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71
제171화
타나토와 제몬은 캠프를 나와 어두운 숲을 거닐었다.
곁을 따르는 기사들마저 내팽개 친 채 나온 형제의 얼굴엔 뜻 모를 결연함이 풍겼다.
가짜 마검을 들고 샤를린느를 기습하러 갔을 때와는 달리 불안감이 조금도 안 비쳤다.
그나마 뒤따르던 제몬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좌우로 쉼 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형, 이거 괜찮을까? 아버지가 열심히 준비해주셨겠지만, 저번처럼 또 유리한테 당하면―”
“원래 우리 목적은 이거였잖아. 헛소리 하지 마.”
“그, 그렇지?”
오늘 낮에 형제가 당한 건 전부 연기에 불과했다.
물론, 정말로 묘족의 목을 베고 싸움이 일어나서 그 틈에 미다스를 데리고 도망치면 더 좋았으리라.
유리가 대신 싸워주고 형제가 공을 가로채면 더 좋고.
어쨌든 묘족에게서 패배하는 것도 가정해놨기에 아직 형제만의 계획엔 차질이 없었다.
“빅핸드인지 스몰핸드인지, 난쟁이 새끼를 믿은 것부터가 틀렸지.”
“하긴, 드워프들은 약아빠졌으니까.”
애초에 다이올드와 형제는 빅핸드를 안 믿었다. 벤헬링턴과 먼저 만났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곧장 다이올드를 찾아와서 가짜 마검에 대해 언급하더니 미다스에게 뒤집어씌우자는 계획을 읊었다.
딱 봐도 벤헬링턴과 다이올드를 놓고 저울질하는 꼴이었다.
“열등분자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우리한테 확실히 줄을 대지 않은 것도 용서할 순 없어.”
“그렇지! 그렇고말고! 차기 가주는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걸!”
다이올드는 당연히 빅핸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감히 용인을 두고 간을 보다니!
혀를 뽑아 죽여 마땅했으나, 그 전에 가짜 마검과 진짜 마검의 출처를 숨겨야만 했다.
빅핸드는 자신의 입지가 있어서 진짜 마검의 경위를 발설하지 않을지 몰라도.
사실상 외부인인 미다스는 얼마든지 진짜 마검이 어디서 났는지 실토할 수 있었다.
그래선 안 되었다.
유리가 진짜 마검이 다이올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알았다간, 과거 유리를 암살 시도하려 했다는 사실이 들통 나고 만다.
그것만은 절대로 막아야 했다.
물론.
형제는 아버지의 과거까지는 몰랐다.
그냥 시키니까 따르고 있었다.
“근데 이 놈들은 어디 있는 거야? 여기서 만나기로 했잖아?”
“여기, 온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어둠을 뚫고 늑대 무리가 나무 사이사이로 한 마리씩 걸어 나왔다.
묘족보다 덩치가 배로 큰 그들은 형제가 한참 턱을 들어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갈기털이 풍성한 늑대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섰다.
“빨리도 왔군. 약속한 시간보다도 훨씬 늦었어.”
“미안.”
“됐다. 그보다 약속한대로 병력을 끌고 왔겠지?”
“충분. 길, 열어줘라.”
“길이랄 것도 없다. 정면에 있는 녀석들만 처리하며 돼.”
“진짜?”
“묘족은 신경 꺼라. 크로무슈인지 뭔지 하는 짐승은 오늘 한 번 죽었던 상태라 회복하기까지 오래 걸릴 것이다.”
“크로, 무슈…….”
견족에게 그녀의 존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묘족을 떠나 보이지 않던 신수가 얼마 전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그러나 오늘부로 용가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전쟁을 끝낼지도 몰랐다.
“우리, 간다.”
투둑, 투둑.
늑대 무리가 슬금슬금 묘족 영역으로 접근했다.
소동은 이때부터였다
*
갑자기 일어난 소동은 묘족이 먼저 알아챘다. 야행성인 고양이들이 기습이라고 소리치자 이에 기사단이 즉각 반응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채럿의 낯빛이 흑색으로 변했다.
“어라? 어, 어째서 쥐들한테 답이 없었지? 분명 주변에 경계하라고 일러뒀었는데…….”
“쥐들을 피했거나, 쥐들이 피했거나.” “아, 그럼!”
“견족이야.”
아우우우!!!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소름끼치는 하울링이 숲을 뒤흔들었다. 한쪽에서 들린 하울링은 반대편에서, 반대편에서 들린 하울링은 다른 쪽에서 반응하듯 들렸다.
‘캠프 전체가 포위됐다.’
채럿의 동물들이 반응하지 못했다. 그런데 포위 당했다.
누가 미리 동물의 존재를 알고 있거나 손을 쓰지 않고선 이런 기습은 불가능했다.
미냐아아!
영역 안에서도 묘족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그쪽 방향에선 벌써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지 싸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채럿, 형님들을 마지막으로 어디서 봤어?”
“두 시간 전 즈음에요. 밥도 안 먹고 어디로 가시더라고요.”
“형님들 짓일 수 있어.”
“그런……! 어떡하죠, 오라버니?”
“유리 님!”
마침 블레이크와 이자벨이 유리에게 합류했다. 다른 기사들은 별다른 명령 없이 알아서 전투 대형을 갖췄다.
“블레이크 경, 여길 맡기겠다.”
“알겠습니다.”
“이자벨과 채럿도 여기 남아. 난 미다스에게 가봐야겠어. 아무래도 형님들이 선수 치려고 세워놨던 계획인 모양이야.”
“혼자 가겠다고?”
“그럴 수밖에 없어. 이대로 떼로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간 묘족한테 오해를 받을 수도 있어.”
만에 하나 타나토와 제몬이 미다스를 노리는 양동작전을 펼쳤다면, 더더욱 기사단을 몰고 갈 수 없다.
지금쯤 형님들이 영역 안에서 묘족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죽여 가며 활개치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어차피 영역 출입이 자유로운 건 유리 밖에 없었다.
“알겠다. 다녀오도록.”
“조심하셔야 해요! 오라버니들이 또 무슨 짓을 했을지 몰라요!”
“응.”
유리는 곧장 묘족 영역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만, 되도록 기척을 죽여서 묘족들 몰래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그들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냥! 용가가 우릴 속인 거다냥!”
“치사하다냥!”
“일단 아이들을 대피시켜라냥! 견족이 여기까지 왔다면, 방어선은 뚫린 거나 다름 없다냥!”
가는 길에 엿들은 대화에서 묘족은 이미 유리를 포함한 원정대에게 적의를 띠었다.
다행이라면 견족 때문에 원정대까지 신경 못 쓰고 있었다.
유리는 그 틈에 묘족의 시선을 피해 미다스가 있는 동굴까지 다다랐다.
“미다스!”
동물이 무너져라 유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밖에서 봤을 때 불이 꺼져 있어서 혹시나 했지만, 바로 반응이 왔다.
“유리 님!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미다스가 등에 짐 보따리를 한아름 짊어진 채 뛰어오고 있었다.
동굴 중간에서 조우한 그는 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아무래도 형님들이 견족과 내통을 한 거 같다.”
“헛! 견족을?!”
“이상할 것도 없어. 자네를 체포하는 게 임무니까 견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
“그렇다 해도 이러면 기껏 묘족과 쌓은 신뢰가 무너지지 않습니까!”
“그 또한 형님들의 목적이지. 신뢰를 쌓은 건 나지, 형님들이 아니니니까.”
유리도 형님들과 같은 플랜 B를 세워놨었다. 혹여 묘족과 교섭이 안 됐을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이로 인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벌어져 미다스를 체포할 기회가 생긴다.
다만, 플랜 B를 실행했을 땐 아군의 피해가 가늠이 안 되었다.
그래서 유리 혼자서 묘족을 상대하는 걸 플랜 A로 세웠었다.
거기다 운이 좋게도 묘족의 왕인 크로무슈가 있어서 그녀만 이김으로서 미다스와 만날 수 있었다.
근데 그런 계획이 전부 일그러지기 직전이었다.
“먼저 와있었군!”
동굴 입구에서 두 개의 인영이 들어섰다.
횃불을 들고 온 둘은 타나토와 제몬이었다.
유리는 미다스를 등뒤로 밀며 가로막았다.
“끝까지 초를 치는군요, 형님들. 다된 밥상을 엎으시려는 속셈입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걸. 우리의 작전은 미다스를 잡는 건데 밥상을 엎는다니?”
“맞아! 미다스만 잡으면 된다고!”
“미다스는 이미 잡았습니다. 자수해서 같이 가겠다고 했고요.”
“그 말을 순진하게 믿는군! 네가 그래서 열등분자인 거다!”
“맞아! 네가 괜히 열등분자겠어?”
후우.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
더 짜증나는 건 차라리 그들이 공적 욕심을 내줬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론 공적 쌓기가 목적이겠지만, 그들 자신의 공적은 아니었다.
정확힌 아버지 다이올드를 위해서겠지.
“형님들을 여기서 죽여 버리고 싶은데, 동시에 연민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짜증나는군요.”
“크크크! 누가 열등분자 인간 아니랄까봐. 연민을 왜 느껴? 쓸모없고 방해되면 그냥 죽이는 거지!”
“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기에 놔뒀습니다.”
“뭐?”
유리는 이 참에 솔직한 심경을 조금 털어놨다.
“형님들 말대로 전 인간입니다. 용인으로서 살아본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동정하고, 연민하고, 가끔은 감정대로 움직입니다.”
“갑자기 웬 일장연설이야?”
“그러나 전 형님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언제든 죽일 수 있으니까요.”
“이게!”
제몬이 발끈했으나, 타나토가 어깨를 잡아 제지했다.
거만하던 타나토의 낯이 덩달아 진지해졌다.
“건방지네. 죽이려면 죽일 수 있었다고? 인간의 감정 때문에 우릴 못 죽인 건 아니고?”
“처음엔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까 채럿과 대화를 하면서 하나 깨달았습니다.”
“뭘?”
“전 형님들보다 용인답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요.”
“말도 안 되는 개소릴.”
“이해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전 못 죽이고 있었지만, 안 죽이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죠. 왜냐하면 형님들이 절 죽일 수 없으니까요.”
채럿은 아버지인 다이올드와 친오빠들을 앞으로 어찌 대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유리는 채럿의 마음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했다.
그들이 죽든 말든 상관 없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유리는 형제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형님들은 저보다 약합니다.”
“뭐, 뭣?!”
순간 제몬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용인은 약한 자를 신경 쓰지 않죠. 그들을 굳이 죽이거나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훨씬 강하니까요.”
“네놈이 우리를 한참 아래로 보고 있다는 거야?!”
“맞습니다.”
“이게 듣자듣자 하니까……!”
“가만, 제몬.”
계속해서 발끈하는 제몬과 달리, 여전히 타나토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는 전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말한다.
“인정한다. 넌 우리보다 강해.”
“형!”
“가짜 마검을 빌리고도 널 이기지 못했고, 넌 졸업 시험 때 더 강하다는 걸 증명했어.”
“…….”
“오늘도 못 이길 거다. 아니, 못 이겨. 기적을 바라지 않고서 불가능해.”
[쟤 갑자기 왜 저러니?] [딱히 뭘 숨기고 있는 거 같지도 않고. 이해가 안 되는 걸요.]의문스러운 대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티르빙과 아스칼론은 계속해서 형제를 경계했다.
가짜 마검 같은 또 다른 무구나 비장의 수가 있지 않고선 나올 수 없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유리도 마찬가지로 형제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딱히 마법을 준비하는 모양새도 아니었으니.
“어차피 나에겐 이게 마지막이야.”
“……형?”
“제몬. 넌 나가.”
“무, 무슨 소리야? 나가라니!”
“여긴 내가 처리할 거니까 나가라고.”
“그치만―”
“꺼져!”
기어코 화를 내는 타나토.
그의 분노를 자주 봤던 유리와 달리, 처음 분노를 사본 제몬은 어쩔 줄 몰라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마지막으로 타나토는 그의 어깨를 잡아 거칠게 동굴 밖으로 밀었다.
“꺼져. 얼른 꺼져!!!”
“……알았어…….”
영문도 모른 채 혼이 난 제몬은 간신히 울음을 참고 바깥으로 뛰었다.
그렇게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타나토는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무언가를 꺼냈다.
“다 같이 죽는 거야.”
“……!”
다름 아닌 아티팩트였다.
어떤 아티팩트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꺼내는 순간부터 마나가 흐르며 동굴 안을 꽉 채웠다.
흡사 인화성 가스가 찬 감각이 들었다.
그리고 손 쓸 틈도 없이 폭발이 일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