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83
제183화
인간이자 전생에서 독자였던 유리는 이해가 안 되는 설정을 보았던 적이 있었다.
용인은 인간과 친해져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뭐랄까.
지체 높은 귀족이 아랫것들과 어울리면 안 된다는 편견이랄까.
미앵비슈의 과거가 딱 그랬었다.
달리 말해.
벤헬링턴의 기조는 용인에게 용인다움을 ‘강요’했다.
인간과 친하게 지내지 마라.
고고한 용인답게 타종족을 배척하라.
“너, 그걸 어떻게, 알……아?”
미앵비슈가 힘에 부치는 입술로 간신히 소리를 토해냈다.
그것만 알겠는가.
지금의 미앵비슈를 있게 한 친구였다. 그 친구가 있어서 강해졌고, 그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차기 가주 후보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친구의 죽음은 결국 미앵비슈에게 모든 걸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차라리 죽고 싶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해?”
“제발 날 내버려둬.”
“그 애 없인.”
“그 없는 삶은.”
“쓰레기야.”
“죽고 싶어.”
기억에 남는 문구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텍스트로만 봤던 감정이 바로 앞에서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나서 유리도 속이 쓰라렸다.
피떡이 된 얼굴 위에서 황망한 시선이 뻐끔거렸다.
“포기하세요.”
“내, 포기가, 중요하니?”
“네, 고모님이 포기하셔야 합니다.”
미앵비슈에게 저 ‘병기’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평생을 바쳐가며 찾아다녔으니, 병기를 빼앗는다는 건 자칫 그녀와 척을 질 수 있는 문제였다.
물론, 그녀에게 감정 이입을 해서 돕는다거나 사사로운 마음가짐은 아니다.
저걸 부수는 순간 그녀는 여기서 무너진다.
원작과 달리 살아나도 분명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으면 고모님이 죽으실 겁니다. 탑에서 고모님을 덮친 폭발은 백부님이 그 병기를 활용해서 이뤄낸 결과물이니까요.”
“그것, 까지.”
미앵비슈가 방심해서 당한 것도 있지만, 반대로 다이올드가 먼저 병기를 활용했기에 당하고 말았다.
단순한 부상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병기에 당한 상처는 회복되지 않는다.
방법은 다시 병기를 활용해서 회복하는 것뿐.
“오라버니, 상처가…….”
젠장, 벌써 병기의 위력이 발휘되고 있다.
기껏 아물던 상처들이 썩어문드러지면서 고름과 벌레가 기어 나왔다.
생명을 살리는 병기.
그러나 동시에 죽일 수도 있는 병기.
또한 지금 이 병기의 주인은 미앵비슈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힘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카이가 와도 불가능하고, 벤헬링턴 정도쯤 되어야 감당이 가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병기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워어어어!!!
무너졌던 탑 아래서 푸른 광채가 터졌다. 돌 더미가 무너지고 아래서 영체(靈體)만 남은 드래곤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벌써 플루토가……!
고대 병기 플루토.
저것은 일종의 소환석과 비슷한 아티팩트였다.
다만, 안에 잠든 소환수는 드래곤의 영체였고, 이를 발동하면 시전자의 생명력을 대가로 현현화된다.
그 증거로 미앵비슈의 육체가 아까보다 빠르게 썩어 들어갔다.
이래서 플루토를 포기하라고 했던 건데!
“오라버니, 어떡하죠?!”
“우리로선 방법이 없어.”
영체로서 생명력을 잠깐 빌렸어도 본질은 드래곤이다.
클라우드 하트에서 본 기억 파편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뿐더러. 저건 자아조차 없어서 한 마리의 포식자와 똑같았다.
유리는 미앵비슈를 다시 붙들었다.
“고모님! 얼른 플루토를 포기해주십시오! 안 그러면 고모님이 죽습니다!”
“알, 아…….”
“안다고요?”
애초에 플루토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는 이는 카이 말곤 없었다.
플루토를 이용하려면 생명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미앵비슈가 플루토를 찾아도 직접 쓰지 않을 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고모님은 자기 생명력을 잃다는 걸 알면서도 병기를 찾아다녔다고? 그럼 저 드래곤도 자발적으로 만들었다는 거야?’
유리는 신물을 삼키며 물었다.
“드래곤을 왜 만드셨습니까. 플루토는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물건일 텐데, 왜요.”
“다이올드가, 플루토, 줄테니까, 드래곤 영체, 만들라고.”
“어째서요.”
“도와주면, 날, 도와준다, 했어.”
순간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대체 죽은 사람이 뭐라고 자기 생명력을 함부로 쓴단 말인가!
애초에 그딴 용인을 막 믿는다는 것부터가……!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시잖아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요!”
“하, 지만…….”
“설령 살아 돌아온다 한들 어쩌려고요! 이대로 고모님께서 죽으시면 살아 돌아온 그 사람한테 고모님이 느낀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할 참인가요!”
“난…….”
울분에 가깝게 토할수록 화가 나고, 뒤이어 짜증이 따라왔다.
이런 걸로 무너져서 어쩌자고.
안 되는 걸 알면서 매달리는 심정을 모르지는 않다. 그러나 용인씩이나 되어서 블레이머와 견주었던 그녀가 과거에 목 메여 미래를 버리는 행위를 참을 순 없었다.
“그 분이 왜 고모님이랑 친구가 되었겠습니까!”
“……!”
한 인간 남자가 용인과 친구가 되었던 이유.
거기엔 아무런 이유 따위 없었다.
사랑과 우정 따위에 구구절절한 이유이 어디 있겠는가. 그럴듯한 사연이 있다 하더라도 그저 계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남자’는 투쟁과 본능만 배우고 살았던 용인에게 삶이란 걸 가르쳐 줬다.
“살아.”
문득 잊고 있던 그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넌 왜 그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거야.’
유리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떠난 친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미앵비슈는 핏물을 삼켰다.
이대로 플루토와 연결된 힘을 포기하면 다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미앵비슈와 플루토 간에 이어진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플루토의 영체에 영구적인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복구하려면 아마 평생을 바쳐야 겠지.
망설이던 미앵비슈가 간신히 입술을 뗐다.
“난, 플루토를, 포기…….”
그워어어어!!!
갑자기 플루토의 영체가 길게 포효했다. 동시에 미앵비슈의 의식도 끊어졌다.
“고모님!”
젠장, 아직도 부패가 진행되고 있다.
분명 포기했을 텐데, 어째서!
유리는 원작에서 봤던 내용들을 얼른 떠올렸다. 그곳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침 한 구절이 떠올랐다.
플루토는 어디서 왔는가?
도시를 꾸민 존재들이 누군가?
그들은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가?
카이가 갖고 있던 세 가지 질문은 끝끝내 답을 찾지 못하고 엔딩을 맞았다.
이미 죽어버린 미앵비슈 때문에 질문에 대해 조사할 필요성이 없었다.
그러나 열성 독자의 입장에선 주인공은 알 수 없는, 독자와 작가만이 아는 ‘암시’가 있는 법.
“다이올드!”
미다스에게 이것저것 부탁했었으니 가짜 플루토를 만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번 가짜는 성공에 가까웠다.
그의 의도대로 가짜 플루토를 만들어서 미앵비슈를 죽이려 했다면 말이다.
“부숴야 해.”
정확힌 영체를 죽여야 한다.
이어진 고리를 끊을 수 없다면, 연결된 끝을 잘라내서 없애는 수밖에.
그때, 미앵비슈가 희미한 정신을 부여잡고 말했다.
“어차피, 못, 부숴…….”
“부수는 방법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저건, 그냥 병기가, 아, 냐.”
그것도 안다.
현재 유리가 가지고 있는 수단으로 저걸 부술 방법은 없었다.
오히려 잘못 건드렸다간 유리도 죽음을 면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해야 했다.
늘 그랬듯, 일단 해보는 거다.
“아, 그리고 채럿. 부탁 하나만 더 할게.”
“뭔데요?”
* * *
블루 드래곤, 물의 지배자라 불리던 존재.
물은 곧 생명의 근원이니, 그들의 힘을 얻으면 죽은 생명도 살릴 수 있다는 소문이 한때 퍼졌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생명을 살린다니.
70번대 환생에서 카이도 이 소문을 믿고 서쪽 대륙에서 블루 드래곤이 남긴 유산이라든가 힘을 찾으러 다녔다.
그 결과 끔찍한 전쟁이 일어났다.
악마와 더불어 불로불사에 미쳤던 자들이 그 유산을 노린 것이다.
여기 있는 ‘병기’도 마찬가지.
[저거 어떻게 죽이려고.]“껍데기부터 찾아야지.”
다행이랄지.
깨어난 드래곤 영체는 바로 똬리를 틀고 잠에 빠졌다.
‘하긴, 저건 말 그대로 야생 동물이랑 똑같지. 먹고 자고. 그러다 거슬리면 짓밟아서 죽이고.’
다른 드래곤들에도 저것과 비슷한 병기들이 있다고 한다.
그 중 솔리드녹스의 고대 병기는 원작에서 카이가 악마를 상대할 때 자주 써먹었다.
나중엔 너무 남용해서 부서졌지만.
[근데요, 주인님. 미앵비슈의 친구라는 사람, 누군가요?] [아, 아스칼론은 모르던가. 꼬맹이, 말해도 돼?]‘마음대로.’
[카이야. 좀 더 명확히는 카이로 환생하기 이전에 다른 이름의 그 애였지.] [……어?]인간의 삶에 비해 용인의 수명이 훨씬 길다. 당장 벤헬링턴만 놓고 보더라도 나이의 앞자리가 백을 넘겼다.
“카이가 미앵비슈와 친했던 적이 있었어. 설정집에 인간 친구가 있고 이름만 있다고 해서 헷갈렸는데, 카이가 전생에 썼던 이름 중 하나였어.”
[흐응, 그거 흥미롭네요. 그럼 원작에서 플루토를 찾으러 왔던 건 미앵비슈를 위해서였나요?]“아마도.”
원작 속 카이의 감정선은 상당 부분 불안정하게 묘사되었다.
거듭되는 환생과 불멸의 인생을 겪으며 원하지 않은 인연들을 구축한 탓이었다.
그 중 미앵비슈와의 인연은 지독했다.
카이는 그녀를 악마에 대항하는 동료로 삼고 싶어했고, 미앵비슈는 자신이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그를 따랐다.
이유?
없다.
대신 사연이 있다.
“카이가 고모님한테 선물을 해준 적이 있어.”
[……그게 사연이에요? 미앵비슈가 카이랑 친하게 된?]“선물은 별 거 아니었어. 오히려 하찮았던 걸로 기억해. 그런데 그런 운명적인 이야기 있잖아. 귀족가 영애의 생일에 모두가 화려한 선물을 줄 때, 단 한 사람만 조촐하지만 진심이 담긴 선물을 준다던지.”
[그건 러브스토리잖아요.]“…….”
[주인님? 티르빙 양? 아니죠? 아닌 거죠?]“……모든 일에 이유는 없어도 사연은 있어. 인과성이 작용하는 법이야.”
우정일까.
사랑일까.
돌이켜 보면 카이가 세 가지 의문을 품을 때, 이곳에 찾아왔었다. 비록 뒤늦긴 했지만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냉혹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 카이 안데르센이 말이다.
“다 왔네.”
유리는 잠든 드래곤의 후각이 미치는 범위를 피해 숲을 빙 돌고 있었다.
그리하여 탑의 무너진 반대편으로 도착했다.
“예상대로 도시 사람들은 전부 사라졌군.”
영체라 해도 드래곤이 나타났으니 멀쩡하게 남아있을 리가.
그러나, 여기 어딘가에 다이올드가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든 가짜 플루토를 그냥 방치하고 갔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어디에서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채럿의 길잡이 벌레들을 시켜 근처 사람들을 찾아보게 했으나 쥐새기 한 마리 찾지 못했다.
그러다 한 마리 쥐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철수 했다고?”
다이올드가 이곳에서 급히 떠났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했다. 잘못됐다고 하기엔 애매하고, 그들의 철수에 안도하기엔 일렀다.
드래곤 영체를 이리 방치하고 떠난다? 시체를 확인하지 않고?
물론, 채럿이 있는 방향으로 갔다면 이해가 되겠으나. 그랬다면 채럿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하도록 해놨다.
그르륵!
그때, 드래곤이 한쪽 눈을 치켜 떴다.
시선의 끝에는 유리가 서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