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66
제166화
형제의 기습을 고양이는 구태여 막지 않았다. 오히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었다.
검의 궤적대로라면 목과 배에 칼날이 들어가야만 했다.
이윽고 펼쳐질 잔인한 광경에 채럿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캉!
그들의 칼날은 아무것도 베지 못한 것이다. 검은 가죽조차 못 뚫고 튕겼다.
“어라?”
회심의 일격을 가했던 제몬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타나토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시간이 정지된 듯 형제가 허공에서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가 수염을 씰룩거리며 웃었다.
“인간이 아니냥? 으음, 우리와 닮은 눈. 용인인 거냥?”
그리고 앞발로 그들을 빠르게 휘둘러 쳤다.
퍼벅! 쿵!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형제가 땅에 처박히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허공에 떠 있었던지라 방향을 바꾸거나 방어 자세를 취하기 어려워서 받은 데미지는 더 컸다.
그래도 형제는 육체면에서 뛰어난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허무하리만치 쉽게 쓰러지자 기사들이 더욱 당황해했다.
모두의 머릿속에 감당할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용인은 처음 보는데, 시시하다냥. 이만한 실력으로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다니. 용인이 맞긴 한 거냥?”
그리 말한 고양이는 지상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아래로 내려오는 동안 고양이는 순식간에 한 여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하얀 갈기가 풍성한 코트를 입은 그녀는 머리카락이라든가 눈썹과 눈꺼풀마저 새하얀 빛을 냈다.
그녀 뒤로는 다른 고양이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수인(獸人), 묘족(猫族).’
유리는 그녀를 보고 긴장의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이 찾아온 이곳은 수인의 땅으로, 원작에서 카이는 이곳을 야생 지대라고 불렀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영영 닿을 수 없는 곳.
악마의 침공이 시작되고 난 이후 난공불락의 지대이기도 했다.
그 중 묘족(猫族)은 수인 중에서 고양이의 영혼과 피를 이어받은 종족이다.
그들은 견족(犬族)과 함께 야생 지대를 지배한 강력한 세력이었다.
‘오죽하면 카이가 이곳으로 도망친 적도 있지.’
수인들이야 말로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구축했다.
강하면 사냥하고, 약하면 사냥 당한다.
이 때문에 카이는 몰래 이곳으로 도망쳐서 몸을 숨긴 적이 있었다.
환영받는 처치는 아니었지만,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알아서 수인들이 그를 지켜주는 꼴이 되었다.
‘어쨌든 묘족은 내가 이길 상대는 아니다.’
용인 못지않게 투쟁을 겪으며 살았던 수인이 형제를 이긴 건 이상하지 않았다.
하물며 유리도 똑같다.
눈앞의 묘족은 얼핏 가늠해도 9서클 이상.
더구나 훈련이 아닌 오로지 야생이라는 실전을 통해서 실력을 쌓았다. 똑같은 서클이어도 경험과 실력, 본능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덤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유리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나섰다.
“우리는 나이트워커에서 파견된 기사단이다.”
“그래서냥?”
묘족은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되물었다.
역시 가문 이름이 통하지 않는군.
수인들은 단순히 가문의 이름 따위에 굴복하는 부류들이 아니니 당연했다.
수인은 물리면 상대를 같이 물어버린다.
그래도 형제와 달리 유리와 대화할 의사가 있어보였다.
이 또한 개다래 나무 때문이었다.
“우선 갑작스러운 공격에 사과하지. 또한 미리 연락을 하지 못하고 찾아오게 된 점도 사과하겠다.”
“호오~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놈은 오랜만에 본다냥. 그래서 더 수상하지만냥.”
“급한 사안이 있어서. 해서 갑작스럽겠지만 부디 협조해줬으면 좋겠군.”
“남의 집에 떼로 몰려와놓고 무작정 협조냥? 우리랑 전쟁이 아니고냥?”
“관할 영지에서 도둑 하나가 이곳으로 도망쳤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조사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
“자기 할 말만 주구장창 하는구냥. 타지를 침범하고 어이없는 소리다냥!”
다른 곳에는 미리 원정대가 통과할 수 있도록 손을 써놨지만, 야생 지대부터는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여긴 국가나 어떤 행정 절차가 필요한 곳이 아니었다.
미리 손쓴다고 해서 어떻게 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부터라도 외교력을 발휘해서 해결하려 해봤자 소용없었다.
그 외교력조차 무력으로 결정 난다.
간단히 말해 강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침범하길 바라는 건가.”
유리가 그리 운을 뗐다.
“우리는 범죄자를 추적하고 있다. 만에 하나 너희들과 야생 지대가 그 범죄자와 협조해서 숨겨주고 있다면 너희도 수사 대상이다.”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냥. 우리를 상대로 전쟁을 한다고냥? 가당치도 않다냥!”
“나이트워커를 너무나 우습게 보는군.”
“우냐?”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 될 거다. 허니 호기 부릴 처지는 아닐 텐데.”
“냐하하하하! 바깥 세상식 협박이 통할 거라 보냥? 수인을 몰라도 너무너무너무너무 모른다냥! 냐하하!”
고양이가 배를 잡고 하늘이 떠나가라 웃었다.
웃음소리에 담긴 파공음에 기사들이 한 번 더 나뒹굴기 시작했다.
이번엔 채럿과 이자벨도 귀를 틀어막았다. 아까보다 고주파가 더 컸다.
그나마 유리는 마나로 육체를 강화해서 소리 따위로 데미지를 받지 않았다.
가만히 서있는 유리를 보고 고양이가 우뚝 웃음을 멈췄다.
“흐음, 넌 다르다는 거냥. 멀쩡히 서있고, 여길 들어오고 나서 가장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익숙하게 숲과 나를 대하고 있다냥.”
“그게 중요하던가.”
“중요하다냥. 넌 날 손가락으로 유혹했지만, 그 전엔 내가 습격할 걸 알고 있지 않았냥.”
그녀 말대로다.
유리는 숲에 들어오고 난 뒤로 계속해서 묘족의 미행을 알고 있었다.
미리 정보를 알고 있어서가 아닌, 그들을 직접 보고 느꼈다.
“왜 그랬냥? 왜 알고서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냥? 그래놓고 친한 척 하다가 거짓된 협박을 하는 이유는 또 뭐고냥? 진심이 뭐냥?”
“눈치가 빠르군, 숲 고양이.”
“야생의 육감을 무시하지 말라냥. 난 머리가 나빠도 눈치는 빠르니까냥.”
“여지가 없다는 걸 안다.”
“우냥? 무슨 소리다냥?”
“묘족이 견족(犬族)과 싸우느라 정신없다는 걸 말이지.”
고양이가 할 말을 잃었다. 웃음기도 차차 가셨다.
예부터 고양이와 개는 원수지간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곳에서도 묘족과 견족은 눈만 마주쳤다하면 못 죽여서 안달 났다.
그러나 지금 야생 지대의 상황은 그 이상으로 안 좋았다.
‘원작에서 카이가 이곳의 전쟁을 끝내줬었지. 그 보답으로 야생 지대에서 몸을 숨길 수 있었고.’
[지금은 아니니?]‘카이가 플레온에 있으면서 해결해야 할 에피소드였지만, 내가 거둬들이는 바람에 그 에피소드가 사라졌어.’
[아하.]시기적으로 이곳 분쟁을 해결한 건 몇 해 전이어야 했다.
그러나 카이가 생각보다 오랜 시간 플레온에 머물면서 몸을 회복했고, 이곳에 올 기회가 없었다.
그로 인해 야생 지대의 전쟁은 원작보다 훨씬 심해졌다.
지금이야 잠잠해 보이는 숲이지만, 채럿의 정보에 의하면 한 번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사상자가 엄청나다고 한다.
“견족과 전쟁을 하고 있으면서 우리 용가와도 전쟁을 할 건가. 아니면 우리에게 협조하겠는가, 묘족.”
“치사하다냥! 그, 그걸 알면서 일부러 우릴 무시한 거냥?!”
“범죄자만 찾으면 된다.”
묘족 여성은 분한 마음에 입술을 씰룩거렸다. 입 주변 근육을 따라 수염이 팅! 팅! 튕겼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마땅치 않았다. 기껏해야 경비인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가혹한 처사군요, 나이트워커의 이름 모를 인간이여.”
그때, 뒤에서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흡사 호랑이 같은 호피 무늬를 지닌 뱅갈 고양이였다. 페르시안 묘족보다 덩치는 작았으나 늘씬한 팔다리와 몸놀림에서 기품이 흘렀다.
뱅갈 고양이의 등장에 다른 고양이들이 길을 비켰다.
유리도 막혀오는 숨에 눈살을 구겼다.
‘10서클? 아니, 그 이상일지도!’
일전에 진심을 다한 미앵비슈를 본 적 있었다.
가까이 서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서 아무것도 못했었다.
지금 눈앞의 뱅갈 고양이가 그랬다.
미앵비슈, 아니 어쩌면 벤헬링턴과 흡사한 경지. 그녀를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이 정신이 아찔했다.
그리고 유리는 뱅갈 고양이의 정체를 알아 차렸다.
‘묘족의 왕, 크라무슈!’
모든 묘족의 정점에 선 절대 포식자.
설정집에선 묘족의 일부인 호랑이들마저 정리하고 군림한 강자였으니.
하지만 크라무슈가 여기에 있던가?
아니, 절대.
유리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확신도 생겼다.
‘원작과 달라졌다.’
크라무슈는 영물을 넘어서 신수(神獸)라 불리며 생명체 이상의 힘을 지녔다.
굳이 비유하자면 각 용가의 가주들과 비슷하달까.
다만, 신수들은 악마들이 침공할 때도 절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어갔는지조차 묘사가 안 되어서 끝끝내 행방을 알지 못했다.
카이가 이곳 야생 지대를 찾아왔던 것도 단순 도망이 아닌, 신수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신수를 이리 쉽게 마주쳤으니.
뭔가 원작과는 달라진 게 분명했다.
“놀란 얼굴이군요. 이름 모를 용인이여.”
“설마 여기서 신수를 뵐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신수인 줄 바로 알아보았군요.”
“이 강대한 기운을 느끼고도 신수가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미 다른 일행들은 그녀가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조이는 숨에 헐떡였다.
유리도 클라우드 하트에서 드래곤과 맞선 경험이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얼어붙고 말았을 터.
“난 오래 전부터 벤헬링턴과 친우였습니다.”
순간 귀가 솔깃했다.
벤헬링턴과 인연이 깊고, 그 존재가 신수라니!
그라면 그럴 법했으나, 그럴 법하다고 꼭 진짜는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관심이 가는 이야기였다.
“수 십 년도 더 된 인연이죠. 그래서 이번에 미리 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허나, 내 존재를 섣불리 세상에 드러낼 수 없어서 조금은 늦은 듯 하지만. 다행히 아직 아무도 다치진 않았군요.”
말투에서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친절한 듯 하지만, 실상 텅 비어있달까.
‘아직’이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었다.
‘위험하다.’
유리는 여차하면 검을 뽑을 채비를 했다. 다른 기사단원들도 전투를 준비했다.
힘으로 외교를 하려고 했으나, 계획보다 강한 적이 나타났으니까.
전투를 하지 않고서 여길 뚫고 나갈 방법은 없으리라.
“그러나 그와의 관계를 고려하더라도 당신과 기사단의 출입을 허락할 수는 없습니다.”
“연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우리는 전쟁 중이고, 당신들을 도울 가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여기 있는 당신들은 나보다 약합니다.”
약하다.
단 세 글자만으로 그녀가 돕지 않을 이유는 충만했다. 유리도 그런 그녀를 이해했다.
자신도 같은 논리로 페르시안 묘족을 압박했고, 묘족이 아니더라도 이번 임무에 있어서 방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벨 계획이었다.
상대가 신수라 해도 그 원칙은 똑같았다.
“찾는 자가 미다스던가요?”
갑자기 그리 말하는 크라무슈. 그녀는 유리의 표정을 읽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반응했다.
“그 자를 찾는 거라면 더더욱 도와줄 수 없겠군요.”
“어째서죠.”
“그 자는 우리에게 필요하거든요. 강력한 무구를 만들 대장장이니까요.”
“어쩔 수 없군요.”
유리는 티르빙을 뽑았다.
마검의 등장에 페르시안 묘족은 기함하며 물러났다. 크라무슈만이 태연했다.
‘예상했던 그림이지만, 더 나쁘군.’
미다스가 괜히 이곳으로 도망쳤을 리가 없었다. 모종의 거래를 하지 않고서 야생 지대로 도망 올 이가 누가 있겠는가.
전쟁 중인 곳이라면 미다스의 무구를 필요로 할 줄 알았다.
다만, 미다스를 신수가 직접 지킬 줄이야.
유리는 작게 한숨 지으며 아쉬움을 표했다.
“전 저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해야 합니다. 신수께서 방해하더라도 어쩔 수 없죠. 또한 지금의 행위는 가문에서 낙인찍힌 범죄자를 보호하는 처사. 신수님이라면 이후 어찌 될지는 알고 계시겠죠.”
“약육강식의 룰에 맞는 처사라는 건가요.”
“그게 야생 지대에서의 절대 법칙 아닙니까.”
신수 크라무슈는 눈을 내리 깔았다가 번쩍 떴다.
용인과 똑같이 세로로 갈라진 동공이 새카맣게 커지다가 이내 눈동자 전체를 뒤엎었다.
온통 까맣게 변한 눈동자에서 황금색 안광이 흘렀다.
“우리의 룰을 따를 작정인 듯 하니, 그 룰대로 해보죠.”
타다다닥!
고양이들이 일제히 무리로 달려들었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나 유리가 설전을 펼치는 사이 플레온 기사단은 전부 자리를 이탈한 뒤였다.
전투가 시작될 때까지 그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유리와 일행을 빼곤 아무도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