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2
제192화
회의장에 난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채럿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장로들이 더욱 격분했다.
“어딜 감히 지식의 관도 졸업 못한 놈이!”
“썩 나가거라! 여긴 애들 놀이터가 아니다!”
주름 많은 이들의 언성에도 채럿을 굴하지 않았다.
아니, 굴해선 안 된다. 지금 유리를 포함해서 타나토, 제몬, 다이올드, 미앵비슈를 대신해서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달해줄 사람은 채럿 밖에 없었다.
이자벨? 블레이크? 그들은 직계가 아니라서 이곳에 출입조차 불가능하다.
그들이 말한다고 해서 들어주지도 않을 터.
그러니까, 내가 말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언변을 이길 수 있을까.
“닥쳐라, 늙은이들.”
어수선하던 분위기를 뚫고 대기를 짓이기는 중압감이 회의장에 깔렸다.
마리가 어느 새 눈을 떴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벤헬링턴의 시가 케이스에서 새 시가를 꺼내 물었다.
벤헬링턴이 퉁명스레 물었다.
“금연한다며.”
“우라질 노인네들이 시장 바닥에서 처럼 떠드는데, 스트레스가 받아서요. 왜요? 난 피면 안 돼요?”
“……다음엔 더 좋은 걸로 사주지.”
확실히 벤헬링턴의 시가는 무척이나 썼다. 불을 피우지 않고 물고만 있어도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런 냄새가 평소엔 싫었다면, 지금은 장로들의 헛소리를 중화시키기에 딱 좋았다.
“자, 채럿. 말해보려무나. 할 말이 뭐지.”
“감사합니다, 부가주님.”
긴장했던 채럿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마리가 상황을 만들어줬고, 벤헬링턴이 이 상황을 인정했다.
나이트워커의 가주와 부가주가 함께 만들어준 발언석을 헛되이 쓸 수 없었다.
“이미 제가 다 전해드렸겠지만,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 아버지, 다이올드 덴 나이트워커는 가짜 마검을 양산하고 자신의 육신마저 가짜로 만드는 짓을―”
“각설하고, 할 말만 해라.”
“아뇨, 이것도 필요한 설명이에요.”
장로 하나가 끝까지 시비를 걸자 채럿도 과감히 받아쳤다.
전에 없던 채럿의 모습에 시비를 걸었던 장로가 움찔거렸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들은 장로 여러분들이 어떤 자를 옹호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오, 옹호?”
“누가 누굴 옹호했다고!”
“그런데 어째서 아무도 미앵비슈 고모님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있죠?” 가주 후보를 포기했더라도, 차기 가주에 손색이 없던 용인이 죽었다.
그녀를 죽인 사람은 다이올드였고, 이는 가주 후보 싸움의 외적인 살인이었다.
“유리 오라버니는요? 타나토 오라버니와 제몬 오라버니가 당한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건가요?”
“애, 애들 일이야, 크흠!”
“어차피 그 놈들은 작전 중에 자기들 욕심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거다!”
답답한 소리가 나오는데도 채럿은 낙심하는 기색 없이 할 말을 이었다.
“제 아버지는 가주직을 포기한 용인을 죽였어요. 엄연히 살인이라고요. 그런데 다들 가문의 위신만 따지고 있고, 처벌과 차후 체포 계획을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죠. 미다스를 잡을 때는 더 난리쳤으면서요!”
“…….”
“가주님. 제게 아무런 권한도 없고 용인으로서의 자격도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가족이 죽었잖아요! 가족끼리의 살인이라고요!”
“……그래서?”
벤헬링턴의 무심한 대꾸에 채럿이 크게 침 한 번 삼켰다.
쫄면 안 돼.
물러서선 안 돼.
인간의 몸으로 왔던 오라버니 유리는 이런 무신경함도 이겨냈었다.
채럿은 그를 상상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다이올드 덴 나이트워커에게 특급 수배령을 내려주시길 요청합니다.”
* * *
회의는 그 즉시 끝나버렸다. 장로들이 쏘아대는 탓에 벤헬링턴이 그냥 해산 시켜 버린 것이다.
그나마 조용히 의견을 듣던 봉신가문의 가주들만 자리에 남아 이 사안에 대해 논의를 나눴다
다만, 골든해머 가(家)는 사실상 발언권을 잃었다.
다이올드와 작당을 했었으니 알아서 눈치껏 빠진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회의를 주관해야 할 벤헬링턴은…….
“난 잠시 딸 아이를 보고 오겠다.”
아직까지 미앵비슈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그였다.
미앵비슈의 시체는 안치되기 전, 임시로 만들어진 관에 넣었다.
미다스가 가문에 도착하자마자 만든 관으로, 외부의 유해한 것들을 막으며 부패를 방지하는 관이었다.
그러나 그런 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벤헬링턴은 자신의 딸이 뉘인 자리를 보다가 이마를 쓸었다.
“살아있는 건가.”
“아마도요.”
뒤에는 릴림이 서 있었다.
미앵비슈의 시신은 전직 성녀인 그녀가 맡아서 돌봤다.
그녀는 띄엄띄엄 설명을 이었다.
“부패가 안 되고 있습니다. 성력도, 필요하지 않아요. 죽지 않는 몸이 됐어요.”
“이게 가능하더냐?”
“죽음에서 엇나갔으니까요.”
생명력을 완전히 다 빼앗으면 당연히 어떤 생명체든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앵비슈는 생명력을 완전히 다 빼앗기지 않았다.
일종의 가사상태.
“시간이 더 흐르면, 죽지만요.”
“얼마나 남았느냐?”
“7일이요.”
“방법은?”
“모르겠어요.”
방법을 알지도 못하는데 살려놨다고.
그렇다는 건 유리는 살릴 방법을 알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걸까.
“결국 그 놈한테 의존해야 하는군.”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벤헬링턴도 그녀를 살릴 방법을 알고는 있지만, 수단은 유리에게 있었다.
결국 유리가 돌아올 때까지 아비된 자로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릴림.”
“네, 가주님.”
막상 릴림을 불렀으나 아무런 명령도 내려오지 않았다.
정적의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 * *
게슐츠로부터 유리는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다.
라지닉소스를 위해서 악마에 관한 정보를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어째서 신의 존재가 아닌 악마의 존재에 목을 메는 건지 모르겠다만.
당분간 그들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대신, 유리도 그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암흑 눈물의 정보 출처?”
“네, 그게 필요합니다.”
“혹시 라지닉소스의 정보력을 못 믿는 건 아니고?”
“라지닉소스가 정보 길드나 암살 길드는 아니잖아요.”
라지닉소스가 제대로 된 정보 수집 단체로 거듭다는 건 채럿이 합류하고 나서부터다.
지금은 그저 질 좋은 지식을 모은 역사학술 단체 쯤이랄까.
그리하여 유리는 카이가 쓰러져 있는 사이 암흑 구슬이 발견되었다는 바닷가로 향했다.
[꼬맹이.]“응?”
[미앵비슈는 저렇게 놔둬도 되니?]“당장 고모님을 구할 방법은 없어. 살릴 순 있지만, 만년필의 힘을 쓰기 위해선 결국 누군가의 생명력이 필요하니까.”
티르빙을 이용해서 만년필을 똑같이 복제해냈으나, 부활과 맞먹는 생명력이 없어서 보류했다.
“고모님의 생명력이 약해서 위험하겠지만, 옆에서 릴림이라든가 가문의 의료진이 붙어있으면 죽진 않아. 영혼을 교환한 건 아니니까.”
[생명력이 곧 영혼이라며.]“티르빙, 너한테 생명력이 있다고 할 수 있어?”
티르빙은 영혼만 있고 생명력이라 불릴 요소는 없었다.
애초에 생명력이라는 개념이 모호했다.
그것은 마나이기도 하고, 육체적인 건강함이기도 하며, 그 두 가지를 합쳐서 말하기도 했다.
뭐가 되었든 중간에 플루토의 매듭을 자르는 바람에 미앵비슈에겐 생명력이 남았다.
미약해서 죽은 것과 똑같이 보일 뿐이지. 어쨌든 살아있긴 했으니.
“우린 재료를 찾아봐야지.”
[그 재료를 악마로 하려고?]“꽤 값싼 대가이지 않아?] [전 괜찮은 거 같네요. 악마를 대가로 삼는다니. 생각만 해도 신나는 걸요?] [근데 악마들한테 대신 생명력 좀 써달라고 하면 써주겠니?]
‘그건 지금부터―’
쏴아아!
급작스레 큰 파도가 들이닥쳤다.
여태 잔잔하게 들이치던 물결과 달리 갑자기 커진 파도는 유리의 허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발아래, 불투명한 하얀 조약돌들이 딸려 왔다.
암흑 눈물.
“여기군.”
암흑 눈물이 오는 루트는 거의 고정적이었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바다 가로질렀으니, 안전한 길만 골라서 돌을 보냈을 테지.
돌을 대체 어떤 식으로 보내냐고?
“사냥을 해볼까.”
유리는 난생 처음 티르빙을 활과 화살로 만들었다. 손끝에 약간의 마나를 넣었다.
코어가 활성화되자 몸 이곳저곳이 쑤셨다.
드래곤 하트를 쓰고 싶긴 했으나, 일전에 무형검을 마구 쓰는 바람에 바닥을 드러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는…… 고작 2할인가.’
드래곤 영체와의 결전이 아무래도 타격이 컸다. 아직 무형검을 완벽히 다루지 못하는 몸으로 무리하게 썼으니.
당연한 응보지.
그래도 이만한 마나면 충분하다.
시위를 놓자 바다 가운데로 화살이 박혔고.
구워어어!
수면 위로 거대한 거북이 한 마리가 떠올랐다. 섬 하나와 맞먹는 덩치가 올라오면서 용오름 비슷한 파도가 하늘까지 솟구쳤다.
콰아아!
부서지는 물방울 사이로 무지개가 비춰진다.
그러나 아름다운 광경과 달리 거북이의 생김새가 사뭇 괴랄했다.
“설익은 화염을 먹은 거북이.”
일명, 톤트.
2급 마수종으로 분류되었으나, 원작에선 악마의 종으로 활동하며 해상을 지배했었다.
원래는 엄청 잡기 쉬운 마수였겠으나.
악마에게 세뇌된 개체들은 끔찍했다.
“누구, 나, 깨우냐.”
“여기다, 거북아.”
거북이가 잘 볼수 있도록 손을 흔들자 깨끗한 눈동자가 유리를 바라봤다.
저렇게만 보면 참 귀여운 거북이인데.
실제론 누구보다 악마에게 충직한 놈들이며, 나중에 레메게톤의 72인의 악마 중 세에레에 의해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놈들.
“거두절미하고. 네가 거북이 왕이냐?”
“너, 누구.”
“악마에게 세뇌 당해 암흑 구슬을 보낸다고 알고 있다. 이 일의 주범인 거북이 왕을 만나고 싶다.”
“악마, 알아?”
“알지.” 구워어어어!
톤트가 살짝 입을 벌려 괴성을 내질렀다.
대화가 잘 안 된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라도 느낌이 딱 그랬다.
거북이는 한쪽 다리를 높이 들었다가 강하게 바닥을 굴렀다.
콰앙!
물과 모래가 섞여서 올라왔다가 유리를 덮쳤다.
유리는 모래사장 뒤로 빠져나가며 파도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파도가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질문 하나 했다고 죽자 살자 덤비냐!”
공격하기엔 면적이 넓은 마수였다. 2급이라 해도 느렸고, 역공도 막기 쉬웠다.
유리는 2할의 마나를 일부러 분산시켜서 검기를 형성했다.
어차피 단신으로 톤트를 이길 순 없다.
힘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단단한 등껍질을 뚫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이 거북이가 괜히 2급으로 분류되는 게 아니었다.
“어리석은, 인간. 악마, 안다. 악마, 알면, 죽인다.”
“그럼 같은 동족들도 죽일 거냐?”
“그워!”
공격을 감지한 톤트는 팔다리, 목을 움츠리며 등껍질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그건 톤트의 아둔한 판단이었다.
유리는 다음 공격에 마나를 검이 아닌 몸에 실었다. 이윽고 유리의 팔뚝이 톤트의 등껍질 붙잡았다.
잠시 후, 톤트는 제 시야의 천지가 뒤바뀌는 걸 확인했다.
배가 뒤집어진 거북이는 한 동안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