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5
제195화
용궁으로 가기 위해서 가장 큰 고역은 아무래도 호흡이었다.
여기서 빅 톤트가 필요했다. 그의 등껍질과 살갗 사이에는 거대한 그늘이 있었다.
그 속에 들어가면 용궁까지 갈 수 있는 공기가 있었다.
빅 톤트가 몸을 뒤집으면 곤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정말로 멸망이 오는 거냐?”
바닷 속을 한참 동안 헤엄치던 중중 빅 톤트가 물었다.
아까와 달리 노했던 기세가 많이 가셨다. 조용한 말투를 보아하니 조금은 납득한 걸까.
“아직도 의심하는 건가.”
“당연하지. 요즘 같은 시대에 멸망을 떠들고 다니면 미친 놈 취급을 받는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그렇지 않나?”
“인간들에 대해 잘 알고 있군.”
“드래곤만큼은 아니지만 살만큼 산몸이다. 듣기 싫은 이야기도 듣게 되는 법이지.”
“……암흑 눈물이 대륙을 건너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 텐데.”
“진짜라는 거군. 그럼 서쪽 대륙은 망한 건가?”
“시간 나보면 가보도록. 갔다가 악마들에게 당하면 모르겠지만.”
“끄응.”
서쪽 대륙은 이미 멸망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해안을 건너고 있다는 게 증거였다. 그런 악마들이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멸망? 고작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하지.
“무(無).”
“응? 뭐라고?”
“악마들이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없어. 없다는 개념조차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까부터 드는 생각인데, 악마에 대해서 잘 아는가 보군.”
“나도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
유리에게 악마는 텍스트로 적힌 글자였다. 한 번도 본 적 없으나, 세상 무엇보다도 두려운 존재들. 글만 봤는데도 느껴졌던 전율이 전생을 지나 현생에 이르러서도 잔상처럼 남았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과 마주한다는 건, 어지간한 각오가 없으면 안 된다.
빅 톤트가 혀를 찼다.
“멸망과 악마라. 네놈은 무섭지 않은 거냐?”
“무섭지.”
“그런데도 멸망과 맞서려고 하는 건가?”
“…….”
“괜한 질문이었군.”
사실 암흑 눈물을 본 순간부터 빅 톤트는 악마가 정말로 있다고 믿었다.
동족들이 어떤 이유로 악마들의 수족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연을 막론하고 악마들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강제로 암흑 눈물을 전달하라고 강요받았을 것이다.
그걸 안다면, 그럴 때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안다면.
방금 했던 질문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유리는 다 알고서 맞서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동족들을 위해서다.”
괜스레 톤트는 그리 말하며 속도를 붙였다.
얼마 후 심해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땅을 가른 듯한 해구가 시야에 들어왔고, 그 사이에 거대한 성채가 우뚝 솟았다.
경복궁을 10층까지 쌓은 자태에 유리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저곳이 용궁…….”
“여기서부터 정신 바짝 차려라, 세드리치의 아들. 난 용궁 놈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보자마자 공격하려 들 거다.”
“적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채 바깥 외벽에 서있던 인어 한 명이 빅 톤트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순식간에 성벽 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인어 병사들이 바삐 헤엄치며 아군을 부르고 수비를 준비했다.
어림잡아 1천, 그 뒤로 서너 배 많은 병사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수비 병력이 많네.”
유리는 병력과 성벽 구조를 얼른 파악했다.
하지만 그 전에 빅 톤트가 더욱 속도를 높였다.
“꽉 잡아라! 정면 돌파다!”
“어? 어이! 자, 잠깐!”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수압이 정면으로 몰려왔다. 자칫 등껍질 바깥으로 튕겨 나갈 기세였다.
아니, 이러려고 온 건……!
쿠구구구!
말릴 수가 없었다. 뭐라뭐라 소리쳐 봐도 병장기와 물살이 내는 굉음 때문에 묻혔다.
‘젠장!’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어차피 빅 톤트의 덩치가 들키지 않는 건 무리긴 했지만, 정면으로 부딪힐 마음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빅 톤트가 이리 나온 이상 유리도 계획을 바꾸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쩌면 이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성벽 위에 인어들이 캐터펄트를 장전한 뒤 조준까지 마쳤다.
“쏴라!”
“하찮은 인어들이! 그딴 걸로 이 몸의 등껍질을 뚫을 수 있을 거라 보느냐!”
캐터펄트의 대형 화살들이 저항력을 이겨내고 날았다.
투두두둥!
인어들의 병장기는 물 저항력에 특화된 마법이 덮여 있다. 당장 물속에서 숨도 못 쉬는 유리에 비해 그들에겐 홈 그라운드인 셈.
쿵! 쿠쿵!
“엇?!”
우습게봤던 캐터펄트의 화살들이 충돌하면서 거대한 충격파를 발생했다.
결코 등껍질을 뚫을 순 없어도, 운동에너지로 인한 여파마저 견딜 순 없었다.
당장이라도 성채를 부술 기세였던 빅 톤트는 캐터펄트를 맞고 주춤거렸다.
“크악! 이 반쪽짜리 생선들이!”
더 이상의 전진은 어려웠다. 아니, 전진이고 뭐고 힘만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후우, 별 수 없나.
이런 상황을 아예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인어들이 보자마자 호전적으로 나온 데는 나름의 사정이 다 있었으니.
“좀만 더 시간을 벌어보도록.”
“수가 있느냐?!”
“있으니까 기다려.”
유리는 입으로 주문을 중얼거렸다.
주문이 끝나고 마지막 술식을 맺기 전, 호흡을 참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인어들을 향해 힘껏 헤엄쳤다.
갑자기 등장한 인간에 인어들이 혼비백산했다.
“인간? 인간이다!”
“빅 톤트! 치졸한 줄은 알았지만 인간과도 손을 잡은 거냐!”
“대인용 활을 준비해라!”
궁수들이 일제히 허리에 달린 화살을 꺼내 장전했다.
특이하게도 깃과 촉이 구분되지 않은 화살이었다. 길고 매끈한 쇠꼬챙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드디어 나왔군.’
화살을 확인한 유리는 힘껏 더 물장구를 쳤다.
최대한 가까이 가야만 했다. 멀리 있으면 기껏 준비한 마법이 무소용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장전! 발사!”
콰콰콰!
총탄처럼 화살들이 튕겼다. 캐터펄트 못지않은 굉음이 퍼진다.
아직 거리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검을 뽑아서 일일이 화살을 막아낸다?
물의 저항력을 유리라고 해서 이겨내기란 역부족이었다. 마나로 육체를 강화해도 평소 움직임보다 2배쯤은 느려졌다.
“젠장, 세드리치의 아들! 너라도 가라!”
그때, 빅 톤트가 거대한 몸을 시계 방향으로 살짝 틀었다가 반시계로 회전했다.
보이지 않는 물살이 유리의 등을 밀었다.
덕분에 화살들도 날아오다가 역방향 해류를 맞고 힘을 잃었다.
미처 그 힘이 성벽까지 닿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 틈에 인어들이 2차적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장전!”
“이미 늦었어.”
빅 톤트 덕에 유리도 유효 사정권에 다다랐다.
그는 기다렸던 마지막 주문을 외웠다.
“절대영도.”
꾸드드드드득!
아직 절대영도를 완벽히 구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마법은 잠깐이면 된다.
아주 실낱같은 순간이라도 제대로 술식을 맺으면 결과가 나온다.
이자벨과 처음 대련했을 때 썼던 절대영도도 그랬다.
물론, 그때에 비하면 유지시간이 1초가 더 늘었다. 짧지만 그 1초면 원하는 결과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꾸드득!
손아귀를 중심으로 바닷물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시작은 작았지만, 순식간에 덩치를 키워 작은 빙산 조각으로 자랐다.
“바, 발사! 얼른 발사해!”
“얼음을 부숴야 한다!”
인어 병사들은 위협을 느꼈다.
저 빙산을 지금 부수지 않으면 점점 더 커질 거라고.
화살을 쏴보았으나 절대영도가 내뿜는 한기는 막대한 화살의 운동에너지마저 빼앗았다.
점점 다가오는 한기에 화살들이 먹히고 바닷물이 얼어붙으며 점점 덩치가 커졌다.
이윽고 인어들에겐 하늘이라 불리는 수면에는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저게…… 뭐, 야…….”
인어들이 조용히 경악했다.
얼마 가지 못해 한기는 멈추고 말았다. 유리의 서클론 완벽히 구사하기는커녕 유지도 힘들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얼음 덩어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 인어들에겐 평소 보던 마수나 범고래의 사체 따윈 비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빅 톤트보다도 크기가 컸다.
“도, 도망쳐!”
“으악!”
거대한 빙산이 성벽 위를 드리웠다.
쿠드드드…….
“얼른 피해라! 피해!”
“으아아아!”
빼곡히 성벽을 메우고 있던 인어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 덩치로 커진 빙산은 계속해서 성벽 위로 추락했다.
느리지만 위협적인 자태에 누구도 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인어 왕국이 몰살당하기 직전이었다.
빅 톤트가 유리 옆으로 와서 외쳤다.
“이, 이놈! 인어국을 저대로 해구에 묻어버릴 작정이더냐!”
“#$*@&($*.”
“뭐라?”
“#*%#***!@”
“이놈이! 얼른 내 밑으로 와서 숨부터 마셔라!”
물속에 있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유리는 서둘러 등껍질 아래로 몸을 집어넣었다.
“하마터면 질식해서 죽을 뻔했네.”
“저걸 어찌할 셈이냐!”
“뭘 어떡해. 누가 알아서 막겠지.”
“대체 누가…….”
다시 전장을 바라보는 순간, 이질적인 기운이 바다 전체에 퍼졌다.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수면이 그늘막이 된 것처럼.
심해의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이 머리 위를 가렸다.
[웬 놈이.]어둠 한 가운데로 섬광 한 줄기가 번쩍였다. 섬광은 빙산을 그대로 관통했다.
쩌적!
선을 따라 빙산이 갈라졌다. 그리고 다시 빛이 발하고, 또 발했다. 그때마다 빙산이 잘리고, 갈리고, 부서진다.
“와아! 이무기가 왔다!”
“와아아아!!!”
도망치던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한 곳을 바라봤다.
유리에겐 빙산으로 가려진 그곳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빙산의 틈으로 얼굴을 드러낸 것은 날개와 뿔이 없는 용이었다.
‘용이 되지 못한 뱀. 여의주를 얻지 못한 용.’
원작에선 드래곤과 용을 엄격히 분리해놨다.
실상 같은 의미이긴 하지만, 언어로 만들어진 의미일 뿐.
상상하던 드래곤과 용은 엄연히 달랐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위용과 전설은 똑같았다. 사는 세계관이 조금 달라서 그렇지.
어쨌든 용들도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멸족했다. 창조주와 함께 사라졌다고 하던가.
그러나 그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이들도 있었으니.
“이무기인가! 헌데 어째서 네놈이 여기에?!”
빅 톤트가 한껏 으르렁 거리며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지.
원래 이무기들은 용궁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용이 되지 못했지만 용왕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원작의 시기적으로 이무기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됐다.
[웬 놈들이냐. 정체를 밝혀라.]“이무기, 비량! 나를 모르는 거냐?!”
[누가 내 이름을 함부로…… 음? 네 놈은 빅 톤트구나. 영생의 거북이가 용궁엔 어인 일이지?]“한 인간의 부탁을 받아 왔다.”
[용궁을 전복 시키려 온 건 아니고?]“그야 네놈들이 먼저 화살을 쏴댔으니 불가항력이었다!”
[빅 톤트, 그대는 우리의 적이다. 용궁을 위협하며 용왕의 안위를 걱정케 했던 적. 그대가 찾아왔으니 공격은 마땅했다. 내가 묻는 건 그런 처질 알면서 왜 인간과 같이 있냐는 것이다.]이무기는 등껍질 그늘 아래서 하반신만 보이는 인간을 노려봤다.
유리도 나서서 말하고 싶었으나, 물속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빅 톤트, 대신 전해주도록.”
“이젠 대변인이냐?”
“여기서 이무기한테 죽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리고, 저 이무기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네놈, 아까부터 대체 뭘 알고 있는 거냐.”
“설명해줄 테니까 내 말이나 전하도록.”
어차피 빅 톤트라 해도 이무기를 이길 순 없다.
특히 눈앞에 있는 이무기는 더더욱.
살려달라 할 수도 없으며, 도망도 불가능했다.
빅 톤트가 투덜대면서 “알겠다.”라고 답했다. 유리가 입을 열었다.
“난 지상의 용가, 나이트워커 가의 유리 덴 나이트워커다.”
[처음 듣는 이름이군.]“못 들어봤어도 상관없어. 난 용왕과 만나러 왔다.”
[너 같은 놈을 뵐 정도로 용왕께선 한가하지 않다.]“그렇지 않을 걸, 비량.”
[빅 톤트,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아깐 경고를 하다 말았으나,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지껄였다간.]“내, 내가 아니라 이 인간이…… 응? 그러고 보니 네놈은 세비의 이름을 어찌 아는 거지?”
유리는 그들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비량. 왜 타락한 용왕을 지키고 있는 거지?”
순간.
표정이 없어야 할 이무기의 얼굴에 기묘한 표정이 생겼다.
금방 사라진 표정이라 감정을 읽기는 어려웠으나, 유리는 그 찰나에 두 가지를 보았다.
하나는 ‘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였고.
다른 하나는…… ‘살려줘’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