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59
제159화
나이트워커의 봉신 가문인 드워프 가(家)의 이름은 골든해머로, 동쪽 대륙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대장장이 가문이었다.
다른 드워프 가문이 예술적인 미(美)를 추구한다면, 골든해머는 실용적인 무구를 잘 만들었다.
그런 가문의 가주인 빅핸드 골든해머는 모두에게 들으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유리 도련님이 당한 힘은 마검이 확실합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지, 빅핸드?”
“저희 가문의 배신자가 다이올드 님에게 가짜 마검을 판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순식간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몇몇은 가짜 마검의 존재에, 다른 누구는 가짜 마검이 다이올드에게 팔렸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 부류는 놀란 ‘척’ 끝까지 유리가 불리한 한 마디를 뱉었다.
“유리 님이 가짜한테 당했다고?”
“말도 안 돼. 아무리 서자에 피가 천해도 진짜 마검을 들고 가짜한테 당할 수 있나?”
“이게 어찌된 건지…….”
유리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다른 의미로 혼란스러웠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가짜 마검. 그러니까 별 볼일 없는 무구를 든 타나토에게 당했다고 흠집을 내려는 걸까?
아니면 가짜 마검이라서 타나토와 제몬이 똑바로 승리하지 못했다는 걸 설명하려는 걸까?
“경위를 자세히 말해보라.”
“저희 가문에 가짜 마검을 만든 한 드워프가 있었습니다! 그 자는 가짜 마검만이 아니라 신물이라 불리는 무구들을 좋아하여 여러 가짜를 만들어냈고, 그 힘마저 비슷하게 구현했습니다!”
“자네가 말해준 적 있지. 다른 드워프 족에서 와서 신비로울 정도로 대단한 무구를 만들어냈다고.”
“허면 그 자가 자신이 만든 작품과 다른 보물까지 가지고 달아난 이야기도 기억하시겠군요!”
벤헬링턴이 짐짓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리도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드워프의 보물방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금고라 불렸다. 수만가지 함정과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용인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보물방에 도둑이 든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범인은 드워프 중 한 명이었고, 지금도 그 자를 추적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도둑은 자신이 만든 무구를 모조리 가지고 달아났습니다! 해서 그 자를 쫓던 중에 우연히 다이올드 님과 가짜 마검을 거래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타나토와 제몬을 향했다.
벤헬링턴까지 그들을 바라보며 해명을 요구하자 다이올드가 나섰다.
“맞습니다. 제가 한 암거래상으로부터 가짜 마검을 사들였습니다.”
“그걸 네 자식들에게 준 것도 사실이더냐?”
“네.”
다이올드는 조금의 거짓 없이 사실들을 인정했다.
너무나 순순히 인정하는 태도에 위화감이 들었다. 원래라면 아니라고 잡아떼야 다이올드다운데 말이다.
빅핸드가 말했다.
“어쨌든 가주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는, 이로서 세 분의 졸업 자격이 아직 합당치 못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합니다!”
“자격이 합당하지 못하다?”
“타나토 도련님과 제몬 도련님은 본인의 힘이 아닌 가짜 마검의 힘을 빌렸으니 자격이 부족하고, 또한 유리 도련님도 졸업 시험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하셨으나 진짜 마검을 들고도 가짜 마검에 밀렸으니 이 또한 자격이 부족합니다!”
이런 의도였나!
유리가 잠깐이나마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지 다이올드가 이상하리만치 평온하다 싶었지.
유리가 가주 후보로서 유리한 고지에 들어서자, 차라리 같이 죽자는 식으로 나온 것이다.
가짜 마검을 언급하는 순간, 다이올드의 위상이 깎이지만 유리의 위상도 같이 깎일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다이올드도 가주 자격에 영향을 끼칠 텐데, 어째서?’
어쨌든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추측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었다.
적어도 벤헬링턴이 부당한 조치를 하진 않을 테니. 우선 관망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뭐지, 빅핸드?”
“도련님들께 그 도둑을 잡게 하심이 어떤지요!”
“도둑을?”
“예! 워낙 신출귀몰하고 용의주도한 자인데다가 실력이 뛰어나 저희 가문의 힘만으로 잡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 자를 잡아들이라고 시험하시면 충분히 자격을 논할 수 있을 겁니다!”
“흐음.”
벤헬링턴이 고민에 빠졌다.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안 그래도 졸업 시험을 다 통과했으나 뒷맛이 썩 좋지 않았던 차였다.
좀 더 확실히 할 임무를 준다면 이보다 더 확실한 시험은 없을 터.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좋다. 유리, 타나토, 제몬, 너희 셋은 빅핸드를 도와라.”
“네.”
“네.”
“네!”
유리는 자신 있게 답했고, 타나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제몬은 다시 기회가 주어져서 신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오늘 흑실에 모인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으니.
벤헬링턴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시가를 물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찌되었든 간에 세 놈이 남의 가문에서 난장판을 피운 걸 확인했으니, 리펠리온에 이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야 큼!”
“그래야, 겠죠.”
다들 못 마땅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따지진 못했다.
서약서 이상으로 리펠리온에게 폐를 끼치고 도움까지 받았으니까.
“샤를린느, 앞으로 나오거라.”
부름을 들은 샤를린느는 잠시 망설였다.
왠지 책임을 묻기 위해 문책할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유리 옆에 나란히 섰다.
“가주의 직권으로 명한다. 네가 리펠리온으로 향해 보상안을 협상하고 무역로 개척 건을 마무리 지어라.”
“하지만 가주님. 보상 협상에 제가 가는 건 아무래도…….”
“면이 안 선다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묻는 벤헬링턴이 피식 웃었다. 그리곤 나지막한 말투로 유래 없는 선언을 했다.
“오늘부로 가문의 직속 상단의 상단주는 샤를린느가 맡는다.”
* * *
‘아쉽게 됐네.’
흑실에서의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유리는 입맛을 다셨다.
원래 샤를린느를 위한 상단은 유리가 직접 만들어주려고 했다.
안 그래도 리펠리온에서 나이트워커로 돌아오던 길에 이에 관해 대화를 나눴었다.
“어머니, 돌아가는대로 플레온 기사단 옆에 상단을 하나 만들까 해요.”
“상단?”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거 같아서요.”
“아니, 난…… 괜찮아. 상단은 무슨. 힘들어서 싫어.”
“힘드시다면서 매번 콧노래를 부르시면서 서류를 보고 계셨어요?”
“으으음. 내가, 그랬니?”
“네. 어차피 저 돈도 많이 남아있어서 쓸데도 없는데. 작게나마 마련해드릴게요.”
끝끝내 샤를린느는 싫다는 소린 하지 않았다.
오히려 뭘 하면 좋을까, 라며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랬는데 나이트워커의 직속 상단을 통째로 그냥 넘겨주실 줄이야.
[경사스러운 일을 앞두고 근심이 많아 보이네.]‘적이 많아졌으니까.’
지위가 높아질수록 적은 더 많아지는 법이다.
유리야 대응할 힘이 있다지만, 샤를린느는 용신이라는 권능을 조금도 쓸 수 없었다.
사명 때문이었다.
‘신이 부여한 사명은 불문율이라 어길 수 없으니까.’
드래곤이 없어졌으나 그 사명마저 사라지진 않았다.
그 증거로 샤를린느가 아직 살아있었으니. 사명을 지킬 의무도 살아있는 셈이다.
‘어째서 어머니가 살아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를 대신해서 지킬 힘이 필요해.’
샤를린느가 부릴 수 있는 힘은 극히 한정적이다.
육신이 가진 힘은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신의 권능으로 주어진 힘은 쓰면 쓸수록 수명이 줄어들었다.
일전에 가짜 마검을 상대하면서 썼던 힘이 신의 권능으로, 벌써 몇 년 치 수명을 잃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크리스털’을 바로 찾아야겠어.”
[언제?]“지금.”
* * *
늦은 밤, 창가 위로 달빛마저 뜨지 않은 하늘은 별만이 무성했다.
유리는 훌쩍 일어나 간단하게 짐을 챙기고 나섰다. 금방 다녀올 거라 릴림이 챙겨준 사탕이랑 초콜릿, 위장용 외투만 가방에 마구 넣어서 방을 나갔다.
가는 길에 경비와 기사들이 그를 보았으나 눌러쓴 후드를 보고 모른 척했다.
잠행인 걸 알아본 것이다.
[어디 있다고 했지? 그 크리스털이.] [셰론이요, 티르빙 양.] [모래바람의 땅이라. 거기에 있을 법 하긴 하네.]보이지 않는 크리스털은 오래 전부터 샤를린느의 호신용 아이템으로 구하려고 했었다.
원작대로라면 이 시기 즈음에 카이가 ‘보이지 않는 크리스털’을 얻어야만 했으나.
예상보다 기사단에 있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원작과 행방이 달라졌다.
다행히 클라우드 하트에서 정보를 얻었고.
셰론이라 불리는 소금 사막 지대에 묻혔다는 걸 찾았다.
‘할아버지가 주신 임무 기한까진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까지 찾아와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대문을 나온 유리는 곧장 말을 타고 동남부로 달렸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유리는 쉽게 크리스털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 *
셰론까지는 꼬박 이틀 밤을 지새고 달려서 도달했다.
셰론으로 가는 길에는 돌로만 이뤄진 산맥이 그득했다. 그곳에서 말을 잠시 마을 여관에 맡기고 걸어서 산을 넘었다.
말을 맡아주기로 한 여관 주인은 유리에게 물었다.
“셰론에 간다구? 거긴 왜?”
“소금 사막이 있다고 해서 구경을 가볼까 합니다.”
“허, 참. 젊은 친구가 겁도 없군. 이 시기에 그곳은 발을 딛는 순간 길을 잃는 곳이라네. 지금 들어가면 무조건 죽을 게야.”
“길을 잃는다고요? 평야인데요?”
“뭐, 가보면 알 걸세.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서. 분명 산 위에서 내려다보고 바로 돌아올 거라 내 장담하지.”
셰론에 관해선 설정집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라 유리도 정보가 부족했다.
무작정 온 게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딱히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소금 사막과 평야만 있었으니까.
그곳엔 사람이나 동물, 마수, 풀 한 포기조차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런 거에 비해 겁을 많이 주는군.’
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산을 탔다.
그리고 마침내 산맥을 넘어갈 즈음이 되어서 발 아래로 셰론이 보이자 조금은 당황스러워 했다.
“멋있긴 한데.”
[끔찍하네.] [그러게요.]산 아래로 펼쳐진 소금 사막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마치 거대한 거울을 땅에 깔아놓은 거 같아서 눈을 뜨고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 소금 사막을 평범한 사람이 봤다면 자연의 위대한 경관에 아름답다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마주한 현실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생명체라 할 건 아무것도 없을뿐더러.
지평선 끝까지 온통 새하얗기만 하고 바람 한 줌 불지 않았다. 공기마저 정지한 세계는 그야 말로 죽은 것과 같았다.
“전생에서 우유니 사막이란 곳은 굉장히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여긴 아니네.”
[말 그대로 죽은 사막이야. 겉모습의 아름다움에 속아서 들어갔다간 꼼짝없이 죽을지도.] [미세한 마나도 느껴지네요. 보이지 않는 크리스털이 만든 기운일까요?] [에덴부르크, 그 망나니 신이 만든 크리스털이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여기서 걱정해봤자 어쩌겠어. 직접 부딪혀보자고.”
유리는 빠르게 산을 내려가 평야에 다다랐다.
바위산이 끝나는 지점부터 호수처럼 소금물이 차박차박 작게 파도쳤다.
그는 곧장 사막에 발을 디뎠다.
그 순간.
산이 사라졌다.
“…….”
이질적인 감각에 솜털이 곤두서서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안 보였다.
산만이 아니라, 걸어왔던 모든 곳이 형체를 감추고 사막이 펼쳐졌다.
하얀 대지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발바닥을 겨우 적시는 물높이만이 이곳에 존재했다.
순식간에 갇혀버린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