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75
제175화
평소와 달리 다이올드는 조용히 책상에 앉아 있었다.
앞에 분명 그가 대노할 만한 소식이 담긴 편지가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그저 술과 담배를 번갈아 입에 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밤이 되고 나서야 한 기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밤에 영광을.”
“확인해봤나?”
“정보원의 보고대로 원정대가 야생 지대를 벗어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국경 지대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타나토와 제몬, 그리고 유리 그 새끼는?”
“타나토 님만 치명상을 입었을 뿐, 피해가 없다고 합니다.”
“견족은? 우리랑 거래를 해놓고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던가?”
“자신들로는 유리 님을 감당할 수 없다면서, 거래는 없던 걸로 하자 밝혔습니다.”
“그래?”
결국 이렇게 됐나.
이미 얘기를 듣고 난 뒤에 다시 듣는 거라 충격이 덜했다.
그럼에도 속이 무척이나 쓰렸다.
유리가 예상했던 대로, 다이올드는 견족을 포섭해서 타나토와 제몬, 유리를 공격케 했다.
다만, 여기서 계획 하나가 꼬였다.
타나토의 자폭이 1차적으로 실패했고, 2차적으로 타나토가 몰래 가짜 마검과 가짜 성검을 챙겨간 것이다.
몰래 훔쳐서 유리를 죽였으면 또 모르겠으나. 얻은 것 없이 가짜 신물들만 잃고 말았다.
“쯧, 쓸모없는 놈 같으니.”
유리가 안 된다면 미다스라도 죽였어야 한다. 그게 타나토에게 주어진 제 1 목표였다.
그런데 미다스가 살아있으니.
더 이상 타나토와 제몬을 믿을 수 없었다.
“부관.”
“예, 부단장님.”
“원정대가 돌아오면 내가 여기에 있을 순 없겠지?”
“부단장님!”
다이올드가 여유를 부리고 있어서 그렇지, 이번 사태는 그에게 있어서 심각했다.
마검 티르빙을 소유하고도 가문에 알리지 않았다는 점은 중죄였다.
하물며 마검으로 유리를 암살하려 세 번이나 시도하고 다 실패했다. 이는 차기 가주 싸움에서 세 번이나 패배한 꼴이었다.
거기다 소식에 의하면 다이올드가 자기 자식들까지 죽이려 했다는 걸 알아챈 듯했다.
“타나토를 믿었던 내가 잘못이다. 견족 같은 야만인들한테 기대한 것도 실수야.”
“허나 부단장님께서 직접 손을 쓸 수도 없었습니다. 크로무슈만 해도 거기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설마 신수 하나 때문에 견족이 물러설 줄은 또 누가 알았고요!”
따지고 보면 굉장히 안일한 계획 같아 보였으나, 사실 신수가 없었더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로무슈, 그녀가 갑자기 묘족에 머무는 바람에 견족이 제대로 힘을 못 쓴 게 컸다.
그러나 이 모든 건 핑계에 불과하다.
“내가 유리 그놈을 얕본 것부터가 문제야. 안일하게 해선 안 돼.”
뭐가 되었든 다이올드는 유리를 한낱 열등분자 인간으로만 취급했다.
이번 계획도 유리를 무시했던 안일함을 전제로 세웠다.
하지만 이젠 인정해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유리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걸 알고도 무시한 결과가 어땠는가.
“부관, 다음 계획으로 넘어간다.”
“지, 진짜입니까?”
“이대로 미다스가 도착하면 모든 게 끝이다. 난 마검을 몰래 소유하고 있었다는 죄를 추궁 받겠지. 차기 가주에서도 우위를 잃을 거야.”
“부단장님을 따르는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힘이 되어줄 겁니다. 그러니 다음 계획은 좀 더 고심해보시고…….”
“진짜 마검의 주인을 놓고 그럴 수 있을까?”
다이올드를 지지하던 장로들 사이에서 몇몇이 유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었다.
그들이 갑자기 기조를 바꾼 건 유리가 강해서도 아니고, 다이올드가 거듭 패배해서도 아니다.
마검의 주인이라는 점 하나가 그들을 움직였다.
즉, 유리가 가문으로 들어온 날부터 장로들의 배신은 예견된 일이었던 셈이다.
‘처음부터 유리를 제대로 죽였어야 했어.’
결국 그것이 한이라면 한.
그러나 돌이켜봐도 딱히 선택지가 없다.
“부관, 잔말 말고 시행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부관이 경례를 올리고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결연하다 못해 의연하기까지 한 표정을 보니 말릴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기사가 나가고.
시간이 지나도록 다이올드는 그 자리에 앉아 연달아 담배를 태웠다.
그러다 견딜 수 없다는 듯 일어나서 벽 한쪽으로 다가갔다.
손을 대고 벽을 밀자 회전문처럼 돌아갔다.
그 뒤에서 나타난 건 큼지막한 거울이었다.
전신을 다 뒤엎고도 남는 거대한 거울은 이상하게도 속이 비치질 않았다.
“나의 주인이시여.”
꾸륵.
부름에 응답하기라도 한 걸까.
거울이 수면처럼 요동쳤다. 이윽고 수면이 하나의 얼굴로 변하며 흉상처럼 튀어나왔다.
그의 등장에 다이올드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아이야, 실패하였구나.]“송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실패를 하고 있습니다. 블레이머를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했고, 그의 자식도 죽이지 못했습니다.”
[괜찮다. 괜찮아. 본분을 다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법.]“넓으신 아량에 감복하고 감사합니다.”
다이올드가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헌데, 주인님이시여.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어째서 주인님께선 유리 그 녀석을 놔두는 것입니까. 이미 한 번 암살에 실패했다지만, 이후로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헌데 주인님께선 그 녀석을 그냥 놔두고 있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과거부터 지금까지, 다이올드는 거울 속 남자의 지령을 받으며 살아왔다.
유리의 암살도 거울 속 남자의 지령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그 지령과 믿음에 부합하지 못했던 적은 없다지만.
유리에 관해서만큼은 유독 관용을 베풀었다.
지금까지 쭉 궁금해왔었다가 오늘에서야 묻는 다이올드.
[다 뜻이 있노라.]“하지만―”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다이올드?]“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심이 의심 받을까, 다이올드는 더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이 때문에 거울의 남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질 못했다.
거울의 남자는 표정과 달리 자애로운 말투를 이어갔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나의 목소리가 곧 너희 현실일지니.]“예! 주인님!”
[다음엔 부디 의미 있는 소식과 함께 만나자꾸나.]“네!”
* * *
아침이 되자마자 유리와 원정대는 야생 지대를 벗어났다.
수인들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흘러갔던 탓이다.
그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온 원정대는 국경을 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여관을 잡고 휴식을 취하던 중.
유리는 오밤중에 여관 1층으로 일행들을 소집했다. 곁에는 미다스도 함께했다.
“피곤할 텐데 모이라 해서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테이블에 앉은 유리는 두리번거리며 인원을 확인했다.
딱 한 명, 채럿이 없었다.
시선에서 의미를 읽은 이자벨이 먼저 말했다.
“채럿 아가씨는 타나토 도련님을 돌보고 있다.”
“그래…….”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더 있어야 하겠지.
유리는 그녀가 있을 2층을 괜히 한 번 쳐다보고 회의를 시작했다.
“블레이크 경, 아직 본가에 경과 보고가 들어가진 않았지?”
“급하게 야생 지대를 떠나서 아직 보고를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당분간 보고를 보류하도록.”
“예? 하지만 가주님께서 보고를 기다리고 계실 텐데요.”
“다이올드 백부님의 계산이었다면 우리 모두를 죽였어야 할 거다. 견족이 스스로 그 약속을 어기고 도망가긴 했지만, 이대로 돌아가게 놔둘 리가 없어.”
미다스의 생존은 다이올드에게 있어서 크나큰 걸림돌이었다.
차기 가주만이 아니라 가문에서 쫓겨나거나, 교국의 압박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터.
물론, 교국 따위에 흔들리는 용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마검의 소유를 숨기고 있던 다이올드.
이를 통해 유리를 암살하려 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엄한 추궁을 피해가긴 어려웠다.
“보고가 들어가면 실패를 알고 우리를 공격하려 들 거다. 이미 알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그렇겠군요……. 허면 어쩌실 작정입니까? 또 죽음으로 위장하시는 건…….”
“같은 방법으론 안 될 거고. 아마 백부님 입장이라면 절대적으로 나 하나는 죽이려 들 거다.”
“타나토 도련님이나 제몬 도련님을 노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 확실히 나만 죽이려 할 수 있어. 내가 어렸을 적에 암살당할 뻔했었거든.”
“예?”
유리는 자신이 갓난아기나 다름없던 시절에 만났던 암살자 이야기를 해줬다.
그때 마검을 얻어 주인이 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제일 충격을 받은 건 이자벨이었다.
“미다스 말로는 몇 십 년 전부터 마검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으니까, 그럼 그 마검으로 유리를 죽이려고 했었던가!”
“나도 확신은 없었어. 내가 암살 시도를 당한 뒤에 백부님이 마검을 가졌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미다스 말로는 내가 암살당하기 전부터 백부님이 마검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아.”
“그래서 부단장님이 그대까지 죽이려 한 거였나!”
“그렇지만 이해가 안 갑니다. 어째서 그 이후로 암살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겁니까?”
“나도 그게 이상하다, 블레이크 경. 처음엔 마검의 주인이 되어서 두려운 마음에 망설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가문에 들어오고 나서 적대감을 크게 숨기지도 않았어.”
분명 죽일 수 없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마검의 주인이 되었다는 이유가 아닌, 마검의 주인이 되면서 생긴 다른 이유가.
“어쨌든 백부님 입장에서 날 죽이려는 시도를 했던 건 분명해졌으니. 다른 암살자를 보냈을 가능성이 커.”
“아무래도 그렇겠군. 단장님, 따로 병력을 차출해서―”
“음음, 아니야. 이자벨, 내부자가 있다면 병력을 빼는 순간 들통 날 거야.”
“설마 암살자를 꿰어낼 생각인 건가?”
“사실 암살자라고 단정할 순 없어. 매복이나 함정을 설치했을 수도 있지. 고려해야 할 가짓수가 너무 많아. 확실한 건 이번에 닥칠 난관은 절대 만만치 않을 거야.”
벌써 세 번이나 실패했기에 다이올드는 단단히 벼르고 있을 것이다.
암살자, 아니면 함정 따위를 분명히 복귀하는 길에 설치했을 터.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문제는 가문에 무사히 돌아가더라도 있어. 영지에 들어서는 순간 백부님이 무슨 짓을 해놨을지 몰라.”
“아직까지 가문은 다이올드 부단장님과 장로들이 실권을 쥐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가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떤가? 이런 사안이라면 도움을 주실지도 모른다.”
“안 돼.”
유리는 고개를 저어서 부정했다.
“할아버지가 다 알고 있을 수도 있어. 그렇다는 건 나 혼자 극복하길 바란다는 뜻이야.”
다이올드와 장로가 장악한 가문이라 해도, 결국 그 정점에 벤헬링턴이 있다.
미다스에 관해서도 미리 알고 시나리오를 짰던 걸 봐선 유리의 현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다이올드 백부님에 관한 정보가 있으면 좋으련만.”
어지간한 정보는 있어도, 다이올드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다.
조사를 해본 적 있었으나 딱히 약점이라 할 것도 없었다. 채럿도 아버지가 워낙 철두철미해서 알아낼만한 정보가 없다고 말했었다.
“내가 안다.”
2층에서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채럿이 내려왔다.
그녀의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 있다. 뺨에는 눈물 자국이 선했다.
그리고 그녀 옆엔 타나토도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