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67
제167화
전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적어도 8서클 이상으로 구성된 묘족 군대는 전혀 이방인들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전투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밀렸던 기세가 단 세 명에 의해서 바뀌었다.
“대열을 갖추고 물러서라!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
유리가 계속해서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좌측! 방패를 높게 들어! 후방은 계속해서 창으로 접근을 막아라! 끝이 내려가선 안 된다! 전방, 힘껏 칼을 휘둘러! 공격을 허용하게 해선 안 된다!”
세세한 명령은 곧 효과를 드러냈고, 효과는 곧 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런 기사들 후방에선 이자벨이 청염(靑炎)이 보조했다.
“플레임 샷!”
화르륵!
그녀는 쉴 새 없이 푸른 불꽃을 화살처럼 시위를 당겨 묘족에게 날렸다.
냐악!
워낙 날래서 제대로 맞지 않았으나, 짐승에겐 불만큼 두려운 것이 없었다.
특히나 이자벨의 청염이 내뿜는 열기는 삽시간에 공기를 빨아들여 태웠다.
청염을 피해 달아나도 문제였다.
대열 앞에 선 채럿의 인간형 토끼가 피해 다니는 묘족들을 카운터치고 있었으니까.
인간형 토끼는 자신의 주먹 사정권에 들어오면 닥치는 대로 뺨을 갈겼다.
우냐아악!
냐악!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분명 실력으로 이겨야 할 묘족이 도리어 피해가 발생했다. 반대로 용가의 기사들은 할퀸 상처만 빼곤 부상자가 없었다.
이는 팀워크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 전세였으니.
이러한 팀워크는 결국 용가의 기사들이 유리를 믿고 따르면서부터 바뀌었다.
타나토와 제몬이 지시를 하던 때보다 유리의 정교하고도 사기를 북돋는 리더쉽이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야 말로 뭉쳐서 사는 셈.
그런 유리를 살피던 크로무슈는 조금은 놀라워했다.
‘숲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불안해 하던 이들이 갑자기 일사분란해졌다. 8서클이 넘는 묘족들이 뚫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해졌어.’
사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전황은 보다 더 불리하게 돌아갔다.
묘족들도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은 지휘에만 집중해서 망정이지. 유리가 칼을 빼드는 순간, 이 전황은 단숨에 역전될 거라고.
오로지 육감과 본능에 의지해서 야생 지대를 살아온 묘족들에겐 그러한 사실이 공포라 다가왔다.
오죽하면 낮은 서클의 묘족은 합격기와 인간형 토끼의 주먹에 큰 데미지를 받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낮아봤자 7서클인데도 말이다.
‘실로 용인답군요, 유리 덴 나이트워커.’
그가 인간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얕잡아 본 것도 사실이다.
인간.
그들의 행보는 항상 실망스러웠다. 잘 결집해서 목적을 향해 나아가더라도 끝끝내 분열하고 자신들끼리 살육을 벌였다.
그런 인간들의 추한 행태보단 차라리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야생 지대가 나았다.
헌데 용가를 통솔하는 인간이라니.
목적이 무엇이었든 유리가 이끌어낸 응집력은 실로 놀라웠다. 솔직히 크로무슈는 그런 통솔력이 부러울 정도였다.
‘나도 저 아이처럼 우리 일족을, 아니. 야생 지대의 모든 생명들을 이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현재까지 묘족은 하나로 뭉쳐서 잘 살아왔다. 신수인 크로무슈 때문이었다.
문제는 견족을 비롯한 다른 수인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으니. 개개인이 강하다 한들 잘 훈련된 집단에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방어해라! 이길 수 있다!”
승세가 보이자 상급 기사가 외쳤다. 방패의 간격이 더 견고하게 좁아진다.
유리도 승산이 더 커지자 뒤늦게 크로무슈를 시야에 담았다.
‘신수님께서 나섰다간 모르겠군.’
현재까지 유리와 크로무슈가 직접적으로 전투에 나서진 않았다.
유리야 지시만으로 바빴고, 그에 반해 크로무슈는 지시는커녕 구경만 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유리를 믿고 싸우는 것처럼, 묘족이 계속 당하고 있는데도 싸우는 건 그나마 신수 크로무슈가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 님!”
그때, 전방에 나갔던 블레이크가 돌아왔다.
묘족들 사이에서 힘만으로 해집고 나온 그는 방패 대열을 훌쩍 넘어 유리에게 접근했다.
그의 손에는 전에 없던 무기가 들려 있었다.
레이피어처럼 검신이 얇으면서 시미터처럼 한쪽으로 휘어있는 검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전방에 워낙 많은 매복 병력들이 있어서.”
“아직 대치 중인가?”
“예, 하달하신 명령대로 수비만 하며 전투를 피하고 있습니다.”
“그럼…….”
유리는 블레이크의 귀에 대고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이를 목격한 크로무슈는 눈꺼풀을 가늘게 내렸다.
‘전방 매복 병력들이 당한 건가? 아니야. 이쪽보다 병력이 더 많고 그쪽엔 더 실력 좋은 아이들로 배치했어. 벌써 당했을 리는 없고……. 대체 저 불길한 사내는 뭐지.’
사실 크로무슈와 묘족은 처음부터 은근히 블레이크가 신경 쓰였다.
유리 다음으로 강하다는 느낌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물로서의 본능적 감각이 그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참으로 표현이 이상하다만 그렇게 말고는 설명이 안 되었다.
유리보다 약한데 더 위험한 인물.
그때, 벌떡 일어선 유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전 병력! 플레온 기사단이 향한 길로 돌격한다!”
뜬금없는 명령에 기사들이 다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잠깐에 불과했다.
상급 기사가 지체하지 않고 다시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진군 대형을 갖춰! 후방 대열은 타나토 도련님과 제몬 도련님을 확보하고 이탈하라!”
“네, 넵!”
“네!”
유리를 의심할 시간에 차라리 명령대로 움직여야 했다. 결과가 처참할지라도 명령을 따라야하는 것이 군인이고 기사다.
그리고, 유리라면 올곧은 결과를 낼 거라고 믿고 있었다.
착! 착! 착!
발걸음에 맞춰 갑주들이 소리를 냈다.
대열의 방향과 형태가 바뀌면서 더는 묘족에게 반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묘족도 마찬가지로 기사단의 수비를 못 뚫었다.
그런데도 몇몇 묘족은 호기로운 미소를 지었다.
페르시안 묘족이 크로무슈 옆에서 키득거렸다.
“악수를 골랐구냥. 전방에 더 많고 실력 좋은 애들이 있는데냥.”
숲에 들어오고 유리와 블레이크가 예상했던 대로 진입로 앞뒤로 매복 병력을 배치했다.
그 중 전방에는 훨씬 많은 숫자를 투입시켰다.
어차피 묘족 입장에선 기사단을 쫓아내면 그만이고, 전투 중에 전방이 뚫렸다간 묘족의 주거 지역까지 단숨에 다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 후방을 비워놓은 꼴이다.
그런데 전방이라니.
무조건 죽는다. 승산이 있을 리가!
물론, 크로무슈는 플레온 기사단이 전방으로 먼저 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정도 병력으로 전방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이겼을 리가 없어요. 그건 유리,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유리라면 전방에 배치된 묘족의 병력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를 수가 없다.
또한 후방으로 후퇴하면 손실은커녕 전투를 하지 않고서 숲을 나갈 수 있다는 것도 알 터.
그런데 돌파를 지시했다.
뚫을 자신감이 있어서? 하지만 근거가 부족하다. 실력을 떠나 배치된 병력의 수와 질이 완전히 달랐다.
모르더라도 실상 적진으로 강행하는 거나 마찬가지.
강행한다 해도 피해를 받을 테고, 그렇게 되면 유리와 기사들이 야생 지대까지 온 목적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그 답을 곧 블레이크에게서 발견했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스윽!
블레이크의 손에 들린 기다란 장검이 섬광을 그었다.
그 순간, 전투를 벌이던 묘족들이 급작스레 뒤로 물러나 공격을 않고 하악질만 해댔다.
살짝 곡도처럼 휜 검은 평범한 듯 해도 흘러나오는 예기는 사뭇 남달랐다.
크로무슈는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놀랐다.
“켈베로스의 이빨……!”
지옥을 지키는 개, 마수, 그러나 야생 지대의 수인들에겐 견족의 사악한 신수!
그 자의 이빨로 벼려진 검을 같은 신수인 크로무슈는 바로 알아봤다.
“어쩐지. 이래서 유리 당신보다 더 불길하게 느껴졌던 거군요.”
견족과 묘족은 단순히 사이가 나쁜 게 아닌, 존재만으로도 불쾌한 상극이었다.
그것은 힘의 상극이 아닌, 동물의 본능을 자극해서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하필 견족 중에서 마수와 버금갈 정도로 위험한 켈베로스의 이빨이라니!
이로 인해 겁을 모르는 묘족에게 블레이크의 검은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압박을 줬다.
그래서 검이 뽑히는 순간 묘족 누구도 공격 기세를 이어갈 수 없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군요.”
크로무슈는 작은 실소를 흘렸다.
본능만으로 살았던 수인에겐 본능에 약하기도 했다.
강한 존재를 보면 이를 드러낼 뿐, 못 덤비는 거나 같은 이치다.
두려워서 꼼짝을 않는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야수로서의 경고가 전부.
“허나, 기껏해야 죽은 시체의 뼈. 그걸로 우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크로무슈가 고양이들 사이로 나섰다. 그녀의 모습은 점차 인간으로 변했다.
이윽고 호피 무늬 레깅스에 두터운 코트를 두른 여성이 나타났다.
샛노란 눈동자는 나이트워커의 용인과 비슷하면서 보다 흉폭하게 빛났다.
‘드디어 나왔군.’
유리도 이를 예상하고 앞으로 대열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유리 도련님!”
“돌아보지 마라! 명령대로 앞으로 나간다!”
실상 유리 혼자서 남은 묘족을 모두 상대해야 하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유리의 자세엔 어떠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없었다.
블레이크는 그런 유리에게서 눈을 못 떼다가 기사들을 끌고 움직였다. 유리 때문에 전진이 수월해지며 빠르게 멀어졌다.
그들이 멀어지는 걸 확인한 유리는 크로무슈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영광입니다, 신수시여. 역사에 따르면 신수의 인간된 모습을 본 자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럴 거예요. 내가 인간처럼 변한 모습을 보고 살아서 돌아간 이는 아무도 없거든요.”
“그럼 제가 최초겠군요.”
자만에 가까운 발언에 몇몇 묘족이 비웃었다.
켈베로스의 이빨이 없어지고 기세가 살아난 모양이다.
유리는 티르빙을 왼손으로 옮겨쥐었다. 기다란 장검이 손바닥만 한 단검으로 짧아졌다.
티르빙을 보는 크로무슈가 흥미로운 듯 콧소리를 냈다.
“흐응, 마검이라. 진짜로 있긴 한 거였군요. 생각했던 것보다 아름다고, 더 끔찍하네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긍정적이군요.”
크로무슈가 양손을 할퀼 듯이 구부렸다. 그러자 손톱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묘인의 손톱에 대해선 여러 풍문이 있다.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며, 어떤 전설에선 치명적인 독이 묻었다고 하고, 신화에선 신에게 유일하게 상처를 준 의외의 무기라고도 했다.
그런 뜬소문을 차치하더라도, 아마 신물인 티르빙과 버금가겠지.
그러나.
유리에겐 다른 무기도 있었으니.
무형검 초(初).
그의 오른손에 형체가 없는 검이 만들어졌다.
클라우드 하트를 나오고 나서 아직 여기까지 밖에 구현하지 못했으나.
무형검을 구현하는 자는 유리가 유일무이했다.
신수 크로무슈도 오랜 세월을 살았건만 무형검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형체가 없는 검은 보이지 않아도 살기가 형형했으니.
“벤헬링턴과는 다른…… 설마 이건, 드래곤인가요?”
생명체의 정점.
전무후무한 포식자.
진정한 중간계의 주인.
말로만 수도 없이 들었던 존재의 형체가 고작 인간인 유리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유리는 마지막 예의를 표하고 곧장 몸을 움직였다.
감탄할 틈은 없었다. 크로무슈는 상상을 웃도는 빠른 공격에 본능적으로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녀의 목덜미 근처에서 발톱과 티르빙이 충돌했다.
콰아앙!
단 일합으로 대기를 찢는 파공음이 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