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4
제194화
우리 일족이 멸망하고 있다고?
빅 톤트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잠자코 있다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멸망? 우리 톤트들이 아무리 우습게 보여도 그렇지! 멸망? 어이가 없군, 인간!”
“내가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나 보군.”
“……뭣?”
유리는 재차 수계(水界)의 무형검을 만들었다. 고대 드래곤들이나 하던 검술을 빅 톤트도 알고 있었다.
현재로선 용인들도 구사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비기.
비록 어리숙한 실력이긴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무형검이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본 너라면 이걸 알아보겠지.”
유리의 물음 같은 한 마디에 빅 톤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빅 톤트가 살아온 세월은 영겁에 가까웠다. 거북이의 수명이 용인 다음으로 길기도 했으나, 톤트들은 마나를 머금으며 진화를 거듭했으니.
그 중 최강으로 군림한 빅 톤트는 그 검을 본 적 있었다.
드래곤과 한때 같이 어울렸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내가 그 검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클라우드 하트를 통해 세드리치 님의 기억 속에 갔다 온 적 있다.”
“블랙 드래곤 님의 기억을 네놈이?! 리펠리온 가에서 그걸 허락해줬더냐?!”
“거래를 했거든.”
유리의 말에 반쯤은 거짓이 섞여 있었다.
클라우드 하트 안에서 빅 톤트를 봤을 리가. 그저 원작에서 봤던 기억을 억지로 짜맞춘 것이다.
그리고 빅 톤트에게 그러한 진실은 딱히 중요치 않았다
“정말로 세드리치의 기억을 보았단 말이냐? 그 녀석한테 무형검을 배운 거고?”
“그렇다.”
“허, 허허! 허허허허! 허허허허허허허허!”
빅 톤트가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자조적이면서도 회한이 가득한 소리가 퍼질 때마다 파도가 요동쳤다.
표정이 없으니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요동쳤다. 심장을 두들기는 진동만이 희미하게 훌쩍거렸다.
울고 있다.
웃고 있지만, 그 속엔 노여운 슬픔이 가득했다.
“하, 하아…… 후우, 흐으, 그래. 세드리치. 그 도마뱀 새끼가 인간인 네놈에게 무형검을 전수해줬다는 거지.”
“그래.”
“네놈이 뭔데? 아무 이유 없이 무형검을 전달해줬을 리는 없고.”
“비밀을 지켜준다면 말해주지.”
“지키겠다.”
대답은 간단하고도 단호했다.
거짓말을 일삼는 일족이라면 의심부터 했겠으나, 톤트의 목소리는 믿음이 갔다.
애초에 유리는 녀석을 떠보았을 뿐이다.
원작에서 빅 톤트가 거짓말을 하는 놈은 아니고, 뱉은 말만큼은 반드시 지켰다.
약속 자체를 잘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난 세드리치의 아들이다.”
“……지랄.”
“진짜인데도 못 믿는군.”
“그 놈은 오래 전에 죽었다! 만약 드래곤의 멸종을 우롱하려고 한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그렇다면 내가 익힌 무형검을 어떻게 설명할 거지.”
“그, 야……!”
말이 튀어 나오려다가 도로 들어갔다.
빅 톤트가 아는 세드리치는 고지식함 덩어리였다.
애초에 드래곤은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가 가진 것들을 나누지 않는다.
그런데 눈앞의 인간은 무형검을 익혔다. 그리고 자신을 세드리치의 아들이라고 칭했다.
“샤를린느!”
순간 빅 톤트는 떠오르는 이름을 곧이곧대로 뱉었다.
그래, 그녀가 있었지!
“용신의 아들이군!”
“맞아.”
“크핫! 그랬던 거였어! 크하하하!”
또 웃는다. 정말이지 감정이 순식간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마수였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마수라서 다행이었다.
“이제야 납득이 되는군. 크크크, 좋아좋아. 아주 좋아! 그래, 드래곤과 용신의 아들아. 네놈 입으로 나에게 멸망이라 했겠다?”
“그래.”
“암흑 눈물이라. 악마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건을 우리 일족이 가지고 다녔다니. 이 놈들이 아무리 내가 관리를 안 했어도 그렇지. 쯧, 몹쓸 놈들.”
“왜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있지.”
아까부터 빅 톤트는 제 동족에게 일어난 비극을 모르쇠로 일관했다.
방금 관리를 안 한다고 했지만, 모른다는 것과는 별개였다. 분명 왕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 네놈 말대로 우리 일족이 암흑 눈물을 나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째서지?”
“바다 속에도 사회가 있다는 걸 아느냐?”
알고 있다.
이 바다엔 마수나 동물만이 살고 있지 않았다.
나름의 체계가 있으며, 체계가 쌓여서 사회를 구성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 그곳엔 어떠한 존재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유리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빅 톤트가 말을 이었다.
“네놈이 죽인 톤트는 내 관할이 아니라 다른 놈들의 관할이다. 동족이긴 해도, 일족은 아닌 거지.”
“아하.”
“뭐야, 알아들은 거냐?”
“그래.”
당혹스러워 하는 빅 톤트와 달리 유리는 순순히 수긍했다.
바닷 속 사회를 한낱 인간이 어찌 알겠느냐만. 이 또한 원작을 본 유리라서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납득이 되는군.”
“뭐가 말이지?”
“톤트들이 어째서 이 시기에 암흑 눈물을 나르기 시작했는지.”
“뭔 말인지 모르겠군. 암흑 눈물에 제철이라도 있던가?”
“시기가 있긴 하지.”
유리는 먼 바다를 쳐다봤다.
전체적으로 악마들의 침공 시기가 빨라지고 있었다.
원작과 다른 시간에 벌어진 일들, 그러나 시간이 빨라졌을지언정 그 순서마저 바뀌진 않았다.
예정대로 악마들은 톤트를 이용해서 암흑 눈물을 전달했고, 이를 돕는 놈들이 있었으니.
“이봐, 빅 톤트. 멸망에 대해서 궁금하다 했었나.”
“그래. 네놈은 멸족이라든가 멸종도 아닌 멸망이라 했지. 세드리치의 아들이 허튼 소리를 한 건 아닐 테고.”
아무래도 빅 톤트는 드래곤과 오랫 동안 알고 지냈어도 창조주가 언급한 멸망의 예언까진 모르는 듯했다.
“말 그대로야. 멸망한다. 이 세계는.”
“……그걸 믿으라고?”
“증거를 보여주지.”
유리가 여기까지 온 건 단순히 라지닉소스와의 거래 때문만은 아니었다.
찾아야 할 것이 있었다.
그러려면 빅 톤트를 불러내야 했고, 빅 톤트만이 갈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날 용궁으로 데려다 줘.”
“허?”
“뭐가, ‘허’지. 용궁. 알지 않나.”
바다 아래 사회 중 가장 강력하며 유일하게 국가의 체계를 잡은 곳.
수인 인어들의 나라.
톤트는 질색하는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거길 갔다간 네놈은 죽는다.”
“하지만 거길 가야 해. 네놈에게 보여줘야 할 것도 있고.”
“용궁에 가본 적도 없을 인간이 보여줄 게 있다는 걸 어떻게 알지?”
“……더 토 달지는 말지. 계속 시간을 끌수록 동족들은 죽어가. 너의 친구와 가족까지도.”
“흠.”
슬슬 빅 톤트도 유리를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드래곤의 자식에 암흑 눈물의 등장은 여러모로 꺼림칙 했다.
어쨌든 일족은 아니어도 동족이 죽는 걸 방관할 수 없는 노릇.
“내가 네놈을 도와주면 네놈이 우리 동족을 보호해줄 거냐?”
“아니.”
유리는 당당하게 부정했다. 일순 빅 톤트로부터 거대한 살기가 풍겼다.
“실컷 떠들어 놓고 돕지 않겠다?”
“난 책임지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아서.”
“얼척없는 놈이군! 드래곤의 아들이라 봐주려 했더니, 나에겐 도움을 청해놓고 날 돕지는 않겠다?”
“이건 거래가 아니다, 빅 톤트.”
“그럼 협박이냐?”
유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에겐 선택지가 없어. 좋든 싫든 날 도와줘야 할 거야. 굳이 말하자면 상부상조에 협조 정도라 할 수 있겠군.”
“말 좀 섞어주었더니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엄청난 기공파가 울렸다. 파르르르 떠는 수면 위로 물방울들이 튀어 올랐다.
그 직전, 유리는 챙겨온 암흑 눈물을 손아귀에서 깨뜨려 바다로 던졌다.
더러운 기운들이 오수처럼 풀어져서 일대를 꺼멓게 적셨다. 보고만 있어도 피하고 싶은 기운이었다.
슬슬 악취가 올라오더니 역한 냄새가 빅 톤트 주변을 감쌌다.
“이게 뭔……!”
“괜찮아. 별로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저 아래서 올라올 것들이지.”
“아래……? 엇!!!”
키이이익!
키익!
미끼를 본 피라냐 떼처럼 바다 아래서 이질적인 생명체들이 꼬리치며 올라왔다.
이윽고 수면까지 다다른 생명체들이 날치마냥 날아서 빅 톤트의 다리에 붙었다.
작은 인어들이었다.
인어들의 손에는 삼지창이 들려서 살갗과 등껍질을 찔렀다.
“이놈들이 갑자기 어디서?!”
“악마에 유혹 당해 망가진 인어(人魚)들이지.”
유리는 날아오르는 인어들을 향해 피로 이뤄진 화살을 날렸다. 한 마리씩 격추될 때마다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심연의 바다 아래로 가라 앉았다.
암흑 눈물이 톤트들에게만 전달된 건 아니었다.
톤트들과 달리 마나의 소용돌이 가운데에 사는 인어들한테도 전해진 것이다.
그것도 훨씬 오래 전부터.
“이 놈들이!”
키익!
인어들의 공격만으로 톤트를 이길 순 없었다.
빅 톤트의 몸짓 한 번이면 수십이 떨어졌다.
한 번 더 움직이면 입안에서 씹혔고, 더 움직이면 파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몸이 터졌다.
유리를 향해 덤비는 놈들도 있었으나, 소수에 불과했다.
놈들은 부서진 암흑 눈물에만 반응했다.
눈물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악마들이 타락시킬 때 쓰는 먹이인 마기(魔氣).
‘오래 전 악마에게 타락했으나, 이젠 악마에게 버려져 마기(魔氣)에 미쳐 탐하는 놈들.’
마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타락한 인어들이 눈앞에 있는 놈들이었다.
그러나 타락한 인어들은 더 이상 악마에게 가치가 없었다.
그들은 실패했으니까.
톤트들과 달리 암흑 눈물을 대륙 건너서 전하지 않았으니까.
“피라미 새끼들이!”
위협적이진 않지만, 위협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유리는 그런 빅 톤트를 돕고 있었으나, 개체가 워낙 많아서 일일이 상대할 수가 없었다.
유리는 다시 한 번 수계(水界) 무형검을 만들었다.
그리고 달라붙은 인어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파바밧!
드디어 개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잔인한 광경이었으나, 악마에게 타락한 이상 자비를 베풀어선 안 됐다.
오히려 그들을 안식에 저물게 해주는 것이 자비였다.
“이, 일단 벗어난다!”
빅 톤트가 섬으로부터 멀어졌다. 유리도 단숨에 그의 머리 위로 올라탔다.
어차피 인어들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마기 냄새를 맡고 또 올라올지도 몰랐다.
그런 면에 있어서 빅 톤트의 판단은 알맞았다.
솨아아!
빅 톤트는 할 수 있는 선에서 빠르게 섬으로부터 멀어졌다.
“빌어먹을 놈! 세드리치의 아들이라 하더니 하는 짓이 똑같군! 이런 식으로 날 겁박하려 하다니!”
“현실을 보라는 것뿐이다. 네가 사는 바다엔 저런 것들이 살고 있다고.”
“…….”
다소 폭력적이었던 방식인 건 인정한다. 그렇지만 빅 톤트의 고집은 이렇게 보여주지 않고서 설득이 안 되었다.
카이도 그랬었다.
아니, 카이는 유리와 달리 협박하고자 암흑 눈물로 인어들을 불러냈다.
물론, 유리는 그런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관계는 끝끝내 부정을 낳을 테니.
“빅 톤트,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 이대로 놔둘 건가?”
“빌어먹을…….”
빅 톤트는 짜증을 내려다가 참았다.
“좋아, 용궁에 데려다 주마. 그러나 그 이후론 책임지지 못해. 넌 거기에 갔다가 무조건 죽을 테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