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72
제172화
콰콰쾅!
폭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달아 화염과 순간적인 파공이 타나토를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주변의 것들을 모조리 부쉈다.
콰릉! 콰르릉!
기어코 충격파가 동굴 천장까지 닿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미다스! 뛰어라!”
“알고 있습니다!”
입구로 나가기엔 이미 늦었다.
두 사람은 동굴 안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가면서 유리는 뒤를 돌아봤다.
쏟아지는 돌 더미 아래로 타나토의 얼굴이 교묘히 스쳐간다.
‘웃고 있어?’
제대로 뭘 확인하기도 전에 천장이 무너져 그를 덮쳤다. 유리도 힘껏 달려서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타나토가 죽건 뭐하건 신경 쓸 수가 없었다. 폭발로 인하여 동굴만이 아니라 산 전체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깥 상황을 모르니 산이 무너지는 것까진 알 수 없어도, 어쨌든 한시라도 가만히 있어선 안 되었다.
드워프의 신체적 특성상 미다스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뒤쳐진다 싶으면 억지로 어깨를 잡아 끌었고, 그러다 간혹 갈림길이 나오면.
“이리로 오십시오!”
미다스가 유리를 끌고 안전한 방향으로 안내했다.
뒤에선 낙석이 천둥번개 치는 소리를 내며 둘을 쫓아왔다. 뱀 한 마리가 아가리를 벌리고 잡아먹을 기세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이런!”
두 사람 앞에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유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벽을 더듬으며 머릿속으로 어찌해야할지 계산했다.
부숴야 할까.
아니면 미다스가 어디 숨겨놓은 입구라도 있을까?
그러나, 무너지는 산은 잠깐의 망설임을 용서치 않았다.
쿠콰쾅콰쾅!
등 뒤로 소리가 가까워지자 얼른 몸을 돌렸다.
이대로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다. 유리는 일단 되는대로 힘을 전부 끌어모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툭, 하고 갑자기 낙석이 멈췄다.
“어……라?”
그야말로 그냥 갑자기 멈췄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선 계속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코앞까지 쫓아왔던 낙석은 어느 ‘선’을 기점으로 끊어지듯 멈췄다.
어리둥절한 유리와 달리 미다스는 태연하게 땀을 흠씬 닦았다.
“흐아아, 죽는 줄 알았군요! 자폭이라니! 용가의 사람들이 자폭도 했었습니까?”
“아니.”
유리도 숨을 고르며 지나온 자리를 쳐다봤다.
아무리 그래도 자폭이라는 강수를 선택할 줄은 몰랐다.
아니, 이건 선택 따위가 아니다. 선택은 곧 결과를 추구하는 것.
자기 자신이 없는 결과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하물며 타나토는 용인이다. 용인이 자살을 선택했다는 건 들어본 적 없다.
“자살은 몰라도 우리가 전부 죽길 바랐던 모양이군.”
“예? 하지만 저를 데려가야 하지 않습니까?”
“아까 말했었잖나. 작전 중 범죄자 사망은 흔하다고.”
예상했었다.
다이올드라면 미다스를 이 자리에서 죽이라고 시켰겠지.
작전은 작전대로 성공시키고, 진짜 마검의 출처도 영영 숨길 수 있을 테니까.
유리는 무너진 돌더미로 다가가서 하나씩 티르빙으로 건드려봤다.
‘힘으로 뚫을 수 있을까.’
[가능하긴 하지만, 다시 무너질 걸?]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지금까지 달린 거리로 보아 동굴 깊이가 꽤 되었다. 깊이만큼 구멍을 낼 순 있어도 그 거리를 다시 달려 나가는 게 문제였다.
어쩌다가 나갈 수 있다고 마찬가지.
미다스가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를 들쳐 업으면 유리가 느려져서 더 안 되고.
“미다스, 여기로 날 데려온 이유가 있겠지? 그러니까 무너지던 돌들이 갑자기 멈췄고.”
“아, 그렇고 말고요! 보다시피 이런 문이 있지 않습니까!”
미다스가 자랑스레 막힌 벽을 가리켰다.
막다른 길에는 분명 사람의 손길을 탄 흔적이 역력했다. 벽면이 매끄럽고 그 중심에 문이 달린 것 같은 틈이 있었다.
“여긴 뭐지? 문 같은데 문처럼 열리는 것 같지는 않고…….”
“여기 동굴은 한 번 무너지면 빠져 나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제가 그것도 모르고 이 동굴에 대장간을 차렸을까요! 드워프인 제가 장담하죠!”
쓸데없는 자부심에 유리는 질색팔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핫, 너무 아니 곱게 보진 마시고. 제가 바보 같이 이리로 모셨겠습니까? 여기가 유일하게 산이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을 지반이 있는 곳이죠!”
아하. 그제야 유리는 갑자기 멈춘 낙석의 원인을 이해했다.
드워프들이 보물을 저장하기 위해서 절대 안전한 창고 하나 쯤은 만든다고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공간으로, 미다스가 골든해머에서 훔친 물건들도 그런 창고에서 나왔었다.
“그럼 저 문이 자네의 창고라는 거군.”
“유리 님을 여기로 데려온 이유이기도 하고요!”
언뜻 봐선 절대 안 열릴 것만 같았던 문에 미다스가 손을 대니.
드르륵!
먼지와 함께 쉽게 밀려났다.
찬찬히 열린 문 저 너머에서 드러난 건 다름 아닌 보물들이었다.
“이게 다…….”
“하핫! 놀라셨습니까? 제가 묘족과 함께 일하면서 얻은 보석이나 광물로 만든 것들입니다!”
미다스가 가슴을 팡팡 치며 자랑스레 떠들었다.
보물 창고 안엔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것들이 넘쳐났다.
화려한 장신구부터 시작해서 누가 보더라도 신비로운 검, 유리 투구, 가죽처럼 유연하게 만든 철 갑옷 등등.
과연 드워프의 솜씨다운, 소위 ‘작품’이라 불릴 법했다.
“다는 못 챙기겠고. 언젠가 산이 무너지더라도 멀쩡한 곳에 따로 공간을 만들어서 보관했죠.”
“대단하군. 실력 좋은 드워프라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어.”
“하핫, 세공에만 특출난 몸인지라 무구들은 다른 드워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니, 그대라면 가짜 마검을 만든 게 이상하지 않아.”
흑실에서 빅핸드가 미다스가 가짜 마검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조금은 수상쩍게 여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빅핸드의 말에 따르면, 미다스는 세공 쪽에 훨씬 재능이 많다고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건 그 이상이었다.
세공이야 두말할 거 없이 뛰어났고.
무구를 만드는 솜씨도 여느 드워프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이걸 다 묻어두려고 했었다고?”
“탐나십니까?”
“아니라고 못하겠어.”
“흐흐, 나중에 일이 마무리 되면 얼마든지 가져가십시오. 저희가 살아 나간다면요.”
“그래도 되는 건가?”
“어차피 버리려던 것들입니다. 전부 아깝긴 하지만, 자식 같은 놈들은 전부 챙겼으니 됐습니다.”
물욕을 떠나서 좋은 무기를 봐버린 이상 욕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아마 검 좀 다룰 줄 알면 다 그럴 테지.
“그보다, 여기서 어쩌려는 거지? 숨겨놓은 입구라도 있는 건가?”
“에이, 그런 건 없고, 대신…….”
미다스는 보물방 안쪽에 다른 문을 가리켰다.
들어왔던 문보다 훨씬 문다웠다(?).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잠겨있는 걸쇠에는 온갖 사슬이나 자물쇠가 치렁치렁 달렸다.
더 귀한 걸 모셔놓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미다스를 따랐고, 그는 하나씩 자물쇠를 열었다.
그 안에서 발견한 건 밖에서 본 보물들과 달리 형편없는 것들이었다.
“전부 실패작인가?”
“그렇습니다. 저라고 항상 완벽하진 못해서요. 그리고 여기 실패작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미다스는 한 오크통을 가리켰다. 세로로 세워진 통에 무언가 잔뜩 꽂혀 있고, 위로는 하나씩 천으로 감싸져 있었다.
딱 봐도 검을 감싸놓은 모양새였다.
유리가 성큼 하나를 집었다.
그 때.
[윽! 야, 꼬맹이! 다, 당장 놔!]“……안 봐도, 알 거 같군.”
태연한 유리와 달리 티르빙의 괴로운 신음소리가 저 깊이서 올라왔다.
유리는 도로 검을 꽂아놓고 천만 걷었다.
“가짜 마검인가.”
“예! 물론, 그 놈들도 전부 실패작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폭탄이고요.”
“……!”
실패한 아티팩트나 마도구는 그 처리가 몹시 복잡했다.
위협적이고 파괴적인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마치 메테오를 연습할 때 다른 상급 마법사를 옆에 두는 것과 똑같았다.
미다스는 이걸 폭발시키자는 뜻으로 유리에게 실패작들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이걸 폭발시켰다간 정말로 산이 없어지겠지만.
“불을 끄기 위해서는 더 큰 폭발이 필요하다는 거, 아십니까?”
미다스가 이죽 웃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즐거울 거라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유리도 그를 따라 슬쩍 웃었다.
* * *
“빌어먹을…….”
먼지가 운무처럼 피어오르는 흙더미 속에서 타나토가 몸을 일으켰다.
폭발에 휘말리면서 옷가지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옷 속에 입었던 갑옷도 마찬가지.
갑옷의 형태는 멀쩡했으나, 미리 씌워두었던 마법이 완전히 사라졌다.
화염 내성에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마련한 갑주였다.
“짜증나네.”
타나토는 옷가지를 완전히 찢어 버리고 갑옷만 입은 채 일어났다.
상처 빼곤 부러진 곳은 없었다. 쓸데없이 단단한 갑옷이었다.
“짜증나. 짜증난다고.”
전방에 무너진 동굴에선 빠져나올 틈이 보이지 않았다.
저 속에서 유리가 죽었을까.
죽어야 한다.
죽이라고 아버지 다이올드에게 명령 받았고, 자폭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택했다.
그런데 자꾸만 머릿속에선 알 수 없는 확신이 생긴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는 살아있다.
“×발!”
왜, 왜, 왜!
죽어야 하잖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잖아!
근데 어째서 자꾸만 놈이 살아있다고 판단하는 거지? 근거가 일절 없으면서!
설명할 수가 없는 확신이 자꾸만 타나토를 괴롭혔다.
“×발, 짜증나.”
지금 이 순간, 차라리 폭발에 휘말려서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 적어도 이딴 감정이 들지 않을 텐데.
‘왜 난 살아있어서……!’
어떻게든 이 ×같은 기분을 해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죽기엔 억울할 것만 같았다.
그러면 유리의 시체를 찾자.
어차피 뒤를 보니 나가는 길도 막혔다. 저 안으로 들어간 유리보다 깊이가 얕아서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지만.
“찾는다.”
타나토는 앞쪽에 쌓인 돌더미를 바라봤다.
그의 실력으로 여길 뚫고 가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기다렸다.
유리라면 반드시 살아서 이 동굴을 뚫고 나올 테니까.
지이이잉!
그 순간, 갑자기 동굴 안쪽으로부터 기이한 마찰음이 들렸다.
파동과 파동이 부딪히면서 발생한 듯한 소리는 점점 바닥과 천장을 진동시켰다.
“역시!”
놈이 살아있다.
짜증나는 녀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유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기도 했다.
어째서일까.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좋아서 얼른 놈을 만나고 싶다는 일념만이 가득했다.
“어?”
그런데 어째 안쪽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시작은 티르빙과 흡사한 소름끼치는 감각이 통각을 자극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농도가 진해졌다.
유리가 이렇게까지 마검을 썼던 적이 있던가?
숨겨놨던 힘이 있다면 몰라도. 아니, 이건 힘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티르빙치곤 과한 불쾌감에 마나 자체가 불안하달까.
키이이이이잉!!!
소리가 내는 마찰이 더 커졌다.
슬슬 타나토도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분명 폭발한다.
그것도 자신이 아티팩트로 터뜨린 위력보다 더 강하게.
“아, 아아, 안 돼!”
죽고 싶다고 할 때는 언제고. 타나토는 막힌 입구 쪽으로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이내 돌무더기에 달라붙었다.
“사, 살려―!”
슈우욱, 쾅!
뭐라 외치기 직전, 일순 공기가 동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임계점에 다다르자 폭발했다.
아까와 비교하면 불길이라든가 뜨거운 열기는 없었다.
오로지 공기가 수축했다가 팽창하며 산 내부로부터 터져 나왔다.
마침 입구 쪽 돌들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빠져나가는 잔해 속에는 타나토도 섞여 있었다.
* * *
폭발은 순식간에 일어났다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폭발을 견디지 못한 산은 말 그대로 송두리째 뽑히듯이 전부 날아갔다.
그 광경을 야생 지대 경계에 있던 수인들마저 볼 수 있었고, 혹자는 없던 화산이 폭발했다며 착각하기까지 했다.
엄청난 파괴력에 분명 유리와 미다스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아주 멀쩡했다.
미다스는 창고 문을 열고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문 밖에 잔해가 막고 있었으나 힘으로 밀기에 충분했다.
“풉! 쿨럭, 컥! 후우. 엄청나군. 실패작의 오작동이라지만, 이게 이럴 수나 있나?”
실패작의 오작동을 일으켜서 폭발을 일으키자는 건 미다스의 제안이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힘을 쓴 방향이 산 위로 향해 있어서 산만 날아갔지.
만약 지평선이나 지하로 향했다면 야생 지대 일대가 전부 날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위력의 원천은 유리가 실은 마나의 순도 때문이었다.
‘과연 마검이 택하신 분! 신물에 어울리는 힘이로다! 근데, 유리 님은……?’
폭발에 앞서 유리는 창고 밖에 있었다. 창고 안에서 폭발을 일으킬 수는 없었으니까.
헌데 문 밖에 있어야 할 그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이 저 멀리 흙먼지 아래서 악 소리를 내질렀다.
“유리! 이 새끼 어디 있어!”
입고 있던 갑옷마저 엉망이 된 타나토였다.
얼굴이 반쯤 피로 덮인 그는 머리를 좌우로 빠르게 돌리며 유리를 찾았다.
그러다 유리 대신 미다스를 발견했다.
‘작전 목표!’
분노로 일그러졌던 감정이 그를 보자마자 조금 누그러졌다.
어쨌든 이 모든 사태의 시작점은 미다스였다. 그만 죽인다면 본 목적은 달성하는 법.
타나토는 땅을 박차고 나갔다.
“죽엇!”
미처 미다스가 반응할 수 없을 속도로 쏘아나간 타나토.
하지만 한 발 딛는 순간.
눈앞으로 피와 살점, 조각난 뼈가 아래서 튀어 올라왔다.
그것이 타나토 자기의 발등이라는 걸 알아채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