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00
제200화
용언 마법이 발동 되자 촉수 몇몇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어서 불가사리의 오른쪽 아래 다리가 지워지듯 없어졌다. 절단면에서 검붉은 마기가 흘러 바닷물을 물들였다.
데카라비아가 비명을 질렀다. 추락하던 움직임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주춤거린다.
‘이게 드래곤의 용언 마법.’
유리는 과거 빅스터가 썼던 같은 용언 마법을 떠올렸다.
그 때도 어마어마했지만, 용의 용언은 느껴지는 스케일부터 달랐다.
마나는커녕 단순한 언어 한 마디로 상대를 주무르는 힘.
만물의 이치를 관장하는 위력은 가히 신과 같다 해도 무방했다.
지금의 유리로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였기에 더더욱 경이로웠다.
[데카라비아, 내 나라, 나의 친우들을 건드린 죗값을 이 자리에서 치르게 해주마. 살아돌아갈 생각하지 마라.]“용 새끼! 막 태어난 용새끼가! 용 새끼가!!!”
[멸(滅)!]푸확!
이번엔 오른쪽 위 다리가 없어졌다. 하나씩 잘려나가는 모습에 인어 병사들과 톤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빅 톤트가 제일 신이 나서 동족을 다독였다.
“지금이 기회다! 밀어라! 용이 도와줄 때 녀석을 반대로 뒤집어야 한다!”
“그오오오오!”
“그어어어어!”
빅 톤트는 자신이 다친 것도 잊고 재차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인어 병사들도 질세라 가세했다.
“톤트를 도와라! 지금의 적은 저 악마다!”
“와아아아!”
더 많은 군세가 합류하자 굳건했던 데카라비아가 반대로 밀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데카라비아는 힘껏 촉수들을 뿜어댔다.
전장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아무리 밀려도 상대는 악마다. 인어와 톤트들은 촉수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비명횡사했다.
그런데도 인어와 거북이는 힘을 보태겠다며 목숨을 던졌다.
그 틈에 비량은 다시 한 번 용언 마법을 준비했다.
하지만.
“끄읏!”
기다란 몸을 베베 꼬며 그녀가 갑자기 바닥으로 처박혔다.
‘대체 왜!’
비량은 입에 물고 있던 여의주를 놓고 눈으로 살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여의주 표면엔 미세한 실금이 생겼다.
여의주는 그런 자신의 상태를 말했다.
이대로 자신을 계속 사용하면 용의 되자마자 이무기로 돌아갈 거라고. 다신 여의주를 쓸 수 없을 거라고.
‘너무 무리했나?’
데카라비아의 말처럼 이제 막 용이 되었다. 용으로서의 육체와 정신이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 마당에 전능에 가까운 용언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악마를 상대로 썼으니.
“안, 돼. 얼른 막아야!”
“됐어, 그만하면 충분하다.”
그때, 유리가 다가와 곁에 섰다. 그리곤 여의주에 손을 뻗었다.
안 된다고 비량이 말하려는 찰나, 이미 그의 손은 여의주에 닿아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 손을 댔다면 분명 여의주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하지만 여의주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받아준다고? 이 남자를?”
어떻게? 아니, 왜?
아무리 봐도 유리는 인간이었다. 나이트워커 사람이라고 밝혔어도 용인은 아니었고, 용인이어도 여의주를 감당할 순 없었다.
유리는 손을 대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여의주는 용(龍)의 드래곤 하트 같은 거였었나 보네.”
“드래곤, 하트라고?”
“잠시 기다립시오, 비량 님.”
드래곤을 드래곤이라 규정하는 요소는 단연 드래곤 하트이고, 용(龍)을 규정짓는 것은 여의주다.
여기서 유리는 한 가지 가정을 세웠다.
어쩌면 용들에게 드래곤 하트는 여의주가 아닐까.
주인이 없던 여의주는 그 힘을 다할 수 없으나, 주인을 얻은 이상 각성을 한 상태와 같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용왕으로부터 만들어진 여의주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태동한다.
즉, 대화가 가능했다.
“조금만 힘을 보태주었으면 한다.”
유리가 여의주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이대로라면 이 세계는 망한다. 보다시피 악마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지.”
“…….”
“어리석은 생각이지. 비량이 알아서 할 거라니. 지금 네 주인의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신기한 걸.”
“……!”
“많은 힘은 필요 없어. 악마를 상대할 힘만 있으면 된다.”
“…….”
“……동의한 걸로 알겠어.”
여의주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유리에겐 여의주가 전하는 ‘의사’가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여의주가 동의했다.
유리의 손끝을 타고 용의 기운이 흘러들어갔다.
드래곤 하트와 비슷한 마나가 곧 융화되어 심장 가운데에 자리했다.
점차 몸이 뜨끈해지다가 찬찬히 따듯해진다. 이후 다시 열을 발생시키면서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온몸이 불어터지는 기분이었다. 얼른 피에 돌고 있는 기운을 방출하지 않으면 용의 힘에 잡아먹힐지도 몰랐다.
그러나, 유리 안에는 또 다른 포식자와 융화자가 있었으니.
[꺄하하하하핫! 이 맛! 너무너무 그리웠어!] [다 먹지마요, 티르빙 양. 악마를 상대하려면 주인님이 쓸 마나도 남겨놔야 해요.] [알아, 알아.]티르빙과 아스칼론이 알아서 마나를 중화시켜주고 조절해주자 차츰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물론, 그래도 요동치는 마나에 괴로운 건 마찬가지.
“단숨에 처리해야 해.”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무형검을 전개하자 6자루의 무형검이 나타났다. 이번엔 전부 혈계(水界)를 둘렀다.
손에 들린 티르빙엔 별빛나무의 성스러운 마나를 씌웠다.
상이한 기운들의 충돌로 수포가 부르르 끓어오른다. 순식간에 유리 주변으로 발생한 열기 탓이었다.
마나와 마나가 부딪히며 마찰하고 유리를 집어삼켰다.
완전히 수포가 형체를 없애는 순간, 유리는 땅을 박차고 날았다.
물방울이 별의 꼬리처럼 그를 따랐다.
유리는 검을 어깨 뒤로 당겨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오지 마! 마검! 오면 안 돼!”
데카라비아는 흉악한 마기와 비슷한 기운에 마지막 촉수를 뻗었다. 전부 유리를 향한 것이었다.
그때, 인어들과 톤트들이 길을 터줌과 동시에 촉수들까지 몸을 던져 막아섰다.
“막아라! 저 인간에게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직감했다.
유리가 내보인 이 일격이 어쩌면 저 악마를 물리칠 유일한 수단이자 최후의 무기라고.
그러니 기꺼이 몸을 내어주었다.
그들이 기회를 만들어준 덕에 정면으로 불가사라의 울퉁불퉁한 피부가 보였다. 유리는 검을 내질렀다.
아칸 5식.
“어둠검!”
빛을 삼키는 어둠이 칼끝에서 방출했다.
날카롭지 않다. 대신 무겁고 어둡다.
공간을 어둠으로서 지배하는 마법 같은 검술은 용의 힘이 더해지면서 빠르게 덩치를 키웠다.
거대한 어둠의 면이 곧 데카라비아를 감쌌다.
“이거 무엇……? 놔! 아파! 어둠이 악마를 붙들 수 없어! 어리석어! 오만해!”
“그냥 어둠이면 악마를 이길 수 없지.”
“뭐라고?!”
아칸 검법은 대부분 어둠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악마들은 그러한 어둠의 이면에서 서식하며 내성이 생겼다.
하지만.
아칸 검법의 본질은 어둠이 아니다.
빛이 가리어져 만들어진 그림자.
빛도 어둠도 아닌, 뜻하지 않게 창조된 것이 바로 그림자였으니.
“이건, 내 그림자?”
시작은 데카라비아와 똑같은 어둠이었다. 그것은 본래의 데카라비아보다 크게 퍼져서 녀석을 삼켰다.
‘아니다. 아냐! 이 그림자! 마검의 군주다?!’
뒤늦게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림자 안에는 혈계로 구성된 무형검들이 같이 들어왔다.
그것들은 검만 있지 않았다. 롱소드, 도끼, 창, 철퇴, 랜스, 방패, 총 6개의 혈계(血界)가 불가사리를 겨눴다.
“인간 새끼! 인간 새끼가아!!!”
처절한 외침과 동시에 무형검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거거걱!
퍽! 퍽!
“크악!!!”
철퇴와 방패는 살을 짓이겼고, 창과 랜스는 눈알을 찔렀으며, 칼과 도끼는 곳곳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다.
도망갈 곳이 없다.
급히 헤엄을 쳐봐도 끝없는 그림자가 그를 따라갔다.
‘아파! 상처 생긴다! 아파! 마검이 날 벤다!’
[닥치고 죽어, 악마야.]데카라비아는 마검이라는 걸 알면서도 두려웠다. 같은 마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 힘은 무어지.
그러다 눈을 찌르는 랜스에서 희미한 별빛들을 보았다.
성력과 비슷한 순수한 마나가 무형검을 감싸고 있었다.
“마검이 성력?”
푸욱!!!
랜스가 눈알 깊숙이 박혔다가 반대쪽으로 나왔다.
마기(魔氣)가 쏟아진다. 이어서 육체가 붕괴하고 떨어진 살점은 무(無)로 돌아갔다.
악마 데카라비아는 그렇게 사라졌다.
* * *
악마가 죽고나자 인어국엔 씁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데카라비아의 등장으로 너무나 많은 인어들이 죽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타락한 톤트들 중 절반이 돌아오지 못했으며, 돌아온 톤트 중에서도 데카라비아에게 등껍질째로 뜯어져서 죽은 개체가 허다했다.
비량과 빅 톤트는 전사자들을 나르는 광경을 보며 비통한 감정을 못내 표출했다.
[큰 손실입니다. 바다를 지배하며 이곳을 지탱했던 세력이 고작 악마 하나에게 이리 휘둘리다니.]“나약한 소리 하지 마라, 비량. 선대 용왕이 들었다간 노발대발하겠군.”
[그렇습니까.]“그래! 선대 용왕은 비참한 상황이 닥쳐도 이겨낼 의지를 가진 자였다. 몇 천 년 만에 여의주를 물고 태어난 네가 나약한 소리를 해서 쓰나!”
[……그대는 의연하군요.]“의연해야 한다. 우리 동족들에게 잔인한 소리를 듣더라도 내가 의연해지지 않으면 동족들이 무너진다.”
빅 톤트와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는 비량이었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강직하며 ‘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저 인간도 의연한 걸까요.]비량이 눈짓으로 저 멀리 인어들을 돕는 유리를 바라봤다.
유리는 티르빙으로 커다란 바위나 잔해를 잘라 내주고 있었다. 잔해가 조각나면 톤트가 각각 파편들을 물고 날랐으며 인어들이 밑에 깔린 생존자를 구출해냈다.
“모르지. 허나 우린 저 자에게 큰 빚을 졌다. 그것만은 분명해.”
[그렇죠.]비량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여의주의 힘을 이끌어내서 쓴 인간이라. 용왕이나 가능할 법한 일을 해내놓고 유리는 남은 힘을 구제에 쓰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냥, 여러모로.
[가봐야겠습니다. 용왕님께서 저 자를 만나보라 했습니다.]“볼 일 보아라. 나도 타락에서 돌아온 놈들을 살펴야겠다.”
비량은 천천히 헤엄쳐서 유리에게 접근했다. 거대한 용의 등장에 인어들이 자리를 비켰다.
유리도 머리에 드리운 그림자에 잠시 검을 멈췄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그러죠.”
[자리를 바꾸지. 내 등에 타도록.]유리는 훌쩍 뛰어서 용의 등에 올랐다.
비량이 꼬리를 말았다가 튕겼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어 수면에 다다랐다.
*
물 밖에는 작은 해변이 있었다.
해변 위에는 나무를 엮어 세운 집이 보였다. 비량은 유리를 내려주곤 한 발 물러섰다.
갑자기 희끄무레한 운무가 사방에서 몰려와서 비량을 감쌌다.
잠시 후, 운무 사이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머리는 비녀로 묶었으며, 검푸른 저고리에 스키니한 가죽 바지를 입은 여자였다. 그녀의 머리 옆에는 작아진 여의주가 둥실둥실 떠다녔다.
‘저게 살아있는 용의 모습인가.’
세드리치와 다른 드래곤들을 보았지만, 기억에 본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지독하게 아름다우면서 잔인하게 기품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유리를 향해 걸어왔다.
구두를 신고 모래 위를 걷고 있는데도 또각또각 소리가 선명했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라 했던가.”
“맞습니다.”
“정식으로 소개하겠다. 난 용왕님의 용, 비량이라 한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리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나이트워커 식 경례를 올렸다.
비량도 살짝 허리를 숙였다.
“늦었지만 우리 바다를 지켜주어서 감사를 표한다. 용왕님의 타락을 벗어나게 해줘서 또 감사하고.”
“아닙니다.”
용왕의 타락을 없앤 건 리리스의 몫이었지만, 유리는 구태여 티를 내지 않았다.
악마가 악마를 배반했다면 믿을 리가 없을 테니까.
“용왕님께선 몸이 성치 않아 내가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하게 된 점, 이해 바란다. 대신 용왕님께서 이번 사태의 공로를 치하하여 원하는 바를 말해보라 하셨다. 그대도…… 원하는 게 있겠지?”
얘기가 빨라서 좋네.
원래였다면 데카라비아로부터 인어국을 해방해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데카라비아의 강림 때문에 순서가 뒤바뀌어 버렸다.
졸지에 거래를 하지 못하고 도와준 격이었으나, 용왕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왔으니.
유리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네, 한 가지 청이 있긴 합니다.”
“말해보라. 쇠퇴하긴 했으나 할 수 있는 한 그대에게 전력을 다해주겠다고 용왕님께서 약조하셨다.”
“용왕의 성은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전 용왕님께 바라는 건 없습니다.”
“……?”
의아해하는 그녀를 향해 유리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전 용왕님보단 비량 님과 여의주에게 바라는 게 있습니다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