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0
제20화
이자벨 린테어 솔리드녹스는 솔리드녹스의 교육기관에서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가문의 미래이자 역사상 다신 없을 천재라 불렸다.
그런 그녀는 나이트워커와 솔리드녹스의 교류 협약에 따라 15살 나이에 교환 학생으로 나이트워커에 넘어왔다.
교환 학생으로 있어야 하는 기간은 총 4년. 이마저도 좋은 성적을 따면 조기 졸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자벨은 진작에 조기 졸업 따위 포기했다.
몇몇 교수들 때문이었다.
특히 역사 교수는 치를 떨게 만들었다.
“이자벨, 대답해봐. 대륙력 441년, 나이트워커가 마수를 토벌할 때 솔리드녹스는 뭘 하고 있었지?”
또 악의적인 질문.
이자벨은 절로 한숨이 나오려던 걸 간신히 참았고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실망이구나!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네가 도대체 어떻게 교환 학생으로 추천 받았는지 모르겠어!”
그러게요. 저도 당신이 어떻게 교수가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자벨의 코앞까지 왔던 교수는 혀를 차며 강단으로 돌아가며 방금 던진 질문의 답을 해줬다.
그 답이 무언지 이자벨은 들려도 듣지 않았다.
어차피 알고 있는 질문이었다.
나이트워커가 공적을 세우던 그 시기에 솔리드녹스는 전쟁에서 도망쳤다.
전략적인 선택이었으나 이는 나이트워커가 위신을 세우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반면 솔리드녹스는 세상을 돕지 않았다며 세간에 오명을 남겼다.
전략적 선택이었든 뭐든, 이기적인 집단이라며.
물론, 그런 사건 하나 때문에 가문이 흔들리거나 용인으로서의 위신마저 떨어지진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든 솔리드녹스는 솔리드녹스였다.
그러니 교수의 질문은 다분히 악의적이면서, 솔리드녹스를 이자벨 앞에서 까내려는 얕은 수작에 불과했다.
벌써 이게 몇 번짼지.
“교수님.”
그때 강당 뒤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이제 막 답을 설명하고 강단에 올라선 교수가 눈살을 가늘게 찌푸렸다.
다른 학생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간다. 시선과 시선이 맞닿은 곳엔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한 남자애가 손을 들고 있었다.
이자벨은 그에 대해 떠올렸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
혼외자식, 서자, 인간, 눈밖에 난 반쪽 혈통, 이레귤러.
지금까지 들어본 소문 속 유리는 딱 그 정도로 추려졌다.
용인 가문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 중 하나다. 서자라는 점은 특이하지만, 인간은 아무리 용인의 피가 섞였어도 용인 대우를 못 받았다.
교수는 불편한 기색을 최대한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뭐지, 유리.”
“질문이 있습니다. 나이트워커가 북의 마수를 토벌할 당시, 솔리드녹스는 대민 지원 차원에서 병력을 뺐던 걸로 아는데, 맞나요?”
“……그걸 어디서 들었지?”
“들은 건 아니고 책에서 봤던 기억이 나서요.”
큽!
순간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났다. 교수가 그쪽으로 따가운 시선을 보냈으나 범인을 찾지 못했다.
이내 교수는 이를 꽉 물며 답했다.
“솔리드녹스에서 그리 주장하긴 했다. 딱히 근거는…….”
“근거는 없지만 다음해에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흉년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안 입은 가문이었다, 맞죠?”
“큼, 크흠! 그, 그렇긴 하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교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나씩 비웃던 소리는 곳곳에서 들렸다.
이자벨은 금안으로 그 아이를 또렷이 노려봤다.
그 날의 역사는 누구의 잘못도 없다. 그저 서로의 이해관계에 맞춰서 행동했다.
나이트워커는 외실을 다졌고, 솔리드녹스는 내실을 다졌다.
그 뿐이다.
‘그 사실을 콕 집어내는 나이트워커의 사람이라.’
제몬과 타나토랑 같이 지내면서 그들에게서 저런 대답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둘도 분명 진실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유리는 그들과 달랐다.
‘가주에게 무언가 인정받고 혈통을 인정받았다. 타나토와의 대련에서도 이겼다. 확실히 대단해.’
이자벨은 솔직한 심경으로 그를 평가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평가는 아녔다.
객관적으로 대단하다는 거지, 그래봤자 유리는 나이트워커의 사람이다. 솔리드녹스와 언제나 앙숙이자 견제해야 되는 대상인 셈.
좋다고 칭찬할 필요 없다.
도움을 받았다고 감사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녀는 치욕스러움을 느꼈다.
* * *
역사에 이어서 수리, 천문, 정치 수업까지 연달아 듣고 나서야 이론 강의들이 끝났다.
유리는 마지막 수업을 듣고 나가기 전 어깨를 쭉 펴고 스트레칭 했다.
‘역사만 꽝이었네.’
다른 강의들은 전부 괜찮았으나, 역사 교수는 온통 나이트워커 찬양만 외쳐대는 바람에 딱히 도움이 되진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더라면 광신도인 줄 알았을 것이다.
‘미리 공부해두길 잘했어. 이래서 선행학습이 중요하다니까.’
‘현생이 아니잖아.’
티르빙과 잡담을 나누며 오늘 필기했던 종이들을 정리했다.
사실 딱히 외워야 될 내용은 많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지내면서 얻은 설정집과 따로 읽은 역사서와 다른 교본들 덕이었다.
솔리드녹스의 대민지원도 도서관에서 혼자 읽었던 책에 나왔던 것 중 하나.
“응?”
그때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붉은 머리의 여자였다. 가까이서 보니 유리보단 나이가 많아보였다.
대략 10대 후반 즈음 되려나.
나이와 신분을 고려해 유리는 존댓말을 골랐다.
“무슨 일이시죠?”
“왜 날 도왔지?”
“도왔다니요?”
그들의 대화에 빠져나가던 학생들이 흘깃흘깃 훔쳐봤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탓이다.
이자벨이 재차 물었다.
“역사 시간, 굳이 하도 않아도 될 대답이었다. 그런데 너는 그 대답을 말했다.”
“순수하게 궁금했던 건데요.”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할 이유가 있다고 보시나요?”
“난 솔리드녹스 출신이고, 너는 나이트워커 사람이다. 그게 이유다.”
가만히 듣던 유리는 뺨을 긁적거렸다. 그녀가 왜 이러는지 대충 알 법했다.
그나저나 어투는 왜 이렇게 군인 같지.
이제 보니 그녀의 복장도 특이했다. 마법사 가문답지 않게 기사용 제복 차림인데다가, 심지어 반팔에 옷감부터 얇았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쌀쌀해지는 기온을 고려하면 감기 걸리기 딱 좋았다.
보면 볼수록 궁금증이 솟았으나, 유리는 잠시 그 궁금증을 접고 대화로 돌아갔다.
“나이트워커 사람이 솔리드녹스를 감싼 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군요.”
“마음에 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네 행동은 나에게 모욕을 줬다.”
“그렇게 느꼈다면 할 말은 없지만, 교수님의 질문도 똑같지 않았나요?”
“그 교수의 횡포는 이미 질릴 만큼 당했다. 그래서 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고.”
아하, 어쩐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치곤 부끄러워하질 않았었다.
한두 번 그랬던 게 아니었구나.
아직 그녀에 대해 듣거나 본 것이 적지만, 방금 전 대화 하나로 그녀의 처지를 대강 알아냈다.
지금까지 같이 들었던 강의에서 그 처지가 명확했다.
역사 교수는 대놓고 그녀를 까 내렸다. 다른 교수들은 그녀에게 질문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역사 교수를 제외하면 나이트워커의 누구도 나에게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왜죠?”
“그게 서로를 위한 배려니까.”
[그게 무슨 배려야? 그냥 무시지.]티르빙은 그렇게 말했지만 유리는 언뜻 이해가 되었다.
가문 간의 사이가 좋지 않은 마당에 나이트워커가 그녀를 무시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녀를 대놓고 욕보이거나 흉을 보였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고로.
말 그대로 없는 사람처럼 ‘무시’했으며, 이자벨 또한 나이트워커를 똑같이 무시했을 것이다.
뭐, 거기까지는 이해하는데…….
유리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자벨 님이라 했던가요. 저는 강의가 처음이라 당신의 사정을 몰랐어요.”
“핑계를 늘어놓는군.”
“아뇨아뇨. 핑계가 아니라 제대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그저 너그러운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셨으면 해서요.”
유리는 손을 내저으면서 진심을 표했다.
아무리 선의로 베풀었어도 악행이 되었다면 사과해야 마땅했다.
의도가 뭐가 됐든 결국 피해가 갔으니.
하지만 따져야 할 부분도 조금은 있다.
“근데 궁금한 게, 어째서 이자벨 님은 오늘 같은 치욕을 그냥 당하고만 있는 거죠?”
“무례한 질문이군……!”
순간 주변으로 열기가 발산되는 듯 뜨거워졌다.
유리는 개의치 않고 대화를 이었다.
“이해가 안 돼서요. 저 같으면 솔리드녹스 사람들이 나이트워커를 욕하면 화부터 낼 거 같은데. 몇 번이든 간에요.”
“여기서 싸워서 가문의 어른들께 누라도 끼치라는 건가.”
“아, 그건 좀 곤란하겠네요. 근데 말이죠. 저한테도 곤란한 행동을 하고 계신 거, 아시나요?”
“……뭐?”
그제야 이자벨은 자신에게서 모순을 확인했다.
그걸 확인시켜준 유리가 비웃었다.
“노골적으로 치욕을 주는 교수한테 뭐라 하지 못하면서, 혈통인 저한테는 도움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화를 내고 계시잖아요.”
“난 도움을 바란 적이 없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유리의 낯에 천진한 미소가 퍼졌다. 그러나 입으로 튀어나오는 것들은 천진하지 못했다.
“당신도 내가 서자이고 반쪽짜리라서 무시한 건가요?”
“…….”
이자벨은 말이 없었다. 대꾸하거나 항변할 기색조차 미미했다.
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오롯이 그를 담아냈다.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탓에 그녀의 생각과 감정을 읽기 어려웠다.
유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다른 형제들 같았으면 벌써 화내고 난리 쳤을 텐데.’
화를 내고 싶긴 할까. 내고 싶다면 어떻게 낼까.
잠시 후, 이자벨은 답답한 듯 한숨을 길게 내뿜고 말을 뱉었다.
“무시하면 안 되는 건가.”
“……음?”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에 상응하는 묵묵한 표정과 말투. 속내 모를 그녀는 이어 말했다.
“말했다시피 서로를 무시하는 게 배려다. 멍청한 그 교수를 빼고 모두가 지켜줬지. 헌데 네놈은 그 배려를 무시했다. 다른 용인들이 지키는 걸, 서자에 근본 없는 네가 어겼다는 말이다.”
[오올~ 꼬맹이. 한 방 먹었는데?]‘그러게. 좀 아프네.’
결국 돌고 돌아 그들은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유리의 선의는 악행이 되었고, 거기에 그가 서자라는 점이 가미되었다.
서자, 서자, 서자라…….
‘티르빙.’
[응?]‘서자가 뭘까.’
[사춘기라도 왔나 보네. 으음, 굳이 답하자면…… 이도 저도 아닌 되다만 존재?]‘주인에 대한 평가가 박해.’
[꺄하하하~ 우리 꼬맹이 서운했니? 하지만 뭐 어때? 서자이지만 넌 드래곤 하트를 가진 마검의 주인이야.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라고.]유일무이한 존재.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마검의 주인은 과거에도 있었다. 드래곤 하트를 가졌던 전설적인 인물은 역사서에도 나온다.
서자? 말할 것도 없지.
신분제 사회에 살다보면 흔히 있는 일이다.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이도저도 아닌 건 확실하다.
허나 유리는 모든 요소에 해당되었다.
고로 서자인 ‘나’만 할 수 있는 생각과 발상이 있다.
“맞아요. 서자 티를 많이 냈죠. 서자라서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유리는 그리 말했다.
이자벨이 눈살을 구기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롯이 용인의 배움을 얻지 못하고 평민의 삶을 살면서 세상과 부딪혀 싸우다 보니 한 가지 배웠습니다. 곤란한 이를 보면 도울 수 있는 선에서 꼭 도우라고.”
“……나이트워커답지 못한 발상이군.”
“그러나 이자벨 님도 솔리드녹스에서 배웠을 겁니다. 우리의 힘이 존재하는 근본은 영지와 백성을 이롭게 함이라.”
고대 드래곤들이 용인 가문을 세우면서 남겼던 말이다.
아무리 솔리드녹스가 마법으로, 나이트워커는 검과 방패로 각자 패도의 길을 걸었으나.
그들은 마냥 폭력적인 성향으로 이 세계관의 최강자가 되지 않았다.
백성을 돌보고 어려운 이를 헤아려가며 신망을 얻었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을 후손 대대로 가르쳤다.
설령 용인 가문의 가르침이 아니었더라도 유리는 곤란을 보고 마냥 모른 척하지 않았으리라.
곧 어머니의 가르침도 같았으니까.
“그치만 우리 둘 다 가문의 가르침도 따라야 하니.”
유리는 나머지 필기구와 종이, 책 따위를 정리하곤 일어섰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웃었다.
“결투로 누가 옳은지 결정하죠. 용인답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