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1
제21화
오랜만에 외부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벤헬링턴은 집무실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던 중이었다.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미앵비슈가 찾아왔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서 아버지가 하다 만 업무 상황을 보고했다.
“이건 이렇게 처리할까요?”
“그래.”
“그리고 유리가 요청한 1000만 골드 관해서, 봉신 가문들과 원로들의 답신을 받았습니다.”
“뭐라던?”
“몇몇 원로들이 반대했지만 부가주 권한으로 의결권을 제한시켰어요. 봉신 가문들 답변은…… 겔런?”
그녀의 뒤에서 다른 서류들을 살피던 겔런이 입을 열었다.
“델라후즈 가문을 빼고 전부 동의 의사를 표시했습니다만, 이 또한 가주님이 밀어붙일 거라고 하니까 별 수 없이 동의했습니다.”
“됐군, 그럼.”
1000만 골드가 가문 입장에서 별 거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평범한 관점으론 큰돈이 움직이는 꼴이었다.
정해진 절차를 밟아서 예산 집행을 해야 했으며, 이윽고 결과가 나왔다.
벤헬링턴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으. 델라후즈 쪽에는 당근 하나 던져줘. 황금 당근이면 더 좋고.”
“창고에서 쓸 만한 것들을 보내겠습니다.”
겔런이 서류의 마지막 부분에 머릿속에 있던 보물들을 대충 적어 내려갔다.
그 사이 벤헬링턴이 미앵비슈에게 물었다.
“유리 놈은 요즘 어떻지?”
“…….”
“…….”
순간 미앵비슈와 겔런 둘 다 손이 멈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다. 애초에 벤헬링턴이 남에게 관심을 표하는 경우 자체가 없었다.
블레이머가 죽을 때조차 심드렁했던 그가 유리의 근황을 먼저 묻다니.
“그 애는―”
“가주님!”
미앵비슈가 대답하려던 찰나, 방문으로 기사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들어온 그는 허리를 숙인 채 힘겹게 고했다.
“유, 유리님께서 솔리드녹스의 이자벨 님과…… 헉, 헉…….”
유리야 그렇다 쳐도, 같이 언급되면 안 되는 명칭이 들리자 세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이거, 일 났다.
* * *
나이트워커에는 여러 연무장이 있다. 그 중 가문의 혈통만이 쓸 수 있다거나, 기사 전용, 마법 전용 연무장들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유리는 그 어느 곳도 아닌, 야외에 마련된 공개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올라가기 전 무기 진열대 앞에서 선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자벨에게 대련을 청하자마자 어디서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가문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연무장으로 몰려들었다.
유리는 이 광경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관심 가질 일인가.’
[꼬맹아, 너 지금 희대의 앙숙에게 대결을 요청한 거야. 그걸 몰라서 물어?]‘사람들이 몰려드는 거야 그렇다 쳐도, 저건 아니지.’
솔리드녹스의 패배를 조롱하기 위해서 모였다면 이해했다. 누구 말대로 앙숙인 가문의 사람이 굴욕을 당할 기회니까.
그러나 연무장 한쪽을 차지한 기사들은 얘기가 달랐다.
그들은 누가 이길지 내기를 걸고 있었다.
“야야, 난 이자벨. 30 은화.”
“나도 이자벨한테 1 금화 건다.”
“돌았냐. 1 금화나 건다고?”
“솔리드녹스여도 6서클 마법사야. 갓 지식의 관에 입학한 누구랑 다르지.”
일부러 들으라고 떠드는 건지, 아니면 들어도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지.
뭐가 되었든 그들은 나이트워커 소속으로써 유리를 응원할 마음이 없었다.
그들을 곁눈질로 보던 유리가 턱을 쓸었다.
“티르빙, 배고프지?”
[……농담으로도 그런 말 하지 마. 이 언니의 식욕을 자극해봤자 좋을 건 없어.]“아쉽네. 포식시켜주려고 했는데.”
[그보다 나 쓰긴 쓸 거니?]“글쎄다.”
딱히 티르빙을 쓰고 싶진 않았다.
매번 대련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티르빙은 반칙 같은 무기다.
위력이 어마어마해서 승패를 결정하는 대련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전쟁처럼 생사를 결정하면 모를까.
물론.
제몬과 타나토 때는 대련이 아니라 정말로 죽이고픈 충동이 일어났었다.
“게슐츠 아저씨가 준 검도 없으니 대충 아무거나 골라야겠어.”
[좋아, 좋아~ 이 언니를 써서 이겨봤자 싱겁기만 하지. 저런 애는 네 힘으로 짓누르는 게 최고야.]“13살짜리를 사고뭉치로 만들 셈이야?”
대련을 위해 마련된 보급용 검들을 고르던 중, 갑자기 인파의 한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인간의 벽을 뚫고 한 여자가 튀어나왔다.
릴림이었다.
그녀는 게슐츠의 검을 안고 곧장 유리에게 다가왔다.
“헉, 허억, 도련, 님. 검…….”
“어떻게 알고 왔어?”
“소문이, 나서요. 솔리드녹스랑 싸운다고. 딱 봐도, 도련님 같아서요.”
“너까지 날 사고뭉치로 만들려는 건, 아니겠지?”
“왜요?”
“아니야, 아무것도. 어쨌든 고마워.”
“헤헤.”
게슐츠의 검을 받아든 유리는 능숙하게 검신을 뽑았다.
확실히 이것만큼 손에 감기는 무기는 티르빙 말고 없다.
마침 릴림이 온 김에 유리가 물었다.
“맞다, 릴림. 혹시 이자벨 님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아, 도련님은 처음 보시니까 모르겠다. 그으…… 이자벨 님은…….”
설명을 해주려던 릴림이 반대편에 서 있던 이자벨을 살피며 그의 귓가에 바짝 붙었다.
소곤소곤.
몇 번의 중얼거림이 지나고 나서 그녀가 떨어지자 유리는 시큰둥한 시선 속에 이자벨을 담았다.
“진짜로?”
“네에.”
잠시 고민하는 사이, 이자벨이 먼저 연무장으로 올라왔다. 뒤따라 유리도 그녀와 마주섰다.
그녀의 무기는 지팡이가 아닌 레이피어였다.
“마법사 가문에서 검을 쓸 줄은 몰랐어요.”
“피차일반이다. 용인 가문에 너 같이 허무맹랑한 놈은 처음이다.”
“용인답게 배려하자면서요. 그러니 용인답게 결투를 신청한 겁니다.”
용인 간의 싸움은 전통적으로 오롯이 힘으로 결정 난다.
시시비비를 따질 때도 승자가 모든 걸 결정하고 패자는 이에 무조건 따른다.
허나.
이런 대결 자체를 신청할 때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승자가 무얼 요구할지 모르니까.
만에 하나 용인이 싸움을 피하거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쟁이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용인 간의 싸움은 어지간해서 부상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본능적인 투쟁심과 파괴적인 힘 때문에 중상을 입혀야만 끝이 났다.
그렇게 되면 자기 가문 소속 용인에게 해를 입혔다면서 전쟁이 나기 일쑤.
실제로 과거 역사에서 그랬던 적이 있다.
유리는 그런 걸 모두 감안하고서 대련을 요청했다.
그가 말했다.
“어쨌든 이자벨 님께서도 대련을 받아들이셨으니, 피차일반이네요.”
“후폭풍 감당은 할 수 있으니까 대련을 청한 걸로 알겠다.”
“오만하시군요.”
“오만?”
“후폭풍을 수습할 권리는 승자에게 있는 법. 패자가 될 사람이 걱정할 게 아닙니다.”
이자벨은 잇새를 꽉 물었고 눈썹이 자연스레 찌그러졌다.
배려가 없다 해도 예의를 말아먹고 더욱 오만한 쪽은 유리이지 않은가.
참을 수 없다.
이자벨이 검을 뽑았다.
“긴 말 말고 시작하지.”
“그러죠.”
유리는 먼저 게슐츠의 검을 뽑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쥐지 않은 왼손을 깨물고는 허공으로 뻗었다.
핏방울이 툭 떨어지다가 길게 늘어지더니 이내 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쌍검? 해본 적 없는 검술이잖아.]‘해본 적 없으니까 해봐야지. 상대가 또 상대잖아.’
[하긴. 아직 네 서클로 저 애는 무리지. 근데! 나 안 쓸 거라며?]‘배려해 주려고.’
[무슨 소리니. 알아듣게 말해줘.]‘용인답게 전심전력.’
[어? 야, 꼬맹이? 자, 잠깐!]“시작하죠.”
딱히 격식과 예의 따윈 없었다. 곧장 그녀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후웅! 쾅!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충격이 그녀의 레이피어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읏!”
고작 13살짜리의 완력이라 믿을 수가 없었다.
방심했더라면 무릎을 꿇었을 힘.
간신히 이자벨이 버텨보았으나, 아직 체공 중인 유리는 다음 동작을 준비했다.
게슐츠의 검을 댄 채로 유리는 티르빙만 높게 들어서 다시 내리쳤다.
쾅!
이번엔 마나를 넣어서 검막을 만들었더니 보다 큰 충격파가 퍼졌다.
그러나 이자벨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마나를 넣고 도리어 유리를 밀어냈다.
“어라?”
순간 유리의 몸뚱어리가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자칫 넘어질 뻔 했지만, 겨우 중심을 잡아 착지한 그는 씨익 웃었다.
‘확실히 제몬과 타나토 때와는 다르다.’
그녀에게서 일말의 방심은커녕, 조금이라도 봐주려는 기세조차 없었다.
마나에 바로 마나로 대응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간다.”
이자벨의 신형이 쏜살같이 접근했다.
잠깐 눈 깜빡하는 사이 가속도를 붙인 레이피어 끝이 미간 앞까지 왔다.
고개를 틀어서 피하자 앞머리가 아슬아슬하게 잘렸다.
가속도를 밀고 들어왔으니 그대로 전진하는 줄 알았으나, 오른발로 땅을 딛고 속도를 단숨에 줄였다.
그리고 바로 거리를 벌렸다가 빠른 연타가 들이닥쳤다.
캉! 캉캉캉! 캉캉!
레이피어 특유의 검을 앞에 두고 몸은 뒤로 뺀 자세로 사정없이 유리를 공격했다.
나름 이자벨 딴에는 가볍되 속도전을 유도했으나.
‘안 뚫려……!’
물론 유리가 휘두르는 검에도 마나가 씌워져 있었으니 방어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자벨 것과는 농도 면에서 완전히 달랐다. 서클이 다를뿐더러 유리는 두 자루의 검에 마나를 넣고 있었으니까.
무의미한 공방이 이어지고.
유리는 확신했다.
‘마나 자체는 나보다 위일지 몰라도, 검술은 역시 비슷해.’
여기서 이자벨이 마나를 더 쓴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곧 현실로 이어졌다.
“이게……!”
유리가 봐주고 있다는 생각에 이자벨이 마나의 농도를 높였다.
쿵! 후웅!
아까와 다른 공격으로 할 수 있는 한 유리를 밀어냈다.
도저히 스스로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후 레이피어가 빛을 내더니 하얀 불꽃이 스멀거리며 검신을 감싸고 점점 크기를 키웠다.
유리는 그것을 보고 동공이 커졌다.
‘백야(白夜)의 염(炎)!’
솔리드녹스의 직계 혈통은 마법 중에서도 특히 불 계열에 타고났다.
그런 불 계열 마법을 적용한 검술.
원작에선 파괴적인 마법 검술 중 하나라고 표현되어 있을 정도로 위력이 엄청났다.
그 마법 검술이 눈앞에 있다!
이걸 보는 것만 해도 엄청난 기회이거늘.
경험까지 해보는 입장에선 가슴이 두근댈 수밖에 없었다.
‘좋은 걸 구경했어.’
감탄도 잠시.
불꽃의 농도가 가장 진해질 즈음 이자벨의 레이피어가 움직였다. 반월을 그린 궤적은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직격으로 맞았다간 세포 하나도 남지 않는다.
유리는 양손에 든 두 자루의 검을 세워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때.
이자벨이 또 한 번 무언가를 보고 말았다.
‘티르빙을 싸고 있던 마나가 사라졌다고?’
한쪽 검으로 마나를 몰아넣은 건지, 아니면 방어를 일부러 무너뜨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조금도 봐줄 마음이 없었다.
그건 유리도 마찬가지였다.
“절대영도.”
그의 입에서 누구도 모르는 주문이 외워졌다.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파괴나 굉음이 전혀 없다. 충돌이 일어나야 할 타이밍이 소리도, 움직임도, 주변을 감싸던 공기마저도 잠깐 동안 멈췄다.
아주 짧은, 생각이 스쳐가기도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저 달라진 점이라면.
이자벨은 움직이지 않았고, 유리의 검끝은 이자벨의 목에 닿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