머 뒤를 흘겨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녀의 등 뒤에서 날개가 튀어나왔다.
옷이 찢어진다거나 어깨 죽지에서 돋아난 게 아니라. 허공에서 검은 깃털이 달린 날개가 돋았다.
“신기하죠?”
“어어, 레벤나한테서 날개를 얻은 거야?”
“얻은 건지, 뭔지. 그냥 생기더라고요.”
순식간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그러나 릴림은 개의치 않아 하면서 손가락으로 날개를 쓸었다.
흡사 타락천사 같은 외모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근데 레벤나 양은, 말이 너무 없어요.”
“그래?”
“네에, 다 귀찮데요. 말 걸지 말고 다 알아서 하라면서 잠만 자요.”
그건 왠지 릴림이랑 정 반대인데.
릴림의 말투가 느릿하고 어눌해서 의욕이 없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았으나.
가문을 통 틀어서 그녀만큼 빠릿한 하녀가 드물었다.
‘어쩌면 릴림이 알아서 잘 하니까 레벤나랑 잘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
그런 생각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유리는 문득 튀어나왔던 이름을 떠올렸다.
이자벨이야 곧 온다고 했고. 그리고 또 있어야 할 멤버.
“그런데 릴림. 카이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