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88
제188화
용인의 본능은 무섭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다이올드이기에 그는 최대한 소리 소문 없이 채럿에게 접근했다.
사정권에 그녀가 들어왔다.
기척을 보이자 토끼 인형이 인간형으로 변해서 주먹을 쥐었다.
“호오, 이게 알리아스가 남긴 유산이었나.”
뿐만 아니라 어디선가 사방 팔방 동물들이 몰려왔다.
쥐, 새, 사슴 등등.
“기껏해야 초식 동물들이군.”
그도 처음 보는 토끼와 드루이드 능력이었다.
알리아스가 드루이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감회는 남달랐다.
“오, 오지 마세요!”
채럿이 소리쳤다.
그녀는 미앵비슈를 등 뒤로 숨기고 막아섰다. 그러나 차마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
풀썩!무릎이 무너져서 주저앉고 말았다.
‘왜……?’
다이올드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각오도 했다. 유리와 같이 반을 타고 오면서 다짐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다이올드를 마주치자마자 송두리째 마음이 뽑혀 나갔다.
공포……는 아니다.
언뜻 공포라 할 수 있긴 하지만, 다이올드에게 느끼던 공포 따윈 극복한지 오래다.
‘웃고 있어……?’
말 그대로 다이올드가 웃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 미소로 채럿과 마주한 것이다.
가식이라 할 순 없었다. 한 번도 ‘아버지’로서의 미소를 본 적은 없어도 그리 확신할 수 있었다.
저건 분명 아버지가 내보내는 미소와 인자함.
“우웩!”
순간 참지 못하고 채럿은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이 외부로부터 물밀 듯 들이닥쳤다. 밀어내려 해봐도 결국 구역질만 반복케 할 뿐이었다.
그런 아이를 보던 다이올드는 깊은 침음을 흘겼다.
“오, 채럿. 아버지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오지 말라니. 아버지가 섭섭하구나.”
“당신, 은, 아빠는 아빠가 아냐!”
“당신이냐, 아빠냐. 확실히 하렴. 물론, 난 죽어도 네 아버지겠지만. 당신일 수도 있지. 당신이자 아버지이고, 혹은 네가 원하던 가족, 그것도 아니라면 적……인가?”
“이, 이상하게 말하지 마. 아, 알아 듣게―”
“이상하게가 아니란다.”
대화가 수상하게 꼬이고 있었다.
그 속에 다이올드만이 온화하게 웃을 줄 알았다.
채럿의 표정은 있는 대로 엉클어졌다. 울 것 같으면서 분노하고, 분노할 거 같으면서 망설였다.
온갖 감정이 뒤섞인 아이를 보는 아버지는 어느 때보다 아버지답게 시선을 두었다.
“채럿.”
“오지 말라고!”
크릉!
토끼가 한층 더 채럿에게 달라붙었다. 오지 말라고 이를 드러내는 짐승은 초식이 아닌 육식 그 자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날 공격하지 못하는 구나?”
잠깐이지만 다이올드가 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채럿이 울상을 지으며 미앵비슈를 끌어안았다. 이 와중에 미앵비슈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녀를 간신히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 모습에 다이올드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강해졌구나, 딸아.”
어찌 해야지.
뭘 할 수나 있을까.
막상 마주한 다이올드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만 하고 만다.
그 망설임이 전해진 토끼도 아무것도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크릉!
다른 동물들이 도리어 물러서고 있었다.
다짐했는데.
오라버니에게 힘이 되겠다고 했던 각오는 어딜 갔는데!
“이 바보야! 너 뭐 하냐고!”
기어코 채럿이 자신의 쓰러진 무릎을 내리치며 악성을 내질렀다.
제발 움직이라고.
일어서라고.
할 수 없더라도 해야 하지 않으냐며.
그런데 오늘 따라 아버지가 이리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웃고 있는 낯이, 괴기하다 못해 피리해질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그때.
“채……럿.”
미앵비슈의 힘겨운 손길이 채럿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고모?”
“네……삶, 이야.”
“……!”
“넌, 너대로, 살아. 더는…… 용가, 아버지, 무엇도. ……큭, 아무것도! 얽매이지 마.”
끊어지는 음절과 호흡을 끝으로 미앵비슈의 손끝이 늘어졌다. 중력에 맡긴 몸은 살짝 흔들어 봐도 반응이 없었다.
“고모? 고모!”
“이런, 결국 누님이 죽은 건가.”
매듭이 풀렸다 해도, 한 번 잃은 생명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상처나 부상과 다르다.
영혼의 손상.
코어의 상실.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한 거나 다름없었다.
“빨리 좀 죽어주시지 그랬습니까. 그랬다면 제가 장례식 정돈 블레이머처럼 제대로 치르게 해드렸을 텐데요. 이딴 곳에서 죽으면 그냥 불태워 없애는 거 말고는 답이 없지 않습니까.”
“당신……!”
채럿은 핏대가 선 눈알을 번뜩였다. 계속 눈물이 났지만, 이번만큼은 일어섰다.
여전히 팔 다리가 떨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이뿐이다.
두렵고, 싫다. 아버지가 죽도록 싫다.
하지만 미앵비슈가 죽어가면서까지 전달해준 한 마디만큼 강력하진 못했다.
‘나 때문에 죽었어.’
채럿은 그렇게 생각했다.
천성적인 소심함과 자조적인 마인드는 그녀를 항상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런 와중에 단 한 번도 그녀의 자조적인 성격이 끝끝내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던 경우는 없었다.
늦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미앵비슈가 남긴 마지막을 배신할 정도로 그녀의 의지가 박약하진 않았으니.
“일어서는 거냐? 아버지와 싸우겠다고?”
다이올드가 물었다.
“채럿, 미앵비슈는 약해서 죽었다. 아무리 차기 가주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어도 용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버리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란 말이다. 너도 똑같이 되려는 거냐?”
“그런 게 강함이라면, 난 강해지지 않을 거예요.”
“어리석어. 나약한 마음은 결국 죽음을 초래한단다. 용가에서 그럴 배웠지 않았니.”
“닥쳐요!”
샤샤!
그 순간.
숲 안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했다. 나무들을 우두둑 쓰러뜨리며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망설이지 않고 아가리를 벌려 다이올드를 물었다.
카득!
다이올드의 쉴드가 이빨들을 막아냈다.
갑자기 등장한 생명체는 다름 아닌 1급 마수종인 락타샤였다.
검은 뱀은 어떻게든 쉴드를 깨드리려 아가리에 힘을 줬다.
카득! 카드득!
“끄으…….”
채럿의 코에선 피가 흘렀다.
그녀도 이렇게까지 고위 마수를 다뤄본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3급 이상으로 다루는 시도를 할 수조차 없었다.
드루이드 능력은 교감과 동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기술.
명령이 아닌 부탁을 통해 동물이을 다뤘다.
그러나 마수에겐 부탁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하게 통제할 줄 알아야 다룰 수 있었다.
채럿은 그 한계치를 넘어서 마수를 부리고 있었다.
몸이 찢어지는 기분이 든다. 머리가 핑핑 돌며 당장이라도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런 채럿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다이올드는 락타샤의 등장에만 관심을 가졌다.
“1급 마수종까지 다룰 줄 알게 되었구나! 이건 좀 놀라운 걸! 알리아스보다 더 대단해!”
“당신……!”
카득!
쿵!
쉴드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헌데 다이올드는 태연했다. 뚫린 구멍으로 독니가 아슬아슬하게 비집고 들어와도 아버지로서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무리가 있구나. 하긴,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마수를 다룰 줄 알았었으니까.”
“뭐……?”
“채럿, 내가 도와주마. 이 힘, 올바르게 쓰게 해주겠어.”
“난 당신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
“유리, 그 놈한테 있으면 도움이 되더냐? 그 녀석은 널 이용하려 할 뿐이다. 지금까지 잘 돌이켜 보아라. 너의 정보망을 시도 때도 없이 이용하지 않았더냐?”
“그건 전부 내 의지였어. 오라버니니까 돕고 싶어서 내가 한 선택들이라고.”
콰직!
결국 쉴드가 부서지고 기다란 혓바닥에 감겨 다이올드의 육체가 사라졌다.
락타샤의 목구멍 아래로 사람의 형상이 가죽위로 튀어나온다.
마침내 정적이 채럿을 찾아왔다.
“허억! 허억, 허억…….”
탈진한 채럿의 온몸이 땀으로 흠씬 젖었다. 인간형 토끼는 얼른 달려와서 그녀를 부축했다.
“고마, 워.”
그리 말하며 락타샤를 쳐다봤다.
무시무시한 1급 마수종이 여전히 먹은 것을 음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채럿을 적대하는 기색은 없었다. 보통의 마수였다면 벌써 채럿을 공격하고 남았을 터.
“미안한데요, 엄마. 저 좀만 뉘어줄 수 있어요?”
크르르릉.
토끼는 그녀를 미앵비슈 옆 나무에 안고 데려가서 기대주었다.
처음 해보는 시도에다가 정신적으로 무뎌진 탓에 피로감이 통증으로 치환되어 몰려왔다.
그녀 자신도 1급 마수종을 부릴 마음 없었다.
그저 하나.
내게 가진 힘으로 진짜 괴물을 막겠다는 일념.
그것만으로 강력한 마수종을 불러왔다. 그게 락타샤였다.
“……진짜 괴물, 이라고.”
순간적으로 채럿은 그리 생각했다.
어느 때보다 아버지처럼 웃었던 다이올드가 마수보다 끔찍한 괴물이라고.
‘아니면 악마였을까.’
채럿은 그대로 주저앉아 미앵비슈의 손목을 짚었다.
맥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로 그녀는 죽었다.
“난, 왜…… 또!”
또 누군가가 죽고 나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가.
어머니 알리아스 때만 해도 그랬다.
채럿은 전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걸.
그러나 그땐 이미 알리아스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당시엔 그저 어렸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치부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면 변명에 불과했다.
뭘 했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게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또. 또.
공포 하나를 이겨내지 못해서 누군가가 죽일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악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괴물?”
그런데 ‘그 목소리’가 들린 건 그 때였다.
갑자기 락타샤가 하늘 위로 머리를 쳐들었다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샤악!!!
크릉!
이상 징후에 인간형 토끼가 재차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락타샤의 목 한 가운데에 주먹을 꽂았다.
퍼걱!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날만큼 강한 충격에 락타샤가 저만치 날아갔다.
그럼에도 락타샤는 계속 꿈틀대다가 갑자기 움직임이 멎었다.
크르릉!
토끼는 멈추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곧 몸을 뚫고 날카로운 날붙이가 튀어나왔다.
푸욱!
그리고 한 명 더.
“이건 좀 짜증나는군.”
토끼의 머리 위에서 새로운 칼날이 떨어졌다. 그 주인이 토끼를 덮치기 직전, 토끼는 먼저 맞았던 검을 발로 걷어차며 그 반동으로 두 번째 공격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채럿 앞에 나와 주먹을 쥐었다.
“엄마! 괘, 괜찮아?!”
크릉!
인간형 토끼는 아주 멀쩡했다. 인형의 몸이기에 깊은 상처에도 피를 흘리거나 내장이 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인형 속에 숨겨진 ‘핵’을 비껴갔다.
그런 핵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공격한 다이올드는 천천히 락타샤의 거죽 아래서 올라왔다.
그가 새로이 나타난 자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젠장. 빨리도 나타나는군.”
“미안하다. 다른 쪽에 일이 많아서.”
채럿은 제 눈으로 두 사람을 보고 믿지 못했다.
다이올드가 두 명이었다.
단순히 닮았다고 하기엔 표현이 맞지 않았다. 외모부터 복장이나 사소한 표정, 몸짓마저 채럿이 알던 다이올드 그대로였다.
“이게, 대체…….”
“뭘 놀라느냐. 가짜를 처음 보더냐?”
“그러게. 가짜는 널리고 널렸는데.”
“……!”
채럿은 본능적으로 진짜 위기를 느꼈다. 자신의 능력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기.
그녀의 소리 없는 부름에 다급히 동물들이 모여들었다.
동물들은 아까와 달리 바로 다이올드를 공격했다.
“쯧.”
혀를 찬 첫 번째 다이올드가 동물들을 차례로 상대했다.
동물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개중에 육식 동물도 끼어있었으나, 다이올드를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키엑!
커엉!
그 사이, 두 번째 다이올드가 채럿에게 다가왔다.
“넌 쓸모없어졌다. 기회를 줬는데도 걷어찼으니, 너도 죽어 마땅해.”
“엄마!”
부름과 동시에 인간형 토끼가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두 번째 다이올드는 너무나 쉽게 토끼의 팔다리를 잘라냈다.
지탱할 곳을 잃은 인간형 토끼는 솜을 휘날리며 쓰러졌다.
순간 채럿은 두 번째 다이올드가 ‘진짜’인 걸 알았다.
웃지 않고, 잔악한 시선으로만 자식들을 대하던 자신의 아버지.
그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죽어라.”
빛이 번뜩이는 찰나.
두 사람 사이로 한 인영이 끼어들었다.
“어딜.”
갑자기 끼어 든 의문의 실력자는 카이도, 유리도 아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