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
제2화
나이트워커의 차기 가주라 거론되던 자의 죽음은 제국에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세계의 권력 구도 중 한 축을 담당할지도 모르던 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정국이 수상하게 돌아갔다.
이에 현 가주이자 유리의 조부 되는 자가 성대한 장례식을 열겠다고 공언했다.
어감이 이상하긴 하지만, 성대하다면 정말 성대했다.
다른 용인 가문을 비롯해 한 나라의 왕과 성녀까지 초대했다.
심지어 다신 보지 않을 것 같았던 유리와 어머니 샤를린느까지 불러들였으니.
용병단에서 제공해준 쪽방에서 지냈던 유리는 간소하게나마 짐을 싸고 내려왔다.
밖에는 검은 용이 그려진 마차와 검은 갑주를 입은 병사들이 있었다.
나이트워커가에서 직접 보낸 마차와 호위병들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피하기 바빴다.
용병단 건물을 나가기 전, 한 남자가 입구에서 불러 세웠다.
“정말 가야겠냐?”
날렵한 체형의 남자는 용병단장 게슐츠였다.
용병단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유리가 나이트워커 가문의 사람이란 건 알고 있지만 자세한 사정을 이는 없었다.
가령 서자라든가 암살 미수를 당한 일 같은 거.
그나마 게슐츠는 이러한 사정을 모두 알고 있으며 물심양면으로 유리를 보살펴 줬었다.
그와의 정이 아쉽긴 했지만, 유리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가야 돼요. 할아버님이 직접 부른걸요.”
“하, 미친. 내다버린 손주한테 눈길 한번 안 줄 때는 언제고 지랄을 떠네.”
“그러게요.”
감히 나이트워커를 욕하는 것치곤 정작 유리는 태연했다.
원작 같았으면 이맘때 즈음에 죽어야 했다. 그리고 부름을 받은 건 그의 어머니인 샤를린느만이었다.
그러나 유리마저 살아 있는 덕에 그 또한 가주의 부름을 받았다.
“유리.”
게슐츠 뒤편으로 중년의 여성이 나타났다.
유리의 어머니인 샤를린느 여사였다.
그녀의 등장에 게슐츠가 기꺼이 비켜줬다.
“오셨습니까.”
“오랜만이에요, 게슐츠. 아들 때문에 고생이 많네요.”
“하하, 고생은 뭘요. 오히려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샤를린느는 빙긋 웃고는 유리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선 그녀는 점점 미소를 지웠다.
“꼭 가야 되겠니?”
“단장님과 똑같은 말씀이시네요. 저만 안 가도 된다고 하시는 거라면―”
“안 가도 되는 게 아니야.”
짐 정리를 멈추고 유리가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의 낯엔 미소가 사라지면서 공포의 그늘이 드리웠다. 망설이듯 바싹 마른 입술을 깨물곤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면 죽는다.”
한마디가 주는 무게감이 확 다가왔다.
“오래전에 너를 습격했던 암살자. 그를 사주한 이가 가문에 있을지 몰라.”
“알아요.”
“가주님이 무슨 이유로 부르는지는 몰라도 좋은 일은 아닐 거란다.”
“그것도 압니다.”
“그러니 가지 말고―”
“어머니.”
유리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어머니가 어떤 의미로 저런 말들을 하는 건지 안다.
직접 가문에서 지내보았기에 할 수 있는 걱정과 우려.
허나 그건 과거에 지나지 않았다. 유리가 우려하는 건 당장 닥쳐올 미래였다.
그러니 구태여 어머니께 말했다.
“방금 하신 말씀,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가면…… 죽으실 거예요.”
“유리야.”
“제가 당한 과거 때문에 제가 또 당할 거라 생각하신다면 아니에요. 당한 게 있기에 저는 당하지 않을 겁니다.”
“…….”
“하지만 이제부터 겪을 것들로부터 어머니가 당하실 수 있어요. 물론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부터 전 어머니를 반드시 지킬 겁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버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죠.”
나이트워커, 미래, 닥쳐올 위협.
유리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니다. 미래를 모르는 사람과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차이가 컸다.
이미 나이트워커를 한 번 떠났던 어머니 입장에선 부담이 더 클 것이다.
유리는 물었다.
“그래도 어머니께선 가실 건가요?”
“……하나만 묻자꾸나.”
“예.”
“넌 싸우러 가는 거니?”
“싸우러 가진 않아요. 필요하다면 싸우겠지만요.”
“그럼 무얼 위해 가는 거니?”
“살기 위해서요.”
안타깝게도 유리는 완벽한 진실을 토로하지 못했다.
다가올 미래를 설명해줘도 믿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샤를린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유리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래, 그게 네 선택이라면……. 가자꾸나.”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마차로 향했다.
먼저 샤를린느가 타고 뒤따라 유리가 타려는 찰나.
게슐츠가 소년을 불렀다.
“야! 꼬마!”
뒤를 돌아보자 묵직한 무언가가 날아왔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날아든 물건은 가죽에 싸인 기다란 검이었다.
“이거…….”
“매번 이 빠진 검으로 훈련했잖냐. 선물이다.”
“꼬맹이한테는 위험하다면서요.”
“더 위험한 곳에 가니까 위험을 위협할 무기가 필요할 거 같아서.”
조금 뽑아보니 예기가 예사롭지 않은 칼날이 햇빛에 번뜩였다.
월급이나 제때 주지 이런 걸…….
유리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마차에 마저 탔다.
잠깐 동안 정들었던 곳과는 이별이다.
* * *
나이트워커 영지까지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가는 동안 나이트워커의 직속 기사들이 호위를 맡았으며 마을에 여관을 잡아서 하룻밤 묵고 다시 행군하길 반복했다.
가는 동안 유리는 원작을 통해 닥쳐올 미래를 정리했다.
‘이 세계의 멸망이라…….’
원작의 세계관은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지금은 평화로운 세상이지만, 바다 건너에선 악마의 군대라 불리는 존재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을 것이다.
유리는 그들의 처리를 원작대로 주인공에게 맡길 계획이다.
다소 문제가 있다면.
‘멸망은 주인공이 알아서 막겠지만, 나와 가문을 없애려 들 거야.’
유리 덴 나이트워커는 원작에서 조연에 불과했다.
티르빙에 희생당하는 제물 정도가 역할의 끝이다.
그렇기에 유리는 ‘티르빙’이란 무기를 더욱 확실히 기억했다.
자신을 희생시킨 무기라서 기억하는 게 아니라.
피를 먹여 키운 티르빙을 파괴하는 주인공 때문에 기억했다.
티르빙은 엄연히 마검이다.
마신이 벼려내어 들었던 신화 속 검.
주인공은 악마의 군대를 이끄는 존재가 티르빙을 탐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나이트워커 가문의 사람들이 모조리 죽었다.
누가 티르빙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치 않으니 닥치는 대로 죽인 것이다.
언뜻 학살 같아 보이겠으나,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이.
형제들이 차기 가주 자리를 놓고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영지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하게 변했다.
주인공은 이를 명분 삼아 나이트워커를 멸망시킨다.
결국 명성만 드높을 뿐, 나이트워커 가문도 조연급 악당이나 다름없었다.
‘티르빙, 원래 너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누군지 진짜 몰라?’
[모른다니까. 직접 손이 닿지 않으면 잠들어 있어서 알 수 없어.]‘이럴 땐 쓸모없네.’
[야! 나 이래 보여도 마신이 휘두르던 검이야!]‘먹고 잠만 자는 축생이 아니고?’
[이 꼬맹이가!]귓속에서 무어라 떠드는 그녀를 뒤로 하고 유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해야 할 건 분명했다.
가문에서 살아남는다.
멸망에서도 살아남는다.
그 첫걸음이 나이트워커 가문에 가는 것이었으며, 샤를린느에게 했던 ‘살기 위해서’라는 말의 의미이기도 했다.
“멈춰라!”
그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알 수 없는 외침에 마차가 정말로 멈췄다. 맞은편에서 선잠을 자고 있던 샤를린느가 부릅 눈꺼풀을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니?”
“모르겠어요. 잠시.”
‘감히 나이트워커 가문의 마차를 세운다?’
왕이라 해도 어지간해선 못할 짓은 누군가가 해냈다.
이럴 만한 사람은 딱 정해져 있다.
유리는 창밖으로 목을 빼서 살폈다. 찬바람이 불어서 앞 머리칼에 스몄다.
가장 먼저 보인 건 호위하던 병사들이 마차를 중심으로 도열한 모습이었다.
방어나 지키는 대형이 아녔다.
도리어 뜻밖의 손님을 맞아주는 형태에 가까웠다.
저 앞으로 시선을 옮기니 흑마를 탄 기사 무리가 있었다.
제일 선두에는 아직 어린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외모를 봐선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이트워커 가문 사람이네.’
일단 뒤에 같이 있는 기사들도 그렇고, 그들 선두에 있다는 건 가문 사람임이 분명했다.
나이대로 봐선 유리보다 서너 살쯤 많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행색을 봐선 꽤나 먼 길을 온 거 같은데.
소년과 유리의 눈이 마주치자 소년이 씨익 웃더니 다짜고짜 손가락질 하며 소리쳤다.
“거기 너! 이리 나와!”
이거 뭐 신고식 같은 건가.
떨떠름한 기분을 맛보며 유리는 제자리에 앉았다.
“어머니,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거 같아요.”
“뭔데 그러니?”
“소란이 일어나도 가만히 계셔 주세요. 혹시 모르니 이 검 가지고 계시고요.”
“유리? 유리!”
유리는 게슐츠가 줬던 검을 어머니께 맡기고 마차를 나왔다.
문을 열고 내려서자 질척이는 진흙에 발목까지 들어갔다.
더러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린아이의 힘으론 걷기 힘들었지만, 마나를 이용해서 쉽게 자리를 빠져나왔다.
흑마 위의 소년과 마주하자 소년도 자리에 내려와 가까이 섰다.
“크으, 역시 너였구나. 평범한 인간의 피를 이어받은 열등분자.”
“나를 알아?”
“말이 짧네. 하! 하긴! 열등분자 새끼가 배워봤자 얼마나 배워 봤겠다고. 이 제몬 덴 나이트워커가 이해해 줘야지!”
제몬이라.
소설에서 본 기억이 없다. 비슷한 이름이 있긴 했던 거 같은데.
으음, 모르겠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42대손, 제몬 덴 나이트워커다! 네놈의 형님이지!”
“그래서 제몬. 왜 앞을 막은 거지?”
“이 빌어먹을 놈이 감히 형님에게……! 아니야. 이것도 참아줘야지. 너그러운 아량이야말로 나이트워커의 덕목이니.”
[쟤 너무 혀가 긴데. 자르면 안 돼?]티르빙의 달콤한 유혹에 혹했다. 말이 많은 자는 그리 안 좋아했다.
세 치 혀라면 더욱.
거기서 더 나불댔으면 자르려 했으나, 운이 좋게도 제몬은 그만 멈추고 본론을 토했다.
“유리라 했던가. 경고하지. 지금이라도 돌아가라.”
“뭐?”
“가주님께서 무슨 생각이신지 몰라도, 아마 네놈이 나타났다간 차기 가주의 아들이 열등분자라는 소문이 곳곳에 퍼질 거다.”
“이해되게 말해주면 좋겠는데.”
“감히 차기 가주님의 장례식에 너 같이 평범한 인간의 피가 섞인 열등분자가 있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거야. 우리 가문에 먹칠하지 말고 꺼지라고!”
그제야 제몬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일부러 여기까지 나와서 지키고 있었다는 거다. 제몬이 말하는 열등분자 하나를 막기 위해서.
‘이쯤 되면 저 녀석이 더 열등감을 느끼는 거 같지?’
[그래 보이네. 아주 사서 고생이야. 하지만 조심해. 너보다 좋은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 방심하면 곤란해.]‘방심이라…….’
유리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까지 아무도 반응이 없다.
제몬을 포함한 그를 지키는 기사들까지 13살짜리 꼬마애가 뭔가 보여줘 봤자 별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혹여 제몬에게 발끈해서 달려들더라도 아이의 치기에 불과할 터.
제몬은 가문에서 형제들의 경쟁을 물리치고 살아남은 자.
더구나 유리에겐 무기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리는 계속 나아갔다.
두 발짝에도 그들은 반응이 없다.
세 번째에 갑자기 유리가 달음박질을 했다. 제몬이 비웃었다.
마지막 걸음, 유리의 신형이 사라졌다.
다시 그가 나타난 곳은 제몬의 코앞이었다.
말이 놀라서 펄쩍 뛰었고 제몬은 뒤늦게나마 직감적으로 칼을 뽑아 휘둘렀다.
꾸득!
유리는 손등을 깨물어 피를 냈다. 한 방울씩 흘러나온 피가 점차 수돗물처럼 흘러서 팔뚝을 감쌌다.
피칠갑은 곧 갑옷처럼 단단해졌다.
유리는 곧장 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검과 주먹이 부딪히자 검신이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남은 관성력은 그대로 검을 지나쳐 놀라서 울기 직전인 제몬의 낯짝을 향했다.
퍼억!
쇳조각과 함께 부러진 치아가 허공을 날았다.
제몬은 눈알이 뒤집어져서 그대로 낙마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