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63
제163화
“죽일 테면 죽여.”
“뭐, 뭣?!”
“어차피 형님의 칼, 살수들의 칼, 어떤 것도 내 피부를 베지 못하잖아.”
“이 새끼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호기를 부려보았으나 누구도 선뜻 블레이머에게 나서지 않았다.
그 틈에 블레이머는 태연자약하게 책상에 앉아 술잔에 독주를 채워 마셨다.
기억이 재생되기 시점부터 이미 승부가 났다.
암살에 실패했고, 내일 아침이면 다이올드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공격하지도, 도망가지도 못했다.
차라리 여기서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내는 편이 나을 테니까.
“가주님께서 네가 가주가 되려는 이유를 안 다면 어떨까?”
하지만 다이올드의 선택은 검도, 도망도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기로 했다.
그러자 잔을 반쯤 비우던 세드리치의 손이 굳어 멈췄다.
그 작은 반응을 본 다이올드의 입가가 비릿하게 웃었다.
“역시 찔리는 구석이 있군! 그럴 줄 알았지!”
“말씀 드렸다시피 난 그저 가문을 위대하게 이끌고 싶을 뿐이야. 소박하게는 아내와 평화롭게 살고 싶고.”
“크하하핫! 그러니까 거짓말이라는 게 들통 나지! 드래곤의 후예인 용인이 사랑 따위를 위해서 가주가 되겠다고? 하하핫! 삼류 음유시인도 그딴 로맨스는 안 써!”
배가 아프도록 웃던 다이올드도 검을 내렸다.
그의 웃음은 방안이 떠나가라 크게크게 퍼지다가 갑자기 뚝 끊겼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멸망을 막기 위해 가주가 되려는 거라면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그렇지! 말도 안 되지! 그런데 네놈은 멸망을 믿는 사이비 짓을 하며 가주가 되려고 하잖아!”
“그런 사실 없어.”
아니, 사실이다.
멸망이 언급된 순간 유리는 블레이머의 거짓말을 간파했다.
그저 가주가 되려고 했던 이유가 자신과 똑같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디서 무얼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거짓으로 날 우롱하려 해봤자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나도 그 부분이 걱정이긴 해. 그래서 그냥 차라리 죽이려 했었거든. 그게 알맞기도 하고.”
“…….”
“근데 인정해야겠어. 나로는 널 죽일 수 없어. 역부족이지. 이제 와서 따라잡기엔 넌 이미 한참 앞에 있으니까.”
급격히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불안감이 처음으로 블레이머를 엄습했다.
칼을 든 다이올드보다, 그의 꿍꿍이가 더 기괴하고 무서웠다.
다이올드가 무력 면에선 다른 형제들에 비해 뒤쳐졌어도.
정치력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서 사탕발린 소리 한 번으로 얼마든지 가세를 뒤집기도 했으니.
“가자.”
정말로 다이올드는 살수들을 데리고 그대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블레이머는 어지러워진 방안을 정리할 생각도 않고 애꿎은 술잔만 들이켰다.
그의 얼굴엔 고민과 근심이 가득했다.
그러다 결심한 듯 종이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뭐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다가가려 하나.
그때 영상이 거기서 뚝 멈추더니 갑자기 세상이 암전되었다.
* * *
클라우드 하트의 기억은 여기까지만 보여주고 유리를 밖으로 내보냈다.
유리는 급작스레 밝아진 세상에 눈을 찌푸려가며 초점을 잡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에덴부르크가 물었다.
“좀 알겠더냐?” “…….”
여전히 원작과의 괴리감은 크게 남아 있어서 헷갈렸다.
그러나 이로써 분명해졌다.
세드리치는 블레이머가 된 직후에도 멸망을 준비했다. 가주가 되려는 것도, 에덴부르크의 크리스탈로 안내한 것도.
훨씬 전에 유리를 리펠리온의 클라우드 하트로 이끈 것도 아버지의 의도였을지도.
‘그렇다는 건 원작 소설을 아버지가 썼다는 걸까. 미뭉은? 미뭉은 어떻게 카이한테 갔지?’
이 부분만큼은 아직 해소가 되질 않았다.
리펠리온의 클라우드 하트에서 만난 아버지는 설정집을 창조주가 썼을 거라고 말했다.
물론, 그 기억의 시점이 워낙 오래 전이라 설정집이 쓰여지기 전이었겠지만.
[의문이 의문만 낳네. 세드리치가 이런 장난을 좋아하는 드래곤은 아니었는데.]‘그래?’
[세드리치를 만나봤으니까 알겠지만 앞뒤가 칼 같은 도마뱀이야.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기억을 나눠놓는 도마뱀은 아니라는 거지.] [티르빙 양이 착각하는 건 아니고요?] [그럴지도? 적어도 꼬맹이한테 대하는 세드리치는 뭔가 풀어져 있는 느낌도 받았으니까.]유리는 손에 들린 클라우드 하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걸 남긴 의도, 이유, 목적.
의문을 낳을 뿐인 질문만 받은 꼴이었으나, 앞서 떠올린 생각만은 변치 않았다.
“멸망을 막으려고 하셨던 건 분명해. 거기엔 어머니가 있고.”
가주가 되려고 했던 이유가 같다는 사실이 놀랍긴 했으나.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유리도 가주가 되어 멸망을 막고자 했으니까.
그 진심은 작은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유리에게 전달되었다.
“그러고 보니 너네 어머니.”
에덴부르크가 턱을 쓸으며 물었다.
“용신 샤를린느는 잘 지내고 있느냐?”
“에덴부르크 님께선 저희 어머니를 알고 계시는 하군요.”
“큼, 크흠! 큼! 그녀는 신들 사이에서도 유명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있나! 아, 아름답기도 하고, 지혜롭고, 어, 언제나 올곧은 신이었지.”
샤를린느를 회상하는 그의 얼굴이 답지 않게 홍조를 띠었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티르빙이 질색했다.
[저 망나니 신이 왜 저래? 얼굴까지 붉히고? 뭐야, 설마…… 그렇고 그런 거야?] [어머!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원래 신들은 드래곤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부탁 따위 안 들어준다면서요?] [맞아. 신들이랑 툭하면 싸우고 살았지. 가끔 중간계에 신들이 현현화 하면 바로 죽였었어. 꼴 보기 싫다면서.] [세드리치 님의 부탁을 들어준 것도 세드리치 님이라서가 아니라 용신 때문일지도!]‘…….’
대충 무슨 상황인지 그려진다만, 거기서 상상을 멈췄다.
그보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여기서 벌써 한 달이나 소모했기에 리펠리온 의뢰까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에덴부르크 님, 뒤늦은 말이지만 전 크리스탈을 가지러 왔습니다. 주실 수 있습니까?”
“크리스탈을 달라고? 네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온 거냐?”
“예?”
에덴부르크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혀를 끌끌 찼다.
“내가 곧 크리스탈이다, 이놈아.”
* * *
수많은 질문을 얻은 채 유리는 곧장 가문으로 돌아갔다.
경비를 서던 기사들은 멀리서 말을 몰고 돌아온 그에게 경례를 올리려다가 멈칫거렸다.
“저게 뭐야.”
“자, 자네 눈에도 보여?”
“으응.”
말 옆에 왠 짐승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걸레짝마냥 기다란 털이 온몸을 덮고 있어서 흡사 예티와 비슷했다.
처음 보는 동물의 모습에 경비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유리도 그런 그들의 반응을 눈치채고 잠시 말을 멈췄다.
“오다 주웠다.”
“예?”
“오다 주운 개라고.”
“아, 예에, 뭐어.”
“개를 기르면 안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가, 가문의 직계가 어떤 동물을 들이는지 보고는 해야 해서, 좀.”
“개라고.”
“확실, 합니까?”
“날 의심하는 건가?
“아아아아, 아닙니다!”
어물쩡하긴 했지만 경비들은 유리와 개를 통과시켜줬다.
경비들과 거리가 멀어지자 개가 육성으로 화를 냈다.
“이몸을 오다 주웠다니! 창조주에 버금가는 나를!”
“이젠 한낱 10서클 마법사 수준이라 하셨잖습니까.”
“그, 그래도 나를!”
분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내 삽살개 에덴부르크는 감정을 억눌렀다. 유리는 그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일이 이리 된 경위는 이랬다.
“크리스탈은 나다.”
“예?”
“내가 어찌 생명체의 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크리스탈의 힘을 흡수해서 더 이상 그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제게 무얼 주시는…….”
“나다.”
……해서 에덴부르크를 데려왔다.
아무래도 속내가 좀 있어 보이는 동행이었다. 그럴 것이 에덴부르크는 유리를 따라오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정말 난 샤를린느만 지키면 되는 거냐?”
“네.”
“쯧, 이러려고 나한테 그딴 부탁을 했던 거였다니. 세드리치, 빌어먹을 놈. 살아있었다면 그놈의 레어를 내가 털어먹는 건데.”
“저도 에덴부르크 님을 직접 데려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10서클 이상으로 힘을 쓸 수 있다 해도―”
“알고 있습니다. 멸망과 함께 싸우시기엔 체력이 부족하시다고요.”
“그래그래, 잘 알고 있구나.”
에덴부르크는 솔직히 신이라 불리기엔 그 힘이 많이 약해졌다.
아무래도 육신에 깃들어 산 탓이 컸다. 그렇다고 육신을 버리자니 중간계에 영향을 끼칠 수가 없었다.
반대로 영향을 끼치려고 했고, 그 영향으로 샤를린느를 지키고 싶어했다.
그래서 속내가 보였건만.
‘아버진 이것도 예상하셨을까.’
[아닐 걸.] [아닐 거예요. 전 확신해요.] [망나니 신이라니까, 망나니. 샤를린느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완전 공감.]두 여성의 의견과 유리의 생각도 같았다.
하지만 당장 샤를린느 옆을 지킬 수단으로 이것 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 삽살개의 외모는 가는 내내 이목을 끌었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품종인데다가 가문 내에서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엇! 오라버니!”
정원을 지날 즈음에 마침 산책을 하고 있던 채럿이 유리를 발견했다.
그녀는 유리를 보고 달려오다가 삽살개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막 성장기에 접어들어 키가 부쩍 큰 채럿이지만, 삽살개 에덴부르크의 덩치도 만만치 않았다.
기존의 삽살개보다도 훨씬 컸으니.
‘겁 먹었으려나.’
드루이드 능력으로 어지간한 동물과 마수까지 친화력을 보이는 채럿도 무서워하는 건 있기 마련이다.
지금이라도 외형을 바꾸라고 할까, 고민했으나 이미 들켜버린 마당에 어쩌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에덴부르크 님에게 채럿의 드루이드 능력도 말해주지 않았네.’
[에덴부르크 님이 육성으로 대답하면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요?] [꺄핫! 그거 웃기긴 하네!]전혀 안 웃긴다.
왠지 모르게 끔찍한 장면이 그려져서 어떻게든 둘의 접촉을 말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와아아아!!!”
채럿이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왔고, 바로 삽살개한테 달려들었다.
놀란 에덴부르크는 “이크!” 추임새를 넣으며 말 뒤로 달아났으나, 말이 뒷걸음질을 치며 길을 막았다.
채럿이 길들인 말로, 채럿의 마음을 읽은 말이 일부러 막은 것이다.
그리고 그 틈에 채럿이 삽살개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와아! 너무 귀여워요! 이 개, 오라버니가 데려온 거예요?”
“으응.”
“기르실 거예요?”
“어? 응. 기를……거지.”
신을 기른다니.
어감이 이상한데.
“으아아! 털 감촉이 너무 좋아요. 제가 빗질해줘도 돼요? 잠은요? 제가 같이 자도 될까요?”
“응.”
당황도 잠시, 유리는 망설이지 않고 답하자 에덴부르크가 원망어린 시선으로 그를 노려봤다.
유리는 입모양만으로 그에게 말했다.
“어머니보단 채럿이랑 잘 지내보시라고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