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79
제179화
아까는 악마에 이끌려 갔더라면, 지금은 티르빙이 악마를 끌어와야 했다.
성검이나 아스칼론이었다면 소통은커녕 연락이 닿는 순간 거부했겠지만.
티르빙이라면 가능했다.
아무튼 티르빙의 마검이자 악마의 성질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니.
‘시도 해볼 가치는 있다.’
유리는 풀밭 위에 손바닥 크기 정도로 챙겨온 암흑 구슬을 깔았다.
사실 이런 식의 연락은 당연히 해본 적 없었다. 가정으로만 세워놨던 이론에 불과했다.
단점이라면 콜렉트콜마냥 한쪽이 요금 부담(?)을 하는 구조이라는 점이다.
참고로 그 요금이란 세뇌를 말하며.
‘요금 부담은 전적으로 나 혼자서 짊어진다는 거지.’
수신자든 발신자든.
악마와 이어지는 순간 모든 부담은 유리가 짊어진다. 유리 혼자 세뇌 당해서 악마에게 이끌려 갈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그나마 원작의 카이는 암흑 구슬을 만졌을 때 패널티가 없었다.
성검의 성력 덕이었다.
악마 쪽에서 대출 전화 온 거 마냥 받자마자 끊어버렸던가.
“후우. 해보자고. 채럿, 넌 숲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최대한 경계해줘.”
“같이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악마가 널 보는 순간, 너도 타겟이 돼. 위험해.”
노출되는 건 유리 한 명이면 충분했다.
나중에 동료들도 들키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넌 숨어 있다가 추격대라도 온다면 날 강제로 암흑 구슬에서 떨어뜨려.”
“강제로 어떻게요?”
“으음, 토끼한테 시키면 알아서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채럿의 토끼한테 맞아본 적이 없었다.
매번 싸우는 거 볼 때마다 8서클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거 같다만.
방비 없이 맞았다간 뼈 좀 부서질 각오쯤은 해야겠다.
이후 채럿이 숲으로 모습을 감추고, 유리도 준비를 마쳤다.
“티르빙.”
[시작한다.]손바닥을 암흑 구슬에 대자 소매 안에서 붉은 촉수가 꿈틀댔다.
그 끝이 구슬에 닿자 삽시간에 붉게 변하다가 새카만 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유리의 눈동자도 까맣게 덮였다.
단숨에 의식이 날아가버렸다.
[너무 강해요, 티르빙 양!] [이익, 네가 막아보던가! 난 세뇌에 잠식하지 않게 막는 것만 해도 벅차!] [저도 혈관 터지지 않게 막기만 해도…….]악마로부터 제어권을 가져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바다 건너에 있는 악마와 손이 닿았지만, 악마는 계속해서 유리를 잡아먹으려 들었다.
“됐, 고!”
그래도 아스칼론이 노력해줘서 한쪽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주도권이 악마에게서 넘어오기 시작했다.
“대답, 해!”
[xxx]명령조로 외치자 제 3의 목소리가 영혼 깊이서 올라왔다.
마찬가지로 깨진 듯한 음성이었다.
[xx xxx xxx]“닥쳐. 닥치고 내 부름에 나와!”
딱 한 번.
그렇게 밀려난 주도권을 가져온 유리는 ‘머리채’를 잡아 힘껏 끌어올렸다.
암흑 구슬 아래서 마법진이 생기고 웬 환영체가 끌려왔다.
한 남자가 뱀과 함께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빌어먹을, 썅. 우라질!]욕지거리를 뱉은 남자는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일어났다.
그런 그의 앞에 유리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져서 기절한 상태였다.
물론, 기절한 ‘척’이었다.
[아우! 아파라. 어떤 새끼가 내 머리카락 잡아챘어?! 나 탈모 걸리면 책임 질 거야?!]앳된 인상의 남자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자 같이 나온 뱀이 그의 한쪽 다리를 감쌌다. 뱀은 혀를 낼름거리며 전방의 유리를 주시했다.
[어엉? 뭐야. 저 놈이 날 끄집어낸 거야? 그래놓고 쓰러지고? 하, 참. 당돌한 생명체를 봤나. 야! 야야! 일어나! 일어나라고!]툭, 툭.
환영체에 불과한 악마가 다리 끝을 걷어찼다.
당연히 깨어날 리가 없었다.
유리는 조용히 누워서 티르빙에게 말을 걸었다.
‘티르빙.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그대로 전해줘.’
[응.]‘뱀, 남자…….’
[뱀, 남자……. 듣도 보도 못한 악마군. 네놈, 누구냐.] [엉? 이게 누구 목소리야?]쓰러져 있는 장본인은 아직 기절하고 있고.
그런데도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악마가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돌렸다.
[내가 누군지는 알 필요 없고. 네 정체부터 밝혀라.] [너야 말로 누구야! 감히 이 악마 님에게 영체의 대화를 시도하다니! 설마 너 천사냐!?] [내가 먼저 질문했을 텐데.] [뭐, 이딴 대담한 새끼가 있지. 음, 목소리를 들어선 아는 천사 같지는 않고. 그 놈들이 중간계에 내려올 수도 없고 말이지.]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침묵으로 전해지는 티르빙의 짜증이 느껴졌다.
악마는 도저히 대화에 제대로 응해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하긴.
시기적으로 악마들이 벌써 동쪽 대륙에 있다는 점도 이상하고, 악마들 입장에선 먼저 연락을 시도해서 주도권까지 가져가는 생명체는 유리가 처음이었다.
그러니 의심이 많을 수밖에.
결국 유리는 숨겨놨던 수를 꺼냈다.
[난 마검 티르빙이다.] [티르빙?]가벼웠던 대화가 급작스레 무거워졌다.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쓰러진 유리를 살폈다. 그리곤 풉! 웃음을 참았다가 기어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크크큭. 웃기네. 티르빙이라고? 마신이 벼려낸 신화 속 무기? 하하핫! 네가 티르빙이면 난 미뭉이겠다!] [이 꼬맹이가 듣자듣자 하니까……. 나 티르빙 맞다고! 그리고 기절한 사람은 내 주인이고!] [……진짜 티르빙, 입니까?]거듭 티르빙이 맞다고 주장하자 드디어 악마의 머리에서 사고회로란 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은 환영체이고 불러낸 사람은 기절했다.
귀에선 영체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절한 사람이 영체의 목소리를 내진 않을 거고.
그렇다고 영체의 목소리를 낼 물건이라든가 아티팩트가 주변에 따로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영체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건 티르빙이 악마를 불러냈다는 사실.
[허억! 진짜 티르빙……!]악마는 엉덩방아까지 찧어가며 기겁했다.
됐다.
유리와 티르빙은 이전에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티르빙이야 어찌됐든 마신으로부토 비롯되었고.
악마와 이들을 이끄는 마왕도 마신으로부터 태어났다.
비록 마신과 창조주는 없어진지 오래지만, 어쨌든 악마들보다 먼저 만들어진 존재가 마검 티르빙이었다.
뭐, 따지고 보면 인생 선배랄까.
‘그렇다 쳐도 이 녀석 반응은 보니까 햇병아리 악마인 거 같네.’
어지간한 악마의 외형 묘사는 다 외워놨다. 그런 악마 중에서 눈앞에 있는 남자 같은 악마는 없었다.
말단 중에 말단 악마라는 거지.
고로 운이 아~주 좋았다.
[이 꼬맹이 새끼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감히 티르빙의 부름을 받고도 허세를 떨어?] [죄송합니다! 제, 제가 여기서 마검님을 뵐 줄 전혀 몰랐던 지라.] [모르면 끝이야? 앙?!] [으각!]실체가 없는 대화일 뿐인데도 남자가 지레 겁을 먹고 몸부림쳤다.
실눈을 뜬 채 이 우스꽝스러운 몰골을 보다가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됐고. 너, 이름이 뭐니.] [루, 루켈메라고 합니다!]남잔 아예 무릎까지 꿇고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루켈메…… 내가 오래 잠들어 있어서 처음 듣는 건가.] [제, 제가 태어난지는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근데 너 같은 말단이 왜 동쪽 대륙에 넘어와 있어?] [왜, 냐니요. 저희야 창조주께서 주신 멸망의 사명을 받고 세상을 없애려 하고 있죠.] [아니, 그거 말고. 어째서 동쪽 대륙의 생명체들과 너 같은 놈이 대화를 하고 있냐는 거야. 이런 건 하겐티 전문이잖아.] [아아, 그 말씀이셨군요.]원작에 따르면, 금을 만드는 하겐티의 주도하에 동쪽 대륙을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돈과 재물만큼 손쉬운 유혹은 없으니까.
그러나 이런 자질구레한 악마들이 먼저 연락책으로 활동하는 장면은 없었다.
이런 놈들을 연락책으로 썼다가 악마의 존재가 들키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는 의외의 한마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이었으면 하겐티 님이 먼저 나섰겠죠.] [지금은 아니라는 거니?] [서쪽 대륙을 정벌할 때까지만 해도 하겐티 님이 많은 인간들을 타락시켜서 손쉬웠지만. 동쪽 대륙 공략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티르빙 님은 서쪽 상황을 모르시겠군요.] [각설. 왜 서쪽과 동쪽의 기조가 달라졌는지만.] [아, 예……. 흠, 글쎄요. 저 같은 조무래기들이 뭘 알겠습니까만. 뭘 찾아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뭘?] [인간입니다.]인간?
어떤 인간? 누구? 전혀 원작에 없던 이야기였다. 귀가 저절로 쫑긋 세워졌다.
[지금은 인간인지, 짐승인지, 벌레인지 모른다고 하덥니다만. 아무튼 그 놈부터 찾아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 *
동남부, 이름 모를 폐도시.
평화로워 보이는 동쪽 대륙도 내전이라든가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종종 있었다.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돈이라든가 영웅이라 불리는 호걸들이 모여들었으니.
용가를 제외하면 손에 꼽는 실력자들이 동남부의 전쟁터로 모여들었다.
당연히 이들 사이엔 용병들도 섞여 있었으며.
개중에는 카이 안데르센도 가명으로 참가했다.
그는 그늘진 폐성벽에 기대어 앉아 휴식을 취했다.
반대편에는 용병들끼리 모여서 고용주들이 준 배식을 받고 있었다.
“아 거 참! 좀 더 줘! 고기 두 장 먹고 나보고 어떻게 싸우라고!”
“네네, 줄게요. 줄게!”
“…….”
카이 눈에 그들은 조금 특이했다.
용병들이 찬밥 신세를 받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이런 취급은 특히 배급 받을 때 흔했다.
먹을 게 모자라기도 하고, 영양이 엉망인 음식이 제공되기도 했다.
여기도 그랬는데, 카이가 임시로 끼어든 용병단은 먹고 자는 점에 있어서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먹어서 탈이다.
[……카이.]“뭐지.”
오랜만에 미뭉이 먼저 대화를 걸어왔다.
이럴 때면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들이 있다.
[먹어라. 죽는다.]“귀찮다.”
[살기 귀찮은 건가.]“…….”
[벌써 일주일째 아무것도 안 먹고 있다. 먹어야 한다.]“귀찮다고 했을 텐데.”
[코어가 성장했다.]카이가 굳이 이 전쟁터로 온 이유.
바로 성장 때문이었다.
플레온 기사단에서 지내면서 예상보다 빠른 성취를 이뤄냈으나.
결국 이 몸에 새겨야 하는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나이트워커를 떠나 용병으로 떠돌며 실전 경험을 쌓았고, 그렇게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몇 서클 정도지.”
[대략 8서클.]“계획했던 것보다 빠르군.”
아니, 솔직히 카이치곤 빠른 거였다.
원래 몸의 주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코어는 훌륭했으나, 육체가 받쳐주질 못했었다.
몸이 정상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자 코어도 빠르게 성장해줬으니.
“이보게, 자넨 아무것도 안 먹나?”
그때, 한 중년의 남성이 양손에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원체 남에게 관심이 없는 카이는 바로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잠시 후, 이름을 기억해낸 카이가 그를 불렀다.
“게슐츠 단장이라 했던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