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70
제170화
미다스는 본래 떠돌이 드워프로, 온갖 무구들의 절정을 추구하며 대륙 곳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러다 20년 전.
우연치 않게 미다스의 발길은 골든해머에 닿았다.
미(美)와 실용성을 모두 추구하는 미다스의 성격상, 골든해머를 가게 된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골든해머의 창고에서 신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오! 이리 많은 신물이 한 자리에 있다니! 과연 용가의 봉신 가문이라는 건가!”
“흐흐, 나도 이 창고에 올 때마다 놀랍긴 마찬가지라네. 그런 의미에서 자네에게 부탁이 있다만…….”
“뭔가! 말해보게! 나에게 이런 귀중한 창고를 보여줬는데 뭔들 못 들어주겠나!”
빅핸드가 조심스레 준비한 말들을 꺼냈다.
“신물을 보여줬으니 가짜를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헛? 허헛! 나 같은 드워프한테 신물을 본 따서 가짜를? 골든해머의 가주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아니야, 자넨 분명 놀라운 실력을 가지고 있어. 결단코 말하는데, 으음……. 자네는 기묘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어. 지금까지 봐왔던 드워프와는 무언가가 분명 달라!”
“허허! 이 사람 참!”
겸손을 떨었던 미다스였지만, 신물을 가까이서 보고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긴 아까웠다.
결국 미다스는 신물을 보고 가짜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 중엔 마검 티르빙도 있었다.
다른 신물은 비교적 쉽게 제작한 반면, 티르빙 제작은 난항을 겪었다.
진짜가 가진 힘을 완벽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들고, 또 만들고.
가짜 티르빙이 6자루가 될 무렵.
그때 한 남자가 찾아왔다.
“다이올드 덴 나이트워커라 한다.”
“어, 엇! 아이구! 나이트워커의 부기사단장 아니십니까! 이 누추한 곳까지는 어쩐 일로…….”
용광로가 들끓는 곳까지 직접 찾아온 다이올드는 아무 말 없이 그가 만든 무구를 구경했다.
그러다 인력에 끌리듯 티르빙에서 멈췄다.
“마검을 만들 줄 안다고 들었다. 내게 몇 자루 파는 게 어떤가?”
“아이구! 전부 실패작입니다요! 이걸 손에 쥐었다간 무슨 참변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티르빙의 원래 소유주라는 건 알고 있나?”
“예?”
여기서부터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다이올드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신물이면 몰라도 마검을 복제해놓고 멀쩡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
명백한 협박이었다.
결국 미다스는 몇 자루의 마검을 다이올드에게 팔았다. 값은 후하게 쳐줬으나, 그에게 재화는 의미 없었다.
이후 가짜 마검을 계속 만들어야만 했다.
이는 곧 죄를 덮기 위해 죄를 더 저지르는 꼴이었으니.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어.’
미다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가짜 마검을 비롯한 신물들을 몽땅 가지고 달아나야만 했다.
그게 몇 해 전의 일이었다.
* * *
미다스는 입술과 수염에 물기가 흐를 정도로 벌컥 술을 들이켰다.
독한 술을 먹고도 취기 없는 낯에는 회한과 후회가 그득했다.
“이러니 내가 황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범죄를 저지른 건 맞지만, 나라고 그러고 싶은 게 아니었습니다!”
울분을 토하는 목소리에서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쏟아졌다.
그러다가도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어 목소리를 죽였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제가 신물에 눈이 멀어 만들면 안 되는 무구를 만든 건 사실이었습니다.”
마검 티르빙.
그것은 존재만으로도 없어져야 할 무구였다. 범법의 문제가 아닌, 세상 모두가 암묵적으로 악하다고 규정지은 악마와 같았다.
하지만 티르빙을 부술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마당에 오히려 가짜 마검을 더 만들었으니.
법과 상관없이 크나큰 죄악을 저질러버렸다.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되어서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빅핸드가 날 찾아내서 소식 하나를 전하더군요!”
“무슨 소식이었지?”
“누명을 벗을 기회를 줄 테니까 마지막으로 협조를 하라 했습니다. 묘족 사이에 숨어 있는 걸 알고 있으니, 거기서 버티고 있어라. 그리고 순순히 잡히라고. 그럼 감형을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걸 순순히 받아들인 건가? 도망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이곳에 정착해서 용광로 앞에 서면서 잊고 있던 열정이 솟아버렸지, 뭡니까.”
묘족으로부터 도망친 미다스는 한동안 무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 자신의 열정으로 인해 마검을 양산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묘족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다보니 드워프로서의 열정이 되살아났다.
“유리 님께서 과연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가짜 마검을 만들었다는 죄책감이라든가, 고작 여기에서 지낸다고 열정이 살아난다든가. 드워프가 아니고선 절대 이해 못하실 겁니다.”
“아니.”
유리가 말했다.
“이해한다.”
“……정말입니까?”
“정말이다.”
드워프 일족은 태어나서 인생에 남을 만한 걸작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한다.
특히나 미다스 같은 드워프는 의외로 많다. 자신의 부족에만 머물러선 걸작을 만들 수 없어서 여행을 떠나는 부류들 말이다.
순수한 만큼 어쩌면 받는 죄책감도 배로 컸으리라.
“보여주지.”
이렇게 된 김에 유리는 손을 뻗었다.
미다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무슨 행동을 하는 건지 아직까지 알지 못했다.
그 순간.
그의 손아귀에서 피가 뭉글뭉글 뭉쳐서 작은 검이 만들어졌다.
“티, 티티티, 티르빙!!!”
미다스의 손에 들려있던 술잔이 바닥에 떨어졌다.
진짜 티르빙을, 그것도 주인이 제대로 다루는 마검을 본 미다스는 너무 놀라서 제대로 말조차 못했다.
“어, 어떻게.”
“하나 묻지, 미다스. 내가 악한 존재인가?”
“그건……!”
“대답하기 어려운가 보군. 그럼 질문을 바꿔서, 티르빙으로 악한 것들을 죽이면 자네의 마음이 조금은 덜어질까?”
유리의 티르빙 소유는 아직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여전히 티르빙을 공식적으로 알릴 시기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적당한 타이밍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만 해결하면 미다스의 죄를 정말로 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유리 입장에선 그의 죄를 덜어낼 필요가 있었다.
“마음 같아서 난 자네를 이 자리에서 죽이고 싶어. 작전 중에 범죄자 사망은 흔한 일이니까. 더구나 자네의 가짜 마검이 1년 전에 내 목숨을 노렸어.”
“가, 가짜 마검을 누가 썼습니까?!”
“타나토 형님이 사용했다.”
“기어코 가짜 마검을……! 죄송합니다!”
“냉정하게 보면 내가 죽을 뻔 했던 건 자네와 상관없지. 전쟁이 벌어졌다고 무기를 만든 대장장이에게 따질 순 없지 않은가.”
전생의 대한민국 땅이었으면 무기 소지부터가 불법이었을지 몰라도.
이곳 세계에서 작은 칼 한 자루 허리에 차는 것쯤이야 흔해빠진 일이었다.
그것이 설령 가짜 마검이라 해도 유리에겐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건 누가 검을 들었느냐, 였으니.
“나와 거래를 하지.”
“어떤 거래입니까?”
“가문으로 돌아가서 죄를 실토하되 진짜 마검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 증언하도록.”
미다스가 나이트워커에 붙잡힌 건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말인 즉, 그때부터 진짜 마검이 가문의 영지에 있었고, 다이올드는 그 유무를 알고 있었다.
가짜 마검을 만들라고 종용하기 이전, 진짜 마검이 누구에게 있었는지 알려지는 순간.
차기 가주를 놓고 벌이는 경쟁의 구도는 분명 유리에게 기울어질 터.
“그런 거라면 거래도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모든 걸 실토할 작정이었습니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으니까요.”
“진짜 거래는 따로 있다.”
“뭡니까?”
유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슈나이더를 찾고 있다. 그 자의 행방이 내게 필요하다.”
* * *
슈나이더.
갈락타시스에서 렉슬러를 아직 이기지 못했던 시기에 ‘마수의 손’을 썼던 적이 있었다.
그 손과 손이 달린 조각상을 바로 슈나이더가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진짜와 너무나 똑같이 만들어내서 분간할 수가 없을뿐더러, 능력마저 거의 비슷하게 구현해내는 자였다.
그러나 미다스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슈나이더는 몇 백 년 전 사람입니다. 그 자가 살아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니, 자넨 알고 있어.”
“…….”
“당장 대답하기 곤란한가 보군. 시간을 주지. 그러나 체포를 피할 순 없어. 그것만은 명심하도록.”
이후 미다스는 동굴에서 필요한 짐을 정리하겠다고 잠시 남았고.
유리는 기사단을 끌고 영역 외곽에 캠프를 마련해서 며칠 여독을 풀고 돌아가기로 했다.
미다스가 도망갈 우려는 없었다. 채럿의 동물들이 그를 감시했으니까.
늦은 밤, 유리는 미다스를 살피고 모닥불 근처로 돌아와 앉았다.
옆에는 채럿이 있었다.
“어때요?”
“담담해. 이쯤 되니까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거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야.”
“의외로 순수하신 분 같더라고요. 여기선 무구가 아니라 농기구를 만드셨다면서요?”
나이트워커의 정보망에서 미다스는 묘족에게 보호를 받는 대신, 견족과의 전쟁에 필요한 무구를 만든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정보와 달리 미다스가 만드는 건 죄다 농기구였다.
수인들은 보통 사냥을 하면서 살기 때문에 농업적으로 하나도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미다스는 그들에게 농사법을 하나씩 가르치며 농기구를 제작했다.
일반적인 고양이와 달리 채식도 가능한 수인이기도 했고.
덕분에 농사는 이곳 야생 지대에 더할 나위 없는 풍요를 가져다 줬다.
“그보다 오라버니. 빅핸드에 대해서 더 알아봤는데요.”
채럿은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일부러 가주님이랑 아버지 양쪽 모두에게 접근했던 거 같아요.”
“두 분과 모두 입을 맞춰놨다는 거네.”
“그런 거 같아요.”
흑실에서의 대화에서 해소되지 못한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처음엔 다이올드와 빅핸드가 짠 시나리오라 여겼고.
다음엔 다이올드가 아닌 벤헬링턴과 짠 시나리오라 여겼다.
그럴만한 정황들이었으나, 문제는 정황일 뿐이고 사실로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채럿을 통해 급하게나마 빅핸드의 뒤를 캐보았다.
“아마 빅핸드는 나 아니면 형님들 누구라도 미다스를 잡길 바랐을 거야. 누가 잡아들이든 그쪽 편을 서겠다는 거지.”
시나리오를 짠 뉘앙스는 분명히 강하다. 흑실에서 너무나 쉽게 빅핸드의 말에 다이올드가 동조했으니까.
그러나 벤헬링턴에게도 접근한 것 같았으니.
누가 미다스를 잡아오든 간에 미다스는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한 꼴이 되었다.
“적어도 내 편에 선 건 아니지만 말이야. 내 편에 서려고 했다면 나한테도 접근했어야지.”
“빅핸드의 저울엔 가주님과 아버지만 있었던 거군요.”
이로서 유리가 가문의 봉신가문과 장로들로부터 어느 입지인지 확실해졌다.
그들은 절대 유리를 인정할 마음이 없었다.
“오라버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뭔데.”
“이대로라면 오라버니가 가주가 되긴 어려울 수도 있어요.”
채럿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걱정 어린 말투를 읊조렸다.
“저야 오라버니가 누구보다 가주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가문 내에서 힘을 얻지 못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차기 가주가 되는 조건은 간단하다.
현 가주가 지목하면 된다.
다만, 힘으로 모든 걸 결정하는 용가라 해도 장로와 봉신가문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퇴출 절차가 이뤄진다.
유리가 딱 그럴 수 있었다.
“그 부분은 의외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 진짜요? 그치만 빅핸드, 그 드워프만 하더라도 오라버니를 싫어한다면서요.”
“싫어하는 이유가 뭘까.”
“옛날에 오라버니가 돈을 잔뜩 가져가서?”
“뭐어어…… 그건 부정 못하겠네.”
사실 돈은 치사한 변명에 불과했다. 드워프가 가진 재력에 비해 유리가 가져간 천만 골드는 솔직히 우스운 액수였다.
“가문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이유 따위 간단해. 다이올드 백부님이 건재해서야. 다들 그분에게 가주가 될 거라고 걸었으니까 날 미워하는 거지.”
“아, 그렇긴, 하죠…….”
“그럼 답이 간단해지지. 백부님을 무너뜨리면 돼.”
순간 채럿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미워하는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였으니까.
그래서일까.
채럿은 다이올드 이름이 나올 때마다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채럿, 백부님은―”
“기습이다! 기습!”
대화를 이어가려는 그때.
멀리서 기사단이 피운 횃불이 일제히 일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