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73
제173화
가짜 마검을 다발로 손에 쥐는 순간, 알아서 마나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유리는 일부러 가짜 마검들이 마나를 빨아들이도록 놔뒀다.
결국 가짜는 진짜를 이길 수 없는 법. 하물며 이것들은 실패작이었다.
[가짜들이 어딜!]딱히 제어하지 않고도 티르빙이 차례차례 가짜 마검에 깃든 힘들을 밀어내었다.
그러자 가짜 마검들이 혈관처럼 유연해지면서 부풀더니 이내 마나가 터져 나왔다.
쿠구구궁!
산 하나쯤은 우습게 날릴 파괴력이 전신을 덮쳤다.
그 직전에 유리는 티르빙으로 갑주를 만들어서 몸에 씌웠다. 단단한 갑주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았으나, 바닥에 서있는 건 불가능했다.
버티지 못한 몸뚱어리가 하늘을 날아 아무 곳에 처박혔다. 이윽고 머리 위로 돌들이 떨어져 그를 묻었다.
그리고 한참 뒤.
‘덕분에 살았군.’
유리는 멀쩡했다.
갑주만이 아니라 그의 주변에 펼쳐진 얇은 막이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나토가 자폭했다고 너도 자폭이니?] [참 무모한 주인님이라니까요.]‘괜찮냐고 묻기 전에 타박부터 하는 거야?’
[멀쩡하니까.] [멀쩡하니까요.]어째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의 호흡이 찰떡처럼 붙고 있는 느낌이다.
되도록 안 친해졌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유리는 바닥에 있던 작은 원형 아티팩트를 주웠다.
얇은 막의 정체는 이 아티팩트로 비롯된 것으로, 미다스가 만든 작품이었다.
‘성능 하나는 확실하네.’
타탓!
그때, 머리 위로 수상쩍은 살기가 느껴지고 누군가가 달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진한 살기인지 묻혀있는 유리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타나토 형님이다!’
아마 그가 미다스를 발견했을 수 있다.
그런 가정이 세워지자 유리는 타나토의 발걸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흙먼지가 떨어지자.
푸욱!
망설임 없이 무형검을 형성해서 천장을 향해 내질렀다.
살과 뼈가 베이는 감각이 손끝을 타고 흐른다.
“크악!”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타나토가 비명과 함께 엎어졌다.
그 아래서 유리가 단숨에 돌 더미를 부수듯 밀쳐내며 나왔다.
“위험했군.”
“유, 유리 님!”
미다스가 다가오려고 하자 유리가 손바닥을 보이며 접근을 막았다.
그리곤 타나토를 내려다봤다.
“×발, ×발! ×발!!!”
넘어지면서 검을 놓친 그는 일어나지 못하고 검이 있는 곳까지 기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본 그 모습이 몹시도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검에 손이 닿기 직전, 유리는 칼날을 발로 짓눌렀다.
“형님.”
“큭! 이 개자식!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작전 간 지휘권은 형님에게 있지만, 더 이상 작전 수행 능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겠습니다.”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형님의 지휘 권한을 모두 박탈하고, 가주 후보 싸움의 일환으로 형님을 즉시 벌하겠다는 뜻입니다.”
“네, 네가 뭔데!”
“가짜 마검으로 처음 저를 죽이려고 하셨을 땐 형님이 뭐였기에 그러셨습니까?”
“너 같은 열등분자는 죽어도 마땅해!”
“……전 이미 한 번 기회를 드렸습니다.”
타나토에게 나름의 자비를 베풀었던 적이 있었다. 가짜 마검에 어머니가 죽을 뻔 했었는데도 그를 살려줬으니까.
솔직히 그 이후로 죽이고 싶었던 마음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죽어도 그들은 할 말이 없겠지. 어쩌면 벤헬링턴도 죽어도 괜찮다 할 것이다.
차기 가주 싸움이란 그런 거니까.
그럼에도 유리는 최대한 자비를 베풀었다.
“죽음만이 능사가 아니기에, 전 형님께 충분히 갱생의 시간과 기회를 드렸죠. 그런데 여전하시군요.”
“자애를 베풀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자비도 아니라 자애라?”
“열등분자들의 대가리라면 자비보단 자애겠지! 자비는 강한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니까!”
결과적으로 자비가 되었을지언정, 자애로운 마음 때문에 자비를 베풀었다니.
궤변만도 못한 혀놀림이 이제는 슬슬 지쳐갔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계시군요. 전 형님들에게 조금도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뭐?”
“자애와 자비를 구분하실 시간에 저와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지 고민하시는 게 나으셨을 겁니다.”
그래, 진실은 딱 하나다.
타나토는 어머니를 죽이려 했었고, 오늘에 와서 자신마저 죽이려 들었다.
이 점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줬던 기회는 다시금 칼끝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 그렇다는 거지…….”
타나토는 검을 쥐었던 손을 놓고 바닥을 짚어 천천히 일어났다.
앞면을 보니 갑옷 곳곳에 구멍이 숭숭 났다. 까만 구멍마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부러진 한쪽 다리와 팔이 너덜거리고, 부어버린 눈 한쪽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이만한 상처들을 봐선 반격은커녕 살기 힘들 게 뻔했다.
“어차피 난 죽을 거였어. 이대로 그냥 돌아가도 죽는 건 마찬가지.”
타나토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등허리에 달려있던 마법 주머니를 열었다.
그 속에서 검 두 자루를 꺼냈다.
하나는 또 다른 가짜 마검.
그리고 또 하나는.
‘성검……!’
유리의 시선이 미다스에게 향했다.
그가 미뭉도 만들었다고?
“아, 아닙니다! 저건 제 작품이―!”
꾸드드드득! 꾸득! 꾸득!
마검과 성검을 양손에 든 타나토에게서 기괴한 변화가 일어났다.
성검을 쥔 좌측은 뼈와 살이 정상적으로 붙었고, 마검을 쥔 우측은 도리어 더 망가뜨리면서 마수처럼 변했다.
“네 녀석도 성력과 마검을 같이 가지고, 있는, 데! 나라고, 못, 할, 까! 크읏!”
타나토가 이를 물고 밀려오는 온갖 통증을 버텼다.
채럿이 일전에 가짜 마검이 더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했었긴 했지만.
설마 성검까지 들고 있을 줄이야.
마검으로부터 주인으로 인정받은 유리였기에 마검에 의한 부작용을 겪지 않았었다.
그러나 타나토는 마검의 부작용뿐만 아니라 성검의 부작용도 겪어야 한다.
더구나 상이한 두 가지 힘이 코어에서 충돌하면서 영혼을 파괴하고 있을 터.
‘자폭이 아닌, 그야 말로 자살.’
타나토가 어떤 심경일지.
무슨 마음으로 자폭에 이어서 마검, 성검을 같이 들었는지.
유리는 그를 충분히 이해했다.
‘지금 죽여야 한다.’
안타까우나 지금이야 말로 끝을 낼 수 있는 적기였다.
타나토는 히어로물의 주인공이 변신하듯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
이대로 성검과 마검이 정말로 그의 손에 들려서 휘둘러질 수 있다면 유리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티르빙을 들고 달려들려는 찰나.
“어리석다.”
이질적인 목소리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타나토의 가슴을 뚫고 웬 손이 튀어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이 아니라, 짐승의 앞발과 같았다. 털이 수북하고 손톱이 뾰족했다.
“커억!”
갑작스러운 기습에 타나토의 손에서 성검과 마검이 떨어졌다.
입가에서 까만 피가 울컥 뿜어졌다.
유리도 전혀 몰랐던 제 3자의 등장에 앞으로 나아가려다가 말았다.
‘강자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살기나 징조도 없었다. 소리에서도 들리는 것 없이 타나토의 뒤를 노렸다.
결코 평범한 실력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10서클. 아니, 그 이상이다.
“크르르르, 어리석은, 용인. 죽어. 쓸모없어. 추잡해.”
타나토 머리 뒤로 기습자의 머리가 드러났다.
노란 눈동자와 갈기털이 수북한 얼굴, 송곳니로만 이뤄진 치아.
견족의 늑대인간 중 하나였다.
그를 본 타나토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커졌다.
“네, 네가 어째서!”
“받은, 대로, 일, 한다.”
유리도 얼핏 견족의 침입이 양동 작전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또한 다이올드나 형제에게 매수됐다는 것도 이미 파악했었다.
그렇다 해도 이 같은 배신 현장을 보게 될 거라곤 상정조차 하지 않았었다.
‘받은 대로라면, 설마 백부님께서 형님들까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다이올드가 그런 지시를 내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형!”
이 타이밍에 제몬이 나타났다. 그 뒤로는 직속 기사단과 플레온 기사단까지 같이 몰고 왔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침입했던 견족이 처리된 모양이다.
돌아온 제몬은 가슴이 꿰뚫린 타나토를 보고 우뚝 멈춰 섰다.
“……형……?”
“헙!”
뒤이어 온 기사들도 타나토와 그를 죽이고 있는 늑대인간을 목격하고 기겁했다.
늘어진 팔다리에선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늑대인간이 그들 면면을 둘러보다가 타나토에게서 손을 뽑았다.
“거기, 인간. 가져가라.”
기절한 몸뚱어리가 짐짝마냥 유리에게 날아와 안겼다.
그래놓곤 견족이 말하길.
“우리, 안 싸운다. 이제, 퇴각한다.”
“이제 와서?”
“받은 만큼 해도, 우리, 진다. 너한테. 너, 강하다. 계산 밖.”
“감히 용가를 건드려놓고 도망치겠다는 거냐.”
“우리, 쫓아올 수 있으면, 해도 된다. 난, 못 막는다. 하지만, 너희도, 죽는다.”
자신만만한 늑대이간의 태도에서 언제든 널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비쳤다.
그건 개인의 실력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건드렸다간 견족 전체를 건드린다는 뜻이었다.
묘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성이 발달된 견족은 복수를 잘하기로 유명한 수인들이다.
설령 상대가 용가라 해도 반드시 복수하려 들 테지.
지금은 비록 패퇴하는 분위기일지 몰라도, 양동작전 수준의 병력과 전략만 들고 왔을 것이다.
“다이올드의 사주인가? 그렇다면 줄을 잘못 섰군, 견족.”
“받은 게, 있다.”
“거짓말도 잘 못하고 말이야.”
“…….”
“경고 하나 하지.”
유리는 죽기 직전인 타나토를 바라보았다가 늑대인간을 노려봤다.
“네놈들도 내 형님처럼 버려질 거다.”
살벌한 경고에 늑대인간이 슬금 뒤로 물러났다.
“……명심, 하지.”
그렇게 한 마디를 남겨놓고 녀석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러다 거리가 벌어지자 달음박질해서 달아났다.
아무도 그를 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장 놈을 쫓을 순 없었다.
퇴각하는 적보다는 아군의 피해를 돌봐야할 때였다.
무엇보다 타나토 상태가 심각했다.
“칫!”
유리는 되는대로 릴림한테서 받았던 비상용 의료 아티팩트를 전부 깨뜨렸다.
예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성력이 담겨서 일까. 상처 부위에 스며든 빛들이 조금씩 살점을 이어붙였다.
그러나 완벽한 치료는 어려웠고, 부서진 코어도 여전했다.
“블레이크! 의무병을!”
“여기 있습니다!”
견족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이미 블레이크는 의무병을 찾아 뛰어왔다.
다행히 타나토는 의식을 붙잡고 있었다. 의무병도 큰 상처에 비해 빨리 멎은 출혈을 보고 안도했다.
“성력 덕에 급한 건 막았습니다. 내상을 당하긴 했지만, 안정화가 되었으니 수술만 하면 될 겁니다.”
“어떻게든 살려!”
황급히 달려온 제몬이 악성을 내질렀다.
그는 타나토의 머리맡을 받히고 앉았다.
“형! 형? 형!! 내 말 들려? 들리냐고!”
“제……몬.”
“다행이다! 형, 살 수 있지? 괜찮은 거지?”
“그……럼.”
“…….”
타나토가 무사한 걸 확인한 제몬은 유리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윽고 그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멱살을 잡았다.
“너라면 막을 수 있었어! 아니! 네가 없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될 일은 없었어!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싫어할 일 따위! 절대! 없었다고!”
“제몬 님!”
옆에서 다른 기사들이 뜯어 말리려 했으나, 제몬이 오히려 그들을 힘으로 밀어냈다.
“놔, 이 새끼들아! 너희들도 뭘 잘 했다고! 형이 이렇게 당할 때 네놈들은 어디서 뭘 했는데!”
“진정하십시오, 제몬 님!”
“진정은 개뿔! 이 새끼만 아니었―!”
퍼억!
난동이 심해지려 하는 낌새에 유리는 서슴없이 주먹을 날렸다.
몸이 돌아갈 정도로 뺨에 꽂힌 강한 주먹에 제몬이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유리가 그런 제몬을 차갑게 쏘아봤다.
“어리광 피우지 마십시오, 형님.”
“너……!”
“형님들이 버려졌다면, 채럿은 뭐가 됩니까.”
“……!”
유리의 한마디에 제몬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채럿에게 향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채럿은 이 끔찍한 광경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망부석이 되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