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1
제191화
라지닉소스의 기원은 동명(同名)의 고대 국가로부터 비롯되었다.
몇몇 역사학자를 비롯해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도공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전생과 빗대자면 신을 부정하는 과학자와 똑같았다.
뭐, 실질적으로 생명의 기원을 완전히 증명하는 집단도 아니었지만.
확실한 건 엄청난 지식인들이 모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견을 입증하려 세상 모든 지식을 모았다.
이를 시작으로 라지닉소스는 지식만이 아니라 온갖 정보와 사화, 사담까지 모았고.
훗날 정보만으로 국가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나한테는 인류를 배신한 족속 밖에 안 되지만.’
나중에 채럿이 이들 편에 서서 배신한 건 아닐 것이다.
라지닉소스에서도 인류를 배신할 목적을 가진 이들은 현재까지 소수였으니까.
악마들의 침공이 본격화되면서 배신을 한다.
지금까진…… 무해하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지금까진 말이다.
‘직접 보니까 별로네.’
작은 창 밖에서 깃펜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기록관’들이다.
모은 정보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사람들. 글만 쓰는 노동자들이라 보면 쉬웠다.
“기록관들에게 관심이 있나?”
“……예?”
“다 여자들이고, 예쁘고, 참하지. 다들 일에 시달려서 힘들어 하는 마당에 남자 한 명 소개해주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사람을 마치 도구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하핫!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하군.”
도구라고 말하면서 제 입이 아팠다.
저들은 ‘도구’가 맞으니까.
인형.
아마 그렇게 불렀던가. 마도공학자들이 만든 마도기계에 불과했다.
겉으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건 이 또한 마법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런 유리의 시선을 모르는 남자가 빙긋 웃었다.
“라지닉소스에 온 걸 환영하네, 유리 덴 나이트워커.”
“절 알고 있군요. 알고서 도왔어요. ……왜죠?”
“응? 돕다니? 내가? 널?”
“드래곤 영체에 선공을 했던 거, 당신이지 않나요.”
남자가 키득 웃었다.
“근거 없이 발설하는 추론은 낭설일지니. 그대의 혀 놀림으로 진리를 어지럽히지 말라.”
“라지닉소스의 오래된 격언이군요.”
“이것까지 알다니. 확실히 재밌는 친구구먼. 인간의 몸으로 괜히 용가에 입성한 게 아니라는 건가?”
“…….”
“워워, 흉흉한 시선으로 보지 말아주게. 비꼬는 게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신기할 따름이야.”
같은 인간이라.
언젠가 인류를 배신할 족속들이 이런 소릴 하니 웃겼다.
뭐, 꼭 눈앞의 남자가 배신하라는 법은 없지만. 원작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꺼려지는 게 사실이었다.
“일단 내가 카이를 도운 건 아니라네. 우리가 도운 건 맞지만.”
“우리?”
“다른 질문. 이 이상은 돈이다.”
정보원들 특유의 대화체가 나왔다.
무슨 말만 하면 돈이지.
“……카이랑 무슨 거래를 한 거죠?”
“허어? 그것도 알아? 이거야 원. 자네 앞에선 거짓말이 어렵군.”
라지닉소스는 역사와 마도공학을 전문으로 한 집단. 그렇기에 플루토를 비롯한 드래곤의 고대 병기에 관한 정보는 모두 다 가지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악마들이 라지닉소스를 이용한 건 이런 정보들 때문이었다.
블루 드래곤의 유산, 플루토.
레드 드래곤의 유산, 불의 영혼.
화이트 드래곤의 유산, 클라우드 하트.
블랙 드래곤의 유산, 심연의 우산.
그 밖에 다른 유산들이 많지만, 이 정도가 각각의 가문을 대표하는 것들이었다.
“카이 군과의 거래는 나중에 젊은이가 직접 물어보게나. 우린 입이 무거운 게 직업병이라.”
“그럼 저에 대해 묻죠. 절 데려온 이유는 뭐죠?”
“그것도 입이 무거워서.”
“이럴 거면 뭐하러…….”
“저 대신―‘
따지려 들려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 방문객 때문에 그만둬야만 했다.
그곳에 익숙한 얼굴이 유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여어~ 유리. 오랜만이야.”
“게슐츠, 단장님?”
유리의 첫 스승이자 은인인 게슐츠 용병단의 단장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 * *
게슐츠는 익숙한 듯 유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둘은 의외로 아담한 정원과 형형색색 꽃이 가득한 거리를 걸었다.
“의외로…… 이런 곳이 있군요.”
“나도 좀 신기했어. 여기서 지내다보니 더 신기한 것도 많이 봤고.”
“여기서 일하고 계신 건가요?”
“넌 모르겠지만, 좀 오래 됐어.”
“얼마나요?”
“음, 대략 30년? 더 됐을지도?”
라지닉소스가 용병단을 비롯한 길드에 의뢰를 많이 맡긴다곤 들었다.
이들이 군사력이나 무력을 가진 집단은 아닌데다가, 메데스 재단처럼 마법을 쓸 줄 아는 이들도 없었다.
참고로 마도공학자들은 마법사들이 아니었다.
마법을 쓰지 못해 마법학과 마도공학만 익힌 학자들에 더 가까웠다.
“20년이 넘었다면, 저를 알기 오래 전부터 계셨다는 거네요.”
“그렇지.”
“……왜 여기 계신 거죠.”
유리는 애써 심경을 숨기며 물었다.
따지고 보면 라지닉소스는 배신자들이다. 물론, 지금의 게슐츠가 그걸 어찌 알고 있겠느냐만.
원래 평소 행실이 좋은 집단이라 보기에도 어려웠다.
신을 부정하고자 했던 짓들이 있었으니까.
게슐츠도 질문의 의미를 깨달았다.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안다. 라지닉소스의 대한 이야기가 썩 좋진 못하지.”
“근데도 여기서 일하는 건가요.”
“우리 용병단이 여태까지 어떻게 운영이 됐겠냐.”
그렇겠지.
용병단의 생활은 항상 억셌다. 그나마 게슐츠의 용병단이 이름값을 알리면서 보수를 크게 받긴 했지만.
유리가 용병단을 나올 때만 하더라도 그마저도 경쟁 용병단이 많아지면서 치킨 게임이 되었다.
그래,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돈에 구애받고 살았어도, 게슐츠가 양심을 팔 작자는 못 되었다.
유리가 물었다.
“카이가 무슨 거래를 했죠?”
잠시 뜸을 들이던 게슐츠가 말했다.
“악마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하더군.”
“……카이가요?”
그 놈이 먼저 악마에 대해 언급했다고?
이미 엘카의 사례만 보더라도 악마의 존재를 말했다간 부정당하기 십상이었다.
하물며 신을 부정하는 라지닉소스에다가 악마라니.
“……라지닉소스 측에선 뭐라 하던가요?”
“보다시피 카이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정보를 얻고 있어. 며칠 전 플루토에 관해서도 내가 전해줬지.”
“혹시 암흑 눈물이란 거에 대해서도 묻지 않던가요?”
“오, 맞아.”
이제야 이야기의 톱니들이 맞아 들어간다.
암흑 눈물의 등장은 원작 시기보다 빨라졌다. 그 이유가 뭔지 몰라도 카이는 암흑 눈물의 등장을 불길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라지닉소스와 거래를 했다.
플루토를 찾고, 암흑 눈물을 가진 자들을 소탕한다.
‘초조해졌나 보네.’
[그 카이가?]‘카이의 정신상태는 온전하지 못해. 환생을 거듭해서 작은 변수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티르빙 양은 공감하기 힘들 거예요. 저도 몇 천 년 살아봤지만, 영원불멸이 꼭 살만하진 않아요.] [나도 살만큼은 살아봤어.]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영원 불멸을 살아보지 않은 유리지만.
초조한 감정마저 이해 못하지는 않았다.
죽어서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카이에게 절망과 같았다. 죽음은 익숙하면서 더러웠고, 일상적이면서 괴로웠다.
남들은 오래 살아서 좋다고 하겠지만, 반복되는 죽음이 유쾌할 리가 없었다.
그런 마당에 암흑 눈물의 빠른 등장과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의 개입했으니.
유리는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화제를 돌렸다.
“단장님. 단장님은 여기서 어떤 위치인가요?”
“피고용인……이라기엔 짧은 대화에서 아닌 티가 많이 났군.”
“말씀해주세요.”
“말할 건 별로 없어. 시작은 피고용인이었지만 연차가 쌓여서 호위대라고 보면 돼. 직책 높은 호위대라는 거지.”
원작이나 설정에 단장님이 있던가.
확신이 서질 않는다.
게슐츠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건 확실하다. 주요 인물 이름만이 아니라 엑스트라 이름 쯤은 기억해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유리가 다시 물었다. 목소리에 훨씬 힘이 들어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걸.”
“게슐츠 단장님인 건 알겠어요. 하지만 우연이라고 해버리기엔 여기서의 만남이 너무 어색하니까요.”
“…….”
“제게 바라는 게 뭐죠.”
아무리 우연으로 치부하더라도 작위적인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게슐츠, 라지닉소스, 카이, 악마.
안 그래도 다이올드가 악마와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라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악마에 대해서 단장님도 알고 계신 거죠? 아니면…… 신의 존재를 입증할 무언가를 찾았나요.”
“……이거 참.”
게슐츠가 입맛을 다셨다. 곤란한 표정 뒤로 그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라지닉소스는 의외로 규모가 큰 학술 단체다.
메데스만큼은 아니어도, 자신의 무신론을 입증하고 싶어하는 학자들이 모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단체를 부정하는 지식이 나타났다면?
실제로 그랬었다.
그리고 라지닉소스는 그 증거를 없애려 들었다.
“일단 오해는 하지 말아라. 오래 전부터 널 지켜봤다느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
“그거야 말로 근거 없는 소리네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솔직히 아니라곤 못하겠다.
지금은 그저 받아줘서 정보를 얻는 쪽이 먼저였다.
“그래, 후우. 나도 윗선들한테서 언뜻 들었지만 어디선가 신의 존재를 입증할 정보를 얻은 모양이더라.”
역시.
그랬었나.
“문제는 그 정보를 제공한 자가 카이였었어. 카이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주지 않으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정보를 주지 않겠다고 하더군.”
카이치곤 치사한 술수였네.
그러나 결과적으로 라지닉소스가 움직였으니 효과는 있던 셈이다.
“그래서 카이에게 플루토에 관한 정보를 주고 도움까지 줬군요. 중요한 정보원이 사라질까봐.”
“나도 거기까진 모르겠어. 거래는 윗선과 직접 했으니까.”
잠시 유리는 침묵에 빠졌다.
수상한 점들이 여전히 많이 남았으나, 어쨌든 카이가 의도한 거래와 결과라는 건 알았다.
당분간 라지닉소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뜻.
나중에 배신할 놈들이라 이렇게 같이 있는 게 영 찝찝했지만.
이용해먹을 수 있다면 빼먹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절 데려온 건 무슨 이유에서죠? 정보원인 카이만 보호하면 되잖아요.”
“……내가 이래서 오해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게슐츠가 멋쩍은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봤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3층 유리창이었다.
* * *
렉슬러가 가짜 다이올드를 처리한 뒤, 일행은 제국군의 엄호를 받아 국경을 넘었다.
그렇게 가문으로 돌아가니 가문에선 발칵 뒤집어졌다.
“다이올드가 악마 숭배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허헛! 참! 앞으로 가문을 이끌어갈 자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가주님, 이 일을 현명하게 대처하셔야 합니다! 가문의 위신이 달린 문제입니다!”
회의장엔 파견을 나갔던 벤헬링턴과 마리도 급하게 돌아왔다.
장로들과 봉신가문들도 긴급 소집에 응해 모였고, 미다스 체포 사건 과정에서 일어난 사안을 듣고 난 뒤였다.
이야기를 들은 장로들은 하나 같이 언성을 높였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다이올드의 편은 없었다. 다이올드의 편에 섰던 자들도 태세를 바꿨다.
“가주님! 이번 일을 묻어두시고, 작전 중에 사망한 걸로…….”
“어허! 블레이머가 죽을 때도 의심스러운 눈총을 받았는데 또 작전중에 사망이라뇨!”
“그래도 악마 숭배를 했다는 이야기가 밖으로 세어나갔다간…….”
모두가 다이올드의 처분을 놓고 언쟁을 펼치는 사이, 벤헬링턴은 애꿎은 담배만 태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은 비어있는 자리들로 향했다.
미앵비슈, 다이올드, 그리고 최근에 새로 마련한 유리의 자리가 비었다.
“우라질…….”
기어코 그의 입에서 들리지 않는 욕지거리가 나왔다.
옆에 있던 마리만 겨우 그 욕을 들었으나, 그녀도 눈을 감은 채 침묵을 지켰다.
장로들은 어떻게 가문의 위신을 지킬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어떤 자는 당장 후계 구도를 어떻게 해야 될지를 따지고 들었다.
권력의 눈이 멀어 당장의 사건 사고를 우습게 여기는 자들.
당장 이들의 목을 자르고 싶은 심경이 토악질처럼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가주이기에 말이 조심스러웠다. 이럴 때일수록 함부로 입을 놀리기 힘들었다.
“가주님, 정 결정하기 어려우시다면 이참에 골치 아픈 솔리드녹스에…….”
“닥쳐요!”
그때, 회의장 문을 박차고 한 사람이 들이닥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