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6
제196화
“뭐, 뭐라고?”
이야기를 들은 비량보다 빅 톤트가 더 당황해 했다.
용왕이 타락했다니.
악마의 손길이 용왕에게도 닿았다는 건가?!
비량에게 답을 구하듯 쳐다보자 그녀는 말없이 낯짝을 찌푸렸다.
“비량!”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사실대로 말해라, 비량! 용왕이 타락했느냐!”
[너희에게 할 말은 없다.]이무기는 아직 물속에 부유하는 얼음 덩어리를 꼬리로 쳐냈다.
집채만 한 얼음 덩어리가 바다를 가르며 날아온다.
빅 톤트는 입을 벌려서 얼음 덩어리를 깨물어 부쉈다. 얼음과자마냥 으스러진 파편들이 입안에서 잘근잘근 씹혔다.
“빌어먹을. 이래서 인어국 놈들이 싫다. 뭐만 말해도 부정부터 하고 있으니. 이봐, 세드리치의 아들. 정말로 용왕이 타락했느냐?”
“비량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진짜라는 거군. 저 비량이 이리도 동요하는 모습이라니.”
사실 빅 톤트는 아까부터 비량의 태도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받았다.
이무기가 용궁을 지키는 건 당연했다. 용왕을 감싸는 것도 당연지사.
하지만 녀석의 공격엔 살의가 없었다.
지키고자 하는 싸움의 의지가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어쩌다가…… 아니지. 내 동족도 당한 마당에 용왕이라고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건가.”
“악마는 상대를 가리지 않아. 용왕이라 해도, 아니지. 용왕이니까 당했을 테지.”
“그게 무슨 말이지?”
“톤트들이 바다를 건너려면 필시 인어국을 지났을 거다. 톤트와 인어국의 사이가 좋지 않은데, 그들은 어떻게 인어국을 지났지?”
“아……! 용왕이 설마!”
“그래.”
바다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저 인어 수인들과 용궁, 용왕이었다.
그러니 용왕의 타락은 예견된 사태였다.
다만, 그 시기가 이리 빨라질 줄 몰랐을 뿐.
“비량.”
유리가 다시 통역을 부탁했다.
“난 용왕을 죽이러 왔다.”
[한낱 인간 따위가 용왕님을 입에 함부로 담는 것도 모자라 죽음을 논하다니!]“그래, 내가 무례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지.”
[뭐?]타락한 용왕과 달리 비량은 타락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무기는 제 용왕과 용궁, 인어국을 지키려고 저곳에 서있었다.
“넌 뭘 지키고 있는 거지?”
[난 용왕님을―]“알량한 소리 집어치워. 시시하게 충성 같은 소리도 하지 마라. 용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거, 알 텐데.”
순간 인어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용왕이 타락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되돌릴 수 없다니. 이 모든 이야기 무슨 소리냐며 항변하든 이무기에게 시선이 꽂혔다.
이무기는 말이 없었다.
침묵은 곧 긍정이라지만, 놈은 일관된 톤으로 떠들었다.
[난 인어국의 수호자. 여의주 없는 용. 이곳을 지켜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난 용왕님만 지키는 게 아니다!]“그럼 날 죽여.”
[뭐, 뭐?]“죽이라고 했다, 비량. 나와 빅 톤트는 용왕이 있는 용궁을 공격했으니까 사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 이 놈이! 난 죽기 싫단 말이다!”
잘 통역하던 빅 톤트가 몸부림 쳤다.
그러나.
비량에게선 어떤한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죽이려면 한참 전에 죽일 수 있었다.
유리에겐 호흡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있고, 빅 톤트는 이무기를 이길 수 없었다.
근데 비량은 노려보기만 할 뿐.
빅 톤트가 통탄했다.
“설마 네놈까지 악마에게 타락한 거냐! 그래서 이리도 매정하게 구는 것이냐!”
[착각도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 영생의 거북이여, 원래 우리 인어국과 너희들과 사이는 나빴다.]“사이가 나빴다 한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했다! 경쟁의 관계로서 블루 드래곤이 죽은 이후 바다를 지켜왔어! 그런데 내 친우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는 건가!”
유리는 그의 한 마디에서 깊은 슬픔을 느꼈다.
드래곤이 세상을 떠난 후, 만물을 관장하고 다스리던 힘들의 균형도 무너졌다.
정령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물질계에 간섭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 속에서 용가들이 땅의 중심을 잡았고, 바다는 인어와 빅 톤트 같은 마수들이 잡았다.
‘원작에서도 빅 톤트가 이상하게 용왕과 친했지.’
작품을 읽었을 땐 몰랐던 감정이 유리의 가슴 속에서 뭉글뭉글 뭉쳤다.
적수이지만 라이벌.
서로가 있기에 서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들.
용왕과 빅 톤트는 오랜 세월을 치고 박고 싸웠으나 그렇게 우정을 쌓은 사이가 됐다.
빅 톤트는 그 우정이 단숨에 깨졌다는 현실에 슬퍼했다.
“부탁하마, 비량. 제발!”
[……라.]“……?”
[전군 공격. 저들을 죽여라.]이무기의 기다란 몸뚱어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뒤로는 인어들의 화살과 캐터펄트가 시위를 당겼다.
결국 대화고 뭐고 통하지 않았다.
“세드리치의 아들. 넌 방법을 알고 있겠지?”
“용왕을 원래대로 돌리는 방법?”
“그래.”
“없어, 그런 건.”
“…….”
“하지만 아주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지.”
“그거면 됐다.”
빅 톤트가 목을 움츠렸다.
“틈을 열어주마. 들어가라.”
“숨도 못 쉬는데 혼자 가라는 건가?”
“용궁 안에는 물의 정령이 만든 결계가 있다. 물속인데도 평범하게 숨을 쉴 수 있어.”
“……넌?”
“아까 비량의 입모양을 못 보았느냐.”
살려줘, 라고.
똑바로 봤다.
이무기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착각일 수도 있지만, 빅 톤트는 제대로 알아봤다.
“살려달라고 했어. 도움을 바라고 있는 거다.”
“연기를 하겠다는 거군.”
“오래하진 못한다. 혹시라도 인어들 사이에 악마 새끼들이 숨겨놓은 첩자라도 있다간…….”
“되돌릴 수 있어.”
“좋아. 그럼 신호하면 뛰쳐나가라.”
그때.
이무기의 기다란 몸뚱어리가 순식간에 빅 톤트에게 날아와 충돌했다.
“비량!!!”
빅 톤트도 물러서지 않고 몸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이마와 이마가 맞부딪치면서 파동이 퍼졌다. 퍼진 파동이 일대 바위와 산호초를 뒤흔들었다.
이어서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비량! 정신 차려라! 네놈까지 이럴 필요 없다!”
[네놈이 왜 그게 궁금한 거지?]“내 비록 인어국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그 놈은…… 그 놈이 그딴 악마들에게 당했을 리가 없으니까!”
[마음대로 착각해라, 영생의 거북이.]“이놈이 끝까지 두루뭉술한 소리만!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오기로라도 용왕을 봐야겠다!”
쿠구구구!
힘에서만큼은 빅 톤트도 밀리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다리를 지탱하고 힘껏 이무기를 밀어냈다. 이무기의 발톱이 얼굴을 긁어도 개의치 않았다.
두두두두!
“크아아!”
빅 톤트가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더욱 세차게 굴렀다.
바위가 부서지고 모래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이무기도 결국 발톱으로 바닥을 짚으며 앞으로 전진 하려 애썼다.
[꺼져라, 거북이! 이게 내 마지막 자비다!]“시끄러워! 난 용왕을 봐야겠어! 내 오랜 적수가! 내 원수가 멀쩡한 걸 내 눈으로 봐야겠단 말이다!”
다시금 전투가 벌어졌다. 이무기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검기를 발산하면 빅 톤트는 등껍질과 파동으로 물리쳤다.
그 순간, 빅 톤트는 이무기의 눈동자를 보고 말았다.
칠흑으로 물든 눈동자는 빅 톤트가 알던 노란색으로 돌아왔다가 까맣게 변하길 반복했다.
‘너도…… 악마가!’
비량, 용궁을 지키는 이무기도 악마에게 타락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무기는 마지막 발악을 토해내며 입모양만으로 말했었다.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한때 천적이었으나 그들의 타락을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적당히 할 수도 없다.
“죽지 마라, 비량! 네놈과 용왕 모두 타락했으면서 나 하나한테 당한다면, 그건 정말로 용서하지 않겠다!”
빅 톤트는 전심전력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방출했다.
이윽고 주변에 있던 모든 지형지물이 산산조각 났고, 그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용오름이 생겨났다.
* * *
빅 톤트가 이무기를 붙잡고 있는 틈에 유리는 기회를 엿봤다가 등껍질 아래로 나왔다.
모래와 용오름, 시야를 가릴 만한 현상들이 줄지어 발생한 탓에 시선을 피하기 쉬웠다.
유리는 돌 틈을 오고가며 해구 아로 천천히 내려갔다.
‘수영엔 젬병인데.’
그러면서도 유리는 유유히 용궁의 성벽에 도달했다.
아직 인어 병사들이 머리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두 덩치의 싸움을 원호하느라 바빴다.
‘하나, 둘…….’
유리는 빅 톤트와 이무기가 다시 충돌을 일으키길 기다리며 숫자를 셌다.
그리고 파동이 다시 한 번 세상을 진동할 때.
서걱!
대놓고 성의 대문을 티르빙으로 잘라냈다. 어마어마한 두께와 무게에 문은 금방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안에 있던 인어 병사들이 소리쳤다.
“웬 놈…… 억!”
다행히 숫자는 두 명뿐. 유리는 그들의 목덜미를 쳐서 기절시키곤 유유히 궁에 접근했다.
대기 중이던 병력들의 이목은 전부 이무기의 싸움에 집중되었다.
그렇게 1층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신기하게도 숨을 쉴 수 있었다.
똑같은 물인데도 불구하고, 호흡만이 아니라 움직이는 데도 불편함이 없었다.
“용왕의 힘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인가.”
공간에 마법이나 어떤 권능을 유지하는 능력은 평범한 생명체론 불가능했다.
그에 필적할만한 존재여야만 한다.
용왕은 그에 적합한 존재였으며, 악마로부터 완전히 힘을 빼앗기지 않았기에 이 같은 권능 유지가 가능했다.
그렇기에 불안하기도 했다.
[이거 조금만 마나를 잘못 방출했다간 다 망가지겠는 걸.] [그러게요. 이건 숨을 쉴 수 있지만, 동시에 함정이에요.]“이래보여도 왕궁이니까. 무기 소지는 금지한다는 거겠지.”
유리는 무작정 길을 따라 걸었다. 가는 길마다 방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머리 위에서 강대하면서 불쾌한 기운이 느껴졌다.
용왕은 꼭대기에 있을 터.
가는 길에 마주친 경비들도 가볍게 기절만 시키면서 올라갔다. 주요 병력들은 빅 톤트와 싸우러 나간 모양이었다.
덕분에 수월하게 꼭대기 계단을 오르자 바로 방문 하나가 보였다.
창호지가 발라진 문에선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아무도 없었다.
‘왕을 호위하는 병력조차 없다고?’
빅 톤트가 시선을 끌어줘서 병력들이 빠져나갔다지만, 왕을 지키는 경비마저 없는 건 이상했다.
조용하다.
소름끼치게 물속에 있으면서 아무런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저 바깥에서 싸우는 소리조차 이곳에선 완벽히 차폐되어 있었다.
“……티르빙, 아스칼론. 준비해. 여차하면 나 대신 너희 둘이서 내 몸을 써야할 수도 있어.”
[무슨 불길한 소리를.] [전 준비됐어요.]유리는 발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접근해서 티르빙의 끝으로 문고리를 걸어 슬쩍 밀었다.
기다란 카펫을 따라 그 끝에 놓인 왕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곁을 지키는 병사들도 없었다. 신하나 대신, 서기조차 코빼기가 안 보였다.
무엇보다 왕좌에 앉아 있어야 할 왕도 사라졌다.
대신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하얀 머리, 붉은 눈동자.
흡사 릴림이 떠오르는 인상이었으나, 풍기는 분위기는 더 고혹적이었다.
“리리스.”
릴림의 안에 자고 있는 레벤나의 자매가 왕좌에 앉아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인사했다.
“반가워, 마검의 군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