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15
제215화
인형들의 숫자에 비하면 각기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마나가 충만하지만 정작 쓰는 법을 모른다고 해야 될까.
딱히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니고, 파괴적인 검기를 날리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마나를 발산하면서 유리와 밀리샤를 공격했다.
성기사단장의 반열에 오른 그녀의 상대가 될 리는 없었다.
유리에게도 마찬가지. 그들은 티르빙의 먹잇감이 되었다.
[배불러서 좋긴 하네.] [전 그만 먹었으면 좋겠어요.]신이 내뿜는 마나라 그런지 티르빙만이 아니라 아스칼론도 만족스러워 했다.
정작 밥 차려 먹여주는 입장이 된 유리로선 쓸데 없이 많은 숫자에 조금씩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무슨 인해전술도 아니고. 머릿수가 너무 많잖아.”
인형이 많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예상을 웃도는 숫자에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도망갈 시간이라도 버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많아.”
밀리샤도 짜증스럽게 인형의 머리 하나를 뽑아 내팽개쳤다.
그녀 말대로다.
전투가 시작되고 3시간째. 도망치려 했다면 벌써 도망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특별히 탈출로를 막은 것도 아니라서, 지금 상황으로서는 도망가기 좋았다.
‘확실해, 도망가지 않고 있다.’
도망가지 않는 증거는 분명했다.
인형들이 살아움직이고 있으니까.
인형술이든 정령술이든, 어떤 것을 부리는 행위는 주인이 멀어지면 당연하게도 조종당하는 쪽의 힘이 약해진다.
이 많은 인형들이 3시간째 싸우고 있다는 건 그 주인은 아직 근처에 있다는 건데.
“뭘 위해서 시간을 끄는 건지 몰라도 일단 뚫어보자고.”
저 멀리서 더 많은 인형들이 파도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어찌나 물량이 많은지 인형들 위로 다른 인형들이 치여서 튀어 올라왔다.
그렇게 몰려온 대군에 점점 확신이 들었다.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유리는 무형검을 거두고 온 힘을 티르빙에만 집중했다.
얇았던 검신이 늘어나는 주입되는 마나와 피의 양이 늘어나면서 크기가 부풀었다.
이윽고 유리보다 10배 이상으로 길고 넓어진 티르빙.
가만히 쥐고 서있기에도 그 무게감이 상당했다.
밀리샤가 쓰는 대검보다도 거대한 크기에 그녀는 질겁하듯 말했다.
“뭐하려고?”
“단번에 처리.”
“그런 수가 있었으면 진즉에 쓰지 그랬어?”
“그런 질문을 하면 으레 하는 대답이 있지. 힘을 아끼려고 했다.”
“여기서 힘을 아끼는 의미가 있어? 저것들을 다 물리치지 못하면 그 신에게 갈 수 없는 건 똑같잖아. 그리고 신을 죽이는 역할은 나라면서.”
“신이 마음대로 죽어준다면야 그 계획대로 되겠지.”
신의 의중만은 유리도 알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지금 상대하는 자가 신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신을 여기서 저지해야한다는 생각만이 온 신경을 지배했다.
“밀리샤.”
“난 내가 알아서 보호해.”
밀리샤도 티르빙에 모여드는 불길한 기운을 바로 감지했다. 유리와 많은 시간을 지내보지는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유리가 쓰려는 기술이 어쩌면 가장 파괴적인 검술일 수도 있다고 느꼈다.
패도적인 기운. 그야말로 악의 기운과도 같은 마나들이 피보라를 일으키면서 티르빙을 감쌌다.
회오리치는 핏물들은 끊임없이 유리의 팔뚝에서 새어나왔다.
아스칼론으로 회복력을 끌어올는데도 소모되는 피가 더 많았다.
밀리샤는 그의 등에 손을 댔다.
“밀리샤?”
“시끄러.”
맞닿은 손에서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성력이었다.
과연 성기사단의 성력답게 밀려오는 순간 회복력이 남달랐다.
그렇게 모여든 티르빙의 핏물과 마나. 게다가 지금까지 티르빙이 먹었던 마나까지 깃들면서 모든 힘들이 배로 증폭되었다.
유리도 처음 쓰는 검술.
하지만 손에 착 감기면서 자연스레 마나들이 흐른다.
마투기(魔鬪技), 1석.
고대 마신이 티르빙을 벼르면서 만들었다던 검술.
유리는 이를 클라우드 하트에서 세드리치를 통해 배웠었다.
그가 티르빙을 가진 유리를 보고 자신이 알고 있는 마신의 검술을 일부 전수해준 것이다.
“네놈이 티르빙을 가지고 있고 그 주인으로 인정받았다면 마신의 검술도 쓸 수 있겠지?”
“제가 말입니까? 신이 쓰던 기술을 인간인 제가…….”
“글러먹었군. 제 틀을 인간으로 국한시키다니. 그럼 가르쳐 주지 않겠다.”
“아, 아닙니다!”
유리가 알고 있기로 신이 직접 남긴 유산이 여럿 있다.
실제로 카이는 미뭉을 통해서 신이 남긴 검술 몇 개를 익혔고 지금도 흩어진 서적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설마하니 그런 검술이 마신 켈리악스에게도 만들어져서 남아있을 줄이야.
더할 나위 없는 행운에 유리는 클라우드 하트에서 틈이 나는 대로 마투기를 훈련했다.
비록 지금은 가장 기초인 1석밖에 못 쓰지만.
쿠르르르르르르!!!
핏물이 안개가 되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늘도 붉게 보일 지경이 되자 천지가 진동했다. 마수의 울음소리 같은 대기의 흔들림에 인형들이 멈칫거렸다.
창조주도 느낀 것이다.
강대한 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검술이 한낱 인간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다고.
“막아!”
어디선가 처절한 비명같은 외침이 들렸다.
인형들이 일제히 유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밀리샤의 검이 그들을 허용치 않았다.
그녀는 유리의 등에 손을 댄 채로 대검을 휘둘렀다. 가벼운 검의 궤적일 뿐인데도 진한 성력에 인형들이 팔다리가 분해되며 부서졌다.
처음부터 인형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후두둑.
다가오는 인형들이 족족 망가졌다. 핏물이 더 거세지면서 접근마저 어려워졌다.
핏방울 하나하나엔 상상할 수 없는 마나들이 담겨 있었다. 닿는 순간 부식에 가까울 정도로 파괴적인 힘이.
그리고 완전히 검술이 완성되는 순간.
“1석, 혈삭(血削)!”
카가가각!
대검이 부서졌다. 떨어진 피의 파편들은 무질서하게 핏줄기들을 따라 휘몰아쳤다.
유리의 손에는 검신 없는 힐더만 들려 있었다.
그러나 힐더 위로 부서진 파편들이 마치 검신과도 같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를 맴돌았다.
유리는 그 검을 그대로 인형들을 향해 가로로 휘둘렀다.
투둑! 툭! 투욱!
서걱! 서걱! 서걱!
휘둘러진 파편들은 검신의 틀을 벗어나 마구잡이로 인형들 사이를 배회했다.
파편들이 인형들에게 박히고 베고, 그때마다 인형들의 사지가 도륙 났다.
‘이게 검술이라고?’
밀리샤와 라지닉소스의 왕은 본 적 없는 검술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검술이라 하면 검을 휘두르는 방식, 그리고 검에 담는 힘의 형태와 양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유리가 보여준 마투기는 검술이라 부를 수 없었다.
마법? 아니, 마법과도 다르다. 마법 또한 방식과 정도가 정해져있다. 괜히 술식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마법과 비교해도 유리의 마투기는 구애받는 형식이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핏방울이 각각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의지를 가진 피의 파편들이 차례로 인형들을 베었다.
‘유리 덴 나이트워커! 대체 언제 마신의 검술을!’
이 광경을 지켜보던 라지닉소스의 왕은 잇새를 꽉 물었다.
유리가 대단하다고는 알고 있었다. 최근 뒷조사까지 하면서 그의 행보가 돋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가 벌인 업적과 별개로 가지고 있는 실력은 한참 아래를 웃돈다고 예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리가 지금까지 해결해온 사건들은 대부분 주변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했었다.
개조된 마수 락타샤와 싸울 때도 채럿의 도움이 있었고, 교국에서 있었던 키메라 사건도 엘카와 밀리샤가 유리를 먼저 알아봤기에 수월하게 해결했었다.
물론, 유리 스스로가 가진 힘이 없었다면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겠지만.
결정적일 때 주변의 도움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가 내보인 힘은 순전이 유리 본인만의 것이었다.
그것도 사라져서 없어졌던 마신의 검술을 말이다.
‘대체 어디서 마신의 검술을 배운 거지?! 분명 마신에 관한 것들은 전부 없앴는데!’
라지닉소스의 왕은 그간 악마와 신의 존재를 지우면서 마신에 관한 사료들도 다 없앴다.
마신이 직접 남긴 유산이야 말로 최우선적으로 훼손했고.
그러나,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건.
유리가 클라우드 하트에 들어갔다는 건 알아도.
어떤 클라우드 하트에 들어가서 누굴 만나 무얼 배웠는지 몰랐다. 그곳에서 세드리치와 예언을 알게 됐다는 것도 그녀는 전혀 몰랐다.
‘더, 더 시간을 끌어야 한다!’
피의 폭풍이 한 번씩 궤적을 그을 때마다 인형 수백 구가 사라졌다.
유리와 밀리샤는 그제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유리도 마투기가 버거웠다.
‘개량을 거쳤어야 했는데. 너무 무리하고 있어.’
마투기는 신에게 맞춰져서 만들어진 검술.
용인의 육체도 아닌 인간의 육체인 유리로선 억지로 검술을 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세드리치도 경고했었다.
“너에게 가르쳐 줄 순 있지만, 나도 오래 쓰진 못한다.”
“세드리치 님께서 쓰지 못하는 검술이라고요?”
“용의 몸으로도 마신의 검술은 자해에 가깝다. 그걸 견디기 위해선 너에게 맞도록 개량을 거쳐야 한다.”
“알려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마신의 검술을 쓸 수 있습니까.”
……라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직 개량은 완성되지 않았고.
마투기의 4개 석(席) 중 이제 겨우 하나 겨우 썼을 뿐이다.
그런데도 벌써 몸 곳곳이 뜯어질 듯이 격통을 일으켰다.
마투기는 마신의 검술이자 티르빙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고안된 전용 스킬이라 봐도 무방했다.
마나보다는, 마나를 머금은 피를 소모한다.
문제는 인간의 육신인 유리는 무한히 피를 생성할 수가 없었다.
이게 육체를 가진 필멸자의 한계였으니.
‘벌써 어질어질하네.’
아직까진 가벼운 빈혈 증세였다.
유리는 좀 더 발걸음에 속도를 높였다.
저 멀리서 훨씬 많은 인형들이 몰려왔지만, 마투기가 발휘된 검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형들 끝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밀리샤!”
“죽지 마라.”
밀리샤가 반사적으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유리는 그녀가 나아갈 곳을 향해 힘껏 검을 내리쳤다.
푸가가가각!
피의 조각들이 닿는 인형들마다 바늘 구멍들이 뚫렸다.
작지만 수많은 구멍이 생기면서 싱크홀마냥 점점 크기가 커지고 인형을 조각냈다.
그 속도가 1초도 걸리지 않았으니.
“죽기는 무슨. 너야 말로 신에게 한 방 먹이고 와.”
“이것들이!!!”
라지닉소스의 왕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인형들이 몰살당하는 건 물론이고. 여기서 결판을 내야 했다.
그녀의 판단에 유리는 기껏해야 마투기의 기초를 배운 상태. 더구나 인간의 몸으로 마투기는 절대적으로 반발력을 일으켰다.
이대로 도망갔다간 유리가 마투기를 완성해서 만날지도 모르는 일.
“여기서 다 죽여주마!”
라지닉소스의 왕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두 자루의 검을 소환했다.
하나는 티르빙이었고, 또 하나는 미뭉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