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61
제161화
이젠 시간을 알 수조차 없었다.
슬슬 한계에 다다라 어느 순간부터 무의식적으로 걷고 있었다.
왜 걷는지 이유를 잊은지는 오래다.
아니, 걷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발이 움직이고 있나.
나, 숨은 쉬고 있나?
“…….”
아래로 머리를 떨궜다. 물에 비친 그림자가 힘겹게 흔들렸다.
배고픈 건 둘째치고 물의 유혹이 너무나 달콤했다.
소금물인 걸 알면서도 먹고 싶은 충동에 유리는 가만히 멈춰 서서 물의 표면을 바라봤다.
쿠득!
그러다 그는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입술만이 아니라 입술 아래 턱까지 물어서 피가 크게 났다.
이번이 처음 난 상처도 아니었다. 또한 온 몸에 다른 상처도 가득했다.
살을 꼬집고, 그러다 베고, 나중엔 이로 물어뜯다시피 상흔을 남겼다.
그러나 곧 상흔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좀 정신이 드는군.’
피가 턱과 목 아래로 흐르자 온몸에 났던 상흔들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상처는 전부 환각이었다.
아마 극한으로 유리를 몰아세운 신이 아예 죽고 싶은 통증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때마다 유리는 아랫입술을 찢어지도록 깨물어서 원래 정신으로 돌아왔다.
“후우.”
상처가 없어졌다 해도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었으니.
유리는 삐쩍 마른 얼굴을 정면으로 들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웬 생명체가 그 앞에 있었다.
“삽살……개?”
견종을 잘 몰라서 정확히 무슨 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눈을 가릴 만큼 털이 기다란 하얀 개 한 마리가 헉헉 거리면서 유리를 바라봤다.
신기하게도 삽살개는 수면 위에 떠있었다. 게다가 발 근처의 털들이 젖지 않은 채였다.
그러나 그런 신기함보다는 녀석이 물고 있는 물건에 눈길이 갔다.
“보이지 않는 크리스털!”
찾고 있던 물건이 드디어 나타났다!
그러나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녀석이 상체를 낮추고 엉덩이만 높이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딱 봐도 놀자는 기세였다.
“장난이 지나치군요.”
쫓을 수 있을까.
마나를 체화시키기엔 한계가 있다. 섣불리 마나를 썼다간 아스칼론의 말처럼 공기가 불탈 것만 같았으니까.
이미 며칠 전에 몸이 너무 힘들어서 한 번 마나를 크게 썼다가 다칠 뻔한 적도 있었다.
컹!
신이 난 삽살개가 크게 한 번 짖었다. 엉덩이 뒤로 꼬리가 프로팰러마냥 돌아간다.
“아주 신났다는 거지?”
난 죽을 맛인데 말이야.
어쨌든 놈을 잡아야 한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눈에 목표가 보이자 의욕이 생기면서 조금은 생기가 돌았다. 물론, 그만큼 더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뛰어봐야…… 엇!”
그 말을 기점으로 삽살개가 돌아서서 반대 방향으로 무작정 달아났다.
놀란 유리는 준비도 못하고 달음박질을 쳤다.
타탓, 타탓!
경쾌한 발놀림으로 삽살개가 쏘아나갔다.
삽살개, 그러니까 에덴부르크는 비죽 웃었다.
‘크크큭! 그런 몸으로 바람을 관장했던 나를 쫓아올 수는 없을 게다!’
평범한 개의 모습을 하고도 그는 치타보다 빠르게 달렸다.
뒤를 흘끔 쳐다 보니 예상대로 유리는 좀처럼 쫓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마나는 충분히 남았을 텐데도 오로지 신체 능력만으로 쫓는 모습이었다.
어째서 마나를 쓰지 않고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그 자체는 현명한 선택인 건 맞다.
하지만 마나를 쓰지 않고서 에덴부르크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똑바로 따라오는 근성 하난 칭찬해줘야겠군!’
마나만 쓰지 않을 뿐이지, 유리는 바른 자세로 에덴부르크를 쫓았다.
무려 한 달이나 제대로 먹고 자지 못한 놈치곤 대단했다. 건강한 신체였다면 꼼짝없이 붙잡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30분 정도 술래잡기가 이어지고.
월!
멀리 거리가 벌어지자 에덴부르크는 잠시 멈춰 서서 유리를 향해 짖었다.
딱 봐도 약 올리는 꼬라지였다.
“빌어먹을,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멈춘 틈을 타서 더 뛰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유리도 멈춰서 호흡을 골랐다.
충만한 의지에 비해 몸이 전혀 따라주질 않는다. 어차피 여기서 더 따라가봤자 잡혀줄 거 같지도 않고.
‘그래도 술래잡기를 하자는 건 확실하네.’
일말의 희망이랄까.
솔직히 에덴부르크가 이 정도로 가지고 놀았으면 곧장 보상을 내어줄 줄 알았다.
아니면 더한 시련을 줘서 싸운다거나 무력을 발휘해야 하는 극악의 상황까지 가정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삽살개를 쫓아 봐도 결국 이건 술래잡기에 불과했다.
일요일 아침에 나오던 어떤 농장 프로그램에 나오는 주인이 만지지 못하는 반려견인 셈이다.
“날 가지고 놀겠다는 거지?”
그럼 이제 내가 가지고 놀아주지.
아스칼론이 경고했던 인화성 마나는 이미 체험해봐서 알고 있다. 실수로라도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 불바다가 되어 유리도 같이 타버리리라.
더구나 이곳은 어떤 식으로든 평범한 공간과는 달랐다.
마치 마법 주머니처럼 아공간에 들어왔을 테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서 공간을 태워서 부수기도 애매했다.
그럼 왜 에덴부르크는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까.
‘적어도 찾아오는 사람을 막는 공간은 아니다. 그럴 거였다면 처음부터 발도 못 들이게 했어야지.’
누군가가 찾아와도 되는 공간.
대신 공간이 주는 시련을 견디지 못하면 돌아가게끔 만드는 식이었을 것이다.
이곳에 대해 일러준 여관 주인도 아마 여기에 발을 디뎠다가 돌아갈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유리는 돌아갈 수 없었다.
즉, 여긴 그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럼 내 마음대로 해도 되겠지.’
유리는 감춰놨던 드래곤 하트를 천천히 몸 곳곳으로 옮겼다.
죽어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점차 활력을 되찾았다. 충혈 되어 탁해진 눈동자도 투명하게 변했다.
마나를 감지한 에덴부르크는 껄껄껄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끄윽! 끅끅끅! 그래! 예언을 막는 자라면 이만한 배포는 있어야지!!!’
삽살개가 궁둥이로 춤을 추다가 위아래, 좌우로 방방 제자리에서 뛰었다.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몸짓이었다.
이때까지 에덴부르크는 몰랐다.
차라리 유리에게 끝까지 사막을 걷게 하는 편이 나았다는 것을 말이다.
티딕! 틱!
마나에 감응한 공기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피부를 태웠다. 살이 익는 열기와 냄새가 곧 코를 찔렀다.
“큭!”
이어서 마시는 호흡까지 목구멍을 태웠고 잇새에서 피가 터졌다.
그러나 이 정도 데미지는 유리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별빛나무 아스칼론의 마나까지 발휘해 놔서 자연치유력이 대폭 올라갔고, 작은 상처쯤은 우습다는 듯이 바로 회복됐다.
설령 통증으로 괴롭히려 해봐도 클라우드 하트 안에서 당한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화르륵!!!
퍼버버벙!!!
운용하던 마나를 방출하는 순간.
타들어가던 대기가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사방에 붉은 화염이 그들을 둘러쌌다.
충격의 여파가 당연히 유리를 공격했다. 유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마나와 마법을 동원해서 보호막을 쳤다.
에덴부르크는 적당히 하고 말 줄 알았다.
그러나 유리의 마나는 더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으윽?! 이, 이 미친 놈이! 날 죽이다 못해 이 공간을 부술 작정이더냐!’
에덴부르크 말마따나.
실제로 유리는 공간을 통째로 부술 생각이었다.
사막을 어떤 식으로든 건너는 게 시험인 줄 알았다면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원하던 물건을 발견한 이상, 마나를 억제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아예 대기 중에 있는 모든 마나를 태워서 공간을 폭발시키려 했다.
쿠쿵! 쿠구구! 콰쾅!
‘이익! 저 놈이 진짜 돌았구나!’
자폭이나 다름없는 연쇄폭발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었다.
에덴부르크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길길이 날뛰었다. 불길에 가죽이 타기 전에 놈을 막아야 했다.
“머, 멈춰라!”
결국 에덴부르크가 제 목소리를 내어 외쳤다.
드디어 본인이 등장하자 유리는 마나를 거두었고, 남은 불길은 에덴부르크가 바람을 조종해서 모조리 한 곳으로 모아 물속에 넣었다.
치익.
불길이 사그라들고 삽살개가 물고 있던 크리스털을 잠시 내려놓았다.
“이 미친놈아! 감히 신의 영역을 모조리 태워 없애서 어쩌자는 거냐!”
“잡아달라고 도망친 거 아니었습니까?”
“그럼 잡아야지!”
“잡을 힘이 없어서 그냥 사는 곳을 태워봤습니다. 숲에 숨은 사냥감을 몰아내기 위해 숲을 태운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잉, 쯧쯧! 인간들의 폭력적인 사고란!”
혀를 차던 에덴부르크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얀 머리와 하얀 수염, 심지어 눈썹과 입고 있는 로브마저 하얀 그는 전생에서 보던 도사와 비슷했다.
눈썹은 눈을 덮고도 길이가 남았고, 수염도 입가를 가렸다.
로브와 지팡이, 머리에 쓴 챙이 큰 마법사 모자가 아니었다면 영락없는 도사였다.
“에덴부르크 님, 맞으신가요.”
“알고서 온 거 아니었느냐?”
“웬 개가 사람으로 변한 걸 보고 신이라고 보진 않습니다만.”
“건방지구나! 이래 보여도 창조주와 함께 중간계를 만드는 데 일조한 신이거늘!”
[우와~ 꼬맹이, 저거 전생에 꼰대라 하지 않았니?]어느 틈에 티르빙이 돌아왔다. 아스칼론의 기운도 은은히 느껴졌다.
‘뭐야, 어디 갔다 왔어.’
[어머! 우리 보고 싶었어? 아스칼론! 우리 보고 싶었데!] [주인님께서 우릴 보고 싶어하다니. 이거 은근히 기분 좋은 걸요?]‘…….’
‘이해가 안 되는 걸. 바람에 날아가다니.’
[원래 신이란 게 그런 거야. 에덴부르크는 바람으로 할 수 있는 건 다해. 영혼을 날리거나, 산을 하루 아침에 깎아서 없애거나. 상식 밖의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지.]꼰대 같은 발언과 달리 대단한 작자였군.
유리는 그런 감상평을 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보다 먹을 것 좀 주시면 안 됩니까.”
“남의 집을 부수려고 했으면서 바라는 게 많구나!”
투덜대면서도 에덴부르크가 손짓을 하자 바람을 타고 빵과 과일이 유리 앞에 내려왔다.
공기를 타고 있는 식재료를 마냥 신기하게 보다가 빵부터 집었다.
“물은 바닥에 있는 걸 먹어라. 소금기를 지웠으니 마실 수 있을 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젖은 손가락에 혀를 댔다.
정말로 짠 맛이 없었다. 유리는 바닥에 얼굴을 박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소금 사막 물을 다 마시겠구나! 천천히 먹어!”
“흡! 푸하…….”
마시자마자 바로 몸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원래 극심한 탈수와 공복에서 아무거나 급하게 먹으면 안 됐지만.
이 또한 아스칼론의 치유 능력이 더해진 덕분에 가능했다.
찬물에 정신이 번쩍 든 유리는 그제야 에덴부르크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뭘 그리 보느냐?”
“정말 대기의 신이십니까?”
“아닌 거 같으냐?”
“그게 아니라, 왠지 에덴부르크 님께서 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서 드린 질문입니다. 신께서 절 기다린다는 게 이상하니까요.”
지금까지 정황만 봐선 에덴부르크가 마련한 무대에 정해진 주인공이 올라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대는 소금 사막이고, 주인공은 유리였고.
그렇다는 건 유리를 위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는 뜻이 되었으니.
뭣보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에덴부르크가 알아서 ‘보이지 않는 크리스털’을 들고 나타나지 않았던가.
마치 유리가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뭐가 이상하느냐. 클라우드 하트에 다녀왔으니 여기에 온 거 아니었느냐.”
“그 말씀은…….”
에덴부르크는 대수롭지 않게 턱을 쓸어 내렸다.
“세드리치, 이젠 블레이머라는 이름의 용인의 부탁을 받고 널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