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
제19화
협박 편지를 놓고 누가 보냈을지 추측해봤었다.
안 그래도 가문에 들어오면서 별로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후보는 많았다.
그나마 가문의 혈통으로 인정받으면서 편지가 배달되었고 후보군이 줄어들었다.
혈통한테 나가라고 할 배짱 있는 사람은 몇 없으니까.
도난 사건을 일으킨 제몬은 제외.
그 놈은 용인보다 더 용인스러워서 편지보단 문답무용으로 따졌으리라.
남은 후보는 타나토라든가 다른 벤헬링턴의 3세, 혹은 그들의 부모 되는 사람들 정도?
그러나 도서관에서 설정집을 얻고 나서 후보는 단숨에 더 줄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으…… 미앵비슈 님의 담당 시녀가…….”
유리에게 추궁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시녀는 편지의 발신인을 실토했다.
어지간히도 무서웠는지 말하는 목소리가 떨리다 못해 바이브레이션 하는 줄 알았다.
다시 한 번 유리가 물었다.
“미앵비슈 고모님께서 시켰다는 거야? 아니면 그쪽 시녀가 시켰다는 거야?”
“그, 그것까진 몰라요. 그냥 그쪽 시녀가, 돈 줄 테니까, 저보고 펴, 펴, 편지를 갖다 놓으라고…….”
[거짓말 같진 않은데.]티르빙의 평처럼 유리도 생각이 같았다.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거짓말 속 대상이 미앵비슈라면 더더욱.
세상 어떤 간땡이가 감히 나이트워커의 부가주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겠는가.
누군가를 모함하려 유리에게 거짓을 말한다고 쳐도, 모함을 받아들이는 주체가 아직 가문에서 영향력이 크지 못한 유리라서 이 또한 말이 안 되었다.
그렇지만 의심이 덜어질수록 더 수상쩍었다.
“진짜로 고모님 쪽 사람이 시킨 거라고?”
“네.”
“고모님이 시킨 건 확실치 않고?”
“네! 진짜로요!”
릴림이 유리 곁으로 다가와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떡, 해요?”
“……돌려보내.”
“그냥요?”
“저번처럼 뭘 훔친 것도 아니고, 암살도 아니잖아. 중간 전달책을 닦달해봤자 뭐가 나올 리도 없고.”
“……알겠습니다.”
찜찜한 마음에 릴림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시키는 대로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시녀가 나가면서 연신 감사하다며 소리를 질렀다.
잠잠해지고 좀 더 시간이 흐른 뒤, 릴림이 돌아왔다.
“정말로 이래도 되나요?”
“불안해?”
“도련님, 저번에도 이런 상황에서 그냥 놔두라고만 하셨어요. 근데 또 그냥 두시라고 하셔서. 전, 걱정돼요.”
“그렇다고 해결 못 했던 일도 없었지. 그리고…… 이전에는 이 편지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으니까.”
도난 사건은 명백히 그 의도가 악질적이었으니까 잘잘못을 따졌다.
그러나 이번 편지는 다르다.
가문을 나가라는 문구만 봐선 협박이었지만.
유리는 편지를 릴림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릴림, 가문에서 이렇게 말로 겁박하는 자가 누가 있을까?”
“으음, 글쎄요.”
“질문으로 바꿔서. 가문에서 나한테 겁박을 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가문 사람들, 다요.”
“……나 가문에서 그 정도야?”
“죄, 죄송해요. 하지만.”
“아냐, 쩝. 현실이 그렇긴 하지. 그럼 다시 질문 바꾸자. 이게 겁박이긴 할까?”
“예?”
보통 협박은 원하는 걸 요구하면서 불이행할 시 다른 걸 빼앗겠다고 하는 게 맞다.
그에 반해 이 편지는 이행 조건을 걸었다.
이걸 협박이라 볼 수 있을까?
“처음에는 다들 날 반기지 않으니까 협박이라고 단정지었는데, 아닌 거 같아.”
“그러면, 이 편지는…….”
“충고지. 친절한 충고.”
물론 이조차 확신이 있진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편지를 봐도 협박과는 거리가 먼 내용에다가 시녀가 쉽게 실토해버리는 걸 봐선 분명 협박이 아니었다.
더불어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더더욱 분명해졌다.
“아마 고모님이 보내신 게 맞을 거야.”
“하지만, 그분이 왜…….”
“글쎄다.”
현실에선 미앵비슈를 가문 내 파벌 싸움을 피하는 겁쟁이라 불렀다.
허나 원작과 설정집에 나오는 미앵비슈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다르다.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싸웠던 흔적들을 보면 사정없이 피를 보고 다녔다고 한다.
특히 나이트워커가 멸문한 뒤 생존한 그녀는 닥치는 대로 살아있는 것들을 죽였다.
그런 사람이기에 충고보다는 협박이 어울리지만.
‘지금까지 봤던 모습은 전혀 광적인 사람 같지 않아.’
유리는 다이올드와 대치했을 때를 떠올렸다.
솔직히 미앵비슈가 그렇게까지 막아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그저 조금이라도 정당성을 얻으려고 울었던 건데.
‘용인답지 않게 유한 성격이라.’
[그럴수록 더 조심해야 돼. 알지?]‘알다마다.’
아무리 호의적으로 대해줘도 이곳은 엄연히 용인 가문. 평범한 인간이 살기엔 척박했다.
유리는 애써 몽글몽글해지려는 마음가짐을 다듬고 또 깎았다.
아직 무르게 굴 때는 아니었다.
* * *
지식의 관 입학 시즌이 다가왔다.
지식의 관은 현생의 대학과 시스템이 비슷했다.
성적을 쌓아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간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일정 기준이 요구하는 난도가 상당히 높으며, 재수강이라든가 제적 따윈 없었다.
한 번 떨어지면 영원히 퇴출.
의외인 점은 지식의 관에 입학하는 조건이다.
가문의 혈통은 무조건 들어갈 수 있고, 무조건 들어가야 했지만.
폐쇄적인 교육기관의 이미지와 달리 외부에서도 얼마든지 입학 신청이 가능했다.
그저 입학시험이 말도 안 되게 난이도가 높아서 입학 자체가 어렵고, 입학하고 나서도 혹독한 커리큘럼 때문에 금방 자퇴하곤 했다.
그래서 각 학년 별로 수강생은 기껏해야 10명 남짓이며, 그들 대부분은 봉신 가문의 자제이거나 사자 후보생, 기사 생도들이었다.
첫 입학 수업에 나온 유리는 강당에 뒤편에 앉아서 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첫 수업 과목은 교양인 역사였다.
[밖에서 듣던 거랑 달리 진짜 교양 있는 수업을 하는데?]‘나도 투쟁심이 넘친다고 해서 매번 싸우고 치고 박을 줄 알았어.’
수업 시작에 앞서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자유롭게 놓인 자리에는 빈 백에 각자 개인용 테이블이 놓였다.
모인 학생들 중에는 눈에 익은 놈들도 있었다.
제몬과 타나토였다.
제몬은 여전히 독기 어린 시선으로 유리를 바라봤으나, 반면 그 옆에 있던 타나토는 훔쳐보기 바빴다.
제몬과 시선이 똑바로 마주치자 입모양만으로 무어라 지껄였다.
[쟤 아직 혼이 덜 났나 봐.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가?]눈치가 없긴 했다.
오죽하면 옆에 있던 타나토가 제몬의 옆구리를 찌르다 못해 주먹으로 쳤다.
“뭐하는 거야? 가만히 안 있어?”
“저 자식이 째려보잖―”
“가만히 있으라니까……!”
예전에 봤을 땐 꽤 친한 사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인성이 나빠서 그렇지 나름 형제애를 발휘했었다.
그랬던 두 사람이 지금의 꼴을 보니 타나토와 대련 이후 급격히 사이가 나빠진 듯했다.
뭐, 거기까진 알 바 아니고.
유리는 신경 끄고 다른 학생들을 살폈다.
제몬과 타나토를 빼면 전부 초면이었다. 낯이 익은 자들이 있긴 해도 이름까진 몰랐다.
그러다 문득 제일 앞자리에 앉은 여자애를 발견했다.
옆모습뿐이었으나 머리카락과 눈동자만으로도 출신을 알았다.
‘솔리드녹스 가문?’
이 세계에는 5개의 용인 가문이 있다.
그 중 나이트워커와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가문이 솔리드녹스로.
나이트워커가 밤과 어둠, 달을 상징하는 가문이라면 솔리드녹스는 낮과 빛, 태양을 상징했다.
그들은 레드 드래곤의 후예로, 고대 드래곤 시절부터 나이트워커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지금은 벤헬링턴의 위세가 워낙 강해서 힘에서 밀리는 추세였으나.
그래도 태양 가문이라는 이명처럼 절대 만만히 볼 권력이 아니었다.
근데.
[라이벌 가문 사람이 왜 여기 있어?]“…….”
유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자애를 뚫어져라 살폈다.
머리카락, 눈썹, 눈꺼풀 모두 붉은 색을 띠었다. 덤으로 눈동자는 금색으로 빛이 났으며 동공이 세로로 갈라졌다.
누가 보더라도 용인이자 솔리드녹스 사람이 분명했다.
유리는 혹시 가문으로 입양되거나 세력을 바꾼 용인이 있는지 설정집을 뒤졌다.
허나 어디에도 솔리드녹스가 변절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 막중한 역사가 있다면 원작에서도 언급됐을 것이다.
반대로 솔리드녹스에 넘어갔던 사람이 있냐고 하면.
한 명 있다.
그 사람을 떠오르는 순간, 유리는 여자아이가 이곳에 있게 된 이유 또한 알아냈다.
‘교환 학생.’
[엥? 그게 뭐야?]‘정기적으로 교류 차원에서 가문의 아이들을 서로 교환 학생으로 보낸다나봐.’
라이벌 가문이자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이지만, 두 용인 가문이 있기에 이 세계의 힘이 무너지지 않고 평화 상태를 유지했다.
물론 뒤에서는 엄청나게 암투를 다퉜다만, 정치라는 게 형식적인 면이 있어야 하는 법.
그래서 두 가문은 서로 유망한 아이들을 각자의 교육 기관에 일정 기간 보내곤 했다.
이것을 교류, 현대식으론 교환 학생이라 표현했다.
[이상한 제도네. 서로 시간 낭비밖에 더 되나.]‘형식적인 교류라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지. 서로에게 자신들의 미래가 이 정도라면서 과시할 수 있잖아.’
[과시용이라.]‘재밌는 점은 솔리드녹스로 넘어갔던 교환 학생이 스파이 짓을 해.’
[두 개의 심장이라도 가졌나 봐. 나 같으면 쫄려서 심장이 하나쯤은 터졌을 텐데.]‘심장이 두 개가 아니라면 멍청한 거겠지.’
[설마?]유리는 제몬과 타나토 형제에게 다시금 시선을 두었다.
특히 타나토.
두 사람 중 바로 타나토가 미래에 교환 학생으로 솔리드녹스에 가게 된다.
거기서 자기 딴에는 공을 세워볼 심산에 감히 가주의 집무실에 침입하려다가 쫓겨나고 만다.
그 일로 두 가문의 관계가 악화되었다가 벤헬링턴이 결국 실력 행사에 나선다.
거기까지 생각을 공유한 티르빙은 혀를 찼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까지. 벤헬링턴이 나섰을 정도면, 어후. 예전에 블랙 드래곤 아저씨랑 레드 드래곤 아주머니랑 누가 더 브레스가 세냐면서 싸웠던 게 떠오르네.]‘호오, 결과는 어땠어?’
[나름 생명체들한테 피해 안 주겠다고 바다 위에서 싸웠는데, 정작 바닷물이 전부 말라 고생했었지. 결판도 못 냈지, 아마?]드래곤과 용인을 비교하기에는 어불성설이라지만.
비슷한 파장이 일어날 미래를 엿보고 나니, 어우. 상상만으로도 두통이 밀려왔다.
‘그나저나 솔리드녹스에서 보낸 교환 학생이라. 궁금한데.’
나이트워커가 근접 전투에 능통한 가문이라면, 솔리드녹스는 마법을 비롯한 마도공학의 달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나이트워커가 마법에 약하고 솔리드녹스가 근접전에 약하냐.
그럴 리가.
어디까지나 두 가문을 비교해서 그렇다는 거지, 평균을 놓고 보면 애초에 용인 가문들은 그 평균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아했다.
‘교환 학생으로 올 정도면 꽤나 촉망받는다는 건데. 원작과 설정집에도 나오지 않는단 말이지.’
[듣고 보니 이상하네. 장차 솔리드녹스를 이끌어 갈 재목이 원작에도 없다?]‘가능성은 하나.’
솔리드녹스는 나이트워커와 달리 미래에 악마에 대항하는 선량한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심지어 그 나이트워커를 없애는 데 앞장섰던 가문.
그만큼 원작에서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가문의 미래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 유리는 두 가지 중 하나로 추측했다.
인물 자체가 원작에 주는 영향력이 떨어지거나.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죽거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