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7
제17화
유리는 한동안 눈을 감은 채 제 머릿속에 각인된 정보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러다 티르빙이 입을 열었다.
[블랙 드래곤 아저씨가 용언 마법을 설정집에 걸었을 줄이야.]“그렇다는 건 블랙 드래곤이 알고 보니 원작의 작가였다, 그런 건가?”
[나야 모르지. 하지만 들어올 때부터 이상하다 했어. 이상한 곳에 용언 마법이나 걸어놓고. 나 참.]유리는 더 이상 목각판이 어떻게,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지 관심을 지웠다.
고대 드래곤의 작품은 확실했으나, 그렇기에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다.
고대의 일 따위, 티르빙도 모르는데 어찌 알랴.
대신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은, 설정집 자체가 이 세계관을 완벽히 대변해주는 건 아녔다.
어디까지나 원작 스토리라인에 국한된 정보들만 들어있으며, 원작에 등장하지 않거나 관련 없는 정보는 아예 기술조차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유리 본인이 그랬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어.’
원작에서 유리 덴 나이트워커는 등장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잠깐 나온다.
그저 서자가 있었고, 어려서 암살을 당했고, 그런 아들을 낳았던 샤를린느가 있을 뿐.
반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등장했다면 조연의 조연 같은 인물이라도 상당히 디테일하게 등장했다.
유리와 반대로 설정이 디테일한 인물로는.
“백부 다이올드. 차기 가주가 될 사람…….”
항상 나이트워커의 다음 가주가 누가 될지 궁금했거늘.
설정집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면서 확실해졌다.
다이올드 덴 나이트워커.
유리에겐 백부이자 벤헬링턴의 둘째 자식.
또한 유리는 그가 어떤 식으로 가주가 되는지도 알게 됐다.
다만, 그 방법을 알고 나니 좀 허무했다.
“벤헬링턴의 자연사에 따른 후계 구도에 따라 가주 권한의 이양. 하!”
독살이나, 암살, 사주, 여타 협잡한 술수 따윈 없었다.
벤헬링턴은 그저 나이가 들어 죽고 말았다. 다음 후계 서열인 다이올드가 자연스럽게 가주가 되었을 뿐.
그러나 다이올드가 아무런 수작을 부리지 않았느냐.
아니.
[철저하게 가문의 세력을 자기 걸로 끌어들였네. 심지어 황가의 힘까지빌렸어.]다이올드는 급하지 않았을 뿐, 가주가 되기 위한 절차를 차례차례 밟아나갔다.
최대한 가주직 이양 과정에서 잡음이 나지 않도록.
치밀하면서 약삭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어떡할 거니? 계획, 바꿀 거야?]티르빙이 조심스레 물었다.
불투명한 미래들마저 투명해지면서 유리가 세웠던 계획에 반드시 변화가 필요했다.
허나 그 변화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다가올 미래를 훨씬 쉽고 수월하게 막을 방법과 대비해야만 하는 변수까지 알아서 창출되었다.
그러나 티르빙은 이미 세워놓은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걸 추천하지 않았다.
몇 번을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완성된 계획이다. 유리는 그 계획을 암살자가 침입하고 난 후로부터 꾸준히 수정했다.
그걸 이제 와서 바꾼다?
“나이트워커가 필요해.”
유리는 그리 결론을 내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세계관 최강의 용인 가문이야. 악마들을 막을 수단으론 최고지.”
[그래서?]“뭐가 되었든 목표는 분명하잖아. 그걸 위해서라면 계획쯤이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서자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리고 멸망을 막는다.
벌써부터 유리는 종이에 기존의 계획을 쓰고 새로운 계획을 덧씌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모습을 본 티르빙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도서관에 생각보다 더 오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릴림에게 몇 달씩이나 도서관에 머물겠다고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물며 그가 반년씩이나 도서관에 안 나올 줄은 예상은커녕 지금도 믿지 않으려 했다.
믿는 사람이라 하면 그를 도서관으로 들여보낸 미앵비슈 정도.
그녀는 정기적으로 그의 소식을 받아서 샤를린느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갑자기 아들을 도서관에 가둔 모양새라서 처음엔 사정 설명을, 그 다음은 소식 전달을 할 겸 찾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두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벌써 가을이 오려나봅니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앵비슈가 창밖을 바라봤다.
가문으로 유리가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겨우 겨울이 가시더니. 여름으로 푸르게 피었던 이파리들은 슬슬 옷을 벗고 있었다.
한낮의 더위를 빼면 밤에는 쌀쌀해서 가디건이나 외투를 챙겨야 했다.
샤를린느도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햇살이 비추자 은은한 미소가 퍼졌다.
“그러게요. 햇빛이 더 이상 따갑지 않고 따스합니다.”
“샤를린느는 여전히 걱정이 없어 보이는군요.”
“유리 얘기라면, 글쎄요.”
샤를린느는 릴림을 통해서 유리가 지식의 관 시험을 통과했다는 것과 도서관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아들이 하염없이 대견하기만 했다.
가문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자신과 달리 아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으니까.
샤를린느가 물었다.
“못내 일찍 철든 것이 안타까우실 텐데, 안 그런가요?”
“옛날엔 그랬죠. 그치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제가 티를 내면 그 애가 더 힘들어하거든요.”
“이해가 안 되는 걸요. 그래도 아이인데.”
“용병단에 들어갔을 때…….”
샤를리느는 유리가 어렸을 적 있었던 사건 하나를 털어놓았다.
5살이 되자마자 유리는 자기도 밥벌이를 해야 한다며 용병단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당연히 엄마 된 마음으로 뜯어 말렸다.
그때 유리가 말했다.
“어머니가 저를 걱정하듯이 저도 어머니가 걱정스러워요.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시를 회상하던 샤를린느는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5살 아이가 그런 소릴 하다니. 참 웃겼죠.”
“전 전혀 웃기지 않는 걸요.”
“생각해보세요. 무릎까지 겨우 자란 아이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진지하게 어머니가 걱정스럽다고 하면, 어떨 거 같으세요?”
“…….”
안타깝게도 미앵비슈는 완전히 공감하지 못했다.
나이트워커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경쟁에 뛰어들면서 투쟁심만 길렀다.
아이다움을 잃고 자라면서 감정이 메마른다.
그렇다고 아예 샤를린느의 감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어렴풋이 느낄 줄은 알았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샤를린느는 계속 대화를 이었다.
“그래서 전 더 이상 유리를 걱정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대신 믿어주기로 했죠.”
“그 믿음에 부응해주던가요?”
“그럼요. 보다시피 그 애 스스로 잘해주고 있어요. 저만 잘 해주면 돼요.”
“좋은…… 관계네요.”
애써 치솟는 감정을 감추려는 듯 미앵비슈는 급히 찻물을 들이켰다.
덕분에 그 감정이 부러움이라는 건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어쨌든 반년이나 지났지만 샤를린느는 아들을 전적으로 믿고 기다렸다.
분명 그 아이라면 도서관에서 무언가를 찾고 또 다른 성취를 이루고 나올 거라고.
“마님! 마님!!!”
그때 릴림이 벌컥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으며, 샤를린느는 오히려 그녀를 진정시켰다.
“뛰지 말고, 천천히. 숨도 좀 고르렴. 그래, 무슨 일이니?”
“그게, 도련님이…….”
순간 샤를린느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드디어 왔구나, 싶었다.
그러나 릴림이 전해준 소식은 사뭇 기대와 달랐다.
“도련님이, 나오셨는데, 다이올드 님께서.”
* * *
반년 만에 밖으로 나온 유리의 모습은 들어갈 때와 상당히 달랐다.
머리가 더북하게 자랐으며 정돈되지 못한 옷은 잉크로 얼룩져 있었다.
간만에 햇빛 좀 보나 했는데.
유리는 지상층에서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맞았다.
“이 빌어먹을 열등분자 새끼가!”
도서관 입구를 경계에 두고 유리와 한 남자가 대치했다.
도서관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그를 가로 막았으며, 문 안쪽으로 유리가 그 광경을 지켜봤다.
문 밖에 선 남자는 중후한 이미지에 군인처럼 짧은 머리를 했다. 마른 체격이었으나 그 속에 숨겨진 단단한 근육들은 꽤나 단련된 듯했다.
그가 바로 유리의 백부인 다이올드 덴 나이트워커였다.
“당장 나와라! 네놈의 모가지를 내 이 자리에서 잘라주마!”
제몬과 타나토의 친부인 그는 자식들이 벌을 받은 것에 이어서 대련에서 창피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개했다.
당시 사건이 벌어질 때 출타 중이었던지라 가문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유리를 찾았다.
헌데 도서관으로, 그것도 1티어 섹터로 가는 바람에 얼굴조차 못 봤다.
직급상 2티어에 불과한 그로선 유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그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기 무섭게 이리로 왔다.
“나와라! 얼른 나와! 네놈의 하등한 정신 상태를 내가 고쳐주마!”
다행이랄지.
도서관에서 난동을 막기 위해 경비대가 그를 막아서고 있었다.
애초에 도서관 내에서 난동은 일절 금지돼 있었다. 그래서 유리에게 도서관 밖으로 나오라는 우스꽝스러운 헤프닝이 벌어지고 있던 차였다.
[이야, 나오자마자 난리네, 난리야. 인기 많아서 좋겠어, 꼬맹이.]‘사인이라도 해줘야 되나.’
[사인이 있긴 하니?]‘아…… 없다.’
유리의 정신은 다소 멍한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반년 간 그는 하루 5시간만 자면서 독서와 암기에만 매진했다. 티르빙은 설정집에 있는 정보만으로도 충분하다 했지만, 그와 별개로 있는 지식들이 아까웠다.
그러다 보니 수면이 부족한 탓에 도서관을 나오면 바로 침대부터 찾을 생각이었다.
근데 백부가 자기를 먼저 찾을 줄이야.
‘티르빙, 내가 힘으로 백부님을 이길 수 있을까?’
[아서라. 귀찮은 건 이해한다만, 아무리 못난 가문 혈통이라도 혈통은 혈통이야. 아직 너로는 무~리.]‘너랑 드래곤 하트, 내 코어까지 다 쓰면?’
[오올~ 가문을 통째로 날리고 싶나봐?]‘가능은 하다는 거네.’
말은 그리 해도, 힘으로 어떻게 하고픈 마음이 크게 있지 않았다.
그냥 이런 대치 상황이 썩 마음에 안 들었다.
어찌할까.
그때 설상가상으로 저 멀리서 다른 사람들이 도착했다.
이번엔 샤를린느와 미앵비슈였다.
경비병들은 그녀들까지 막지 않았다. 샤를린느는 그대로 아들이 있는 쪽으로 들어갔고, 미앵비슈는 사이에 껴서 다이올드를 가로막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다이올드! 신성한 도서관 앞에서 무기를 들고 행패라니!”
“잘 오셨습니다, 누님. 듣자하니 누님께서 타나토가 저 놈한테 당할 때까지 놔두셨다면서요!”
“그건 정당한 대련이었다. 타나토가 원하기도 했고.”
“원하건 말건 애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방관만 하셨잖습니까!”
졸지에 가족 싸움으로 번지자 경비병들이 슬금슬금 물러섰다. 여기서 더 폭발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했다.
반면 두 사람이 싸우건 말건, 샤를린느에겐 아들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그녀는 유리와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 어깨를 붙잡고 상냥한 톤으로 물었다.
“괜찮니? 다친 곳은 없고?”
“네, 어머니.”
“다행이구나. 헌데 많이 피곤하니?”
“조금은요. 그래서 자고 싶었는데, 백부님께서…….”
아, 슬슬 한계다.
이대로라면 당장 졸려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이럴 때만큼은 체력이 허약한 아이인 게 원망스러웠다.
정신만 말짱했다면 어떻게든 밀고 나갔을 텐데.
‘티르빙. 나 부탁이 있어.’
[뭔데.]‘눈 좀 자극해봐.’
[갑자기 뭔 소리야?]‘잔말 말고. 때리든, 찌르든, 뭐든 좋으니까 눈 좀 자극해봐.’
제 주인의 명령이 이때까지 만큼 해괴했던 적이 없었으나,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시작은 피를 조종해서 눈으로 쏠리게.
다음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세포 하나하나를 날카로운 송곳처럼 바꿔서 그의 눈을 쿡쿡 찔렀다.
잠시 후.
“유리?”
아들의 낯을 살피던 샤를린느는 순간 입을 벌리고 놀랐다.
최근 몇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들의 눈물이 눈동자에서 툭 하고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