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01
제201화
여의주가 필요하다는 말에 비량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도 아닌 당신한테 여의주가 왜 필요하다고요?”
“여의주가 가진 절대적인 힘으로 누군가를 살려야합니다.”
“여의주에 그런 기능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어요. 사람을 살린다니. 그건 신이나 가능해요.”
“여의주가 살리는 게 아니라 힘만 빌려주는 격입니다. 전 그 힘이 필요하고요.”
굳이 용궁까지 와서 여의주를 찾았던 이유.
미앵비슈를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플루토로 소원을 빌기 위해선 생명력이 필요했다. 또한 그 생명력이 굉장히 강력해야만 했다.
미앵비슈가 블루 드래곤의 영체를 일부 소환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용인으로서 가진 생명력이 강대했기 때문이다.
아마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영체를 소환하기도 전에 생명력을 다해서 죽었으리라.
그럼 그만한 생명력과 힘을 가진 에너지원이 뭐가 있을까.
‘하나는 내 드래곤 하트였고, 다른 하나는 드래곤 하트와 비슷한 여의주였지.’
어찌됐든 드래곤 하트와 여의주는 드래곤과 용의 존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두 가지 힘엔 다른 점도 있다.
유리가 가진 드래곤 하트는 유리의 생명력 그 자체인 반면, 여의주는 용과 분리된 개체였다.
여의주의 힘이 좀 없어진다고 해서 비량의 생명력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여의주만한 힘이 아니고선 생명을 되살릴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이제 막 용이 되어 여의주를 얻은 비량으로선 유리가 하는 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긴, 그녀에겐 여의주와 드래곤 하트의 차이조차 이해시키기란 어렵겠지.
유리 또한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여의주가 있으면 티르빙으로 만든 플루토에 대가를 대신 지불할 수 있다는 점 정도만 안다.
“후우, 한 가지 묻겠다.”
“말씀하시죠.”
“여의주를 얻기 위해서 나와 인어국, 톤트를 도운 건가?”
“네.”
유리는 더할 나위 없이 산뜻하게 답했다.
속물적인 말을 너무나 시원하게 인정해버리는 바람에 비량은 할 말을 잃고 입을 어버버 거렸다.
“나쁘게 보진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저와 인어국, 톤트들까지 포함해서 전혀 연이 닿지 않았던 사이입니다. 갑작스러운 호의를 베풀지 않고선 제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니까요.”
“그야, 그렇긴, 하지…….”
친한 친구 사이도 함부로 보증서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마당에 비량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으니. 무조건적인 도움을 바라는 건 오해와 불화를 낳기 십상이었다.
그럴 바엔 속내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편이 나았다.
“뭐, 도움의 대가를 받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지만요.”
“인어국을 파렴치한으로 몰지 말도록. 우린 받은 은혜를 쉽사리 잊는 족속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악당이 된 느낌이네요.”
“……우리를 이용한 건가? 나와 여의주까지?”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해두고 싶군요.”
대체 이 남자는 어디까지 솔직해질 건지…….
그리 중얼대던 비량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어라. 내가 돕고 싶다고 해서 함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용왕님의 결재가 필요한 건가요?”
“당연하다. 나와 여의주는 용왕님을 지키기로 맹세했다. 우리는 그 분의 것이고 그분의 결심이 나아갈 길을 정해준다. ……내 마음 같아선 돕고 싶지만.”
“…….”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필시 용왕님도 그대를 돕고 싶어 하시니까. 아니라고 하셔도 내가 용왕님을 어떻게든 설득해보겠다.”
시간까지 필요한 일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여의주를 함부로 건네주고 싶지 않은 건 분명했다.
더구나 이제 막 악마로부터 벗어난 마당에 재차 공격이 오면 막을 수 있는 힘은 비량만이 가지고 있었다.
그 수단을 달라고 했으니 불안해하는 게 당연하지.
“알겠습니다. 그 동안 전 인어국에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용궁 안에 멀쩡한 별관이 있다. 지낼 수 있도록 조치해놓을 테니 푹 쉬도록.”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내려가지.”
유리의 머리에 다시 공기 방울을 씌워준 비량은 그를 태우고 바다 아래로 내려갔다.
기껏 수면까지 올라와서 나눈 대화치곤 허무했으나, 아예 수확이 없던 건 아니었다.
적어도 비량이 망설이긴 했으니까.
‘다른 드래곤한테 자기 심장 내놓으라고 하면 당장 안 된다고 했을 텐데 말이야.’
아버지 세드리치였다면 바로 목을 잘랐을지도?
쏴아아.
바다로 내려가는 동안 맞는 물살은 바람보다 부드러웠다. 슬슬 물속에 적응이 되어서 처음에 느꼈던 추위도 많이 가셨다.
오랜만에 맛보는 여유를 잠시 즐기며 유리는 등에 바짝 붙었다.
그때, 비량이 움찔 떨면서 놀란 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 * *
어지간해서 쉬고 싶었지만, 난장판이 된 성채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유리는 할 수 있는 선에서 무거운 잔해만 잘라내 주며 복구 작업을 도왔다.
“이봐.”
오늘도 높게 쌓인 잔해 더미에 앉아 도움을 줄 타이밍만 노리던 중.
목덜미 뒤에서 작아진 리리스가 뺨을 쿡쿡 찌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도 서쪽으로 돌아가지 않으셨습니까. 악마들이 지금 이러고 있는 리리스 님을 봤다간 난리 날 텐데요.”
“걔네들은 원래 나 안 좋아해.”
“……뭔가 슬픈 말이네요.”
“악마 세계에서 따돌림은 흔해. 특히 72명의 악마. 그 놈들은 자기가 귀족이라며 나 같은 애들을 얼마나 멸시하는지 알아?”
“그런 점은 악마답군요.”
“난 인간이 좋다고.”
아, 잊고 있었다.
리리스가 악마이긴 해도 그녀는 최초의 인류를 사랑으로서 품에 안았었다.
그 죗값을 받아 악마로 격하되긴 했으나,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카이를 좋아했던 건가.’
원작에서 유일하게 주인공과 이어진 로맨스 라인이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리리스가 유일했다.
정작 악마를 증오하는 카이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리리스가 유독 카이를 좋아하는 티를 많이 냈었다.
결국 나중엔 지금의 유리처럼 같이 붙어 다니기까지 했었다.
“리리스 님. 혹시 카이라고 아십니까?”
“레벤나를 통해서 보긴 봤지.”
“혹시, 음. 이런 말 이상하지만, 어떤가요?”
“어? 나 남자 소개시켜주는 거야?”
“아뇨, 그런 건…….”
“뭐, 자고로 실물을 봐야지만 알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기대하고 있으면 되려나? 쿡쿡.”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녀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근데 진짜로 안 돌아가셔도 됩니까?”
“나야 원래 자유분방하게 다녀서 아무도 신경 안 써. 데카라비아가 죽었으니 내 위치가 들킬 위험도 없고.”
“악마들이 다시 쳐들어오진 않겠죠?”
“여의주를 문 용 앞에 악마들이 온다고? 말도 안 되지. 공작 이상의 악마들이 오지 않고선 여긴 함락될 일 없어. 그렇다고 엉덩이 무거운 공작들이 움직일 리는 없어.”
“그렇겠죠.”
사실 여의주 각성에 있어서 가장 큰 목적은 악마들의 진입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암흑 눈물이 예상보다 일찍 바다를 건너왔다는 건, 당연히 악마들의 침공도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기 위해선 이 바다를 지배하는 인어국과 톤트가 건재해야만 했으니.
이런 와중에 비량이 여의주까지 얻으면서 공작 아래 악마들은 확실하게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뭐, 기껏해야 시간 끌기 밖에 안 되겠지만.
“그런데 유리. 너야 말로 시간이 없는 거 아냐? 전에 들어보니 여의주로 누굴 살려야 한다며.”
“저도 그쪽이 걱정되긴 하는데.”
유리는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 까마득한 하늘처럼 높은 저곳 너머에서 용가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다이올드가 도망가고, 미앵비슈가 죽고, 유리는 실종되었다.
실상 나이트워커의 다음을 이을 대가 사라졌으니, 시끄럽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다.
“제 동생이 잘 해주고 있을 겁니다.”
“동생? 그 드루이드? 딱 봐도 어리숙한데 믿을 만한 거야?”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닙니다.”
“아, 미안.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걸.”
“리리스 님께서 왜 걱정해주십니까?”
“릴림이랑 레벤나가 슬퍼하거든. 걔들이 슬프면 나도 슬퍼. 참 짜증나게도 그렇게 이어져 있어.”
레벤나와 리리스가 이어져있다는 게 유리로선 좀처럼 와 닿지 못한 이야기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생각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알려고 하지 마. 다쳐.”
눈치를 읽어낸 리리스가 진득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어련하겠냐만.
유리도 저 수면 위의 상황이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걱정……도 되고.
달라진 채럿이 어련히 잘 해줄 거라 믿고는 있지만, 믿음과 별개로 다이올드가 어떤 짓을 또 벌이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미앵비슈가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걸 알고서 재차 기습을 할 수도 있다.
“유리, 걱정되면 보여줄까?”
리리스가 머리 위로 날아 정수리에 걸쳐 앉았다.
“그게 가능합니까?”
“이어져 있다니까.”
“아니, 이어져 있는 것과 보여주는 건 좀 다르잖습니까.”
“보여줄 수 있어. 릴림의 시점이긴 하지만, 채럿 그 애랑 계속 붙어있으니까 알 수 있을 걸.”
리리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눈 앞에 화면 하나가 나타났다.
정말로 보여주는 건가.
유리는 화면이 재생되기 전 손으로 화면을 가렸다.
“허락을 맡고 보면 안 됩니까?”
“크큭, 그게 걱정이었어?”
“당연하죠.”
“괜찮아. 허락 맡았어. 그치, 릴림?”
-……네.
순간 화면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릴림의 목소리였다.
* * *
릴림의 시선을 통해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채럿 옆에 앉아서 찻물을 내리고 있었다.
-채럿 아가씨, 보이세요?
-어, 보여.
릴림이 속으로 말을 하면 유리로부터 다시 마음속으로 말들이 전해졌다.
채럿은 유리가 쓰던 집무실에 앉아 서류들을 보는 중이었다.
옆에는 이자벨과 블레이크도 같이 있었다.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단장.”
“외곽지역 몬스터군요.”
“병력이 부족하죠?”
“네. 일단 정찰조 편성을 통해서 확인부터 해보고 그 다음 결정하시죠.”
“영지민들의 피해가 이미 보고됐어요. 정찰조 파견보다 본대를 꾸려서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죄송해요. 일단 이렇게라도 해야 되니까요.”
“아닙니다.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이자벨 언니, 언니가 베리온 제국 황실에 다녀와 주시겠어요? 가주님이랑 부가주님께선 다른 곳에 출타를 가셔서요.”
“알겠다.”
“가면 이 서류부터 건네시고…….”
가문에서 행정업무를 보던 이들이 한 번에 사라지는 바람에 채럿이 고스란히 남은 업무를 이어 받았다.
꽤나 곤혹스러운 일들이 많았었는지 눈가에 다크서클이 진했다.
그래도 세 사람이 힘을 합치니 나름 원활하게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심지어 열려있는 방문으로는 언더하울에서부터 같이 지냈던 반려견과 다른 개들이 부지런히 서류 더미를 날랐다. 서류 배달은 개들이 맡은 듯했다.
-다들 고생이네. 나 때문에.
-도련님 탓이라고 생각, 안 해요.
-진짜?
-다이올드, 그 사람이 저지른 짓. 도련님 탓 하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마음이 쓰라리면서 그들에게 고마웠다.
분명 힘에 부칠 텐데…….
얼른 저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런데 갑자기 채럿이 펜과 종이를 전부 놔버렸다.
탁!
갑작스레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에 이자벨과 블레이크의 움직임도 멎었다.
그리고 채럿이 천장에 대고 힘껏 소리쳤다.
“근데 이 오라버니는 대체 어디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거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