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2
제22화
“어떻게 된 거냐?”
“몰라. 방금 그러니까…….”
대련을 구경하던 이들은 방금 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자벨은 비기에 가까운 공격을 하다가 검과 검이 닿는 순간 멈췄고, 그 찰나에 티르빙이 이자벨의 목덜미에 다가왔다.
치열했던 대련치고는 허무할 정도의 결말이었다.
정작 제일 어이가 없는 쪽은 당사자인 이자벨이었다.
‘분명히 제대로 공격했다. 검술에선 동등해도 마나에선 우위였다. 그런데…….’
유일하게 가까이 있던 그녀는 마지막 타이밍에 유리가 외운 주문을 떠올렸다.
절대영도.
무슨 마법인지 안다.
그러나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유리 같은 사람이 다룰 마법치곤 난이도가 터무니없이 높았다.
무려 9서클 마법이었으니까.
그뿐이랴.
술식 자체가 9서클 마법사조차 해석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다룰 줄 아는 자가 극히 적었다.
이자벨은 정말로 절대영도를 썼는지 여부에 관한 의심 따위 지웠다.
대신 순수한 호기심을 있는 그대로 표출했다.
“방금 절대영도, 어떻게 쓴 거지?”
“쓰다가 만 기술이라 절대영도라 부르긴 민망하네요.”
“겸손 부리지 말고 얼른 대답만.”
“……절대영도는 빙결계 마법 따위가 아니에요.”
유리는 순순히 마법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이론과 이해가 그에게서 나온다.
“정확히는 접촉한 상대의 모든 에너지를 일시에 없애버리는 마법이에요.”
“마나를 강탈한다는 건가?”
“아니요. 잃어버린 마나는 돌아와요. 이자벨 님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아주 잠깐 없앨 뿐이에요.”
유리가 도서관에서 이 마법에 대해 읽었을 때, 마법보다는 과학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름부터 절대영도이지 않은가.
물리에 대해선 몰라도 절대영도의 간단한 설명 정도는 기억했다.
물질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가 0되는 순간의 온도.
즉, 절대영도는 에너지를 모두 뺏어서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마법인 셈이다.
물론 상대의 에너지를 완전히 빼낼 수는 없다. 시전자에게 부담을 일으켜서 정말 찰나의 순간만 에너지를 0으로 만든다.
그리고 에너지는 보존 법칙으로 인해 돌아온다.
“저는 그 짧은 찰나에 이자벨 님의 움직임을 멈추고 공격했죠.”
“그게 가능하다는 건가?”
“보다시피.”
“하지만―!”
“패배하셔놓고 질문이 너무 많으시네요.”
“아, 음…….”
이런, 실례하고 말았다.
원래 이자벨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곤 했다. 여기가 나이트워커니까 조용히 지냈지, 솔리드녹스였다면 끝까지 붙들고 물어봤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호기심을 억누르기엔 너무나도 궁금했다.
애초에 그가 하는 설명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절대영도의 술식을 이해한 13살 꼬마라니!
“그보다 이자벨 님이 궁금한 건 따로 있지 않으신가요?”
“……?”
“마나 코어.”
유리가 검을 거두고 티르빙을 없애고는 그녀의 단전을 가리켰다.
바로 알아차리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나 코어가 있는 단전이 항상 ‘이상’해서 익숙해졌던 탓이다.
감각이 무뎌질 때까지 이상했던 단전은 유리가 인식시켜주고 나서야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단전이 차갑다!’
솔리드녹스에는 한 세대마다 반드시 천재라 불리는 자가 태어난다.
레드 드래곤이 내려준 가호이자 불의 영혼을 가진 존재.
그러나 이들은 불의 영혼이 내뿜는 열기로 인해서 성인이 되기도 전에 단명했다.
이자벨도 비슷한 미래를 기다렸으며, 비슷한 고통을 지나왔다.
항상 마나 코어가 불에 타고 있어서 장기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냉기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로 버텨보았으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뜨겁던 마나 코어가 방금 전 대련 이후로 차가워졌다.
단순히 식은 게 아니라 아랫배가 시릴 만큼의 냉기가 온몸에 흘렀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어떻게 이걸…… 그러니까…… 그러니까!”
“질문에 대한 답과 대련의 결과 정산은 나중에 하죠. 보는 눈이 많아서 부담스럽네요.”
당장 윽박질러서라도 답을 얻고 싶었으나 주변의 시선들 때문에 더 이상은 무리였다.
이자벨은 한 발 물러서서 솔리드녹스 기사 식으로 오른 팔뚝을 배 앞에 수평으로 놓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자벨 린테어 솔리드녹스. 나이트워커의 유리 덴 나이트워커에게 패배를 인정합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유리도 나이트워커 식으로 가슴에 손을 얹어 인사하고 연무장을 내려왔다.
아무도 박수나 환호조차 없는 승패의 결과였으나 이자벨과 유리 모두 만족스러웠다.
그때, 유리를 맞아주는 한 사람이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크하하하! 유리! 솔리드녹스에 제대로 한 방 먹였구나!”
“할아버지?”
연무장을 내려오자마자 벤헬링턴을 필두로 미앵비슈, 겔런이 맞아줬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대련에 집중하는 동안 전혀 몰랐던 유리였다.
벤헬링턴은 사방이 떠나가라 웃었다.
“내가 진즉 떡잎을 알아봤지만, 설마 마법으로 솔리드녹스를 누를 줄이야!”
“과찬이십니다.”
“아니! 오늘은 과찬보다 더한 칭찬을 해도 모자라다!”
다들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솔리드녹스와 대련에서 이긴 사실만으로도 빅뉴스이긴 하지만, 점점 낯이 뜨거워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말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았다.
“그래도 깔끔하게 결론을 내지 못해서 아쉬워요.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최선을 다했겠지! 암! 나는 안다! 멍청한 낯짝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이놈들은 몰라도 나는 알고말고!”
자그마치 가주가 뱉는 공언은 구경꾼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방금 전 대련에서 아무것도 못 보았다. 그래서 이자벨이 깔끔히 승복했는데도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벤헬링턴이 승리의 결과를 떠들고 나서야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다.
“진짜로 유리 님이 이기신 거야?”
“그런……가?”
“가주님께서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놈들.”
그들 사이로 분대장급 기사가 끼어들었다.
그는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제 부하를 바라봤다.
“너희들 눈에는 안 보였겠지만 방금 유리 님은 9서클 마법을 쓰셨다.”
“지, 진짜입니까?!”
“헉! 구, 구 서클 마법을!”
이번에는 뒤늦게 어디선가 작은 박수가 흘렀다.
작게 시작한 손뼉 소리는 점점 박자감을 갖추며 커졌다.
벤헬링턴은 유리의 어깨를 감싸 며 이끌었다.
“가자꾸나, 유리. 오늘 만찬이라도 벌여야겠어. 다음에 솔리드녹스 놈들을 만날 때 놀릴 거리가 생겨서 좋구나! 크하하핫!”
* * *
잔뜩 신이 난 벤헬링턴은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다가 만찬 이상의 연회를 벌였다.
때 아닌 포식에 더불어 기사단은 술잔치를 열었고, 시종과 하인들에게도 고급 음식이 제공되었다.
아무튼 연회가 끝나고 샤를린느에게서도 칭찬을 듣고 나서야 유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오늘은 오전부터 전술학 실습이 있는 날이라서 오전 훈련도 거르고 지식의 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방을 나오는데.
“밤의 영광을!”
“밤의 영광을!”
“……?”
문을 나오기 무섭게 양옆에 있던 경비병들이 경례를 올렸다.
놀라지는 않았어도 이상함을 느낀 유리는 도로 문 안쪽으로 한 발 물러섰다.
정작 같이 따르고 있던 릴림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유리가 물었다.
“얘들 갑자기 왜 이래? 평소엔 경례도 안 하더니.”
“어제, 대련 때문인가 봐요.”
“흐음, 그래?”
알게 모르게 지난 밤 사이 연회가 이어지면서 계속 유리와 이자벨의 대련이 회자되었다.
대련을 직접 보지 못한 자들은 결과를 믿지 못했으나, 벤헬링턴이 대련을 지켜보고 칭찬까지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까 소문이 사실로 바뀌었다.
[무슨 손바닥 뒤집듯이 대우가 바뀌니.]“무시당하는 것보단 낫겠지.”
어제의 대련은 노골적으로 만들어진 쇼였다.
무조건 승리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으나, 유리에겐 조건 축에도 끼지 못했다.
다만 충분히 압도적이면서 이자벨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방법과 과정이 중요했다.
덕분에 가문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는 마련되었으니.
‘이제 이자벨,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면 되겠네.’
유리는 달라진 대우를 만끽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지식의 관에 다다르자, 마침 입구에서 붉은 머리 여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자벨은 유리를 발견하고 벽에 기대고 있던 등을 뗐다.
“왔군.”
“절 기다리셨군요.”
“내겐 네가 중요하다. 너도 왜 그런지는 알고 있겠지.”
불의 영혼 때문이겠지.
이자벨을 지금도 죽이고 있는 저주받은 축복.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절대영도로 통증을 없앤 건가?”
“뭐, 그렇다 할 수 있죠.”
“확신이 없는 말투군.”
“확신이 없다기보다…….”
진실을 말할 수 없어서 그렇다.
원작에도 이자벨과 똑같이 솔리드녹스 출신에 불의 영혼을 계승한 자가 있었다.
주인공은 그 자와 만나 절대영도를 이용해 치료를 해주며, 솔리드녹스는 차후 악마 군단을 상대하는 조력자로 활동한다.
그때.
불의 영혼을 계승했던 자가 한 말이 있다.
“전대 불의 영혼 계승자는 저주를 버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죽고 말 겁니다.”
일전에 예상했던 대로다.
이자벨이 원작에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는 불의 영혼으로 인해 죽었기 때문이다.
유리가 이자벨과의 대련에서 굳이 절대영도를 비기로 골랐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확실한 공격 수단이면서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일단 그래도 설명을 해야 되니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운이 좋게 용인 도서관 중에서 가장 깊숙한 곳까지 가볼 기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절대영도와 불의 영혼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거기서 불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통제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봤죠.”
“그러니까 치료법을 안다는 건가?”
“가능성일 뿐, 확실치는 않아요.”
“나에겐 그 가능성도 중요하다.”
생각 외로 단호하면서 절박한 감정이 말투에서 오롯이 묻어났다.
유리가 예상하기로 이자벨이 이리 쉽게 접근하고 물어볼 줄은 몰랐다.
아무리 절박해도 상대가 나이트워커니까.
하물며 어제 대련 이후 대화와 지금의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일부러 절대영도로 당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암시를 줬다.
그녀를 고의적으로 이끌어냈다는 건데, 정작 당사자인 이자벨은 개의치 않았다.
‘이럴 거였으면 대련 말고 그냥 가르쳐 줄 걸 그랬나.’
이렇게까지 절박하다면야 괜히 못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유리는 머쓱한 마음을 애써 눌렀다.
“뭘 원하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어제 대련의 승자는 접니다.”
“그건, 알지만…….”
“야박하게 굴지는 않을 거니까 괜히 겁먹지 마세요. 체면 구기는 짓까진 하지 않을 테니.”
“고맙군. 그럼 뭘 원하지?”
유리는 티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반면 이후의 대답을 듣고 이자벨은 조금도 웃을 수 없었다.
“이자벨 님이 제 밑으로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