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6
제16화
용인의 도서관은 일반적인 도서관들과 다르다. 지식, 정보, 그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일기나 잡다한 메모까지 보관했으며 밖에선 절대 볼 수 없는 문건이나 비밀 지령지 따위도 보관했다.
도서관은 총 네 개의 섹터로 구분했다.
가문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지상 섹터. 유리도 매번 가던 곳이다.
지하 1층 섹터. 희귀본이나 초판, 없어져가는 서적들을 보관한다. 이곳은 3~5티어 직책을 가진 이들만 출입이 가능하다.
마지막 2층은 활자가 적힌 것 중에서 하나 밖에 없는 것들이 있고, 2티어까지 들어갈 수 있다.
마지막 3층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다. 1티어 직급조차 그 안에 든 것을 함구했다.
그런 1티어용 도서관으로 사서가 안내했다.
“이쪽으로.”
지상층 제일 안쪽, 그곳에는 도서관 내부에서 가장 높은 돔 천장과 작은 원형 홀이 있었다.
홀 가운데에는 작은 기둥이 솟아서 패를 꽂는 장치가 있었는데, 사서는 그곳에 패를 꽂았다.
그러자.
드드드득!
거대한 진동과 함께 바닥이 가라앉으며 계단을 만들었다.
유리는 이 모든 과정들을 한시도 빼놓지 않고 눈동자를 빛내며 관찰했다.
내려가기 전, 미앵비슈가 유리에게 돌아섰다.
그리고 용패를 건넸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는 얘길 들었다. 그러니 빌려주마.”
“이걸 어째서……?”
“착각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건, 혹시나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대가나 선물 따위로 주는 게 아니란다. 이건 원로들이 너를 무시한 보상이다.”
어찌 되었던 가문의 직계 후손을 두고 지식의 관 입학 자격을 운운한 시점에서 잘못을 저지른 거나 마찬가지다.
이유 막론하고 유리는 지식의 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니, 들어가야만 했다.
물론, 미앵비슈도 유리의 입학을 막는 데 한몫했다.
“나 또한 그 원로들에게 일조한 모양새가 되었으니, 그 사과의 의미라고 봐줬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1티어 도서관을 제가 들어가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을 텐데요.”
“그건 걱정 말고.”
유리가 망설이자 미앵비슈는 그의 손 안에 직접 용패를 넣고 쥐어줬다.
그는 얼떨떨한 얼굴로 용패를 내려다봤다.
이어서 그녀가 말했다.
“1티어 도서관 이용 방법은 알고 있겠지?”
“네.”
1티어 섹터에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훔치는 건 당연히 안 되고, 대출 불가능, 필기를 해도 들고 나갈 수가 없다.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가져가도 상관없지만, 엄연히 고대 드래곤이 남긴 보물이다.
그걸 몰래 들고 나갈 배짱은 아직 유리에게 없었다.
“한 가지 조건을 더 붙이자면, 한 번 도서관을 나오면 다시 들어갈 기회는 없어.”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도서관에 머물면서 어떤 책이든 봐도 된다는 건가요?”
“그렇지.”
달리 말해서 한 번 들어가서 보는 것들을 모두 외워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 되었다.
들어가나마나 한 혜택이었으나, 유리는 실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감히 이런 혜택은 가문의 딴 아이들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유리는 이때만큼은 감정을 곧이곧대로 드러냈다.
“감사합니다, 고모님! 주신 기회, 아끼지 않고 쓰겠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려무나.”
정말로 용패를 맡긴 채 미앵비슈는 그대로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사서까지 그녀를 따라 사라지고, 유리는 남아있던 릴림에게 당부했다.
“릴림, 어머니께는 네가 알려줘. 그리고…… 아마 몇 달 정도 얼굴 못 본다고 생각해.”
“몇 달, 씩이나요?”
“둘도 없을 기회잖아.”
몇 달? 할 수만 있다면 1년, 10년이라도 있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쌓였다고도 하는 장소에 무기한 이용권을 받아놓고 고작 1달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
귀찮겠지만 릴림에게 식사를 도서관으로 가져달라고 말해놓고 그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가는 내내 괜히 다리가 떨렸다.
형언하기 힘든 감정과 공간이 주는 아우라 때문이었다.
내려가는 계단은 마치 연회장 2층에서 로비로 내려가는 듯 화려했다.
어둡지 않고 불꽃이 환하다. 원형으로 된 계단 가운데 위에는 샹들리에가 흔들렸다.
[여기도 용언 마법이 걸렸네. 이건 좀 특이한걸?]“지식의 관에서도 충분히 특이했는데 이건 왜?”
[아니, 뭐랄까. 용언 마법이 걸렸다는 건 블랙 드래곤 아저씨가 썼다는 건데. 드래곤 입장에서 도서관 같은 곳에 용언 마법까지 걸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그런가.”
[아, 몰라. 여하튼 그 아저씨도 참 이상한 곳에 용언 마법을 써놨네.]지하 1층, 2층을 지나 제일 아래층에 다다르자 사뭇 다른 분위기의 책장들이 보였다.
다른 곳은 전형적으로 책만 가득한 도서관이었다면, 티어 1 섹터는 책을 꽂아놓기 보다 진열장에 잘 전시해놓은 형태였다.
마치 박물관 같다고 해야 되나.
“여기가 드래곤의 진짜 보물이 감춰진 곳……!”
유리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목소리가 울렸으나 신경 쓰지 않고 안쪽으로 훌쩍 뛰어 들어갔다.
[워워, 진정해~ 꼬맹이. 벌써부터 흥분하면 못써.]“이걸 보고 흥분 안 할 수가 있겠어?”
유리는 책들 면면을 살피면서 빠르게 지나갔다.
티르빙은 말로 진정하라 해놓고 자신 또한 처음 보는 지식들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얼핏 보이는 제목만 보더라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들이 널렸다.
타우렌 족의 도끼술, 동방의 전술서, 엘프의 정령서 등등.
지상 섹터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서적들에 유리는 당장 저 모든 것들을 집어오고 싶었다.
“후우, 뭐부터 봐야지?”
[내 추천은 아칸이랑 관련 있는 검법서부터 보는 걸 추천해.]“아칸이라면, 남부에 사는 다크엘프족?”
[오~ 아네?]“용병단에서 일할 때 의뢰 때문에 본 적 있어. 뭔지는 모르지만.”
[그 애들 검술이 꽤나 쓸 만해. 난이도가 더럽게 높아서 그렇지.]흠, 티르빙의 추천이라.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유리는 책들을 하나씩 훑으며 원하는 책을 찾아냈다.
다행히 이 섹터에서 ‘아칸 검법’이라는 서적 하나를 발견해냈다.
가면서 보고 싶은 것들까지 챙기느라 양손으로 받치다 못해 턱으로 책 더미를 눌러야 했다.
“저건 뭐지?”
그러다 이상한 진열대를 발견했다.
전부 책을 전시해놓은 것과 달리 어떤 목판이 꽂혀 있었다.
유리는 앉을 자리에 고른 책들을 두고 수상한 진열장으로 돌아갔다.
하나를 조심히 꺼내서 펼쳐보니 요즘엔 보기 힘든 목각판이 드러났다.
꽤나 오래된 듯했으나 썩거나 갈라진 곳 하나 없었다.
“상태가 좋네.”
[인쇄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읽을 수나 있나?]“거꾸로 되어있지만, 이쯤이야.”
좌우로 반전된 글자를 차근차근 읽어봤다. 발음을 하고 음절을 이어 붙여서 단어로 만들기까지 오래 걸렸으나 목각판의 첫 머리는 쉽게 읽었다.
그리고 첫 머리를 읽는 찰나, 문득 위화감이 몰려왔다.
‘이걸, 왜 읽을 수 있지?’
순간 자연스레 글자를 읽는 바람에 자칫 모를 뻔했었다.
이건 이 세계의 글자가 아녔다.
다름 아닌 유리가 전생에 살던 시절 보았던 언어가 그곳에 있었다.
“한글……?”
[한글? 한글이 뭔데?]“……이런, 씨!”
투두둑!
유리는 대답하지 않고 곧장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목각판을 챙겨서 자리로 갔다.
마음 같아선 당장 잉크를 붓고 종이에 찍어서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목판 손상시킬 수는 없기에 일단은 종이에 글씨들을 거꾸로 옮겨 썼다.
힘겹게 첫 머리와 첫 문장을 완성하는 순간.
[야, 꼬맹이. 이거 혹시 그거야?]“어, 아마도.”
옮겨 적은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단어가 목판 내용의 서두를 장식했다.
그 글자를 멍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유리는 곧 정신을 차리고 다른 문자들도 해석하기 시작했다.
아칸이고 뭐고 다른 건 중요치 않았다.
지금 당장, 이 설정집이 우선이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감을 잡지 못했다. 사서가 전달해주던 식사만이 날짜가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였다.
그러나 유리에겐 그런 가늠마저도 일순간 사라지던 때가 찾아왔다.
밤낮을 잊고 목각판을 해석하던 중 그는 불현 듯 정신을 잃었다.
처음엔 잠을 못자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잠과는 상관없는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여기는……?’
시작은 티르빙이 말했던 아칸이라 불리는 다크엘프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모든 삶과 생활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하물며 유리가 찾으려던 검술마저 고유의 동작을 누군가가 시범을 보여줬다.
다음으론 북방 지역에 사는 예티족의 삶이.
다음은 어둠의 사도들이라 불리는 광신도의 삶이.
‘원작에 없던 설정들, 작가가 만들어놓고 쓰지 않은 이쪽 세계의 설정들.’
유리는 본능적으로 보고 있는 장면들을 깨달았다.
원작 자체는 지겹게 봤기 때문에 전부 내용을 기억해냈다.
허나 원작이라고 해서 모든 게 완벽하진 않았다. 스토리라인은 철저하게 주인공의 성공 가도를 중심으로 잡아서 간간히 의미 없다 싶을 정도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설정들이 존재했다.
아이템, 주변인물, 환경, 장소, 던전 등등.
떡밥 같다가도 끝끝내 회수되지 않는 것들도 종종 보였다.
그랬던 것들이 지금 유리 앞에 화면으로 바뀌어 지나갔다.
어지럽다. 하지만 선명했다.
하나하나 각인되듯이 머릿속에 새겨지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필름이 끊기면서 유리의 정신도 끊어졌다.
* * *
유리가 눈을 떴을 땐 가장 먼저 가로로 눕혀진 도서관 전경이 보였다.
뒤이어서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꼬맹이! 야!!! 꼬맹이!!!]“……잘 들리니까 그만 불러.”
책상에 엎어져 있던 유리는 부스스한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태연자약한 대답에 티르빙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젠장. 이 언니 놀라게 할래? 갑자기 쓰러져서는 도통 깨어나질 않으니.]“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어?”
[대략 3일? 으음, 모르겠다. 나도 이곳은 시간 가늠이 되질 않아서.]“3일 내내 날 깨웠어?”
[처음엔 졸려서 자는 줄 알았어. 일주일 내내 잠도 잘 안 자고 해석만 했으니까.]“일주일이나 지났다고?”
[응. 꼬맹아, 대체 뭐였어? 해석본을 다 쓰자마자 글자들이 사라지고, 넌 기절하고.]정말로 유리가 해석해놓은 종이들은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마냥 전부 깨끗했다.
기껏 열심히 써놓은 글자들이 사라졌으나 유리는 당황해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좋을지.
생각을 좀 더 정리한 그는 간략하게 한 줄로 요약했다.
“이거 원작의 설정집이야.”
[그건 나도 같이 봤으니까 알고. 잠깐만. 너 지금 기억이…….]티르빙과의 기억 공유로 인해 유리가 봤던 장면들이 그녀에게도 흘러갔다.
티르빙은 한 장면씩 볼 때마다 할 말을 잃었다.
유리도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
“그냥 설정집이 아냐. 사이드스토리, 과거사, 주변 인물들의 인생, 심지어 각 세력별 역사까지도 담겨 있어.”
전생에서 원작을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작가는 전형적인 설정광이었다.
방대한 세계관과 미처 회수하지 못한 복선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설정집이 보여준 필름들은 그보다 더 커다란 이야기들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나이트워커 정보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주인공은 겪지 못했던 나이트워커의 흥망성쇠, 그리고 파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전부 작가가 만들어놓고 쓰지 못한 설정임이 확실했다.
“뭣보다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 선명해. 마치 원하는 기억을 마음대로 찾아서 꺼낼 수 있을 거 같아. 이게 가능한 건가?”
[……용언 마법.]가만히 듣기만 하던 티르빙은 바로 결론을 내렸다.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용언 마법으로 꾸며진 이상한 도서관도 그렇고.
기억 공유를 통해서 본 엄청난 양의 정보가 한낱 생명체에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티르빙은 단연코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