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82
제182화
용머리 탑.
저것은 이곳에 도시 국가라는 가짜가 세워지기 전부터 있었다.
라 데시마라는 이름도, 이곳의 언어로 ‘그 땅’이라는 뜻을 가졌다.
그 땅.
대체 무슨 땅이기에 정관사까지 붙였을까.
용머리 탑이라는 점만 보면 흡사 드래곤과 관련된 곳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 고대 물의 드래곤이 잠든 곳이니까.’
블루 드래곤.
물의 지배자이자 세상에서 가장 너른 영토를 다스렸던 생명의 근원.
하지만 블루 드래곤과 그의 후손 용인은 현재 리펠리온보다 보잘 것 없었다.
유리는 무너지는 탑 아래서 가볍게 떨어지는 낙석만 살짝살짝 피했다.
남들이 보기엔 서커스 못지않은 광경이었다.
“어떡하지.”
[뭘 어떡해. 저 머리가 부서졌다는 건 너네 고모가 이미 끝을 향해 다다르고 있다는 거지.] [전 가지 않았으면 해요. 저건…… 미약하지만 위험해요.]미약하지만 위험하다, 라…….
그건 다가올 위험과 힘에 관한 경고였다. 동시에 미약한 그 힘마저 유리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니, 어렵긴커녕.
그냥 불가능했다.
전생의 카이도 이겨내지 못한 힘이 저곳에 잠들어 있으니까.
“그래도 가야해.”
미앵비슈는 원작에서 죽어버렸다.
차기 가주 전쟁의 희생자로.
그리고 이젠 악마들의 대항마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다이올드가 미앵비슈를 죽이려는 이유에 있어서 더 이상 악마를 배제할 수는 없었으니까.
[난 만류했다.] [저도요.]“……시간이 흐를수록 둘 다 미뭉을 닮아가는 거 같네. 뭐만 하면 안 된다고 하고.”
[안 되는 짓만 하니까.] [맞아요.]얼씨구.
죽과 합이 환상이다.
블루 드래곤의 후예 용인들은 현재 어디에 어떻게 숨어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현재’는 그랬다.
그들을 찾아가서 힘을 얻고 싶으나, 그 계획은 가주가 되고 나서 진행하려 했다.
인간인데다가 고작 차기 가주 후보에 불과한 미성년자가 그들을 찾아가는 건 어색했다.
“적어도 격식을 갖춰서 만나야지.”
[그러면 오늘은?]“격식 없게 난장판으로.”
[아까 한 말 못 들었어? 저거 위험해. 아니, 그냥 건드릴 수도 없어. 다이올드가 만약 점거했다면 더더욱.]탑 꼭대기가 부서진 건 우연이라든가, 누군가의 싸움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었다.
다분히 의도된 연출.
소위 보여주기식이랄까.
그로 인해 탑 주변으로 마나가 퍼지면서 공간마저 뒤틀렸다.
농도 진한 마나는 응축되어 있는데다가 인화성 가스와 비슷해서 마나를 운용했다간 유리도 여파에 휘말린다.
“방법이 있어.”
이미 유리의 손아귀에서 최대치의 무형검들이 짧은 형태로 소환되어 춤출 준비를 마쳤다.
아직 무형검을 소환하고 네 자루밖에 쓰지 못한다.
티르빙까지 곁들이면 상당히 무리다.
아무리 적응해도 티르빙은 피를 소모하는 아이템이니까.
그래도 조금이라면 가능하다.
[꼬맹이, 무형검도 마나라고.]“알아.”
[근데 어떻게…….]“응축된 마나 농도를 내 손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없애야지.”
[야! 그렇게 했다간―!]“혈계(血界).”
형태가 없던 무형검이 검붉게 물들어갔다.
유리의 영혼이 더욱 견고히 연결되고, 각 한 자루의 검들은 여럿의 유리가 들고 있는 꼴이 되었다.
고로 살아있는 유리가 5명이 되었으니.
비록 마나를 완벽히 동등하게 나눌 수는 없어도, 드래곤 하트의 순도 높은 마나를 동시에 5명이 다루는 것이니.
키이이잉!
다섯 자루의 마검이, 그림자들을 내뿜었다.
* * *
미앵비슈는 끝끝내 탑에 올라갈 수 없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암살자들이 그녀를 공격했다. 미앵비슈는 허무하게 당하고 말았다.
“하아, 하아…….”
탑 꼭대기가 아닌, 그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지하.
그녀의 머리 위로 자그마한 창으로 스며드는 태양빛과 나선형 계단이 어지러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위에서, 꼭대기 근처에서 그녀는 추락했다.
기습을 막을 틈 따윈 없었다.
아니, 틈은 있었지만.
암살자의 검술만으로 정체를 알아버리는 바람에 망설이고 말았다.
“이게 다 누님이 용인답지 못한 결과입니다.”
어느 샌가 곁에 복면을 쓴 남자가 발치를 들이밀었다.
그는 가면을 벗으며 그녀를 발로 툭툭 찼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팔과 상체도 밀어보니 흐물흐물 흔들렸다.
미앵비슈는 거친 숨만 겨우 몰아쉬었다. 동생의 건방진 태도에 반항할 기운은 하나도 없었다.
다이올드가 슬픈 눈으로 내려다봤다.
“전 분명히 말했었습니다. 간단히 가주 자리만 포기한다면 누님이 원하는 걸 주겠다고.”
“네……가, 이러고…….”
“무사하겠냐고요? 못 하겠죠.”
벤헬링턴의 정보망은 결코 무시할 게 못 되었다.
그간 착실히 다이올드가 가문을 야금야금 잡아먹었다지만, 용가의 절대 권력자 앞에선 하찮은 짓거리에 불과했다.
“제가 가주가 될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간이야 넉넉하죠.”
“시간, 널, 기다리지, 않…….”
“그것도 압니다. 그러나, 누님께선 용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버렸습니다.”
기품과, 자존심 고귀함마저 전부 내던졌다.
머리 위에 부서진 ‘병기’ 때문에 말이다.
“너…….”
“맞습니다. 누님께 이곳으로 오도록 정보를 흘린 건 저였습니다. 누님이 저걸 찾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지난 몇 주 동안 꼬박 공을 들였습니다.”
이번에 꽤 많은 돈이 들어갔다.
평소엔 마을 단위로 들어가던 액수가 도시 국가 규모로 발전했으니까.
“다행히 이곳에 대해 아는 자가 없어서 속이기 쉽더군요. 얼마나 알려지지 않았으면 이 작은 땅에 도시 국가가 있다고 믿을 정도였으니.”
“너, 천벌, 받을, 거야.”
“쯧. 이래서 누님은 용인답지 않다는 겁니다. 천벌? 용인은 용인입니다. 하늘에 기대어선 안 되죠.”
이런 누님이 옛날부터 싫었다.
너무 인간적이라서.
인간들은 쉽게 나약해지고 쉽게 다른 것에 의존한다. 신이 그랬다.
창조주를 믿고 존재성을 인정하는 용가였지만, 신앙의 힘으로 신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앵비슈는 타인을 믿는다.
자신만이 아닌, 다른 것들로부터.
“저 위에 있는 병기도 그 믿음에 의해서였겠죠. 어리석게 누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난…….”
“절망을 알려드릴까요. 저건 누구도 살리지 못합니다.”
“…….”
“못 믿겠다고요? 상관없습니다. 저건 지금 제 손으로 파괴되었으니까요.”
탑 머리에서 일어난 폭발은 다이올드가 일으킨 것이었다.
정확힌 폭발을 준비해놨었고, 미앵비슈가 물건을 찾느라 눈이 먼 사이 기폭 장치를 작동했다.
차기 가주 후보로 거론되었던 여자가 하찮은 함정에 당하다니.
이해할 수 없지만, 다이올드는 그녀를 이해했다.
“어리석어.”
다이올드는 검으로 그녀의 목아래를 겨눴다.
‘끝인가.’
미앵비슈가 후회스러운 눈빛을 감추려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런데 바로 눈을 떠야했다.
마나의 흐름이 달라졌다.
그런 그녀의 눈에 탑의 벽 너머 뚫린 곳에 한 인영이 보였다.
‘그’였다.
콰앙!!!
그 순간, 바깥에서 거대한 열기가 탑의 벽돌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팽창하지 못하고 응축됐던 마나가 모조리 타면서 마실 숨이 사라진다.
“끅!”
미앵비슈가 빠르게 반응해서 마법을 펼쳤다.
반면 다이올드는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갑작스런 폭발을 온몸을 받았다.
투두두둑!
돌 무리 파편들은 탄환이 되어 그의 몸을 두들겼다.
“커억!!!”
입에서 한 움큼 피가 터졌다.
용인의 축복받은 신체라 이만한 파괴력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응축되었던 마나를 이겨낼 순 없었다.
두두두둑!
폭발은 한순간에 튀었다가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 여파로 인해 기어코 탑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다이올드는 미앵비슈를 죽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탈출구를 찾으러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어딜, 보느냐!”
미앵비슈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움직였다.
코어에 남아있던 마나를 털어서 단검 한 자루를 날렸다.
근육과 힘줄, 골절 때문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으나, 미앵비슈의 마나는 그대로였다.
쾅!
검끝으로 쳐내어 보지만 다른 폭발을 불러왔다.
“다 죽어가는 게!”
다이올드의 자세가 결국 무너졌다.
그 틈에 미앵비슈는 무너진 한쪽 벽으로 몸을 던졌다. 바깥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
하지만, 몸에 힘이 없다.
던진 몸은 겨우 머리만 내밀고 마찬가지로 쓰러졌다.
쿠르르르!
탑이 무너진다.
끝도 가까워진다.
느려지는 시간에 미앵비슈는 절망도 후회도 아닌, 체념을 맛보았다.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저요?”
이대로 죽을 거라 포기하며 고개를 떨구자. 천둥 같던 무너짐이 멈추더니 바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말한 대상이 그곳에서 혈검(血劍)으로 무너지던 입구를 지탱하고 있었다.
“유리!”
* * *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 탑은 결국 무너지도록 설계 되었던 것이다. 원작에서 미앵비슈의 시체를 찾을 때 잔해 속에서 찾았다고 하니, 추후 수사를 하더라도 흔적을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냥 폭발시켰다.
대신, 폭발의 형태를 바꿨다.
“백부님이라면 각 층마다 폭발물을 설치해서 그대로 내려앉도록 했을 겁니다.”
“그게, 그렇게…….”
도시 외곽으로 나온 유리와 미앵비슈. 그는 그녀를 미리 봐두었던 동굴에 뉘였다.
미앵비슈는 제대로 입술도 못 움직일 정도로 부상이 심각했다.
유리가 그녀의 입에 릴림의 사탕을 물렸다.
“그래서 전 탑 바깥에서 폭발을 일으켜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무너지도록 했어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냐고요? 그렇게 놔둘 리가 없습니다.”
“무슨 확신으, 로.”
하긴, 탑이 폭발하면서 내려앉을지 한쪽으로 기울어질지 누가 확신하겠는가.
물론, 원작을 본 유리는 당시의 묘사를 정확히 기억해냈다.
높은 탑이 있어야 했던 자리엔 들었던 것과 달랐다. 대신 돌무덤처럼 바위가 쌓여 있었다.
인부들은 돌 무덤을 파헤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속에 미앵비슈가 있을 거라 믿었다.
작은 표현의 차이였지만, 유리는 그 속에서 작은 차이만으로 큰 지점을 캐치해냈다.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무너졌다면 무덤 형태가 되진 않았겠지.
“……대충 확신이 있었다고만 해두죠. 지금은 그보다 회복이 먼저에요.”
“오라버니!”
마침 채럿도 나타났다. 이번엔 재규어를 닮은 마수를 타고 왔다.
재규어 마수가 멈추기도 전에 훌쩍 뛰어내린 그녀가 미앵비슈 곁에 뛰어와 앉았다.
품에는 온갖 풀과 꽃을 그득히 안고 있었다.
“외상에 괜찮은 약초들을 구했어요!”
“치료할 수 있지?”
“네! 잠시만요!”
엘프 어머니를 둔 덕인지 약초를 다루는 기술은 유리보다 채럿이 더 나았다.
그녀는 토끼 인형이 메고 있는 숄더백에서 절구와 붕대 따위를 꺼냈다.
약초를 절구에 넣고 가는 동안, 유리는 해야 할 말들을 전했다.
“고모님. 포기해주세요.”
“……뭐?”
“저 탑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고모님께서 저걸 찾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왜 원하는지도 알고 있어요.”
“네가, 그걸, 어떻……!”
미앵비슈에 관한 정보는 원작에서 유독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오히려 설정집보다 많은 내용이 나왔다.
그만큼 카이에게 미앵비슈의 죽음은 꽤나 뼈아팠다.
벤헬링턴과 달리 악마를 대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강자를 잃었으니.
물론, 그런 것치고도 과한 설명들이 많았다.
가령 미앵비슈의 과거사 같은 거.
“고모님에게 친구가 있었죠. 당시 용인이 가져선 안 되는 인간 친구가요.”
“거기까지…… 알았, 어?”
“그뿐만이겠습니까.”
유리는 흐릿한 시선으로 탑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블루 드래곤의 권능으로 친구 분을 살리려고 하는 거잖아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