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68
제168화
블레이크와 플레온 기사단은 명령대로 차근차근 전방 진로를 뚫고 있었다.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다친 쪽은 오로지 묘족뿐.
그들은 천천히 밀고 들어오는 기사단을 앞에 두고 한 발 씩 물러서기만 했다.
선두에 선 블레이크와 그의 손에 들린 켈베로스의 이빨 때문이었다.
“계속 뒤로 도망만 갈 건가?”
하아악!!!
미약!
묘족들의 실력으로 블레이크와 훈련된 기사단을 이기기란 불가능했다.
이미 켈베로스의 이빨로부터 나오는 기세에서 압도되었다.
“싱겁군.”
작전대로 흘러가는 정국이 시시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작전이 시작되기 전만하더라도 블레이크는 잔뜩 긴장했었다.
켈베로스의 이빨이 그들에게 효용이 있을 거라는 유리의 조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묘족은 수인들 사이에서 몇 안 되는 최상위 포식자였으니까.
물론, 이젠 아무렇지 않다.
“단장님!”
마침 후방에서 이자벨과 다른 일행이 합류했다.
그녀는 곧장 블레이크에게 뛰어갔다. 그녀를 보고 블레이크가 물었다.
“유리 님은?”
“작전대로 후방에 남으셨습니다.”
“직속 기사들은 모두 데려왔나?”
“예, 부상자가 있긴 하지만, 전력에는 전혀 손실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여기도…….”
“전투를 최소화하고 있다지만, 언제 덤빌지 모르는, 엇차!”
미야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어코 거대 고양이 한 마리가 불시에 달려들었다.
블레이크는 검을, 이자벨은 청염의 마법을 쓰려고 했으나.
그때, 채럿의 인간형 토끼가 불쑥 나타났다.
퍼엉! 공기가 폭발하듯 토끼의 주먹이 고양이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고양이가 나무에 날아가 처박혔다.
콰직, 하고 나무가 기울어진다.
이에 같이 달려들던 고양이들이 다시 제자리에 멈췄다.
“……이런 상황이다.”
블레이크는 그리 말하며 토끼와 뒤에 있던 채럿에게 짤막한 시선을 보냈다. 감사하다는 뜻이었다.
이런 식의 대치가 벌써 1시간 째 이어졌다.
누구도 선공을 하지 않고, 오로지 덤비는 묘족을 블레이크가 받아내는 방식.
이 때문에 누구 하나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전황이 유리한 건 아니었다. 할 수 있다면 블레이크가 돌파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이거 놔! 누굴 환자 취급하는 거야!”
팽팽한 공기를 타고 듣기 싫은 목소리가 퍼졌다.
안 봐도 타나토의 목소리였다.
대열의 뒤편에선 가문 직속 기사들에게 실려 온 그가 깨어나서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다.
“멍청한 것들! 내가 지휘자야! 나한테 지휘권이 있다고! 그런데 네놈 멋대로 여기까지 전진을 해?!”
“도련님, 부디 진정하시고―”
“닥쳐라! 네놈, 유리의 끄나풀이냐? 그 놈 발가락이라도 핥으면 뭐 떨어질 줄 알아?!”
“…….”
“돌아가면 네놈들 모두 참수다! 명령 불복종! 상관의 죽음을 방조! 없는 죄목이라도 갖다 붙이겠어!”
이성을 잃은 타나토는 부상마저 잊은 채 마구 칼을 휘둘렀다.
다칠 리가 없는, 적의만 가득한 검끝은 흉악하기 그지 없었다.
그야 말로 패악질을 부리는 꼬라지에 블레이크는 눈살을 구겼다.
“이자벨 경.”
“네, 단장님.”
“잠시 자네가 묘족을 맡도록. 그리고 지금부터 본 건 잊어주도록.”
“자, 잠깐만요! 단장님!”
청염의 마법으로 묘족을 막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블레이크를 막기에 이자벨은 역부족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타나토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타나토의 검은 그때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적이다가 블레이크의 검에 막혔다.
캉!
“그만해주십시오, 타나토 도련님.”
“네놈! 하등한 인간 종자가 감히 내 검을 막아?! 아아! 그렇지! 유리 그 새끼가 데려온 놈이 너였어!”
“이 이상은 병사들의 사기를 꺾어놓습니다.”
“사기? 사기는 벌써 꺾였지! 내 계획을 너와 네 주인이 전부 망쳐놨으니까!”
“망쳤다고요?”
타나토는 신경질적으로 검을 밀었고, 받은 힘의 방향을 따라 블레이크가 물러났다.
거리가 벌어지고 나니 타나토의 눈빛이 조금은 이성이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일그러진 사고방식은 그대로였다.
“묘족에게 칼을 보였으니 외교적으로 실패했다! 꼼짝없이 우린 저들과 전쟁을 해야 하고 미다스 한 놈 체포하는데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겠지!”
“현재까지 사상자는 없습니다.”
“이젠 거짓말이냐?! 묘족과 싸우고 있었다면서 다친 사람이 없다고? 그럼 나와 내 동생은 사상자가 아니라는 거야?!”
“…….”
“이제 어쩔 거냐. 우리의 목적은 미다스 체포였지, 전쟁이 아니었어. 이제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타나토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가문의 직속 기사들도 그 말을 듣고 어쩔 거냐며 블레이크를 바라봤다.
정작 블레이크는 답답한 마음에 점점 더 표정이 망가졌다.
야생 지대로 출발하기 전.
유리는 이미 이 모든 상황을 염두에 뒀었다. 또한 그 해결책에 관해서도 전부 알려줬다.
하물며 형제의 횡포까지도.
“짜증나는군요.”
그리 말하며 블레이크는 한 걸음 가까이 타나토에게 붙었다.
검이 닿아도 상관없다.
도리어 당황한 건 타나토였다.
“뭐, 뭐야!”
검에 다칠 걸 알면서도 가까이 온 블레이크 때문에 타나토의 발이 주춤거렸다.
블레이크는 무표정하게 바꿔 그를 내려다보았다.
“한 가지 바로 잡겠습니다.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은 도련님들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타나토 도련님과 제몬 도련님이 공격하지 않았다면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기절하시면서 까먹진 않으셨겠죠.”
“그건―”
“그리고 괜히 가문의 직속 기사단에 저희 플레온 기사단까지 원정에 동참한 게 아닙니다. 이만한 대규모 원정대를 왜 준비했겠습니까.”
비록 벤헬링턴이 샤를린느의 납치 사건으로 병력을 과하게 배치했지만.
바꿔 말해, 전투가 벌어진다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도록 수적 우세를 선점한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아직까지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까요.”
“못 죽이는 거겠지!”
어느 틈에 일어난 제몬이 끼어들었다.
그는 씩씩거리면서 타나토와 블레이크 사이를 가로 막았다.
“아까부터 다 봤어! 너! 아무도 못 죽이고 있잖아! 실력이 꽝이라서 그렇지? 그런 거잖아!”
“진짜야, 제몬? 아, 아무도 못 죽이고 있다고?”
“그래, 형! 내가 실눈 뜨고 다 봤어!”
“열등분자가 그럼 그렇지! 젠장, 결국 우린 포위당한 거잖아!”
“지금이라도 얼른 용서를 빌고 혀, 협상을 해야 해. 그치, 형?”
“맞아.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까 협상의 여지가 있을 거야. 칫, 아무도 못 죽인 걸 좋아야 해야 해, 말아야 해?”
그런 형제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블레이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린 애만도 못한 발상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애교로 봐줬을지 몰라도, 전장 한 가운데서 지휘권을 맡은 장본인이 저딴 소리나 지껄이고 있으니 짜증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묘족을 죽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니.’
블레이크는 얼른 유리가 돌아오길 바랐다. 그가 와야지만 이 바보 형제를 잠재울 수 있을 듯 싶었다.
아니지.
그냥 항명해서 이 둘을 진짜 재워버릴까?
극단적인 계획이 구체적으로 세워지려던 그 순간.
쿠구구구!
지면이 갈라지면서 강풍이 그들을 쓸고 지나갔다. 서있던 모두가 비틀거렸다.
블레이크와 이자벨, 채럿은 진동의 원인이 발생했을 쪽을 바라봤다.
유리와 크로무슈가 싸우는 방향이었다.
* * *
1합.
목덜미 근처에 방어를 해낸 크로무슈는 힘에서 밀려 다리가 굽혀지고 있었다.
확실한 힘의 차이는 신수인 그녀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마나로 강화해서 이 정도라니, 놀랍군요.”
“놀라긴 이릅니다!”
2합.
유리의 무형검이 갑자기 형태를 잃었다. 그리고 티르빙을 똑바로 잡아 콧등을 향해 찔렀다.
크로무슈가 고개를 틀어 피했지만, 뺨에 기다란 상처가 생겼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티르빙이 지나간 자리가 폭발했다.
퍼버벙!
“읏!”
피를 소이탄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티르빙의 핏물이 뺨에 남아 폭발한 것이다.
화상조차 안 입었으나, 충격에 머리가 휘청거린다.
‘전혀 알지 못했어.’
정작 크로무슈는 어떤 이유로 폭발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주문을 외울 틈 따위 없었을 텐데.
몰래 주문을 외웠다 한들, 전혀 경험해본 적 없는 전투 방식은 그녀를 당혹케 만들기 충분했다.
그녀의 삶을 통틀어서 이런 식으로 싸우는 자는 단연컨대 없었다.
3합.
없어졌던 무형검을 다시 생성했다.
그런데 그의 손이 아닌 등 뒤에서 만들어졌다.
그녀는 감각만으로 살기를 느끼고 검이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어느 틈에……!’
이 또한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무형검 자체도 처음인데 공격자의 손아귀 밖에서 만들어지는 무기라니!
피할 수 없다. 방어도 안 된다.
그럼 남은 건 공격 뿐.
그녀는 도리어 유리에게 무게중심을 기울였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손톱이 심장을 노렸다.
캉!
그러나 유리는 티르빙의 끝으로 손톱 끝을 막는 묘기를 선보이며 방어했다.
4합.
이번엔 티르빙이 형체를 잃었다. 졸지에 관성을 이기지 못한 크로무슈의 손은 유리와 깍지를 끼었다.
“헛!”
팔이 고정되는 바람에 크로무슈는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손목을 뜯을 작정으로 손톱에 힘을 줬다.
허나 날카로운 손톱은 피부에 작은 생채기도 못 내었다. 피부 표면엔 티르빙이 변해서 만들어진 갑주가 긁혔다.
“어느 틈에!”
고민하고 의아해 할 틈은 없었다. 등 뒤에선 아직 무형검이 그녀를 노렸다.
마지막 5합.
푹! 푸부북!
무형검이 등허리를 꿰뚫었다. 그 사이 유리의 반대편 손에 티르빙이 만들어져 복부를 찔렀다.
“어억…….”
배와 등, 입까지 피를 흘리며 크로무슈의 몸뚱어리가 늘어졌다.
유리는 그녀를 조심히 받아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에 뉘인 그녀는 사후경직을 일으키듯 꿈틀댔다.
뒤에 있던 묘족들은 허망한 얼굴로 전투 결과를 지켜봤다.
고양이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어떤 표정이고 감정인지 모르겠으나.
무거운 침묵은 크로무슈의 죽음을 앞두고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 허무하게 졌군, 요.”
울컥, 피가 한 움큼 토하며 그녀라 말했다.
10서클이 넘는 크로무슈였고 전투 경험 면에서도 유리보다 훨씬 많았으나.
오늘의 패배는 오히려 야생에서의 경험과 본능에 의지했던 탓이다.
유리는 그런 그녀가 경험하지 못한 전투 방식을 선보였으니까.
세상 어느 누가 티르빙이라든가 무형검을 겪어보았겠는가.
그 자체만으로도 승산이 높았는데, 자기 경험에만 의존한 크로무슈와 묘족은 처음부터 유리를 이길 수 없었다.
“역시, 고양이의 영역보다 세상은 더 넓나보군요.”
“저도 세상이 넓다는 걸 요즘 들어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가요.”
“그렇습니다. 신수님만 하더라도 저에겐 고귀한 경험이죠.”
“후후, 아첨치곤 빈약하네요.”
“승자는 저인데 아첨이라니요.”
“아아, 그렇죠.”
크로무슈는 스리슬쩍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점점 떨림이 멎고 있다. 가빴던 숨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대로 죽음에 가까워졌으나, 묘족 누구도 그에게 덤비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크로무슈의 죽음을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눈 좀 붙이겠습니다.”
마치 마지막 유언 같은 한 마디였다. 잠시 후, 완전히 움직임이 멎었다.
누가 보더라도 죽음이 지나간 시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지만.
유리는 그녀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