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17
제217화
쉐르만이 신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우연한 사건에 의해서였다.
설정집에 따르면 그는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랬던 그의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난다.
죽어가던 식물을 손에 닿기만 해도 살리던 소녀.
쉐르만은 소녀를 데려와 자식처럼 키웠다. 마침 소녀가 고아였기에 가능했었다.
그리고 쉐르만은 그녀가 신의 권능을 이용해 국가를 세우고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쉐르만은 계획을 세웠다.
신의 권능을 빼앗자.
소녀는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건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며.
그래서 쉐르만은 그녀에게서 권능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랬던 그였는데.
‘신을 죽여 달라고…….’
유리에겐 더할 나위 솔깃한 제안이긴 했다. 그러나 반대로 의문이 들었다.
“네 녀석 입에서 신을 죽여 달라고 하다니. 의외인 걸.”
“의외다?”
“신을 강탈하려고 했던 거 아닌가?”
“강탈이라. 뭐, 지금 상황이 이런 마당에 쉽지 않을 듯 싶어서 말이지.”
이런 상황이라 함은 유리가 공격한 상황을 말하는 것일 터.
그러나 유리는 그런 그조차 의심했다.
‘진짜 신을 죽이고 싶은 건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는 건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유리로선 모른다.
확실한 건 쉐르만은 계획적이고 치밀하며, 인내심이 강하다.
오랜 세월 신을 옆에 두고 부하처럼 살아올 정도니까.
그런 그가 이렇게 포기를 한다면 당연히 의심부터 들었다.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유리.”
밀리샤가 그를 살짝 불렀다.
무슨 뜻으로 불렀는지 안다.
예언.
유리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에 대해 알게 되는 건 이유를 불문하고 중요했다.
밀리샤도 그 예언이 중요하다고 봤다.
물론, 그녀 딴에는 멸망에 관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겠지만.
유리는 예언의 출처가 궁금했다.
‘어쩌면 설정집과 원작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일지도. 그리고…… 내 전생도.’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 쯤은 자신의 탄생의 비밀을 알고 싶으리라.
만에 하나 환생에 신이 얽혀 있다면 더더욱.
지금으로선 창조주 이상이 아니고선 원작에 관여할 존재가 없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거절한다.”
유리는 그리 말하며 다시 한 번 티르빙에 마투기를 발현시켰다.
일순 쉐르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언을 알면 창조주보다도 전능해진다. 그걸 거부하겠다는 거냐?”
“첫째, 난 이미 예언을 알고 있어.”
“뭐?”
그게 무슨 소리냐며 묻는 듯한 표정. 이건 몰랐던 모양이다.
하긴, 원작은 유리 밖에 모르고. 나이트워커의 도서관 1티어 섹터에 있던 설정집을 이들이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둘째, 난 멸망을 막기만 하면 된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이 놈이!”
쉐르만도 급하게 망치를 쥐었다.
그는 멸망이라느니 또 다른 예언에 대해 전혀 몰랐으나, 어쨌든 유리가 자신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는 건 분명했다.
밀리샤가 먼저 쉐르만에게 달라붙었다.
쉐르만의 망치와 대검이 격돌했다.
꾸웅!!!
대기를 울리는 파공음이 퍼지며 바닥 위로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단 일격에 밀리샤가 바로 밀려나서 벽에 몸을 처박았다.
쾅!
“밀리샤!”
[꼬맹이!]유리가 떨어져 나간 밀리샤에게 잠시나마 시선이 팔린 사이.
티르빙이 비명을 질렀다.
다시금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묵직한 망치가 옆구리를 강타했다. 황급히 티르빙이 갑주로 변해서 막아봤지만, 관성과 충격을 완전히 막아내진 못했다.
유리는 땅에 발을 박듯이 버텨냈다.
촤아악!
“끅!”
[괜찮니?]“괜찮긴 한데, 좀 당황스러운 걸.”
[저 인간, 그냥 실력자가 아니야. 적어도 9서클. 아니면 그 이상일지도 몰라.]“어디서 저런 괴물이 튀어나온 거지? 설정집에서 보던 쉐르만은 언변만 좋은 줄 알았는데.”
[신의 권능이겠지. 봐봐. 망치의 마나가 불안정하잖아.]이제 보니 망치에 일렁이는 검보라색 마나가 스파크를 튀겼다. 망치를 쥔 손과 팔은 미세하게 떨렸다.
유리가 보기에도 쉐르만은 평소 수련을 많이 한 몸은 아니었다.
근육이 발달되어 있긴 하지만, 실전 근육이라 보긴 어려웠다.
나름 운동만 했을 뿐. 검을 써보지 않은 몸.
“힘만 센 사람은 별로인데.”
벽에 처박혔던 밀리샤가 여유롭게 먼지를 털며 나왔다.
쉐르만의 눈가에 미세한 동요가 일어났다.
역시, 9서클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마 방금 전 위력은 기껏해야 조절하지 못해서 막 튀어나온 마나였겠지.’
밀리샤는 대검을 고쳐 잡으며 앞으로 나왔다.
“이 사람은 내가 맡을게. 넌 왕을 찾아가.”
“그래도 되겠어?”
“빠르게 끝낼 수 있긴 하지만, 그랬다간 이 건물이 통째로 날아갈 거야.”
“너 성기사단장 맞냐. 건물 무너뜨리는 기술 밖에 없어?”
“그러니까 시간이 걸린다고.”
쉐르만을 코앞에 두고 작전을 세우는 게 영 이상했으나.
쉐르만도 딱히 어쩔 수 없었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으로 둘 다 막을 수 없다고.
오히려 한 명만 남아서 상대해준다면 승산이 더 높았다.
그리고 그 승산은 유리가 보기에도 합당한 결론이었다.
‘쉐르만이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도 있어.’
적어도 쉐르만의 9서클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룩한 성과임은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그 이상의 힘을 낼 수도 있다고 가정해야만 했다.
“밀리샤, 2인 1조로 싸워본 적 있지?”
“넌 가라니까.”
“아니, 난 가긴 할 거야. 대신 대타 두고 가려고.”
“대타?”
유리가 저 멀리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한 손에 황금빛 검을 들고 걸어왔다.
카이 안데르센.
성검의 주인이었다.
“시끄러워서 일어나봤더니 결국 먼저 선수쳤군.”
카이가 뻐근한 어깨를 빙그르르 돌리면서 유리 옆에 섰다.
쉐르만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네 녀석! 어떻게! 분명 가둬놨었는데!”
“내가 기절했었다면 가둬놨다는 말이 맞겠지.”
“뭐, 뭣?”
“신은 어디에 있나.”
카이가 대뜸 물었다. 당연히 쉐르만은 대답하지 못했다.
‘역시 카이도 신에 대해서 눈치챘었나.’
카이가 라지닉소스와 거래를 한다고 했을 때.
과연 악마와 신에 관한 정보를 건네주면서 카이가 거래를 하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했다.
애초에 카이는 거래 자체로 무언가를 얻으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거래를 해서 라지닉소스와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였고, 유리는 카이가 창조주에 대해서 알고 접근했다고 추측했었다.
그 추측은 방금 전 카이의 질문으로 확신이 되었고.
“카이, 네가 여기 좀 맡아줘라.”
“난 네 녀석의 부하가 아니다.”
“부하로서 명령한 거 아냐. 부탁이지.”
“…….”
“어차피 지금 몸 상태로 신과 싸울 수도 없잖아?”
허세 부리듯 기절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기절하긴 했었을 거다. 그저 빠르게 깨어나서 라지닉소스가 그에게 채운 여러 구속법들이 무용지물이 되었을 뿐.
“밀리샤.”
“싫어도 해야지.”
“카이는?”
“방해하면 네놈도 죽인다.”
그럼 됐네.
“먼저 올라간다.”
유리는 그 말만 남긴 채 산뜻한 걸음으로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쉐르만이 눈으로 그를 좇았다.
“내게 신의 권능이 있었다면 둘 다 죽였겠지만, 아쉬운대로 성기사단장. 너부터 죽여야겠다.”
“날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닌가.”
“반대다. 네가 더 어려워. 유리, 저 놈이 더 쉽지.”
쉐르만의 판단에서 유리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마검 티르빙을 가지고 있고 그 주인으로 인정받았다 한들. 9서클을 가진 무위를 따라오기엔 역부족이었다.
마투기 같은 기이한 기술도 마찬가지. 근본적으로 마나가 크지 못하면 위력을 내지 못했다.
실제로 유리의 마나는 최근 8서클 남짓으로 커졌고, 쉐르만도 이런 실력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니 밀리샤가 더 어렵다고 본 것이다.
“뭐, 유리가 더 약한지는 모르겠지만.”
밀리샤도 유리가 사라진 곳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나보단 어려운 상대일 거야.”
* * *
건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발길 닿는 곳마다 인형 시체가 치였다.
방금까지 왕을 지키고 있었는지 여태 봐왔던 인형들과 달리 중무장 상태였다.
그런 인형 더미를 지나면서 스산한 공기가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안 그대로 낡은 건물 분위기 때문에 귀신이 나올 것처럼 분위기가 기괴했다.
“끔찍하네.”
어찌해서 인형들을 밀어내며 도착한 3층.
마찬가지로 무너져가는 복도를 지나 다다른 끝 방에서 마침내 왕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다만.
그녀를 왕이라 불러도 좋을지 애매했다.
“이런 식으로 봉인을 하고 있었나.”
말로는 봉인이라고 했지만 펼쳐진 광경은 환자 또는 실험에 가까웠다.
철로 만들어진 왕좌 위엔 한 소녀가 앉아있고, 소녀의 팔다리를 비롯해 몸 곳곳에 얇은 관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관에는 형형색색의 액체가 소녀에게 타고 흘러갔다.
때문에 관이 꽂힌 피부 위는 액체 색깔로 조금씩 변해서, 흡사 수포가 올라온 것 같았다.
“티르빙, 저런 거 본 적 있어?”
[처음 봐. 마도학자들의 실험 기구인가?] [라지닉소스엔 역사학자만이 아니라 마도공학자들도 있다고 했었죠. 그들 작품일 수도 있겠어요.]역사학자로는 몰라도, 라지닉소스엔 이름 있는 마도공학자들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과거 메데스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던 사람도 있고. 용가로부터 배움을 얻었던 사람도 있었다 한다.
유리가 봉인을 떠올렸던 것도 그런 이력 때문이었다.
“이거…… 권능을 빼앗으려고 마나를 흡수하고 있던 건가.”
자세히 보면 소녀에게서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관도 보였다.
피는 아니었다.
사람의 몸에서 피가 아닌 것을 뺀다면…….
“마나.”
신의 권능을 강탈한다고 했을 때, 여러 방법이 있었으리라.
그 중 가장 쉬운 방법은 마나를 비롯해 영혼을 빼는 것.
물론, 영혼을 뺀다는 게 말처럼 쉽지도 않거니와 실제로 그런 방법은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라지닉소스 같은 집단이 평생 그쪽 방면으로만 연구했다면, 어쩌면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딴 짓을 해놓다니.”
소녀의 상태는 끔찍하다고 표현으로도 모자랐다.
팔다리가 앙상하고, 생기를 잃은 얼굴은 살가죽만 겨우 붙은 해골이나 다름 없었다.
가까이서 살펴보지 않으면 숨을 쉬는지조차 불분명했다.
그런 소녀의 발목엔 족쇄가 채워져 있다.
이게 라지닉소스 왕의 정체였다.
[살아있긴 한 건가.]“살아있어. 아직은.”
[어쩔 건가요, 주인님.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죽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이 애 안에 있는 영혼이 정말 창조주인지를 떠나서, 정말로 신적인 존재라면 살려둬서 좋을 건 없어.] [창조주라면 사실 더 문제에요. 창조주는 멸망을 바라는 입장이잖아요.]창조주를 죽이자는 불손한 발언임에도 그녀들은 망설임없이 자기 의견을 뱉었다.
그녀들도 멸망을 막고 싶어했으며, 동시에 창조주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멸망을 방치한다니.
이대로 창조주를 살렸다간 멸망을 막으려는 유리를 죽일지도 몰랐다.
[어떻게 할 거니?] [어떻게 하실 건가요?]그녀들이 물었다. 유리는 말 없이 티르빙을 힘껏 쥐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