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11
제211화
악마들의 왕이자 72인의 악마를 통치하는 제 1군주 바알.
그는 피와 뼈로만 이뤄진 황좌에 앉아 위태로운 지옥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72인의 악마만이 아니었다.
디아볼, 발제니르, 하데스 등등 지옥의 대명사인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지옥에서 한 자리씩 군주의 이름으로 권위를 누리고 있는 그들은 원형 테이블을 놓고 바닥에 앉았다.
가장 먼저 돼지 얼굴에 거대한 덩치를 지닌 디아볼이 말문을 열었다.
“데카라비아가 죽었다더군. 리리스는 인간 측에 붙어서 도망쳤고.”
“예상했다.”
긴 머리에 미남자인 하데스가 당연하다는 듯 맞받아쳤다.
그러나 그와 달리 발제니르는 성을 냈다. 온몸이 해골에 검푸른 불꽃으로 이뤄진 그는 불을 더욱 거세게 태웠다.
“시발 놈들. 감히 지옥과 마계를 배신해? 바알! 이놈들을 당장 잡아들여야 한다!”
“배신이야 말로 악마의 미덕이지.”
머리카락이 하얀 뱀으로 이뤄진 메두사가 흐흐 웃어 제꼈다.
안 그래도 마계는 최근 곤혹스러운 사태와 마주쳤다.
생각보다 서쪽 대륙의 강림이 늦어졌고, 완전 지배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아직 동부 해안까지 전력을 밀어 넣지도 못한 상황.
의외로 물질계의 생명들이 거세게 저항하고 있는 탓도 있지만.
최근 동쪽 대륙에서 벌어진 이상 현상 때문에 일부 전력을 그쪽으로 배치한 탓이 컸다.
이상 현상이라 함은 데카라비아의 죽음이 가장 컸고, 결정적으로 성검의 주인의 행적이 일순 끊어졌다.
“미뭉의 주인만 찾으면 돼. 하데스, 그 놈 담당은 너였지 않아?”
메두사의 물음에 하데스는 침음만 흘렸다.
미뭉의 주인을 놓친 지 몇 년이 되었다. 서쪽 대륙에서 찾을 수 없으니 이번에도 동쪽 대륙으로 넘어갔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환생에선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동쪽 인간들이 무능해서 못 찾은 거 아냐? 그 새끼들 서쪽 놈들보다 덜 떨어지잖아.”
메두사의 말에 모두가 수긍했다.
딱히 하데스 한 명을 닦달할 순 없었다.
인간은 무능했다. 아니, 살아있는 것들은 육신의 한계를 끝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그 틀 안에서만 살아갔다.
그런 생명들을 악마는 진절머리나도록 싫어했다.
하지만 결국 악마들도 물질계에 강림하기 위해선 자신들도 물질에 구속당해야 했으니.
이것도 불만인 마당에 껍데기를 극복한 미뭉의 주인은 더더욱 짜증났다.
“성검, 그 새끼만 없으면 우리가 이렇게 고민할 이유도 없었는데 말이야. 하데스 형님 생각은 어때?”
“맞다. 그 놈만 없으면 된다. 미뭉의 주인이 사사건건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서쪽 대륙도 금방 정복했을 것이다.”
“디아볼 형님은?”
“그 놈이 방해 요소인 건 사실이다. 동쪽에 있다면, 데카라비아를 죽인 것도 이해가 돼.”
데카라비아의 죽음은 꽤나 손실이 컸다.
서쪽에 강림한 악마들은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 다시 마계로 왔다가 동쪽으로 강림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안 그래도 강림 조건이 까다로운 동쪽 대륙이라서 애를 먹었고.
서쪽에 강림한 악마들이 바다를 건너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그 선두였던 데카라비아가 죽어버렸으니.
“성검의 짓이 확실한가.”
갑자기 바알이 물었다. 질문을 받은 대상은 성검을 맡고 있던 하데스였다.
하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하지 않다.”
“엥? 확실하지 않다고?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형님.”
“리리스가 사라지고 데카라비아가 죽은 시기가 비슷하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나.”
“리리스, 고 년이 데카라비아를 죽였다고? 에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지. 그녀는 데카라비아를 죽일 실력도 안 된다.”
“그럼 배신한 건 맞으니까……. 아니, 뭐야. 훨씬 오래 전부터 배신했다는 거야?”
리리스의 배신 타이밍은 아주아주 교묘했다.
언뜻 리리스가 데카라비아의 죽음을 보고 힘에 굴복한 배신 같았다.
하지만 데카라비아가 죽기 전부터 리리스가 배신했다면?
애초에 데카라비아의 죽음에 그녀가 일조했다면?
“시발. 돌겠네. 그럼 리리스가 우리 계획을 전부 까발렸을 거 아냐?”
“아마도.”
“우와! 미친! 바알 형님! 이럴 때일수록 빠르게 치죠! 시간 더 끌어봤자 좋을 게 없습니다!”
“조용히 하렴, 발제니르. 대가리가 있으면 좀 굴려봐 봐.”
“뭐요, 메두사 누님?”
“성검의 주인은 영악해. 어떤 생명체보다 우리를 잘 알고 있어. 이렇게 대놓고 리리스가 배신했다고 노출했겠어?”
“어, 그것도 그러네.”
성검의 주인이 짜증나는 건 그 힘이 상이하고 강력한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악마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반대로 악마들은 성검의 주인을 알지 못했다. 안 된다 싶으면 죽어버리고 환생을 반복했으며, 되살아난 그는 항상 새로운 힘을 갖고 대항했다.
무엇보다 죽여도 죽지 않는 점.
그게 문제였다.
“리리스도 리리스지만 이번엔 확실히 성검의 주인을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동쪽 대륙으로 발도 못 붙인다.”
디아볼이 왕좌를 쳐다봤다. 바알에겐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디아볼은 계속 말을 이었다.
“리리스의 배신이 어떤 타이밍이었든 간에 그녀의 배신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한 번 인간을 사랑했던 자. 두 번도 못할 건 없지.”
“어머~ 사랑이라. 낭만적이네.”
“메두사, 괜히 딴죽 걸지 말고 제대로 된 의견을 내라.”
“사랑, 좋잖아?”
“뭐?”
메두사의 뱀들이 샤샤! 하고 일제히 기괴한 소리를 냈다. 그윽한 미소에서 잔악한 기운이 풍겼다.
“성검의 주인에게 사랑했던 여자가 있다는 거, 알아?”
“있었나? 형님들을 알아?”
“처음 듣는군.”
“나도다.”
서로를 바라보며 도리질 치는 하데스와 디아볼.
“바알 형님은?”
“알고 있습니다.”
“허어? 진짜?”
“오래 된 일입니다.”
성검의 주인에게 사랑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악마들이 아는 그는 까탈한 성격 때문에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성검의 주인은 인간보다 닳고 닳은 악마에 가까웠다.
그런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하지만 그 여자는 죽었습니다, 메두사.”
“내게 그 여자의 영혼이 있다면?”
“어줍잖은 술수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도 죽은 애인의 얼굴로 그에게 혼란을 야기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메두사가 거듭 말했다.
“살려보자는 거죠.”
그들의 잔혹한 계획은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 * *
인어국으로 돌아온 유리는 곧장 용왕에게 정령왕과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해줬다.
그리고 바로 뭍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떠나기 전, 그를 배웅하던 비량은 자신의 비늘 조각을 유리에게 건넸다.
“이건……?”
“연락할 수단이다. 꼭 부를 일이 있다면 비늘을 부러뜨려라. 내가 직접 도우러 갈 테니.”
“그럼 저도…….”
유리도 품속에 지니고 있던 연락용 아티팩트 하나를 건넸다.
흡사 야광봉과 비슷한 형태였다.
성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비늘을 부러뜨리는 것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쓸만 했다.
“필요하시면 써주세요. 혹시 악마들이 다시 침공할 수 있으니까요.”
“고맙군.”
“그럼, 가보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유리는 톤트들의 등을 빌려 바다를 나아갔다.
옆에는 게슐츠도 함께였다.
그는 멀어지는 인어국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좋은 인연을 얻었구나.”
“든든한 아군이죠.”
인어국과의 동맹은 앞으로 있을 해상 전선에서만큼은 악마들에게 뒤쳐지지 않을 전력을 얻은 셈이었다.
이로서 악마들은 바다를 건널 가장 좋은 수단을 잃었다.
이를 통해서 악마의 침공이 저속화되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유리는 뭍으로 나오자마자 교국 성기사단의 비밀 안가로 향했다.
일전에 밀리샤가 성기사단장이 되면서 유리의 이름을 비밀 안가에 일러뒀다.
그곳에서 잠시 게슐츠를 맡겨놓을 참이었는데.
“밀리샤?”
“오랜만이네.”
비밀 안가에 도착하자마자 뜻밖에 밀리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오두막이었지만 막상 입구로 들어서니 비밀 성기사들이 오고가면서 바쁜 사무실이 나타났다.
그 속에서 튀어나온 밀리샤는 여느 때처럼 무신경한 얼굴이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채럿 알리아스 나이트워커 가주 대행께서 보냈어.”
“채럿이 가주 대행이 됐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무색무취한 얼굴과 달리 그녀는 다짜고짜 유리를 잡아끌고 안쪽으로 향했다.
게슐츠가 따라오려고 하자 밀리샤는 손짓으로 그를 제지했다.
“당신은 여기서 기다려.”
“아, 음. 알겠다.”
“가자.”
뭔가 급박해보여서 유리도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안쪽 방으로 들어간 밀리샤는 방문까지 걸어 잠그고 창의 커튼까지 쳤다.
암실이 되자 익숙하게 촛불부터 밝혔다.
그리고 그녀는 종이 하나를 유리에게 건넸다.
“받아.”
“…….”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유리는 뜸을 들이다가 빠르게 종이를 펼쳤다.
나이트워커에서 보낸 서신이었다.
적힌 건 단 한 줄의 문장.
“악마가…… 나타났다고? 이거 진짜야?”
“성기사단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 그런데 영지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전부 봉쇄당했어. 채럿 님과 친분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도 듣는 척도 안 하더라.”
“그 와중에 거짓말 할 용기가 있었네. 용가한테.”
“악마잖아.”
유리는 뚫어져라 종이를 노려봤다.
한 문장 가지고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하다.
하지만.
“악마의 등장을 단번에 알아채고 서신까지 보낼 여유가 있었다…….”
“이게 그렇게 해석 되니? 내가 보기엔 딱 봐도 죽기 직전 보낸 다잉메시지 같은데.”
“남의 가족을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악마잖아.”
“…….”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 악마니까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 시기의 악마가 등장했다는 건 악마들도 초조해졌다는 뜻이다.
초조해진만큼 강력한 악마를 보냈어도 이상하지 않지.
“괜히 나만 호들갑을 떨은 건가?”
“응?”
“너 말이야. 되게 침착하다고.”
밀리샤의 말에 유리도 그제야 자신을 되돌아봤다.
확실히 악마가 침공했다고 들었는 데도 불구하고 딱히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채럿이 가주 대행이 된 경위는 알지 못해도, 분명 잘하고 있을 것이다.
그간 악마에 대해 아예 안 알려준 것도 아니고.
현재로서 쳐들어올 악마라고 해봤자 그리 수준 높은 악마도 아닐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게 딱 하나 있다면 어떤 악마를 보냈을 지가 궁금하네.”
“강한 악마겠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냐.”
강하다면 강할 수 있다.
그러나 강력함의 문제가 아닌, 악마는 지독하게 약점을 파고 드는 종족.
이 부분에 대해선 처음 멸망에 대해서 동료들에게 언급할 때 몇 번이고 강조했지만.
이것만은 유리도 예측할 수 없는 범위였다.
“이건 어쩔 수 없어. 채럿한테 맡겨야지.”
“넌 안 가볼 거야?”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악마를 내버려두고 중요한 일이 있다고?”
“너도 들어보면 알 걸. 라지닉소스라고.”
“아…….”
이름을 듣자마자 밀리샤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긴, 교국의 성기사로 살면서 신을 부정하는 라지닉소스를 모를 리는 없고. 좋게 볼 리도 없다.
“인상 펴.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
“신을 믿지 않을 순 있어. 그치만 이 놈들은 신을 부정하려 들고 있잖아.”
“뭐,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 놈들 이름이 왜 나와? 설마 놈들이랑 알고 지내는 건 아니겠지?”
“지금은 협력 관계랄까.”
“너…….”
“그런 거 아니야. 오히려 지금부터 라지닉소스부터 없앨 거야.”
“어째서? 그들이 거슬리는 건 맞지만, 딱히 악마보다 우선시 될 사안은 아니잖아.”
“아니.”
유리는 종이를 촛불에 넣어 태웠다. 어두운 천장으로 잔불이 날아 올랐다.
하나씩 사그라드는 불꽃을 바라보던 유리는 커튼을 거뒀다.
라지닉소스의 표면상 목적은 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입장일 뿐.
“그놈들이 신을 죽이려 한다면 말이 달라지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