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7
제197화
리리스.
72인의 악마 중 레벤나의 자매이자, 최초의 인류를 유혹한 뱀.
유리는 이곳에 악마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용왕을 타락시킬 만한 힘이라면 암흑 눈물로는 부족했다. 적어도 직접 접촉을 하거나, 그만한 아티팩트를 썼을 줄 알았거늘.
“여기 있을 줄은 몰랐군요, 리리스.”
“어머~ 날 알아?”
“레벤나의 언니이자 아담을 안은 악마죠.”
“크큿! 날 알아주다니, 영광인 걸.”
후우, 유리는 남모르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른 악마면 몰라도 리리스는 곤란했다. 72인의 악마에 속하지 않은 그녀의 전투력은 유리로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원작에서 대충 묘사하기로 30위권 이내라 했던가.
‘티르빙, 내가 저 여자를 이길 수 있을까.’
[당연히 안 되지.] [너무 강해요.]두 여자는 단번에 안 된다고 했다.
유리는 쥐고 있던 티르빙을 거뒀다. 리리스 앞에서 괜히 전투 의사를 내비쳐서 좋을 건 없었다.
“현명해라. 맞아, 당신의 수준으로 나와 싸우는 건 어리석어.”
“여기엔 왜 왔습니까. 리리스 님 같이 지체 높은 악마가 직접 이런 곳까지 올 이유는 없을 텐데요.”
알면서도 유리는 모른 척 물었다. 그녀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 와서 모른 척하는 거야? 웃기네. 날 보자마자 알아봤으면서.”
“당신이 누군지 안다고 해서, 당신의 속까지 알 수는 없으니까요.”
“어머, 말빨 좋아라.”
“……용왕은 어디 있습니까.”
그녀의 의중이 뭐가 되었든 중요한 건 용왕이었다. 용왕이 없으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었다.
“글쎄에~ 어디 있을까요.”
“……죽였습니까?”
“어머머머, 우리 악마들을 너무 나쁘게 보지 말아줘. 우리가 아무리 사악하다 해도 닥치는 대로 죽이진 않아.”
“그럼 용왕은……?”
“걱정하지 마. 잘 살아야 있어.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걸? 죽어가던 걸 내가 살리고 있거든.”
그녀가 하늘을 가리켰다.
이제 보니 용궁 내부의 천장엔 하늘이 있었다. 바다 속에선 볼 수 없는 하늘 말이다.
그 중심에 왕관을 쓴 여성 인어 한 명이 몸을 웅크리고 투명한 구슬 안에 갇혀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말했잖아. 살리고 있다니까?”
죽이려고 했지만, 죽이지 않았다.
용왕에게선 마기가 안 느껴졌다. 악마에게 타락되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그렇다는 건, 용왕의 타락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걸까?
하지만 이는 원작과 달랐다.
그리고 원작과 다르게 리리스가 이곳에 있으니.
“눈빛을 보니까 이제야 사태 파악이 되나보네.”
“타락을 풀었군요.”
원작 설정상 용왕의 타락은 오래 되었다. 때문에 인어국은 알게 모르게 쇠락해져 갔으며 비량만이 진실을 깨닫고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헌데 용왕에게선 타락이 풀어졌고, 구슬 안에서 서서히 회복하는 중이었다.
리리스가 아니고선 저런 짓을 할 사람이 없었다.
“이제 막 타락을 풀었으니, 회복까진 시간이 걸릴 거야.”
“이런다고 당신에게 감사할 순 없습니다. 믿을 수도 없고요.”
“레벤나의 언니인데도?”
“…….”
“하긴, 나라고 해서 좋은 악마가 될 순 없지. 어쩌겠어.”
리리스는 그리 말하며 왕좌에서 내려왔다.
발끝으로 캣 워크를 걸으며 다가왔다.
“난 네 편이 되고 싶어.”
그녀의 손끝이 허공을 두드렸다. 그러자 웬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과거 유리가 릴림을 스승으로 골랐을 때의 장면을 릴림의 시점으로 보던 것이었다.
“다 보고 있었군요.”
“실시간으로 본 건 아니야. 레벤나가 릴림을 받아들이면서 그 아이의 의식이 나한테도 흘러들어 온 거라서.”
이거야 말로 전혀 상정조차 하지 않았던 전개였다.
레벤나의 각성이 리리스와 이어지는 계기가 될 줄이야.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했다.
“레벤나와 의식이 이어진 건 그렇다 쳐도. 그게 왜 절 돕는 이유입니까.”
“좋아해.”
“……네?”
“크크크, 당황스러워 하는 얼굴. 재미있어라.”
젠장, 이런 소리를 갑자기 들으면 나도 당황스럽다고.
유리는 바로 이성을 되잡았다. 그런 모습마저 귀엽다며 리리스는 소리 내어 웃었다.
“정확히는 레벤나와 릴림이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해. 그들의 의식이 나와 동화되면서 나도 좋아졌고.”
“단지 그게 이유라고요?”
“안 돼?”
“이해하기 어려워서요.”
“우린 자매야. 가족이고. 비록 악마이긴 하지만, 우리라고 악마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지. 우리도 천사들과 창조주처럼 인간들을 사랑한다고.”
맞다.
리리스는 아담을 사랑한 죄 밖에 없었다. 그 파국의 끝자락에서 배신과 복수가 있었을 뿐.
레벤나 또한 72인의 악마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인간을 사랑하였다.
그런 점을 보면 두 여성 모두 평범한 악마와는 많이 달랐다.
인간을 좋아하고, 그들처럼 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었으니.
‘이제 좀 이해가 되네.’
원작에서 리리스는 의외로 허무하게 죽고 만다.
한 평범한 청년이 찌른 창에 목이 꿰뚫려서 죽었던가.
마나가 실려 있었다거나 방심한 건 절대 아니었다.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청년’과 리리스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알 법했다.
“……절 돕겠다면 약속 하나만 해주십시오.”
“뭔데?”
유리는 한 동안 자신이 구상했던 계획 일부를 그녀에게 설명해줬다.
완벽한 진실만 털어놓을 순 없었으나, 리리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그쯤이야 내 권능으로 얼마든지 가능해.”
“그럼 이제…….”
쿠구궁!
아까와 달리 용궁 전체가 진동으로 뒤흔들렸다.
빅 톤트나 비량은 아니었다.
새로운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원래 와야 했던 악마가 도착했나 보네.”
리리스가 그리 말하며 자신의 몸을 축소시켰다.
“나 도망가야겠어.”
“여기선 도와주는 거 아닌가요?”
“동족에게 내가 당신에게 협력했다는 사실을 들켰다간 용왕도 무사하진 못할 걸. 어쩌면 여길 통째로 날릴지도?”
스스스, 점점 작아지던 리리스는 엄지 만하게 작아져서 유리의 주머니 속으로 날아와 들어갔다.
뻔뻔하긴 했지만, 어쨌든 당분간 든든한 아군인 건 확실했다.
“원래 오려 했던 악마라.”
유리는 하늘 위에 떠있는 용왕에게 날았다가 구슬을 갖고 내려왔다.
구슬은 손에 닿자마자 물방울처럼 터져 사라졌다.
그렇게 품에 안긴 용왕을 왕좌에 앉히자 조금씩 그녀의 정신이 돌아왔다.
“으음.”
“용왕이시여. 잠시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당신, 은?”
“곧 있으면 용왕님을 타락시킨 악마가 다시 올 겁니다. 큰 전투가 벌어질 거고,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난…….”
인어국의 패배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악마란 원래 드래곤과 버금가는 힘을 가진 존재들.
물론, 드래곤과 제대로 붙어본다면 악마들이 필시 패배하겠지만.
적어도 현재의 인어국이 패배하는 건 자명했다.
인어국의 신하들과 이무기가 용왕의 타락을 막지 못한 것도 그런 사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길 방법이 있습니다.”
“뭐, 든…….”
왕은 아득한 정신 속에서도 눈앞의 인간이 자신들의 구원자라고 판단했다.
이성적인 판단인지, 아니면 절박함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용왕은 인어국이 되살길 바랐다.
유리는 그 방법을 제시했다.
“여의주가 필요합니다. 어디 있습니까.”
“여의, 주? 우린, 용이 될, 이무, 기가, 없, 어요.”
“아뇨, 있습니다.”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선 그만한 자격을 요구 받았다.
단순히 여의주를 가진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여의주가 이무기를 받아줘야 했다.
인어국에선 지난 몇 천 년 간 용이 태어나지 않았다.
수많은 이무기가 여의주를 입에 물었지만, 여의주가 그들을 모두 거부하는 바람에 죽어나간 숫자가 더 많았다.
그러나 유리는 이에 적합한 인물 하나를 알고 있었다.
* * *
빅 톤트와 비량은 더 이상 서로 싸우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몰려든 타락한 톤트들 때문이었다.
“동족이여! 정신 차려라! 부탁이다!”
빅 톤트는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며 달려드는 톤트들에게 거듭 소리쳤다.
이성을 잃은 톤트들은 어떻게든 빅 톤트의 살갗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제발!”
빅 톤트는 차마 그런 동족을 제 손을 죽이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들의 뼈나 등껍질 부수어 죽지 않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히는 것밖에 없었다.
그때, 한 톤트가 빅 톤트의 뒷덜미를 물었다.
“커헉!”
그 순간까지도 빅 톤트는 저항하지 못했다.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부디 동족이 제 정신을 찾길 바라는 헛된 희망이 망설이게 만들었다.
[너야 말로 정신 차려라!]쿠앙!
비량이 발톱으로 목덜미를 문 톤트의 머리통을 쥐어 터뜨렸다. 뒤이어 달라붙어 있던 다른 톤트들도 꼬리로 쳐서 떨어뜨렸다.
빅 톤트의 목에서 피가 흠씬 흘러나왔다.
“그러는, 큭! 네놈도 용왕의 타락을 모르고 있던 주제에.”
[난 모른 척 한 거고!]비단 비량이나 다른 인어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인어국의 인어들은 자신들의 왕이 타락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날, 악마의 강림은 심해의 어둠보다 짙은 어둠을 몰고 왔다. 비량과 함께 용궁을 사수하던 다른 이무기들이 모두 죽어나갔고, 용왕은 결국 마기를 머금고 타락했다.
용왕을 인질로 잡힌 꼴이었다.
결국 인어국은 타락한 톤트들을 통과시켜줘야 했으며, 그밖에 온갖 수모를 당했다.
[나도, 용왕님이 돌아왔으면 한단 말이다.]짜증난다.
나도 이 모든 게 짜증난다고.
용왕이 타락했다는 걸 알면서 여전히 그녀에게 충성하고 있다. 이무기로서 맺은 맹세 때문이 아니다.
이무기 비량에겐 이곳이 전부였다.
태어나고, 자라고, 자신을 키워준 바다의 모든 것.
이를 어찌 한 순간에 버린단 말인가.
설령 타락한 왕이라 해도, 돌아올 거라 믿으며 비량은 이곳을 지켰다.
[빅 톤트. 너와 나는 적수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전장에 섰다. 그러니 묻겠다. ……네 동족을 죽여도 되겠나.]이상한 질문이었으나, 비량만이 할 수 있는 배려이기도 했다.
빅 톤트도 이 사실에 분했으나, 이내 웃었다.
“똥폼 잡고 있군, 이무기. 저 놈들은 동족이지만 일족은 아니다.”
[좋아.]비량이 숨을 들이켰다가 인어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켜라! 싸워라! 왕께서 돌아올 자리를 망가뜨리지 말아라!]“우오오!”
인어들이 고함을 지르며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싸움은 점점 더 격렬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전세는 조금씩 인어국 쪽으로 기울었다.
비량에 이어서 빅 톤트까지 합류한 전력이니, 톤트가 떼로 덤빈다고 해도 상대가 될 순 없었다.
하지만, 톤트들 뒤에는 진정한 악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