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69
제169화
잠시 후, 그녀의 살가죽에 난 구멍으로 살점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붙었다.
유리는 한 발 물러서서 담담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9번 사는 고양이.”
작전 회의 중에 블레이크와 일행들에게 묘족에 대해 설명을 해줬었다.
묘족이 왜 묘족인가.
그들은 수인 사이에서 어떻게 강력한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는가.
이는 묘족에게 주어진 ‘9개의 목숨’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다.
묘족은 수명을 다하는 날까지 9번의 목숨이 주어졌다. 이런 기회가 있어서 그들이 강해질 수 있던 것이다.
“후우.”
이윽고 살갗이 전부 아문 크로무슈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다쳤던 부위를 더듬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 치열한 전투를 언제 겪었냐는 듯, 그녀가 인자하게 웃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 제 패배를 받아 주시겠나요?”
“물론입니다.”
거친 야생만큼 수인의 승패는 깔끔했다. 패배했다고 해서 뒤끝을 갖지 않는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뒤에 있던 묘족들도 전부 허리를 숙여 경외를 표했다.
“살면서 두 번째 패배네요.”
허리를 들며 크로무슈가 말했다.
“견족도, 켈베로스도 저를 패배시키지 못했는데 말이죠.”
“그 말은, 제가 두 번째 목숨을 앗아갔다는 거군요.”
“두 번째 목숨은 아니랍니다.”
“그럼?”
“지금까지 4번 죽었죠. 3번은 단 한 명의 용인에게 잃은 목숨이고요.”
전혀 몰랐었다.
신수를 4번이나 죽인 상대라니. 유리 머릿속에서 빠르게 그 상대를 추려봤다. 손꼽을 정도의 강자가 아니고선 그녀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저희 할아버지인가요?”
“아뇨.”
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친분이 있다고 해서 벤헬링턴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녀는 전혀 의외의 인물을 입밖으로 꺼냈다.
“블레이머라는 용인이었답니다.”
* * *
크로무슈 한 명을 이기고 나서 원정대를 대하는 묘족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살갑게 굴진 못해도 적대 의식이 완전히 사라졌다.
유리는 전방에 있던 블레이크 일행과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타나토와 제몬이 횡포를 부렸으나, 어째선지 직속 기사들은 둘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형제 대신 기사단을 이끌던 상급 기사만이 말대꾸 정도만 해줬다.
‘신뢰를 잃었군.’
이제 대열의 선두는 플레온과 유리가 맡았다.
말을 타고 묘족을 따라가던 유리는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형제를 흘끗 훔쳐봤다.
“지휘권이 나한테 있다고! 나! 타나토! 자유의 관 관장이자 부기사단장이고 우리 아버지인 다이올드 덴 나이트워커가 준 권한이란 말이다! 이놈들! 나를 봐! 날 보라고!”
타나토의 악성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참다못한 블레이크가 말을 가까이 붙여 조용히 물었다.
“제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위험한 발언이군, 블레이크 경.”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도 도련님을 한 번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유리도 가문으로 돌아오면 형제부터 처리할까 고민했었다.
멸망을 막는데 도움이 안 될뿐더러, 블레이크의 말처럼 이미 자신과 어머니를 죽이려했던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형제의 악바리 가득한 근성을 보면 볼수록 그들이 안쓰러웠다.
‘솔직히 형들이라고 저렇게 되고 싶진 않았겠지.’
형들을 용서할 마음은 일말조차 없다.
그러나 그들의 뒤에 선 다이올드가 자식들을 부려먹는 꼴을 보면 실로 역겨웠다.
아마 형제는 오랜 시간 아버지의 욕망에 이용당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옳다며.
무조건적으로 자신들이 최고라며.
세뇌에 가까운 교육은 결국 지금의 형제를 만들어냈다.
“가려진 걸 거둬도 제대로 볼 순 없겠지.”
“예?” “아니다, 경. 형님들에게 앙갚음 할 날은 언제든 올 거야. 오지 않더라도 내가 가주가 되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블레이크는 아첨하겠다고 먼저 그들을 죽이는 사람이 아니다.
유리는 걱정을 덜고 형제로부터 눈을 돌렸다.
“그보다 우리가 걱정해야 될 건 미다스다. 그 자는 묘족에게 협조하고 보호 받던 자야. 갑자기 우리가 찾아가면 도주할 수 있어.”
“묘족에게 도움을 청해서 도주로를 막을까요?”
“아니, 어려울 거야. 야생 지대엔 ‘길’이란 게 없어.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유일해. 이게 무슨 말인지 아나?”
“길이 없다는 건, 건물을 비롯한 지형지물이 없다는 거군요.”
묘족이 마을로 안내한다고 했으나, 인간의 기준에서 생각하는 그런 마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영역’이라는 개념이 맞았다.
언뜻 야생 지대의 평범한 숲 같아 보여도, 엄연히 경계가 있고 오로지 선을 그어놓은 수인만 그 경계를 알아볼 수 있었다.
“우선 입구에서 병력들을 대기하도록. 미다스와는 나 혼자 만나겠다.”
“위험합니다. 미다스의 실력이야 유리 도련님보다 별 볼 일 없겠지만, 가짜 마검이…….”
원정을 출발하기 전에 채럿을 통해 몇 가지 정보를 더 입수했다.
그 중엔 가짜 마검을 더 있다는 정황이 파악됐다.
동물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마검을 쓰다가 부서져서 새 마검을 꺼내서 쓰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유리 품에 안겨 말을 타고 있던 채럿도 걱정스레 그를 올려다봤다.
“가짜 마검만 있는 것도 아닐 거예요. 미뭉이라든가 드워프들만 아는 신물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더욱 혼자 만나야 해.”
가짜 마검이 가진 파괴력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지금이야 그때처럼 쉽게 당하지 않겠지만, 문제는 다른 일행이었다.
그들이 가짜 마검을 상대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계산이 안 섰다.
무엇보다.
“만에 하나 가짜 마검이 완성에 가까워졌을 수도 있어.”
“완성이라니. 유리 님께서 마주했던 가짜 마검은 완성이 아니었습니까?”
“타나토 형님이 가짜 마검을 쥐었을 땐 이성을 잃었어. 마검이라면 마검 다운 상태였지만, 이성을 유지할 수 있게 개조했을지도 모르지.”
“그건 좀, 어렵군요.”
실력이 일취월장한 블레이크도 난색을 표했다.
가짜 마검을 떠나서,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기 힘들만큼 상회한다면 계획을 세우는 게 무의미했다.
“묘족에게 협조를 구해보는 건 어떤가?”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이자벨이 물었다.
“안 돼, 묘족은 이번 일에서 완전히 빠졌어. 애초에 그들은 미다스가 범죄자라는 것도 몰랐어.”
수인들에게 외부의 법이나 정치 공학을 들이대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아까 듣자하니 타나토가 수인과 사이가 틀어져서 어쩌고 저쩌고 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마저도 의미는 없었다.
수인에겐 강한 자가 곧 법이고 규칙이다.
아무튼 묘족은 자신들의 영역을 열어주는 대신 협조하지 않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최대한 포위망을 넓게 펼쳐놓고 미다스가 도주한다면 절대 잡지 말도록. 도망간 위치만 빠르게 파악해서 추적대만 붙여. 전투는, 절대 금물이다.”
“알겠습니다.”
그밖에 포획 계획에 몇 가지를 더 보태가며 묘족의 마을로 향했다.
* * *
“여기로.”
인간의 형상으로 변한 크로무슈가 앞장 서서 유리를 이끌었다.
여기서부턴 묘족의 영역이었다.
“모두 일러둔 대로 대기하도록. 형님들은…….”
“적당히 해놓겠습니다.”
두루뭉술한 한 마디로 답한 블레이크. 그를 믿고 유리는 영역으로 들어섰다.
이를 본 타나토가 역시나 길길이 날뛰었다.
“저 놈 혼자 어디 가는 거야! 야! 열등분자의 개! 대답해!”
“그래! 대답해!”
제몬이 앵무새처럼 따라서 외쳤다.
떠나려던 유리의 발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블레이크가 그에게 얼른 가라고 고갯짓을 한다.
그렇게 블레이크가 형제를 제지하려는 찰나.
“어딜 따라가러 하느냥.”
묘족 한 마리가 그들을 막았다.
샴 고양이를 닮은 묘족은 앞발톱으로 바닥에 선을 그었다.
“넘지 마라냥.”
“짐승 새끼들이!”
“짐승한테 죽고 싶냥?”
주변으로 다른 묘족이 모여들어 형제를 감쌌다.
“약육강식. 이기지 못하면 통과 못 한다냥.”
“반대로 이길 수 있는 자만 넘어갈 수 있다냥.”
“너흰, 실격.”
“이익!!!”
분에 겨워 주먹을 꽉 쥐는 형제.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해선 안 되었다.
그랬다간 자신들이 죽는다.
여기서 승산은 일절 없다.
“…….”
유리와 형제의 눈이 맞았다.
그들의 시선에서 여러 감정이 느껴졌다.
어떤 감정인지는 구태여 알고 싶지 않았다. 유리는 망설이지 않고 그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렇게 들어선 영역은 예상대로 마을 같은 곳은 아니었다.
“언뜻 봐선 다른 숲과 별반 다르지 않군요.”
“야생 지대에 사는 야생 동물이니까요.”
들어서자마자 많은 묘족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들은 평화롭게 낮잠을 자거나 둥글둥글한 걸 앞발로 굴리며 놀고 있었다.
새끼 묘족은 이방인을 보고도 철없이 뛰어다니며 호기심을 표했다.
“여기.”
캉! 캉! 캉! 캉!
크로무슈는 동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쪽에선 망치질 소리가 메아리쳐서 나왔다. 소리를 따라 매쾌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미다스가 기다리고 있어요.”
“기다리고 있다고요?”
“네.”
뜻 모를 소리에 놀라서 유리의 눈동자가 커졌다가 가느스름하게 작아졌다.
미리 알고 도망간 게 아니라.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
[수상한 걸. 미리 알고 있던 것도 이상한데, 도망가지 않았다니. 이 언니는 안 들어갔으면 하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동굴이 함정일 수도 있어요.]“…….”
확실히 동굴에 들어서는 순간 빠져나갈 길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다른 선택지가 없다.
어차피 블레이크에게도 자신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대비책을 일러뒀고.
수인족이 속이려 할 이유도 없었다. 속인다 해도 용가를 속이는 뒷감당을 할 리도 없고.
“함정이 있다면 걸려주는 게 예의지.”
유리는 크로무슈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따라오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망치질 소리와 열기가 더욱 커졌다. 이윽고 동굴 벽에 그림자가 비쳤고, 그림자는 망치를 들고 힘차게 움직였다.
마침내 마주한 미다스는 유리가 온 줄도 모르고 망치질에 여념이 없었다.
“미다스.”
작은 부름이었으나 미다스는 용케도 알아듣고 동작을 멈췄다.
천천히 그가 돌아서자 갈색 수염이 덥수룩하고 대머리인 드워프가 얼굴을 보였다.
“크하핫! 크하하하하핫! 드디어 오셨군, 오셨어!”
긴장하며 돌아봤던 그는 유리를 확인하고 활짝 웃더니 덥석 끌어안았다.
전혀 상정하지 못했던 상황에 유리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반갑습니다! 이야, 듣던 것보다 훨씬 훤칠하게 생겼군요! 과연 용인들의 콧대를 누를 만합니다!”
“저, 저기.”
“어디 보자. 음! 근육이 좋아! 얄상하긴 하지만 내력이 잘 쌓여 있어! 티르빙 때문인가?”
그는 유리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거렸다.
마치 오랜 만에 고향에 찾아온 손주 녀석을 대하는 듯한 손길이었다.
“아아, 이런. 실례했군요. 제가 좀 무례했습니다.”
뒤늦게 미다스도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뱉었다. 그리곤 멀리 떨어져서 보다 예를 갖춘 말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 님을 뵙습니다! 저는 골든해머에서 잠시나마 일했던 드워프 미다스라 합니다!”
“……도둑치곤 의외로 당당하군.”
“하핫! 역시 들으셨습니까? 제가 무구를 훔쳐 달아났다고? 그렇다면 유리 도련님께선 절 잡으러 오셨군요!”
“그렇다.”
“허어, 참. 기가 막히네. 날 도둑놈 취급하다니!”
허리를 짚은 그가 혀를 세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유리는 이 모든 것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미다스와 영문 모를 혼잣말들.
분명 미다스의 범행 뒤에 무언가가 더 있었다.
“도둑 취급이라는 게 무슨 뜻이지? 네놈이 도둑이 아니라는 건가?”
“도둑은 맞습니다! 예! 제가 귀한 것들을 훔쳤죠!”
“그런데?”
잠시 후, 미다스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제 모든 행위는 골든해머의 가주, 빅핸드가 시킨 일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