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62
제162화
사실 이 시기에 에덴부르크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말이 안 됐다.
원작에서 그의 존재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보이지 않는 크리스탈’을 만든 신으로만 등장할 뿐.
“제 아버지, 그러니까 블레이머 님이 부탁했다고요?”
“그래, 이놈아. 예언을 막는 자라면서 나에게 크리스탈을 전해주라 하더구나.”
“그래서 지금껏 살아계셨군요.”
“살아있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이 몸이 누구한테 죽기라도 한단 말이냐?!”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무래도 에덴부르크는 원작처럼 자신이 소멸한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의 소멸은 유리가 멋대로 한 추측에 불과했다.
‘원작에서 크리스탈은 암거래 상인에게 흘러들어갔어. 그 전에 어디 있었는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고. 신이 오늘처럼 크리스탈을 쉽게 주지 않았다면, 원작에선 신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크리스탈이 암거래 상인에게 흘러갔다는 건 이 소금 사막에서 누군가가 발견해냈다는 뜻이 된다.
그 누군가가 누구였을까.
그땐 에덴부르크가 살아있었을까?
만약 살아있었다면, 크리스탈을 가져간 자는 유리처럼 시험을 통과했다는 걸까?
‘아냐.’
유리는 속으로 머리를 가로저었다.
‘시험을 통과하진 않았을 거야. 아버지가 날 위해서 준비했다고 했잖아.’
예언을 막기 위해서 세드리치는 클라우드 하트에 기억을 남겼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서 보이지 않는 크리스탈까지 유리를 위해 남겨 놨다.
심지어 원작과 달리 현재의 에덴부르크는 살아있으니.
원작과는 설정부터가 달라진 것이다.
‘아버지는 어떤 예언을 보신 거지…….’
처음엔 단순히 멸망의 예언이라고 해서 멸망하는 세계를 창조주에게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다른 예언이 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유리는 에덴부르크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서 왜 이걸 남기셨죠?”
“이잉?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뭐로 들은 거냐? 예언을 막는 자인 너를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럼 예언을 막기 위해서지, 뭐겠어!”
“클라우드 하트에 제가 다녀온 건 어찌 알고요.”
“낸들 아느냐. 나도 세드리치 그 놈한테 들은 거라 모른다.”
“그 분이 제 아버지인 건 아시나요.”
“이놈이 날 아주 바보로 보는구나! 네놈이 세드리치의 아들이니까 내가 여기로 데려온 거 아니더냐! 그것도 모르고 여기까지 와서 내 얼굴을 비쳤을까!”
역정에 역정을 내던 에덴부르크는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정 궁금하면 직접 보아라. 내가 백 날 설명해주는 것보단 낫겠지.”
그리 말한 에덴부르크가 이번엔 바람으로 구슬 하나를 가지고 왔다.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 안에는 구름이 들어있었다.
클라우드 하트였다.
“블레이머가 남긴 전언이다. 그것이 나 대신 설명해줄 것이야.”
“……!”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유리의 손이 구슬을 재빨리 낚아챘다.
손끝이 유리에 닿는 순간, 눈앞에 영사기처럼 흐릿한 장면이 흘러갔다.
* * *
클라우드 하트에 처음 접속했을 때처럼 기시감이 몰려오다가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화면이 시커멨고, 색감이 물들기 전에 소리부터 들렸다.
“……진짜로 세상을 멸하게 두실 겁니까.”
“둔다? 두는 것도 내겐 행동이고 개입이다.”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뒤이어 시야가 점차 밝아지다가 희뿌연 안개가 보였다.
그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형상이 설핏 엿보였다.
“어리석은 발언은 삼가라, 세드리치. 신에게 자꾸 세상에 개입하라는 종용은 그만두라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멸망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럴만한 권능과 전능을 지녔습니다.”
“내 능력과는 상관없다.”
“기껏 세상을 만들어놓고 부서지게 방치하겠다는 겁니까!”
세드리치와 다른 한 명은 어떤 신인 듯했다.
세드리치는 신에게 화를 냈다. 언성을 높이고 이어서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세상 만물에게 살아갈 본능을 쥐어줬으면서 그 본능과 어긋나는 사태를 내버려두는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전에 보았던 세드리치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얼굴이 마구 일그러졌고, 격앙된 말투엔 살기가 가득하며, 뿜어대는 기운은 지켜보는 유리의 숨통까지 조였다.
‘큭! 여기도 내게 영향을 주는 건가!’
저들은 유리를 보지 못했다. 숨이 막혀서 켁켁 헛기침을 뱉어도 자신들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클라우드 하트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진짜 같은 고통을 선사해줬다.
아스칼론의 마나가 주는 자연치유로도 버티기가 힘들 정도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밖에서 에덴부르크가 주던 시련의 고통보다 배로 컸다.
‘이게 아버지의, 진짜, 힘……!’
안 돼.
이대로라면 기억 세계에서 죽는다.
유리는 되는대로 마나를 끌어다가 제 몸을 강화하거나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그제야 숨통이 겨우 트일 즈음.
영상이 다시 재생됐다.
세드리치가 내뿜은 위협에 반해 정작 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왜 이유가 필요하지?”
“그야……!”
“묻는다, 드래곤. 어째서 내게 이유와 인과성을 따지는 거냐.”
여기서 세드리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쥐었던 멱살에서도 차차 힘이 빠졌고 신으로 추정되는 자는 그의 손아귀를 거칠게 털어냈다.
“어차피 멸망하기 전 드래곤의 수명이 끝난다. 너와는 관계없는데 어째서 멸망에 집착하는지 모르겠군.”
거만하고도 태평한 말투가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세드리치는 무기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를 꽉 물었다.
“멸망을 주고 방관하셨듯이, 생존 본능을 준 우리 생명체들 또한 방관하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따라 어리석은 언변을 마구 내뱉는구나, 세드리치. 드래곤 중에 가장 우수하고, 모든 생명체의 정점이며, 앞으로도 후세에 그 이름이 알려져 길이길이 기억될 것을.”
“이젠 명예에 대해 가르쳐 주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명예는 지나가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함은, 너의 존재는 멸망이 지나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
이름이 잊히면 그거야 말로 진정한 죽음이라던가.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있었다.
세드리치와 드래곤들에겐 그 이름이 영원히 남을 기회가 생겼다.
죽어도 죽지 않는 셈이지.
이를 명예라 부르기도 하고, 신께선 ‘살아있다’라고 칭했다.
“훗날 나 또한 종교라는 이름 아래서 기억되고 믿음으로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드래곤에게도 종교가 생길 거라는 뜻입니까.”
“아니지. 아니야. 너희들에겐 용인이 있다. 너희 기나긴 수명이 끝날 날을 대비해서 나와 너희가 직접 빚어준 생명들이. 그들이 너희를 믿고 지탱하리라.”
유리는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삼켰다.
어쩌다보니 용인의 기원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용인의 기원은 드래곤이 만들었다는 설이 통설이었고.
클라우드 하트에서 만난 꼬마 용인들은 드래곤과 창조주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했었다.
‘다만, 어째서 용인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지.’
그런데 고작 미래에 드래곤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려고 용인을 탄생시켰다고?
어이없으면서도 황당한 사연에 유리는 실소를 흘렸다.
세드리치도 같은 심경이었는지 사그러졌던 분노가 치밀었다.
“인정할 수 없다!”
쾅!
기어코 폭발한 분노는 곧 용언 마법이 되어 일대를 어둠으로 잠식시켰다.
모든 걸 집어삼킨 어둠은 신마저 잡아먹으려 꿈틀거렸다.
덩달아 유리도 휘말리면서 몸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번엔 도저히 그의 힘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으윽!”
어떻게든 저항하려는 유리와 달리.
신은 발끝부터 어둠을 받아들여 늪에 빠지듯 잠겼다.
“다가올 날이 멀어질지언정 막을 수 없다. 그러니 명심하라, 세드리치. 너의 어둠은 빛과 함께 물길처럼 들이닥칠지니. 태산조차 휩쓸려 흐름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이윽고 신의 형체가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자취를 감췄다.
동시에 유리도 어둠으로 빠지면서 한동안 어디론가 끝없이 추락하는 감각을 맛봐야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장면이 바뀌었다.
* * *
세월이 흘러 세드리치는 훌쩍 늙어서 백발이 무성했다.
제 아무리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생명체로서 가진 수명을 이겨낼 순 없었다.
이미 다른 드래곤들은 그런 수명의 끝을 다했으니.
그는 다른 드래곤들의 무덤 앞에 서서 꽃을 한 다발씩 올렸다.
“인간들이 죽은 인간을 이렇게 묻어주고 꽃을 올려준다고 하더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전에 없이 차분한 톤에 보고 있던 유리도 숨을 죽였다.
용인 이전에 절대자로 군림했던 생명체의 죽음은 블레이머의 장례식보다 더 초라하게만 보였다.
그렇게 세드리치는 마지막 무덤까지 꽃을 놓고 바닥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았다.
‘미뭉!’
유리는 미뭉으로 무얼하려는 건지 직감했다.
어떻게 세드리치가 나이트워커의 일원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했었다. 샤를린느는 이에 대해 미뭉의 환생 능력을 썼을 거라 말했었고.
세드리치는 지금 그 환생을 하려는 것이었다.
[정말로 죽을 건가.]전에 없던 목소리가 들렸다.
살아있는 음성이라기엔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으니.
분명한 미뭉이었다.
[여기서 죽으면 새 삶을 더 이어갈 수 있지만 드래곤으로서 모든 걸 잃는다.]“내 심장만 남기면 된다. 그러면 내 힘은 유지될 수 있어.”
[능력이나 힘을 말하는 게 아니다. 죽어야 한다는 게 문제지.]“죽는 건 고통스럽나?”
[고통이라고 표현하기도 부족하다.]“그럼?”
[상실감.]그 부분에서 세드리치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으로서 모든 걸 포기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겠다. 이것이 부디 숭고한 죽음이 되길 바란다.”
미뭉의 끝이 심장을 향하더니 삽시간에 살갗을 뚫었다. 망설임 따윈 조금도 없었다.
이후 다시 장면이 꺼지고. 유리는 다시 한 번 튕겨나가듯 세계를 넘어갔다.
* * *
유리는 의자 위에 떨어져 앉아 있었다. 기우뚱하던 몸의 중심을 잡자 바뀐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이었다.
바로 유리가 처음 나이트워커에 왔을 때 지냈던 방이었다.다른 점이라면 세세한 가구의 배치나 쌓여있는 서류 더미, 그리고 사람들이었다.
한쪽엔 블레이머가 된 세드리치가 있었다.
복장만 달라졌고, 얼굴을 비롯한 전체적인 외모는 고대 드래곤 시절 그대로였다.
그는 반대편에 선 사람에게 칼을 겨눴다.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나. 꼭 이렇게 해서 날 죽여야 하냐고.”
“네가 잘난 탓이야! 너 때문에! 네가!”
반대편에 선 사람은 젊은 다이올드였다.
그는 옆에 수많은 살수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블레이머를 기습하려고 했다가 그에게 막 들킨 형국 같았다.
방안은 이미 한 바탕 벌였는지 제자리를 잃은 물건들이 널브러졌고, 쿠션이나 소파 따위엔 칼로 베여서 속 내용물이 다 튀어나왔다.
다이올드는 억울한 톤으로 읍소하듯 경고했다.
“지금이라도 기회를 주겠어. 네 손으로 가주 자리를 포기해.”
“내가 왜.”
“너한테 이 자리는 과분해. 아니, 쓸모없어!”
“형님에겐 쓸모가 있습니까. 기껏해야 권력욕에 눈이 먼 주제에.”
“그러면 안 돼? 권력을 쥐기 위해서 발버둥 치면 안 되냐고!”
“…….”
블레이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쩐지 그의 눈동자가 슬프게 달빛에 비쳤다. 그에 따라 검 끝이 천천히 아래로 쳐졌다.
“아버지…….”
유리 같았으면 여기서 저들을 죽였을 것이다.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검을 겨눴다면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용가의 법도에 맞게 가주 후보 전쟁에서 이들을 죽여 마땅했으니.
그러나 끝끝내 세드리치는 검을 검집에 꽂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