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65
제165화
일명 미다스라 불리는 자는 서북부에 있는 한 이름 없는 마을에 몸을 숨겼다고 파악됐다.
타국으로 용가의 군대가 파견되는 거라 많은 절차가 필요했으나, 이 부분은 벤헬링턴이 알아서 처리해줬다.
입국 심사는 물론이고. 가는 여정에 지치지 않도록 계획에 맞게 머물며 쉴곳도 미리 정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이 모든 게 샤를린느가 납치되었던 사건 때문이라는 건 아무도 몰랐지만.
“슬슬 숲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가문을 떠나오고 일주일째.
블레이크가 주변을 게슴츠레 살피며 말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숲의 구조가 점점 기형적으로 변했다.
어제만 하더라도 높은 침엽수가 가득하던 숲이, 낮고 구불구불 자란 나무로 가득했다.
밀도가 높은 나무의 배치 탓에 그늘은 밤처럼 어둡기만 했다.
더구나 이 숲을 들어온 직후 길이 없어졌다. 대열은 오로지 선두에 선 타나토와 제몬의 독도법에 의존한 채 나아가는 중이었다.
블레이크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유리 님, 정말 여기가 맞습니까?”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여기가 맞다.”
“도련님들이 제대로……. 아닙니다. 송구합니다.”
“이젠 자기가 말하고 알아서 사죄인가?”
“죄송합니다. 안 그러려고 해도 이게 잘 안 됩니다.”
엄연히 가문의 직계를 욕하는 건 아무리 유리 앞이라 해도 죄는 죄였다.
이는 비단 블레이크만이 아니라 이자벨, 채럿, 플레온 기사단 모두가 같은 심경이었다.
불안함에도 따질 수 없는 신분 차이.
유리는 그런 일행을 이해했기에 딱히 나무라지 않았다.
그리고 걱정과 달리 형제는 제대로 길을 찾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제대로 왔다. 그보다 지금부턴 다른 걸 경계해야지.”
“경계라 하면…….”
“블레이크 경. 어제 출발 전에 대원들에게 나눠주라던 물건은 나눠줬나?”
“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달했습니다. 짐 깊숙이 넣지 말고 밖으로 빼놓라고도 지시했습니다.”
“좋아.”
자세히 보면 플레온 기사단원들과 유리의 동료는 각자 나뭇가지 하나씩을 어딘가 꽂았다.
기사단원은 견갑에 꽂았고, 채럿은 손에 쥐었다. 이자벨은 비녀처럼 꽂아 넣었고, 블레이크는 손목 보호대에 끼웠다.
유리도 챙겨온 나뭇가지를 이쑤시개처럼 입에 물었다.
기이한 장면에 채럿이 물었다.
“오라버니, 이거 진짜 효능 있을까요?”
“안 될 거 같아?”
“으음. 그야 여기 사는 원주민들은 안 통할 수 있죠. 뭐랄까. 으으으으음. 오히려 상처가 날지도 몰라요!”
“좋다고 달려들어서?”
“그럼요!”
“잠깐,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 건가?”
의문스러운 대화에 참다못해 이자벨이 끼어들었다.
사실 유리는 나뭇가지를 나눠주면서 용도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나뭇가지에서 나는 냄새가 잘 퍼지도록 가지고 있으라고만 일렀다.
“말해도 믿지 않을 걸.”
“동료라더니 우리한테 숨기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닌가?”
“내가 숨기려는 게 아니야. 여기 원주민들이 숨기려고 하는 거라서.”
“그러고 보니 원주민이 있다며. 이곳에 누가 살고 있는 건가?”
“어. 그것도 엄청 많이.”
서북부에 자리한 이곳 숲은 천혜의 요새라 불렸다.
숲이 험하기도 하고, 이곳에 발을 들인 자는 정체 모를 마수에 당한다고 알려졌다.
까만 나무숲이라면 이곳에서 마수를 목격한 사례는 있어도, 어떤 마수가 사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소위 비밀의 둥지라고도 할 정도로, 수많은 생명체가 산다고 추측만 할 뿐.
그러나 유리와 채럿은 알고 있었다.
유리는 설정집으로.
채럿은 드루이드 능력으로.
미야아아아아!!!
“시작됐군.”
좁아진 숲의 폭 때문에 일렬로 대열이 만들어질 즈음.
나뭇잎이 진동하며 괴성이 울려퍼졌다.
날카로운 파공음에 모두가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았다.
“끄아아악!”
“아아악! 귀, 귀가!”
“아악! 아악!”
타나토와 제몬도 귀를 막고 괴로워하다가 말들까지 펄쩍 뛰면서 낙마하고 말았다.
“으악! 혀, 형!”
“제몬!”
그 와중에도 우애 좋은 형제는 서로를 찾아 손을 뻗고는 부둥켜안았다.
반면 후방을 맡은 유리의 일행은 인상만 찌푸렸다. 이 또한 유리가 미리 밀랍으로 귀를 막으라 일러뒀었기 때문이다.
말들이 난리치는 건 막지 못했으나, 빠르게 반응해서 낙마를 막았다.
유리는 채럿을 끌어안은 채 가뿐히 착지했다.
블레이크와 이자벨도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바닥에 섰다.
이자벨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끔찍한 소리군. 유리가 준비하라 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어. 근데 이걸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지?”
“책.”
“책만으로 여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곳은 알려진 게 없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자벨 경.”
옆에 있던 블레이크가 숲 쪽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어둠과 냉기로 가득한 저 너머에서 수상쩍은 움직임이 감지됐다.
채럿은 유리의 품에서 벗어나 숲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까 울음소리. 그 원주민들의 소리일까요?”
“아마도.”
“우으, 소름끼쳐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고?”
“네에, 이건 그냥 감정만 실은 울음소리였어요. 굳이 언어로 바꾸자면…… 경고?”
그렇겠지.
괜히 이곳 숲에서 사람들이 마수를 목격하지 못한 채 실종되거나 죽는 게 아니었다.
위기를 직감한 블레이크는 벌써 칼부터 뽑으려 했으나.
“안 된다. 여기서 무기를 먼저 꺼내면 안 돼.”
“하지만.”
“절대 공격하지 마라. 그럼 저들도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블레이크는 명령대로 검을 뽑지 않았다.
주군의 명령이라서 뽑지 않은 것도 있고.
미리 불시의 상황을 예견한 듯한 대처를 유리가 보여줬기에 이번에도 그냥 믿었다.
덩달아 플레온 기사단도 검을 뽑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가문의 기사들은 검을 뽑았다. 타나토가 그런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대형을 갖춰라! 매복이다! 매복!”
미야아아아!!!
두두두두두!
재차 울음소리가 퍼졌다. 보다 크고 날카로운 소리에 이번엔 나뭇잎이 떨어졌다.
몇몇 기사들은 귀에서 흘리며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크악!”
“아아악!”
전투를 해보기도 전에 부상병이 속출했다.
유리는 이를 바라보며 지시했다.
“블레이크 경, 내가 적과 조우하면 부상자들을 데리고 전방으로 향하도록. 시간을 끌어보겠다.”
“후방이 아니고 전방입니까?”
“후방으로 갈 수 있다고 보나?”
아니, 불가능하다.
어떤 식으로든 매복을 당했다면 도주로를 막는 것이 기본이니까. 왔던 길로 후퇴하는 건 도리어 자살행위나 같았다.
그럴 바엔 아직 온전한 병력을 가지고 정면 돌파하는 게 맞았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검을 뽑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보다 더 지체하지 않고 블레이크가 움직였다.
가문 직속 기사들은 고막이 터질 듯한 고통에 그런 플레온 기사단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그 사이 이자벨이 유리를 보고 물었다.
“이제 어쩌지?”
“뭘 어째. 곧 나올 텐데.”
미야악!
푸확!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 덤불 아래서 거대한 맹수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첫 피습자는 가문의 직속 기사 중 하나였다.
“끄악! 아악!”
미약! 미야아악!
콰득! 콰득!
비명과 괴성, 그리고 맹수의 이빨이 갑옷을 찢는 기괴한 파열음이 대열 사이로 퍼졌다.
나름 드워프들이 만들어서 어지간한 마나도 막는 강도를 자랑하는 갑옷이었거늘.
그런데 고양이가 고작 몇 번 물어뜯었다고 쉬이 찢어져서 넝마가 되었다.
그 광경에 주변 기사들은 겁에 질려 나서질 않았다.
“살려줘! 사, 살려!”
“머, 멍청한 놈들! 얼른 도와주지 않고 뭐해!”
멀리서 이를 목격한 상급 기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기사들이 맹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검을 본 맹수가 재빨리 몸을 빼서 나무 위로 튀어 올라갔다.
재규어 못지않은 나무타기 실력에 기사들은 미처 쫓아가지 못했다.
맹수는 나무 위에 날갯죽지를 들썩이며 이를 드러냈다.
그제야 맹수의 정체가 드러나자 기사들이 술렁거렸다.
“고, 고양이?”
호랑이나 고양잇과가 아닌.
명백한 고양이었다.
그것도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하얀 장모종에 덩치가 곰보다도 훨씬 컸다.
하아악! 하아악!
고양이 특유의 하악질이 튀어나오자 기사들이 움찔거렸다.
누구도 선뜻 나서질 못했다. 그러기엔 고양이의 크기부터 상상초월이었고, 갑주를 입으로 씹는 모습이 그들에게 공포로 남았다.
“한심하군. 용가의 직속 기사가 되어서 고양이를 보고 당황해 하는 건가?”
그때 유리가 그들 앞으로 나섰다.
그의 시선이 한심하다는 감정으로 물든 채 빠르게 기사들을 훑었다.
이 정도 패닉도 관리 못하는 수준에 잠깐이나마 짜증까지 치밀어 올랐다.
“부끄러운 줄 알도록. 용가의 기사들이 동료가 당하는 동안 구경만 하고 있고, 반격의 기회를 보고도 망설이고 있는 꼬라지란.”
“저희는 그저—!”
“내 가문의 미래에 너희 같은 기사들은 필요 없다.”
변명을 하려던 상급기사가 입을 꽉 물고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솔직히 지금의 용가 직속 기사들 중 일부가 기강이 해이해져 있다고 들었다.
특히 다이올드의 줄을 잡은 기사들이 그랬다.
오랜 시간 최강자로 군림해온 가문이라서 그 밑에 들어온 기사들은 가주의 위세만 믿고 살았던 탓이다.
그 기간이 오래 되었으니 오죽할까.
그리고 그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유리는 짜증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내가 뭐라 지껄이든 네놈들은 형님들 명령만 따르겠지.”
“…….”
“방해나 하지 말도록. 그땐 내 검이 피아 없이 네놈들도 벨 거다.”
예전 같았으면 우스갯소리로 넘겼을 한 마디가, 지금의 기사단에겐 아찔하게 들렸다.
사실 기사들을 알고 있는 것이다.
타나토와 제몬에게 가문의 미래를 걸기엔 희망이 없다는 것을.
그러나 기사들은 다이올드와 장로들의 힘이 작용하고 있어서 이도 저도 못했다.
유리도 그걸 알고 있으나.
‘내 편이 되지 않는다면 알 바 아니지.’
썩은 동아줄을 잡을지, 황금줄을 잡을지 판단할 머리는 있는 자들이다.
용가의 기사씩이나 되어서 그만한 사리 분별도 못하진 않으리라.
그럼에도 부상자를 돌보는 건, 작전에 있어서 당연한 조치를 해줬을 뿐이다.
“채럿.”
“네에!”
유리의 부름에 채럿이 쪼르르 달려와서 그 옆에 섰다. 그녀의 등장에 고양이가 등골을 더욱 뾰족하게 세웠다.
하악! 하악!
“많이 화났네요.”
“고양이야 영역 동물이니까. 자기 영역에 다른 생명체가 들어오면 당연히 화가 나지.”
“근데 딱히 공격하려는 의사도 없어요. 이거 때문인가요?”
채럿이 챙겨온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그러자 고양이가 흔드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유리가 준비했던 나뭇가지는 바로 개다래 나무였다.
‘고양이한테는 이거만한 게 없지.’
개다래 나무에 관한 정보는 전생에서의 기억을 토대로 떠올렸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식물 중 마약과도 같은 나무라던가.
말인 즉.
유리는 이곳이 고양이들의 서식지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이 정보는 원작을 통해서 보았었다.
하악! 쩝. 하악! 쩝.
이 덕에 고양이는 하악질을 하다가 혀를 낼름대며 입맛을 다셨다. 녀석에겐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플레온 기사들이 안 보였다.
오로지 유리만 노려보고 코를 벌름거렸다.
“이렇게 보니까 귀엽네.”
“근데 이제 어떡해요? 공격 의사는 없긴 한데, 저런 애들이 안쪽에 많아요.”
거대한 페르시안 고양이는 기껏해야 초입을 지키는 경비병일 것이다.
숲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개체가 있을 거고, 기사단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미 플레온 기사단은 부상당한 병력을 들고 나르고 있던 상황.
고양이는 딱히 그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이 또한 개다래 나무 때문이었다.
“손가락.”
“네?”
“고양이랑 친해지는 법이야.”
유리가 손을 뻗어 녀석에게 손톱이 보이도록 검지를 까딱거렸다.
이 또한 전생에 보았던 고양이와 친해지는 법 중 하나였다.
코인사라고 하던가.
‘됐으면 좋겠네.’
……라고 생각하는 찰나.
옆쪽 나무 아래 그늘에서 검을 들고 몰래 접근하는 타나토와 제몬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리가 발견했을 땐, 이미 고양이의 예민한 감각이 그들에게 쏠렸다.
“지금이야!”
제몬이 소리치며 위로 튀어 올랐다. 반대편에서 타나토가 언월도를 아래에서 위로 찔렀다.
들킨 기습치곤 위험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이미 그들을 보고 있었으니.
“바보 인간이다냥.”
고양이 입에서 사람의 말이 튀어나오며 날카로운 섬광이 그들을 스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