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80
제180화
게슐츠는 넉살좋게 담아온 음식을 그에게 건넸다.
“먹게나.”
“…….”
“어허, 이 친구 참. 사람 무안하게. 얼른 받아.”
“…….”
한참 동안 게슐츠를 노려보던 카이는 마지못해 그릇을 받았다. 그러나 딱히 먹지도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본 게슐츠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카이 그릇에 있던 빵을 집어 그의 스튜에 찍어서 자기 입에 넣었다.
“나 참. 독이라도 넣은 줄 아나본데. 그냥 먹게.”
“어떻게 알았지.”
“응? 뭐가?”
“내가 독이라고 의심한 거.”
“……의심이 진짜 많은 친구군.”
게슐츠가 씹다 말고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카이를 바라봤다.
기껏 호의를 베풀었더니 의심받는 입장에선 황당하기만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카이가 게슐츠의 용병단에 합류하고 꼬박 3달이 지났다. 그간 동료들과 친해지기는커녕 거리감은 처음 만났을 때와 그대로였다.
그래도 카이의 실력 덕에 용병단이 신세를 진 것도 사실이다.
게슐츠에겐 일용직 용병으로 두기엔 아까운 인재다.
“독이 있다고 의심하는 눈빛 같아서 그리 말했네. 전에 배식 받을 때도 내 단원들한테 그리 물었다면서.”
“기억 안 난다.”
“취사병이랑 대판 싸워놓고 기억이 안 난다고?”
“혼자 열 받아서 혼자 화를 냈지. 난 싸운 적 없다.”
“그랬던가.”
기억이 안 난다.
배식이 난장판이 되어서 뜯어말린 기억 밖엔.
“아무튼 많이 먹어두게. 곧 큰 전투가 시작될 테니까.”
“함락까진 얼마나 걸리지.”
카이의 시선이 멀리 있는 성으로 향했다.
이곳의 전쟁은 내전으로 시작해서 그 끝으로 달려갔다. 슬슬 공략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일주일도 안 될 걸세. 곧 식량이 바닥나서. 그 전에 항복해주면 좋겠지만 말이야.”
“내가 요구한 건?”
“그 이상한 구슬?”
마침 ‘그것’을 챙겨온 게슐츠.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서 그에게 던졌다.
“이 일대에서 찾은 걸세. 다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전부 긁어냈지.”
“손을 대진 않았겠지?”
“하도 주의를 해서 손 안 댔네.”
카이는 장갑을 끼며 주머니 속 내용물을 꺼내봤다.
암흑 구슬이 다이아몬드처럼 우수수 딸려 나왔다. 손가락 사이로 알알이 떨어지는 작은 구슬들은 겉보기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속에 숨겨진 사악한 기운은 카이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많군.]‘그래, 많아.’
암흑 눈물.
악마들이 뿌려놓은 연락망이자 선동용 아이템.
얼마 전 우연히 한 보석상에서 이 암흑 눈물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광물이라 벌써 몇몇 사람들 사이에선 비싼 값으로 거래가 되었다.
카이는 용병단에게 보수 대신 이걸 닥치는 대로 사달라고 부탁했다.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쌌으나, 대신 위험한 임무를 맡아서 해결해줬다.
이번 내전이 그 일환이었다.
“대체 그게 뭐하는 보석인가? 들어보니 비싸기만 하고 실제론 값어치도 없다던데.”
게슐츠가 묻자 도로 주머니에 암흑 눈물을 우겨 넣었다.
남에게 들켜서 좋을 물건이 아니다.
몰라야 한다.
알았다간 악마들의 침략이 가속화된다.
“……지금부터 혼자서 성으로 들어가겠다.”
“어? 어이!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는 성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용병단에 머물며 성장에만 기대고 있기엔 뿌려진 암흑 눈물 숫자가 꽤 되었다.
빠르게 ‘미래’를 공략해서 악마들을 막아야 했다.
그런 그를 뜯어말리던 게슐츠는 금방 포기했다. 말린다고 말려질 놈도 아니고.
그저 게슐프의 입가엔 이유 모를 호선이 그려졌다.
“내가 찾던 그놈이라면, 참 아쉽겠어.”
* * *
이름 모를 남자 악마와의 대화를 중간에 끊어버렸다. 유리가 발끝으로 마법진을 망가뜨린 결과였다.
마법진이란 게 그림을 조금만 망가뜨려도 중단되거나 원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통신이 중간에 끊겼으니 의심하진 않겠지.”
지금까지 악마와 티르빙만 대화를 나눠서 유리가 개입했다곤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악마들이 유리의 존재를 ‘아직’까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럼 악마들이 침공을 가속화하진 않겠지.
“오라버니!”
경비를 서고 있던 채럿이 돌아와 허리를 끌어안았다.
“놀랐어요. 갑자기 쓰러지셔서.”
“기절한 척 했던 거야.”
“아까 그 남자, 그러니까 악마인가요. 생각보다…….”
“사람 같다고?”
그렇겠지.
보통 악마를 묘사할 땐 인간이 아닌 사악한 동물이나 키메라에 가까웠다.
“속지 마. 영혼은 썩을 대로 썩어서 살아있는 건 닥치는 대로 죽여.”
“우으, 무섭네요.”
“그나저나 다 들었지?”
“누굴 찾는다고요.”
루켈메로부터 얻은 정보.
악마들은 원작에서의 침략이 아닌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떤 ‘인간’이라고 했다.
“채럿, 오늘부터 그 인간에 관한 정보를 전부 모아줘. 많이 두루뭉술하긴 하지만, 암흑 눈물을 토대로 조사해보면 답이 나올 거야. 남은 흑마법사나 악마 추종자들도.”
“네! 물론이죠! 그런데, 오라버니. 악마는 침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서요. 근데 왜 어떤 특정한 사람부터 찾는 거죠?”
“글쎄…….”
모르는 척 굴어도 대충 짚이는 바가 있다.
악마들이 누굴 찾을 때는 몇 안 되었다.
필요하거나, 방해되거나.
아주 단순한 논리지.
그리고 채럿이 이를 똑같이 물었다.
“필요한 인간? 아니면 악마를 방해하는 인간인가요?”
“……눈치가 빠르네.”
“그것 말고도 더 알아낸 것도 있어요.”
채럿이 쭈뼛거리며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를 보면 가끔 미래를 단순하게 본 것 같지 않아요. 오늘만 해도 그래요. 악마랑 소통하다니. 그건 악마가 침략한 예언만이 아니라 침략 이후까지 본 거잖아요. 그게 아니라면 서쪽 대륙의 일을 알고 있거나.”
“…….”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예전에도 채럿에게 멸망을 들키긴 했었지만, 간단한 증거만 갖고 이만큼 추측할 줄이야.
물론, 유리가 저도 모르게 채럿 앞에서 풀어진 감도 있었다.
그래도 될 거 같았으니까.
“많이 알고 있다고만 해둘게.”
“저한테 다 알려주실 수 없는 건가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유리는 잠깐이지만 망설였다.
거짓말이야 뻔뻔하게 밀고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을 숨기는 건 거짓말과 달랐다.
유리는 적어도 멸망에 관해 꾸며진 거짓으로 감춘 적은 없었다.
언급하지 않거나 모르는 척 숨겼다.
그랬던 이유는 혹여 타인에게 미래가 흘러들어갔다가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채럿의 반응은 당연했다.
혹시 나를 믿지 못하나.
그런 의구심.
‘이래서 미래를 알고 있는 게 막상 좋지만은 않다니까.’
진실을 숨긴다 해도 그 뉘앙스를 완전히 지우진 못한다.
설령 멸망이라는 대의를 품고 있어도 마찬가지.
결국 이런 일들의 반복은 의심과 신뢰의 문제로 이어졌다.
카이가 50번대 환생에서 이런 문제를 앓고 동료들을 여럿 잃었다.
인간 관계로 말이다.
‘아직도 채럿의 멘탈이 약한 건가.’
시간을 들여 동료들과 유대감을 쌓았건만, 유독 채럿이 약하긴 했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크만큼 컸다는 걸까.
그러나 채럿의 눈빛을 보니 틀렸다.
“……저, 더, 더 강해질 테니까요!”
“어?”
“그러니까! 나중에 이자벨 언니처럼 되면! 그 이상이 되면 알려주세요! 그 미래!”
“…….”
[생각했던 거랑 정 반대네.] [전 좋은 걸요. 주인님 걱정과 달리 활기차잖아요.] [고작 몇 달 만에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건가?]유리도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태도가 의아했다.
하지만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다이올드, 타나토, 제몬…….
미쳐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겼겠지.
그것이 어떤 감정과 감정을 따라 어떤 결심을 불러왔는지는 상상이 안 갔다.
“그래. 그리고 미안.”
유리는 채럿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채럿이 기분 좋은지 베시시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찍!
어디 선가 쥐 한 마리가 튀어 와서 채럿을 타고 올라왔다.
찍! 찍!
쥐가 그녀의 귀에 대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점점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이윽고 그녀가 말하길.
“오라버니, 플레온 기사단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리는 다급히 방향을 틀어 움직였다.
* * *
유리는 반을 타고 반나절도 되지 않아 기사단이 움직인 곳으로 향했다.
“이런…….”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아래는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사단이 머물던 마을이었다.
“어머니가 당했을 때랑 똑같이 저지른 건가…….”
칼로소 길드.
그들이라면 가능했겠지.
젠장, 그 놈들부터 족쳤어야 했나.
그들이 한 마을을 위장하고 매복과 기습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두 번씩이나 당해보니까 뒤통수가 꽤나 얼얼하다.
설마 용가의 내부 사정을 알고도 다시 끼어들다니.
그들은 돈 되면 다하는 더러운 집단이긴 하지만, 치사하고 비겁하기까지 했다.
샤를린느 납치 때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던 데다가, 용가의 싸움이란 걸 알아버렸으니 겁을 먹고 한동안 활동을 접었었다.
이후로 나이트워커와 다신 인연이 없을 줄 알았거늘.
근데 그게 아니었나.
“돈 되면 다한다는 걸 너무 간과했던 걸지도.”
“다들 괜찮겠죠?”
유리 품에 안기다시피 동승한 채럿이 물었다.
“괜찮아. 기사단 시체는 없잖아. 핏자국도 없고. 동쪽으로 도망간 흔적도 있어.”
하늘 위에 떠있으면서도 아래의 전경이 훤히 보였다.
전에 샤를린느가 기습당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시체가 남아 있었다.
회색 로브에 복면을 쓴 자들.
분명 칼로소 길드원의 시체였다.
특히 동쪽으로 숲의 나무들이 부서지거나 꺾여 있다. 불길도 그곳으로 이어졌다.
기사단이 도망간 흔적인 듯했다.
“양동작전의 양동작전이라. 이렇게까지 백부님은 모두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
“오라버니의 동선을 알고 있던 걸까요?”
“알았겠지. 칼로소 길드가 만든 마을이라면 내가 도망가길 기다렸을 거야.”
새벽녘에 말을 몰고 마을을 빠져나오던 일이 기억에 남았다.
당시에 목격자가 있었을 것이다.
유리가 마을을 떠났고 이를 다이올드에게 보고 했으리라.
‘그리고 기사단이 루트를 바꿀 거라는 예측도 했겠지.’
그러한 예측은 어렵지 않았다.
다이올드가 야생 지대에서 쉽게 유리 암살에 실패한 것이 의도적이라면 조건이 맞아떨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타나토의 자폭같은 극단적이고 무식한 방법을 택할 리가 없지.
다이올드가 아무리 멍청해도 그런 짓까진 하지 않는다.
아니지.
“또 똑같이 칼로소 길드를 쓴 것도 멍청한 건가.”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실패한 방법을 다이올드는 두 번째 쓰고 있다.
그래, 분명히 그는 멍청한 작자가 아니다. 아무리 가문에서 못난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도 엄연히 자유의 관 관장에 부기사단장까지 역임하고 있다.
미앵비슈가 맡아야만 어울리는 직책을 그가 맡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의 능력이 입증된 셈.
‘잠깐만. 고모님?’
현재 플레온 기사단 대부분의 전력이 빠졌다. 거기다 채럿, 이자벨, 블레이크까지 이곳으로 왔다.
가문에서 외부로 움직일 수 있는 유리의 사람이 실질적으로 다 빠졌으니.
“채럿! 지금 고모님 위치 바로 알아낼 수 있어?!”
“갑자기요?”
“얼른! 급해!”
“하지만 기사단이…….”
“아니야.”
유리는 잇새를 있는대로 꽉 물었다.
“백부님이 노렸던 건 우리가 아니라 고모님이었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