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18
제218화
유리는 티르빙을 거뒀다. 품고 있던 마투기도 전부 갈무리 지었다.
그리곤 소녀에게 다가가 관 하나를 쥐었다. 가장 크기가 큰 관으로, 소녀에게 무언가 주입하고 있었다.
티르빙이 다급히 소리쳤다.
[뭐하는 짓이야!]“살려보려고.”
[야!]발끈한 티르빙만큼이나 아스칼론도 목소리에 당황한 투가 묻어났다.
[주인님, 뭘 하려는 건지 알아요. 하지만 그건 창조주를 깨우는 격이 되어버려요! 그랬다간 멸망을 가속화할 수 있어요!]“알고 있어.”
[근데 왜!]소녀의 안에 있는 창조주는 온전히 살아있는 상태가 아닐 것이다. 제대로 살아있다면 강림해서 진즉에 유리를 막았으리라.
예상컨대 티르빙이나 아스칼론처럼 자아가 깨어있지도 않을 터.
“이 봉인 장치는 이 여자애를 봉인하려는 게 아니야. 신을 잠재우는 장치겠지.”
[그건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예요! 주인님은 그 신을 만나려고 하는 거잖아요!]맞다.
유리는 창조주와 만나려고 했다.
하지만 왜?
티르빙과 아스칼론은 그의 선택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무슨 의중을 품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유리가 일부러 자신의 생각을 그녀들과 공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건 위험할 거야.”
[위험하겠지. 세상이 멸망하는 거니까!]“뭐, 재수 없으면 깨어난 창조주가 바로 내 목을 졸라서 죽이려 할지도?”
[너, 설마…….]티르빙이 말끝을 흐렸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뇌리를 스쳐가는 과거의 대화.
그 대화는 아스칼론을 만나기 전에 나눴던, 유리가 도서관에서 설정집을 발견했을 때 나눴던 이야기였다.
설정집을 누가 썼을까.
티르빙은 그리 물었었다. 그러나 유리는 설정집을 보자마자 이걸 쓴 원작자보다, 그곳에 쓰인 아이디어가 누구의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아니, 그 이전에.
내 전생은 누가 만들어냈는가. 난 어떻게 전생에서 이곳으로 넘어왔는가.
풀리지 않는 숙제였기에, 모른 척하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유리에겐 멸망을 막는다는 대전제가 더 중요했으니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전생과 환생에 대해서 궁금했던 건 너였어. 아까 쉐르만이 예언에 대해 알려준다고 했을 때 미세하게 흔들렸고.]“지금도 알고 싶긴 하지. 신이 대답해줄 수 있는 질문이라면 더더욱 좋고.”
[그런데?]“고모를 살려야 해.”
[그건 플루토로 어떻게 해볼 거 아니었어?]“모든 일엔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해. 한 사람의 영혼을 데려오는 대가는 뭐 일 거 같아?”
[생명이 필요하겠죠. 그만한 에너지라던가.]아스칼로의 목소리가 조금은 우울하게 흘러나왔다.
사실 처음부터 가짜 플루토를 만들어서 미앵비슈를 되살린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
유일한 변수는 과연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지만 살릴 수 있느냐였다.
그 답은 뻔했다.
만물의 에너지는 순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모한다고 표현하지만,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물론.
그만한 대안을 준비해놓긴 했고, 정령왕과도 합의를 봤지만.
“플루토를 아끼자고. 할 수 있으면 신도 내 편으로 만들고.”
[꼬맹아, 이 언니가 보기엔 너무 확률이 떨어져. 이건 도박도 못 된다고.] [티르빙.] [왜.] [전 주인님 의견에 찬성이에요.] [아스칼론 너까지!]갑작스러운 아스칼론의 태도 변화에 티르빙이 기겁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이야! 창조주를 깨운다 쳐도 같은 편이 된다는 보장도 없어!] [그래도 신을, 그것도 창조주를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 좋은 수는 없어요.] [그게 말이 안 된다니까?] [하지만 창조주가 깃든 저 소녀는 저기 묶여있죠. 쉐르만은 강탈에 오랜 세월을 쏟았고요.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요?]창조주의 자아가 깨어있지 않을 수 있다.
아니, 깨어있더라도 주인되는 사람에게 영향을 크게 끼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쉐르만이 옆에서 교묘히 조종했다면 말이다.
“도박이 되겠지만 방법이 없지도 않아.”
[네가 말한 방법은 하나 같이 위험해서 동의하기 싫다는 거야.] [저도 싫어요. 하지만 이건 기회인 걸요.]오랫동안 유리를 주인으로 모셔온 티르빙은 부디 그가 무리하지 않길 바랐다.
분명 유리는 강하다. 앞으로도 더 강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스칼론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가끔은 자신보다 남을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봐왔기에.
그리고 그 모습을 비추어 보건데 창조주와의 접촉은 결코 순탄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특히나 창조주다.
멸망을 예언하고 방치했던 이 세계 유일무이한 존재.
“믿어봐.”
유리는 그리 말하며 관을 뽑았다.
레이피어라 해도 무방한 주사바늘이 뽑혀져 나왔다.
“네 주인이 언제 실망시켜 준 적 있어?”
[그래요, 티르빙 양. 여태껏 믿어왔으면 또 못 믿어요?] [둘 다 아주 쌍으로……. 마음대로 해. 어차피 말려도 할 거잖니.]티르빙은 마지못해 하는 한숨을 내쉬며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스스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어쩌자고 꼬맹이를 말리고 있지.’
예전 주인이라든가 마신이었다면 티르빙은 그들의 선택을 만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검 티르빙의 이름이 위대하고 위험하다고 하지만, 주인을 따르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유리와 만나면서 종종 그의 의견에 토를 달고 있었다.
‘어차피 지나가는 주인일 텐데.’
티르빙에겐 마신을 포함해 세 번째로 맞은 주인.
유리 이전의 두 주인은 세상을 떠나 죽고 말았다. 마신조차 그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필멸자의 운명을 타고난 그를 성심성의껏 모셔봤자, 그마저도 티르빙에겐 지나가는 것들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
뭐, 주인을 위하는 마음에 간언을 하는 거야 그녀로선 지당했으나.
그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래, 내가 뭐하러 이런 걱정을 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뒤숭숭하던 심경을 접으며 티르빙은 묵묵히 유리를 지켜봤다.
그때까지도 티르빙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유리가 죽을까봐 만류한 게 아닌.
그의 의견을 부정한다는 건 그녀에게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걸.
*
한참 동안 유리는 소녀에게 꽂혀 있는 관과 봉인체를 살펴봤다.
그러다 각각의 주사기에 기묘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걸 발견했다.
“이거…… 본 적 있어.”
[어디서?]“이자벨이 가르쳐 준 적 있어서. 흑마법사들 조사할 때도 봤었고.”
일명 영혼 추출술이라던가.
거창한 이름에 비해 실질적으론 마나를 강제 추출하는 기술이다.
이걸 알게 된 건 이자벨이 가지고 있는 불의 영혼 때문이었다.
솔리드녹스에서 불의 영혼 부작용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서 이 불의 영혼을 강제로 빼앗는 시술 중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진짜 솔리드녹스에서 이 기술을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똑같은 마법진이 여기 있다는 건…….
[솔리드녹스가 관여 되어 있군요.]“아닐 수도 있어. 라지닉소스는 원래 정보를 모으던 놈들이잖아. 그 사이로 얻는 지식일 수도 있지.”
[솔리드녹스 쯤 되는 가문에서 이 마법을 유출했다고? 말도 안 돼.] [저도 그건 이상하네요. 유출됐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솔리드녹스가 자신들의 마법 지식을 함부로 밖에 내놓고 다닐 리가 없었다.
내부자가 고의로 노출했지 않고서야 말이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당장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알고 있는 마법진에 술식이니 작동 방법도 대충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신과 만날 수 있는지도.
“후우.”
유리는 길게 한숨 한 번 뽑고는 주사기를 팔뚝에 꽂았다. 그리고 액체가 들어오는 순간, 조심스레 마나를 퍼뜨려서 액체가 흘러가는 길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역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포도당 주사를 맞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
그 상태로 유리도 의자 하나를 가지고 와서 앉았다.
마나를 더 넓혀서 드래곤 하트로까지 이어지는 순간. 고동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리고 머리가 핑 돌았다.
통증은 없었다. 그저 어지러운 감각이 전신을 쓸고 지나갔고.
잠시 뒤엔 아득한 빛이 갑자기 그를 덮쳤다.
* * *
쉐르만을 상대로 한 싸움은 예상보다 치열하게 흘러갔다.
억지로 만들어진 9서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밀리샤와 카이를 상대로 호각세 그 이상을 선보였다.
“귀찮은 사람이네. 그냥 빨리 죽어주면 안 될까?”
“성기사단장치곤 입이 거칠군.”
“잠깐 동안은 성기사단장이 아니야. 지금은 그저 성력 좀 쓸 줄 아는 밀리샤라는 사람일 뿐.”
“말장난 할 시간에, 날 더 몰아세워야 할 거다!”
쿠르르르!
쉐르만이 마나를 뿌리자 카이와 밀리샤가 서 있던 땅이 일어섰다.
빠르게 변화를 인지한 두 사람은 양 측으로 갈라져 피했고, 그들이 있던 자리엔 토벽이 세워져서 샌드위치 시키려 하고 있었다.
‘몸으로 싸우는 건 형편없어도 마법사라는 건가.’
쉐르만의 무력이 별로라는 건 밀리샤도 보자마자 알았었다. 불안정한 마나의 흐름을 보아선 얼마 못 버티고 죽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쉐르만은 망치를 이용한 싸움보다 마법에 더 능통했다.
간과했던 것이다.
마나를 쓸 줄 아는 시점에서 검술이나 육체적인 전투보다 마법에 더 특화됐을 거란 사실을.
‘더군다나 카이, 이 사람이 걸림돌이야.’
아까부터 이상하게도 카이는 전력을 내고 있지 않는 듯했다.
어딘가 불편하거나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마치 일부러 스스로의 힘을 억제하고 있는 느낌.
“내가 없으면 돼?”
뜬금없이 밀리샤가 물었다. 멀어져 있던 카이가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나 때문에 못 싸우는 거냐고 묻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누군가랑 같이 싸우는 게 어색해 보여서. 나 없이 싸우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솔직히 유리의 무력에 대해선 모르겠고. 카이에 관해서는 엘카에게 지겹게 들었던 밀리샤였다.
성검 미뭉의 주인이자 무한 환생자. 그렇게 쌓아온 경험과 기연, 능력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법했다.
하지만 엘카도 그랬듯, 카이는 고독한 인간이었다.
늘 혼자 싸울 수밖에 없었으니, 지금도 혼자 싸우는 법 말고는 모르리라.
“당신에 관해선 많이 들어봐서 알아. 어머니가 말해줘서.”
“엘카가 쓸데없는 소릴 했군.”
“쓸데없지는 않아. 나도 가끔은 당신한테 질투했었거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라이벌 의식을 갖기 있기도 하고.”
“…….”
“어쨌든. 내가 거슬리면 빠져줄게.”
밀리샤는 얼른 쉐르만을 죽이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다.
그러려면 자신보다 강한 카이가 쉐르만을 상대하는 게 맞았고.
카이 성격이라면 효율을 중시할 테니 이 편이 옳았다.
“안 된다.”
그런데 카이의 대답은 의외였다.
“내가 여기서 전력을 다할 순 없다.”
“전력을 다해야 할 상대 같지는 않은데.”
“상대가 문제가 아니다.”
“…….”
무슨 말인지 알겠다.
전력을 다할 수 없다는 뜻.
카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저 위에 있는 거랑 관련되어 있어?”
“그렇다.”
“후우, 그럼.”
밀리샤는 대검을 아래로 늘어뜨려 놓고 남은 성력을 끌어모았다.
단숨에 처리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려고 해도 이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힘을 비축하면서 싸워야 했다.
하지만 당장 쉐르만이 죽어야 하는 건 분명하고, 카이도 모종의 이유 때문에 전력을 다할 수 없으니.
“그럼 내 방해가 되지 마.”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