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30
제230화
감히 용가의 회의장을 박차고 들어올 인물은 세상 몇 되지 않았다.
그나마 유일하게 있다면 가문의 가주 정도.
그 장본인이 나타났다.
“가, 가주님!”
오늘 원래 회의를 주최했어야 할 사람이 등장하면서 삽시간에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싸해졌다.
벤헬링턴은 잔뜩 불편해진 심기를 드러냈다.
“우라질 놈들. 잠깐 나 없다고 아주 회의 주최자를 똥으로 아는군!”
“그, 그게 아니고, 저희는 그저 가주님 대신 앉아있는 저 놈이……!”
“이 노오오옴!!!”
쿵!
버럭 지른 외침 한 번에 천지가 진동했다.
귀가 찢어질 듯한 고함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다.
“가문의 직계에게 이 놈, 저 놈 하는 거냐?!”
“소, 송구합니다!”
결국 사과를 한 장로였지만, 벤헬링턴의 화는 쉬이 가라 앉지 않았다.
“다시 말해봐라. 유리가 날 굴복시키고 가주가 되려고 했다는 말이 하고 싶던 거냐?”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세상 누구도 벤헬링턴의 강함을 부정할 수 없다. 고로 함부로 그가 굴복 당했다느니 그런 소리는 불경스러운 발언과 같았다.
정정한 가주를 두고 애초에 반기를 논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었다.
당사자인 유리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벤헬링턴이 살아있는 마당에 누가 나이트워커 내에서 반기를 들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다이올드의 배신을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네놈들 정신머리가 박살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군. 위기가 아니라고? 가문에 배신자가 나타났는데 위기가 아니라고 지껄인 놈들은 뇌수를 어디다 빼먹고 왔군!”
“…….”
“위기를 떠나서 가문의 위상이 떨어진 문제다! 다른 가문들이 우릴 우습게보고 있고, 몇몇 눈치 있는 가문은 벌써 눈치 채고 견제하고 있어. 이게 대체 위기가 아니면 뭐라는 건지, 쯧!”
한바탕 연설을 쏘아붙인 벤헬링턴은 혀를 끌끌 차더니 문 밖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할아버님 말고 누가 더 왔나.’
가문 회의에 올 사람들은 전부 모였다. 여기서 더 와봤자 마리라든가 미앵비슈 정도.
아니면 어머니 샤를린느? 아쉽게도 오늘은 그녀가 끼어 들 자리는 아니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잠시 후, 한 남자가 기다란 로브를 늘어뜨리며 들어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네, 네놈이 여긴 어떻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문객의 등장이었다. 장로들, 봉신 가문의 가주들, 심지어 유리까지 놀란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갑작스레 찾아온 방문객은 절대 이곳에 있어선 안 되었다.
왜냐하면.
“빅스터!”
빅스터 린테어 솔리드녹스. 현 솔리드녹스의 가주가 나이트워커의 회의장 한 가운데 들어왔다.
다들 여차 하면 전투라도 할 요량으로 살기를 뿜어댔다.
그러면서 벤헬링턴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다들 앉아. 괜히 소란 일으키지 말고.”
“하지만 가주님!”
“내가 불러온 거니까, 앉으라고.”
가주가? 그 벤헬링턴이 적이나 다름없는 솔리드녹스의 가주를 불러왔다고?
아니, 왜?
의아했으나 누구도 따지지 않고 일단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그나마 유리가 거듭 그를 노려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 유리의 시선을 받으며 빅스터는 빙긋이 웃었다.
“전에 봤을 때보다 성장했군요, 유리 덴 나이트워커. 흐음, 어쩐지 용……같기도 하고요. 물론 전 진짜 용을 본 적은 없지만요.”
“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알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가려진 마도사라는 칭호답게 빅스터는 유리의 남다름을 단번에 알아챘다.
뿐만 아니라 유리에게서 느껴지는 전혀 다른 마나의 형태도 ‘보고’ 있었다.
“과연 벤헬링턴 님께서 눈 여겨 보시는 분답습니다.”
시시한 감상을 던지며 빅스터는 유리 맞은 편 상석에 섰다.
벤헬링턴이 앉아야 할 자리를 차지했다는 무례함도 잠시. 그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로브 안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커다란 그것은 테이블 위를 구르며 피를 흩뿌렸다.
다름 아닌 어떤 마수의 머리통이었다.
“이, 익!”
“뭔, 짓을!”
“솔리드녹스의 가주! 이 무슨 무례한 짓을!”
다들 기겁하며 테이블로부터 한 발짝씩 멀어졌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시체에 꽂혀있었고, 입은 빅스터를 힐난했다.
하지만 누구도 시체를 치우거나 빅스터를 더 나무라지 못하고, 괴기한 시체의 형태에 정신을 빼앗겼다.
머리의 절반은 늑대, 나머지 반은 곰으로 되어있었다. 마수라기엔 본 적 없는 종류였다.
유리가 물었다.
“키메라인가?”
“정확힌 악마입니다.”
악마!
순간 유리는 이 머리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60번대 악마였던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늑대와 곰의 머리를 반씩 가진 악마가 있다.
그리고 그 악마는 솔리드녹스에 의해 잡혀 죽고 만다.
하지만, 이 놈이 나와야 할 시기는 앞으로 한참 뒤인데?
‘침공이 가속화되고 있다.’
암흑 눈물 사건 때도 그랬듯, 악마들이 서두르고 있었다.
무엇이 계기가 됐을지는 안다.
‘나 때문이야.’
암흑 눈물이 예상했던 시점보다 빠르게 흘러들어온 탓도 있지만.
유리가 데카라비아를 죽이는 바람에 악마들도 급해졌을 것이다. 동쪽 대륙에 악마를 죽일만한 실력자가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겠지.
어쩌면 그 실력자가 카이라고 오해했을 수도 있다.
어찌됐든 악마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카이니까. 카이부터 죽이려 들겠지.
그러나 유리는 굳이 빅스터에게 질문들을 던졌다.
“……이걸 어디서 잡았습니까.”
“서쪽 해안가였습니다.”
“키메라가 아니라고 증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
잠시 숨을 고르던 빅스터는 무거운 입술을 달싹거리며 용언 마법을 펼쳤다.
“배(倍), 기(氣).”
언령이 떨어지자 죽어있던 마수의 머리가 꿈틀거리더니 흐르던 피가 다시금 머리로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살아있는 것처럼 이빨을 딱딱 부닥쳤고, 농도 짙은 마기가 흩뿌려졌다.
흑마법이 내뿜는 마기와는 분명 달랐다.
숨을 쉬면서 마시기만 해도 불쾌감이 밀려온다. 독기처럼 마시면 죽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달콤한 맛이 났다.
악마가 아니고선 내뿜을 수 없는 기운이 회의장을 잠식하자 장로들과 가주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마기가 잠식되어 타락하기 직전.
빅스터가 용언을 거두었다.
“어떠십니까?”
홀린 듯이 저 세상에 다녀온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벌어진 일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흑마법의 검은 마나와 비슷해서 방심하긴 했지만, 마기를 흡입하기만 해도 정신을 빼앗길 줄은 몰랐다.
그나마 대응하고 있던 유리도 예상보다 진한 마기에 놀랐다.
“이게 유리 님께서 말씀하신 악마의 정체이자 위기입니다.”
“이게…… 악마?”
“허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뭐가 말이 안 되더냐.”
이 와중에 벤헬링턴이 어느새 벽에 붙어 있던 보좌진들의 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게 악마의 정체다.”
“가주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
“알았으면, 뭐?”
“아, 아닙니다.”
“이제 더는 위기가 아니라고 지껄이지 못하겠지? 그럼 얼른 대가리 굴려서 대책안을 만들어.”
처음부터 벤헬링턴은 회의장에서 나올 악마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이들이 믿지 못할 거라 판단했다.
때문에 가주를 대신하여 회의를 주재하는 유리가 곤혹스러울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일부러 빅스터를 불러오면서까지 악마에 대해 증명해줬다.
물론, 빅스터 없이 증명해도 됐지만.
나이트워커에 솔리드녹스 사람이 와야만 했을 정도로 사안이 중대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럴 줄 알고 할아버지께선…….’
빅스터의 등장은 유리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이 뭔가. 솔리드녹스를 언젠간 포섭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벌써 벤헬링턴이 빅스터와 가까이 지낼 줄은 몰랐다.
애초에 이자벨 건이 있었기 때문에 쉬운 협조는 아니었을 터.
“하지만 가주님, 악마가 있다는 건 잘 알겠지만.”
그때 한 사람이 태클을 걸고넘어졌다.
아까부터 테이블 위에 있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감정 변화가 적던 남자였다.
벤헬링턴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은 어깨까지 오는 무성한 백발에 눈썹마저 흰색으로 빛이 났다.
‘스테이트 가(家)의 가주인 랭글러인가.’
봉신 가문들 중 가장 오랫동안 나이트워커를 옆에서 보좌해온 용가로, 마리의 본가이기도 했다.
그는 유리가 회의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고만 있었다.
그러다 처음 꺼낸 한 마디.
“유리 님이 가주님을 대신해서 저 자리에 있는 것이 옳은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지금 버젓이 가주님이 계시잖습니까.”
“가주 대행이다.”
벤헬링턴이 딱 잘라 답했다.
“저희의 동의도 없이 말입니까?”
“동의가 왜 필요하지? 내가 하겠다는데.”
“가주 대행직엔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가주님의 부재, 부고, 병가 등등.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유리 님이 회의를 주재하고 장로들을 처형시킨 건 옳지 않습니다.”
스테이트 가문이 오랜 시간 나이트워커를 모셔온 만큼, 랭글러의 발언이야 말로 누구보다 강력했다.
거기에 설득력까지 갖추니 흡사 벤헬링턴을 압박하는 형세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얼른 벤헬링턴에게 합당한 대답을 바라는 식의 시선을 보냈다.
잠깐 동안 담배를 뻐끔뻐끔 물던 벤헬링턴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그거 좋군.”
“……예?”
“병가 말일세, 랭글러. 내가 아파 뒈질 거 같아서 말이야. 그럼 가주 대행직을 맡겨도 되겠지. 안 그런가?”
* * *
가문 회의는 장장 17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마저도 쌓인 안건을 전부 결정하지 못해서 다음날까지도 회의가 이어졌다.
결국 3일째가 되고 나서야 유리도 한숨을 돌렸다.
그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곧장 벤헬링턴이 있는 개인 침실로 향했다.
집무실엔 자주 갔었지만, 침실은 처음이었다.
그의 침실은 가문에서 제일 높은 층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운동장 하나를 옮겨놓은 방의 크기에 유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다가 테라스에 서 있는 그를 발견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벤헬링턴은 상의만 벗은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훈련은 처음 보네.’
마리와 대련까지 해보면서 가문의 검술을 다 봤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가주의 검은 남달랐다.
가볍게 휘두르는 종 베기 한 번에도 무수한 살의와 고요한 파동이 휘몰아쳤다.
드러난 상체는 잘 다듬어진 근육이 갑옷처럼 감쌌고 그 위로는 크고 작은 흉터가 가득했다.
“왔느냐.”
벤헬링턴을 유리를 돌아보지 않고 말을 건넸다. 검을 휘두르는 손끝에는 조금의 흔들림이 없었다.
“잠시 기다리거라. 거의 다 했으니.”
이후 몇 십 번 더 검을 휘두른 뒤에야 납검했다. 땀으로 젖은 옷으로 대충 이마를 닦은 그는 테라스의 티 테이블에 먼저 앉았다.
유리도 자연스레 따라 앉았고, 벤헬링턴이 미리 준비되어 있던 물을 벌컥 들이켰다.
“크하. 그래, 무슨 일이더냐.”
“일전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려고요.”
“뭔 감사?”
“회의실에서 저 때문에 빅스터까지 데려오신 거잖아요.”
가문의 장로를 처형하기를 결정하면서부터 후폭풍이 몰아칠 건 당연했다.
그래서 회의를 주재하면서도 장로와 가주들이 얼마나 잘 따라 줄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여차하면 벤헬링턴의 손을 빌리려고 했지만.
“설마 빅스터에 이어서 저한테 가주 대행직까지 주실 줄은 몰랐어요.”
“장로까지 직접 처형한 놈이 그리 불안했다고?”
“불안하기보다 제가 더 강압적으로 나아가면 곤란해질 테니까요.”
“힘으로 해결하려 했단 말이야?”
“그게 가문의 풍조잖아요.”
장로와 가주가 반발하더라도 유리에겐 힘이 있었다. 그들을 억누를 수 있는 ‘무력’이.
나이트워커는 이 무력이 곧 권력이었다.
“그랬다간 진짜 반란 소리 들었을 게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하는 겁니다.”
“싱겁긴……. 어차피 악마에 대해선 밝혀야 했어. 오히려 늦어졌지.”
“그래서 말입니다만. 악마에 대해선 언제부터 알고 계셨죠?”
그날 회의실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빅스터의 등장보다 벤헬링턴이 빅스터와 함께 악마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던 것 같은 뉘앙스였다.
보통 악마를 보면 당황스러워 해야 정상이다. 제 아무리 용가의 가주라 하더라도 악마의 마기와 사악함에 혀를 내두르는 법.
그런데 회의실에서 보여준 벤헬링턴의 태도는 꽤 예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궁금하느냐?”
“네.”
그 때. 갑자기 벤헬링턴이 놓았던 검을 다시 쥐면서 일어났다.
“그럼 이 할애비 소원 하나 들어다오.”
(다음 편에서 계속)