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0
제190화
쿠에에엑!
그 순간.
소리 없는 섬광이 획을 그었다. 획을 따라 간 곳엔 드래곤 영체의 목이 있었다.
서걱!
목이 갈라지고, 겨우 회복했던 생명력이 솟구쳤다. 피를 대신한 생명력은 분수처럼 뿌려져 공기 중으로 산화했다.
드래곤이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쳤다.
‘누가……?’
생각할 겨를 따위 없었다. 힘을 잃은 드래곤이 카이를 떨어뜨렸다.
중력에 몸을 맡긴 그는 사정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달리세요!]다리가 터질 것 같이 마나를 불어넣자, 아스칼론이 알아서 별빛나무의 힘을 풀었다.
어스름한 빛들이 회복을 넘어서 몸을 강화시켜줬다.
탁!
다행히 아슬아슬한 시점에 카이를 받아낼 수 있었다.
“야! 카이! 카이 안데르센!”
헌데 녀석의 상태가 사뭇 심각했다.
상처가 너무 많았다. 화상 자국부터 시작해서 자잘한 상흔, 특히나 허리 아래는 아예 반쯤 뜯겨나가서 하체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 녀석, 플루토를 이길 수 있는 실력까진 안 되었던 건가?”
플루토의 발견이 원작보다 이른 시점인 건 맞다.
그러나 현재 카이의 실력을 고려하면 플루토와 호각세였다.
아니, 실력적으로 부족할지라도 ‘공략법’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꼬맹이, 성검이…….]카이의 손에 들린 성검이 평소랑 다르게 황금빛을 발하다가 끊기듯 사라지길 반복했다.
이런 현상을 원작에서 몇 번 읽었던 적이 있었다.
이는 최악을 의미했다.
“젠장. 이 녀석,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짓을 벌일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 있긴 하겠지.
카이는 적어도 이유라든가 명분 없이 행동하지 않았다.
[어떡할 거니?]“…….”
유리는 잠시 말을 잊고 하늘에서 몸부림치는 드래곤 영체를 쳐다봤다.
누가 도와줬는지 모르겠으나, 깊은 상흔 때문에 한동안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플루토를 막을 방법은 카이한테 있었어.”
카이는 분명 드래곤 영체, 플루토를 이길 수 있었다.
매듭을 끊어 놓는 바람에 드래곤 본인 특유의 힘이 강해져버리긴 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공략법이 존재했다.
성검 미뭉만이 할 수 있는 방법.
그러나 카이가 쓰러진 이상, 유리가 드래곤을 상대해야만 했다.
[너 저거 못 이겨.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너도 다칠 거야.]“알아.”
카이야 상대할 수 있어도 유리로선 아직 드래곤 영체급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무형검은 아직 초(初)에 머물렀고, 그나마 상대할 수 있는 무기인 아스칼론도 없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도 없어.”
[희생자를 줄이자는 거야. 렉슬러가 합류했을 테니까 제국의 군대까지 끌고 와서―]“잊었어? 여긴 제국 밖이야. 군대가 움직이면 안 돼. 우리도 원정대니까 자유로운 편이지, 제국의 군대가 밖으로 나왔다간 전쟁이야.”
[그치만, 주인님. 저걸 상대할 필욘 없어요. 아마 주인님의 고모 되시는 분께선…….] [아스칼론.]“아냐. 알고 있어.”
미앵비슈는 죽었을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법 하다.
소원을 빈 자의 말로는 대부분 똑같으니까. 다만, 고모님은 거기까진 몰랐으리라.
만약 알았다면…….
“고모님을 살릴 수 있어.”
[야, 꼬맹이.]“그러기 전에 드래곤의 영체부터 처리해야 해. 풀어진 매듭을 끊어야지. ……아스칼론.”
[네, 주인님.]“무기화 되지 못했어도 설계도가 있으니까, 무기로 만들어질 순 있겠지?”
[……티르빙 양에게 제 힘을 넣으시려고요?]“이거 최악이야. 저걸 막지 못하면, 진짜 다 죽어.”
블루 드래곤의 병기 플루토는 이형적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체다.
소원을 빈 자와 매듭이 이어지는 순간, 절대적으로 소원이 이뤄진다.
그런데 매듭을 끊으면 소원을 빈 주체는 생명력을 잃지 않게 되지만, 드래곤이 만들어진 이상.
가짜 드래곤은 진짜를 흉내 내려 할 터.
트듯! 트듯!
이미 드래곤 영체는 망가진 부분을 거의 회복하고 있었다.
유리는 이게 마음에 안 들었다.
“매듭이 풀어졌으면 소원이 사라져야지. 왜 그대로 있냐고.”
사실 그래서 매듭이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했다.
고리나 사슬처럼 끊어내는 게 아니라, 매듭을 풀어낸 형태.
결국 남아 있는 끈은 소원을 빈 자와 소원의 결정체를 잇고 있다.
저건, 쉽게 말해서 한 번 뿐인 기회였다.
그러나 끝끝내 드래곤의 영체가 되어가는 녀석을 용인도 아닌 인간인 유리가 감당할 수 없었다.
드래곤이 가짜라 할지라도 드래곤은 드래곤.
애초에 카이도 공략법을 알고 있었을 뿐이지, 제압을 할 순 없었다.
그런 드래곤 영체를, 내가 당해낼 수 있을까.
‘고모님. 전 알량한 복수심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누굴 위한 속죄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파렴치한은 아니라서요.”
가문에 오고 나서 미앵비슈에게 뜻밖의 것들을 많이 얻었다.
가끔은 그녀의 비호가 있어서 살았던 적도 있고, 가문 내에서 몇 안 되게 웃어주기도 했다.
적어도 유리는 그런 사람을 잊고 사는 놈은 아니었다.
어차피 도망가거나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저 드래곤이 활개를 치며 있는 대로 모든 걸 파괴하겠지.
어쩌면 다이올드가 원하는 결과가 그럴지도 모르고.
아니면 유리가 막길 바랄지도 모른다.
물론, 후자라면 괜찮았다. 풀어진 매듭은 얼마든지 다시 묶을 수 있으니까.
“아스칼론의 재생의 힘이 필요해.”
[괜찮겠어요?]“필요한 건 다 해봐야지.”
별빛나무의 힘은 엄연히 성력과는 궤가 달랐다.
그러나 블루 드래곤 못지않은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리는 이 힘이 흡사 미뭉과 같다는 걸 알았다.
이건 회복이 아닌, 재생.
망가진 것을 되돌려서 새로움에 가깝게 만드는 힘.
환생도 육체를 잃을 지언정, 영혼에 손상을 입었다가 이를 재생하는 과정을 거쳐서 이뤄진다.
그리고 카이는 이 재생의 힘을 역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망가진 건 망가진 걸로 돌아가라.]아스칼론의 읊조림을 시작으로 유리가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부터 어그러졌던 소원이다.
드래곤을 부활하는, 죽은 자를 되돌리게 만드는 소원이었으니까.
죽은 자는 절대 살아 돌아 올 수 없다. 이것은 무한한 환생을 겪어본 카이가 내린 결론이었다.
“크악!”
입가에 핏물이 고였다. 한 움큼 실컷 뱉어 봐도 계속해서 비릿한 맛이 혀를 감쌌다.
마검에 별빛나무의 힘이라서 역시 상성이 엉망진창이다. 마나를 불어넣을수록 티르빙에게 통증이 가중되었다.
그래도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이건 주인이 택한 일이니까.
그저.
[얼른, 끝내라고!]혈계가 펼쳐졌다가 하나로 모여 거대한 화살촉이 되었다. 전방으로 촉이 날아가며 뚫렸던 상처를 헤집었다.
크아악!
브레스가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혈계로 만들어진 무형검들이 흩어져서 방패를 이루어 불길을 막았다.
그 뒤로 유리가 달라붙었다가 마지막에 브레스를 온 몸으로 받으며 전진했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통이 가까워졌을 때.
티르빙이 머금었던 별빛나무의 힘이 폭발했다.
쿠득!
작열하는 오색의 마나와 가죽을 파고드는 칼날.
이윽고 드래곤이 비명을 질렀다.
키에엑!
잠시 후, 놈의 머리가 떨어졌다.
*
렉슬러는 손쉽게 가짜 다이올드를 처리했다. 용인치곤 터무니없이 약해진 가짜들이라 렉슬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 틈에 유리를 도우러 움직이던 일행은 쓰러지고 있는 드래곤을 목격했다.
쿵!
거대한 드래곤 영체가 먼지 폭풍을 일으키며 숲에 누웠다. 그 모습을 본 채럿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드래곤이……!”
그녀의 손가락질에 다른 일행들도 무너져가는 영체를 확인했다.
힘겨웠던 싸움의 끝이 보이자 조금씩 낯에 미소가 번졌다.
채럿이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왔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신나서 달려오던 그녀의 걸음은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 점점 느려지더니 완전히 멎었다.
채럿을 필두로 따라오던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블레이크가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살폈다.
“유리 님은…… 어디에 계신 겁니까?”
“유리? 유리!”
이자벨이 힘껏 이름을 외쳐보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왔다.
유리가 없었다.
카이도 없고.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엔 거대한 피 웅덩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블레이크 경? 뭐라고 말 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가씨.”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라버니! 어디 있어요?!”
“유리! 어디 있나!”
채럿을 따라 이자벨도 목청 높여 그의 이름을 불러봤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불안감이 감돌았다.
혹시 다이올드가?
그가 나타나서 유리와 카이를 데려간 걸까?
“오라버니!”
그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조차 일행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남아있는 여러 흔적들이 자꾸만 그들이 죽었다고 말하는 거 같아서 애써 부정하느라 급급했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이렇게 사라진다거나, 죽는다거나 할 리가 없다고.
“오라버니이!!!”
결국 그날 밤이 되어서도 유리의 흔적을 찾아내진 못했다.
* * *
유리가 정신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광경은 허름한 나무 천장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에는 밤의 어둠으로 가득해서 새까맸고, 어스름한 달빛 덕분에 나무 천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아래 침대에 뉘인 유리는 느릿하게 눈만 끔뻑대다가 고개를 돌렸다.
“여긴…….”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창 너머 웬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 깃펜을 끄적이고 있었다.
흡사 신문사와 같은 풍경.
허나 언론 문화가 아직 발달하지 않은 이 세계관에서 이만한 규모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깃펜을 쥐어주는 곳이라면, 딱 하나 밖에 없었다.
유리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 침상에 카이가 마찬가지로 뉘여 있었다.
“라지닉소스.”
한 남자 목소리가 조용히 방 안에 퍼졌다.
이제 보니 발아래 촛등을 벗 삼은 한 남자가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유리를 노려봤다.
“여긴 라지닉소스라네, 젊은이. 아직은 국가가 아닌. 먼 훗날 거대한 국가로 발전하는 곳.”
“역시 그랬군요.”
“흐으음? 알고 있었나?”
“얼추 알고 있었습니다.”
카이가 플루토를 찾으러 왔을 때, 그만한 정보를 얻을 곳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었다.
용가들도 모르는 고대 병기의 위치 정보를 가진 집단.
미래에 채럿의 트리를 흡수하여 초 거대 국가로 발전하는 정보 기관.
라지닉소스.
원작에선 이곳을 이렇게 불렀었다.
“기억의 실타래.”
“하핫, 놀랍군. 우리 이명까지 알고 있는 건가.”
“스스로를 구원의 감시자라고 불리는 자들을 어떻게 모를까요.”
종말을 믿는 집단은 엘카 같은 계시자라든가 흑마법사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적 신념이라든게 광적인 믿음으로 구성된 자들이라면.
이들은 달랐다.
바다 건너 온 기록을 토대로 연구하는 집단이자 역사가들.
그리고 원작에서의 이들은 먼 미래에 이렇게도 불렸다.
‘인류의 배신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