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13
제213화
라지닉소스는 본디 작은 도시국가만도 못한 크기였다.
인구는 기껏해야 몇 십 만 남짓. 다른 여타의 대도시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고, 귀족으로 비유하자면 남작의 영지만한 스케일이었다.
그렇기에 라지닉소스라는 국가가 있다고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선지 의외로 치안이라든가 이웃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기사라 불릴 법한 조직이 없으며, 기껏해야 왕과 왕을 지키는 ‘인형’들이 이곳을 지켰다.
그들의 치하에 살아가는 백성들은 정작 이런 사실을 모르지만.
그렇기에 마검의 등장은 다른 곳보다 더한 공포가 되어 다가왔다.
“왕이시여! 왕이시여어!!!”
인형들이 끊임없이 기록을 하는 어느 장소.
그곳의 3층에는 라지닉소스의 왕이 여느 때처럼 인형들을 바라봤다.
항상 조용했던 공간이었다. 방으로 한 남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슨 일이냐.”
왕을 보좌하는 남자, 유리가 라지닉소스에서 깨어나자마자 만났던 남자인 쉐르만은 퉁명스레 물었다.
급히 들어온 남자는 왕국을 지키는 몇 안 되는 병사였다.
병사의 얼굴을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사색이 되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마검이! 마검이 나타났습니다! 마검이 나타나서 백성들을……!”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예, 옙!”
아직 세상에는 마검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용가와 몇몇 강력한 세가 사이에선 알려져 있긴 했지만,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아서 지금까지 의문으로만 남았었다.
하물며 일반인들 사이에선 마검의 형체는커녕 그 이름마저 믿지 않았다.
쉐르만은 병사가 그와 비슷한 착각이라 여겼다.
“허둥대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 마검이라고? 마검을 본 적도 없는 네가 어떻게 마검이라 확신하지?”
“피, 피였습니다! 그 주인이 피로 검을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꿨습니다!”
“……진짜냐?”
“정말입니다! 제가 무엇 하러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병사의 말에도 쉐르만은 반신반의했다.
분명 피로 만들어진 검이라 하면 마검 티르빙 밖에 없다. 아무리 본 적 없다 해도 그 전설을 들어봤다면 알 수밖에 없긴 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마검의 주인이 공격할 줄 몰랐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가 악마를 죽이고 게슐츠까지 없애면서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게 며칠 전이었으니까.
쾅!!!
하지만 그런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창 너머 멀리서 연기와 함께 폭발이 올라왔다.
유리가 갑자기 쳐들어온 것도 모자라 공격까지 일삼는다고?
“그 놈이 돌지 않고서야……! 병력들은? 집결했나?”
“그그, 그게…….”
“도망쳤나보군.”
“송구합니다!”
아니, 병사들을 탓할 수 없다.
마검의 주인이 협력관계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왕과 쉐르만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병사들로선 티르빙으로 보고 도망치는 게 맞았다.
물론, 국가를 지키는 병사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마땅히 물어야 했지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배신을 한 거지…….”
쉐르만은 그쪽이 더 궁금했다.
사실 라지닉소스와 유리의 거래는 그리 강력하지 못했다.
유리가 원했던 건 암흑 눈물 정보의 출처. 라지닉소스가 그에게 넘겨줄 수 있는 값싼 대가였다.
하지만 이 거래의 이면에는 다른 것도 있었다.
‘카이 안데르센.’
카이 안데르센이 이곳 라지닉소스에 있다. 카이와 유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이 각별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 카이가 플루토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큰 부상을 당했고, 현재도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
그 거래는 라지닉소스 입장에선 협박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면 카이를 언제든 죽이겠다는.
‘유리, 그 자가 카이의 상태를 모르진 않을 텐데.’
카이의 성검은 많이 위태로워진 상태였다. 플루토와의 패배가 그 증거다.
라지닉소스의 왕은 유리와 카이가 각별한 사이라고 가정했고, 플루토와 대적하고 있던 카이와 조우하면 카이의 상태를 알아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을까?
카이가 멀쩡하다고 판단해서 이 같은 배신을 저지른 걸까?
“처음부터 협박이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라지닉소스의 왕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아선 애초에 이럴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있기보다 이럴 수도 있다곤 예상했죠. 그 자에게 우리는 수단에 불과할 테니까요.”
유리가 직접 악마 리리스와 게슐츠를 죽이는 모습을 봤던 왕이였다.
당시엔 인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아서 표가 나지 않았지만,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유리를 협박할 수단으로 게슐츠를 데리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슐츠를 죽이는 모습에 과연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그때 왕은 생각했다.
유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의 죽음마저 가벼이 내칠 인간이라고.
그것이야 말로 인간보다 더 용인스러우며, 용인보다 더 용인다웠다.
물론,
“유리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충분히 경계하고 공포스럽게 치부해도 좋을 정도로.”
“왕께서 이리 말씀하실 정도니. 대단하긴 하군요.”
“제가 명령한 조사는 해봤나요?”
조사라는 건 유리의 뒷조사였다. 게슐츠가 알려준 것 말고도 더 많은 정보.
이 타이밍에 나올 질문은 아닌 듯했으나 쉐르만은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털어냈다.
그 양이 소소했지만, 아주 강력한 정보였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로 된 베리온 제국의 계좌가 하나 있었습니다.”
“계좌라?”
“벤헬링턴과 모종의 거래를 했고, 꽤나 거액의 돈을 받았더군요. 그리고 그 돈의 일부가 플레온 기사단 인수에 투입되었습니다.”
“플레온 기사단이라면, 카이 안데르센이 노예로 팔려갔던 암시장?”
“맞습니다.”
“그렇다는 건 카이 안데르센을 처음부터 알고서 접근했다는 뜻이군요.”
유리가 계좌를 튼 시기는 나이트워커에 들어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모종의 거래를 했고, 그 돈으로 가장 먼저 카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것만 봐선 카이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듯한데. 이제 와서 버리겠다는 건가.’
왕의 머리도 복잡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유리에게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후우, 일단 대피하시죠.”
쉐르만이 서둘러 일어났다.
유리가 난리치고 있다면 자신들로선 막을 방도가 없었다.
아니, 정확힌 명분이 없다.
협력 관계라곤 하나 유리는 한 가문의 차기 가주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용인과 대등한 자격을 갖고 있으며, 유리와 맞선다는 건 나이트워커와 맞선다는 것과 같았다.
“아니요, 인형들을 내보내죠.”
“왕이시여!”
“쉐르만, 그래봤자 그 자는 인간입니다. 마검을 들고 용가의 비호를 받을지라도 한낱 인간. 여기서 없애면 됩니다.”
왕의 판단은 그러했다.
뒤에 누가 있든, 어떤 힘을 지녔든, 여기서 죽여 없애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록 마검 티르빙이라는 무시무시한 검을 지녔으나.
“저도 나서죠.”
왕이자 신이 나선다면, 그거야 말로 판도를 뒤집을 최고의 패였다.
* * *
라지닉소스에 신이 있다.
이 사실을 밀리샤는 선뜻 믿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신의 존재마저 의심하고 있던 입장에서 갑자기 신이 멀쩡히 살아있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밀리샤는 그를 믿었다.
어머니 엘카가 믿으니까.
그렇게 대놓고 침입한 라지닉소스의 입구.
후두둑.
티르빙 끝으로 핏물이 뚝뚝 흘렀다.
방금까지 멀쩡히 살아있던 경비의 목이 떨어지자마자 피부가 말라붙더니 재가 되어 부서졌다.
“진짜로 사람이 아니네.”
“말했잖아. 라지닉소스가 도시이자 국가 구실을 하기 위한 인형이라고 보면 돼.”
“이걸 여기 왕, 신이 만들었다고?”
“그렇지.”
유리와 밀리샤는 라지닉소스의 중심부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검을 빼들고 싸우고 있지만, 실상 살육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리가 마검 티르빙을 대놓고 보인 덕이었다.
‘마검을 보면 원래는 도망가는 게 정상이니까.’
라지닉소스는 국가로서의 격이 한참 떨어졌다.
병사들의 충성도는 바닥에 가깝고, 백성들도 기껏해야 얹혀 산다는 느낌이 강했다.
실상 병력의 힘도 강하지 않으니.
마검을 보고 도망가는 건 당연했다.
유리가 일부러 검을 보여준 것도 필요없는 살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유리와 밀리샤를 공격하는 것들은 모조리 사람을 닮을 인형이었다.
끼리리릭!
서걱!
인형들 하나하나의 힘은 일반 사병보다고 훨씬 약했다.
기껏해야 성인 남성 정도? 그 숫자가 괴랄하게 많긴 했으나, 두 사람에게 숫자는 의미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학살을 벌이고 있는 꼴.
이로 인해서 그나마 전의가 있던 인간 병사들도 전부 달아났다.
“졸지에 악당이 된 기분이네.”
“그래서 성기사 이름을 버리라고 했던 거야.”
“나쁘다고 한 거 아니야. 사람 죽이는 것도 아니라서, 오히려 시시한 걸.”
푹!
밀리샤는 가까이 달려오던 인형의 머리통에 성력이 담긴 검을 꽂으며 그리 말했다.
“근데 확실히 이 인형들,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라 신이 아니면 불가능하겠네.”
“아무래도 그렇지.”
유리도 원래는 라지닉소스의 왕이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밀리샤처럼 멀쩡히 신이 생명으로서 살아있다고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라지닉소스의 왕이 신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여러가지였다.
하나는 설정집과 원작에도 나오지 않는 부족한 정보,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쓸모없는 분량.
또 하나는 바로 인형술이었다.
‘인형을 살아있는 것처럼 부리는 기술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이자벨에게 한 번은 인형술과 비슷한 마법이 있냐고 물었었다.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인형술? 있긴 하다. 유체이탈 같은 개념이지. 마나를 담는 그릇이 영혼이니까, 마나를 쓰는 마법을 이용해 잠시나마 인형에 영혼을 부여할 순 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궁금한 건 혼자서 다량의 인형을 부릴 수 있냐는 거지.”
“다량의 인형을 혼자서? 그대는 바본가. 마법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건 불가능하다는 소리부터 나와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다른 수는?”
“세상은 넓으니까 어딘가 있을지도. 그러나 내가 아는 솔리드녹스의 마법서에도 그런 마법은 없다. 용언 마법이라든가 신의 권능이라면 모를까.”
용언 마법이나 신의 권능.
당연히 용언 마법은 아닐 것이다. 용언 마법도 결국 마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유리는 신으로서 부릴 수 있는 전능한 능력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으나, 라지닉소스에 직접 오면서 확신을 가졌다.
수많은 인형들이 제각기 무언가를 기록하던 광경.
차라리 같은 걸 기록하고 있었다면 어떤 뛰어난 천재 마법사가 인형술을 썼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 봤던 인형들은 서로 다른 기록을 하고 있었다.
마치 서로 다른 영혼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이는 신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뭐, 마법사가 수도 없이 많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리는 없다.
인형술을 부릴 줄 아는 마법사는 이자벨의 말에 따르면 빅스터 말곤 없다고 했으니까.
빅스터 같은 괴물들이 널렸다면, 어우.
그 세상은 벌써 망하고 없어지지 않았을까.
‘어쨌든 라지닉소스에선 내가 협박을 무시하고 있는 줄 알겠지.’
유리도 사실 카이가 가장 신경 쓰였다. 그는 멸망을 막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이었다.
하지만 플루토와의 싸움에서 성검의 빛이 희미해지는 걸 보고 알았다.
카이는 위험하다.
그런데 그런 카이가 라지닉소스와 거래를 했고 현재는 볼모로 잡혀있다.
실질적으로 아직 유리는 협박을 당하고 있는 셈.
물론, 유리는 이렇게 쳐들어오면서 그들의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끼릭! 끼리릭!
예상대로 인형들이 나오고 있었다. 라지닉소스가 유리의 바람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협박이 통하고 있다고 라지닉소스가 판단했다면, 이런 식으로 인형들을 몰고 나올 게 아니라 그냥 카이를 살리고 싶지 않냐고 말 한 번 던지면 끝났을 터.
“숫자가 점점 불어나는 게 문제인데.”
예상을 웃도는 인형의 머릿수에 유리는 질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놈들 상대한다고 쓰는 힘을 얼마 안 되어도, 쌓이는 피로도는 어쩔 수 없었다.
“밀리샤, 내가 해준 말 기억하지?”
“나보고 신을 죽이라고 한 거?”
아쉽게도 현재의 왕을 유리는 죽이지 못한다.
아니, 죽일 수 있긴 하지만.
가능성으로 따지면 70%밖에 안 되었다.
반면 밀리샤는 달랐다.
그녀는 100% 신을 죽일 수 있다.
밀리샤가 찾아온 게 천운이었다고 했던 건 바로 이런 의미에서였다.
“내가 길을 뚫을게. 넌 왕에게 직행해.”
“힘든 건 나한테 시키는 거 같네.”
“오히려 쉬울 걸.”
“난 모르겠어.”
“믿어봐.”
“누가 못 믿는데? 넌 내가 두 번째로 믿는 남자야.”
“오~ 나 청혼 받은 건가?”
“연애 고자들이 조금만 호감을 보이면 좋아하는 줄 알지. 너도 그런 부류인가 봐.”
크크, 유리가 이를 물며 웃음소리를 참았다.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어쨌든 그녀와의 유대감이 생겼다는 게 썩 나쁘진 않았다.
유리는 티르빙을 높게 치켜들었다.
피로 이뤄진 무형검들이 치솟았고 피의 줄기가 새장처럼 둥글게 선을 그었다.
선들은 점점 짧아지다가 이윽고 거대한 랜서가 되었다.
유리가 손짓하자 랜서가 그 끝을 전방으로 겨누고 날았다. 인형들이 있던 자리엔 원래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뻥 뚫렸다.
그런데 그 끝에서 랜서를 막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을 본 밀리샤가 제 눈을 의심했다.
“어머니?”
엘카 하모니가 그곳에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